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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사 42: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한번 정도는 읽어야 할 책 세 권이 있습니다.
기독교 3대 고전이라고 불립니다.
기독교 3대 고전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 어거스틴의 “고백론”, 토마스 아 켐파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입니다.
이 세 권의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는 책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도 찾고, 나도 찾지만, 나만 찾으면 나도 잃고, 하나님도 잃는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찾고, 나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지 않고, 나만 찾으면, 나도 잃고, 하나님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 밖에 있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형편에 있든지,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삶이 고달플수록,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치고 피곤할 때일수록, 새 힘을 주시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환경이나 문제를 바라보면 볼수록 더욱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바라보라는 것은 그냥 멍허니,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지금 제가 주님을 바라봅니다. 나를 도와주세요.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라는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언제까지나 모른 척 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우리의 삶에 개입하여 주십니다.
환경이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롯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고 말했을 때, 롯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던 요단 온 지역을 택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낙심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고 말씀하실 때, 그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았고, 헤브론으로 장막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도 살 줄 알았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하나님의 축복을 팔아버렸습니다. 장자권을 너무 소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실패했습니다.
야곱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안된다”고. 밤새도록,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비록 그의 삶은 엉망이었지만,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못 산다.”고 밤새도록 매달렸습니다.
그는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리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됩니다.
사울과 다윗이 있습니다.
사울, 그는 왕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가 부족했습니다.
그는 “이제는 하나님 없이도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그가 가진 권력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권력을 지키려고 몸부림쳤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으셨습니다. 사울왕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목동,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살 수 없다”고,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만 찾았습니다.
숱한 죽음의 위기 앞에서 엄청난 죄악 앞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도 넘어졌지만, 하나님을 찾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똑똑하고, 더 배경이 좋다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어쩌면 남들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돕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 성공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열심히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 주실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말씀 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까?
이사야 42:9-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
14절 말씀입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다윗은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주는 나의 도우심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시 27:9, 40:17,)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님,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를 도와주세요. 나를 일으켜 주세요. 내 갈 길을 보여 주세요.”라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받으려고 요단강가로 나아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은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요 1:34)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시기 위하여 이곳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려고 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 대신 죽으시려 오셨습니다.
우리의 대속물이 되어주시기 위하여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1892년 낯선 한국 땅에, 26살인 밀러 선교사가 부인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자녀가 없어 고민하던 그들에게, 6년 만에 첫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사랑받던 첫아들은 풍토병을 앓다 8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아들의 시신을 양화진에 고이 묻었습니다.
아픔이 아물어갈 때쯤 둘째아이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둘째아이 또한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1년 뒤, 아픔을 이겨내지 못한 아내는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이 모든 일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밀러 선교사에게 냉소적으로 물었습니다.
“당신이 전하는 예수가 뉘시기에 이렇게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요?”
그들의 물음에 선교사는 답했습니다.
“예수 누구신고 하니, 우는 자의 위로와 빈한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 누구신고 하니,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보임이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예수 누구신고 하니,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대신이며
악한 자의 중보와 멸망자의 공로되고 우리 화평 되시네
예수 누구신고 하니, 성 교회의 머리와 만국인의 구주시며
일만 왕의 대왕과 심판하실 상주되고 우리 자랑 되시네.”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96장의 가사입니다.
사람들이 밀러 선교사에게 “당신이 전하는 예수가 뉘시기에 이렇게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요?”라고 물었을 때, 밀러 선교사는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밀러 선교사는 26살의 젊은 나이에 선교사로 자원, 가정생활에 시련이 많았지만 묵묵히 한국에서 44년간, 일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밀러 선교사의 한국명은 민노아이고,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청주 지역의 복음화를 위하여 힘썼던 선교사입니다. 청주지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입니다.
청주제일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교회를 개척하였고, 탑동에 있는 일신고등학교 교정 에는 그가 생활하던 건물과 그를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청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충복 선교의 아버지로, 우리를 위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여러분! 찬송가 96장의 “예수님은 누구신가”는 예수님의 속성을 ‘20가지’로 요약하여, 경쾌한 행진곡풍의 곡조에 맞춰 찬송을 지어 불렀습니다.
민노아 선교사는 자신의 슬픈 감정이나 어려움을 해명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로 표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민노아 선교사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찬송가 204장의 주의 말씀 듣고서, 427장 “맘 가난한 사람”, 451장 “예수 영광 버리사”, 588장 “공중 나는 새를 보라”는 민노아 선교사가 직접 쓴 찬양 가사입니다.
개인적인 아픔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했던 민노아 선교사의 사연을 읽으면서,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연히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 땅에 오실 메시야에 대한 수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과 주님이 다스릴 나라에 대한 예언들이 가득합니다.
이사야서만 보더라도,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7:14, 9:6)는 메시야 예언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사 11:6)라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애창했던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다가오리라
구약을 읽어보면, 메시야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도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나의 종”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려 오셨습니다.
우리를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의 대속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죽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 12:4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우리를 풍성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다”(갈 1:4)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종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종, 죄악의 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로마서 6:17-1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고 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이제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허락된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영생입니다.
죄의 종은 사망에 이르지만, 의의 종, 하나님의 종에게는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시 1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도,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 7:29)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인 우리는 철저하게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섬김을 받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의지, 이런 것들을 다 내려놓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시 143:10)라고 기도했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았기에, 주님의 뜻 행하는 것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날마다 주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충성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고 말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사 41:13)
다윗은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누가 붙들어 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으로 사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고,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제자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훗날,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 1:16-18)고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성도들에게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바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마 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환경, 우리의 능력, 우리의 소유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 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 예수님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좌로나 우로니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시선은 예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 40일을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이사야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훗날, 베드로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고 증거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롬 8:1-2)
바울은 성도들에게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충만할 때, 믿음생활이 기쁩니다. 힘이 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참된 정의가 이루어집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믿을 수 있는 세상으로 변화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고, 환하게 빛이 비추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불의와 불법과 탈법이 사라져야 합니다.
살만한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더불어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살만한 세상,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도 찾고, 나도 찾지만, 나만 찾으면 나도 잃고, 하나님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이 힘든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 분을 뵐 땐 나는 만족 하였네
저기 빛나는 태양을 보라 또 저기 서 있는 산을 보아라
천지 지으신 우리 여호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 밭에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니 할렐루야 아멘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어진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붙드시고,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날마다 붙들어 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매순간마다 주님만 바라봄으로
이 험한 세상 승리할 수 있도록
주님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