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사멸하는 사회
저자는 1988년생이다. 이제 한창 젊은 혈기로 세상을 살아가는 나이다. 그런 나이는 조금은 거칠고 아직은 완숙미가 느껴질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통념들을 깡그리 걷어낸다. 그의 내공이 결코 만만치 않다. 적어도 나의 생각으로는 그렇다.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방식은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에 한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전문 영역을 벗어나면 아무래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만큼의 식견을 보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비판에 적극 대응하기도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젊은 혈기는 그야말로 무소불위다. 한국 경제, 사회, 정치, 복지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그것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이 ’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망국론과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비교적 긴 세월 동안 한국 공동체 구성원들 스스로가 만들어왔다고 단언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에 너무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당차다.
한국은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돌아간다. 이 때문에 많은 것들이 돈이라는 요소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기존의 공포 마케팅을 탈출하는 방법은 결국 ‘마음의 문제가 아닌 ‘돈의 문제’를 날카롭고 중층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신진대사가 빠른 만큼 쇠락도 빠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우리는 오늘날 급격한 저출산의 늪에 빠져들었다. 거기에 청년문제, 노인문제, 과당 경쟁, 수도권 진입 등 모든 문제들의 난마처럼 얽혀 오늘과 같은 공동체 소멸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부문만을 위한 정책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는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해외에 보유한 자산도 없으며, 식량과 에너지 자급도 불가능하다. 결국 인구감소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동안 목을 조금씩 조이는 중이다.
나. 공동체의 암묵적 선택
저자는 우리 공동체의 선택을 ’자살‘이라고 말한다. 조금은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책을 읽다보면 상당한 부분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먼저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빠른 성장으로부터 논리를 전개한다.
한국 사회는 그 동안 빠른 성장을 보여 왔지만 그 과정에서 균형적인 사회가 아니라 기형적인 사회를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몸이 불균형하고 기형적이면 병이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출산율 감소, 결혼, 출산, 취업, 내 집 마련과 같은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청년 세대에게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미 10년 전부터 불평등, 지나친 경쟁 압력, 지방 소멸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모두 우리 공동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이러한 비극은 우리 내부의 모순을 우리가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를 직시해야 할 집단이 제대로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순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이를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쇠퇴가 급격히 왔다는 점에서 저자는 이를 ’자살‘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한국인들의 전반적인 성격이 이기적이거나 황금만능주의의 면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다소 공허해 보이는 담론은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돈에 관해서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에게 공동체를 건강하게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이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왜 그토록 공동체를 위한 지출에 인색한지를 탐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환경이 계속되면 과연 한국이 어떤 사회로 진입하게 될지를 다양한 경제 현안을 아우르며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결론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황금 티켓 증후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다. 인색한 공동체 유지비용
한국인들은 돈이 없다. 이는 한국인 개개인의 주머니 사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지출할 자원‘이 없다는 말이다. 그 동안 성장에만 몰입하느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 지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자원을 지출한다는 것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타인을 위해 자기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타인을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은 잉여 자원이 발생할 때 가능한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목격할 수 있는 사적인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동체에 자원이 배분되는 방식은 대개 조세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정부가 대의민주주의 의사결정을 거쳐 배분한다. 배분 과정에서 공동체에 대한 자원 배분은 우선순위가 낮다. 그러나 가처분소득에는 시간적으로 가장 먼저 영향을 끼친다.
거기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생필품이 비싸고 대신 사회 인프라와 서비스 물가가 저렴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특성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켜 지금과 같은 인색함의 구조를 완성한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인구가 몰려 살다보니 각종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수도권의 물가는 세계적 수준이다. 국가 간 구매력 비교를 보면 한국은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에 속한다.
이는 가구의 저축여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이며, 낮은 경제적 여유를 가진 구성원들이 자기가 소속된 공동체를 위한 지출에 인색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한국인의 물가 중 압도적으로 한국인들의 생활에 압력을 넣는 것은 바로 식료품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 한국 농업 특유의 영세함을 들 수 있다. 대한민국 초기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해소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영농 육성은 한국의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자유무역 시대가 열림에 따라 사정이 달라졌다.
농산물 시장의 개방은 영세한 한국 농업을 위협했고, 정부는 이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농업에 한해 보호주의로 전환했다. 농업경쟁력보다 농가소득 보전에 더욱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농가의 영세함도 농업소득 보전에도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식료품비용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많이 먹는다. 이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도 다소 상충하는 부분이다. 이 같은 기이한 상황은 세 가지 측면에서 기인한다. 낮은 에너지 물가, 낮은 사회간접자본 비용, 낮은 서비스 물가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 마리 토끼를 잡은 묘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물가를 현실화한다는 것은 엄청난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로서는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라. 사람은 나면 서울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돈도 몰려 있다. 돈이 몰린다는 말은 서울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수요를 계속해서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즉 거주비용이 상승될 수밖에 없다.
수도권의 협소한 주거지 문제를 아파트가 일정 부분 해소한다. 따라서 수도권의 아파트는 더욱 고급화되어 중산층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이는 결국 재건축을 부채질하고 더욱 높은 고층의 아파트를 양산하게 한다. 수도권 과밀화 현상 완화책으로 아파트가 맹활약 중이다.
우리 공동체에서 이루어진 서울 집중의 역사는 경제발전 도상에서 피치 못할 부분이 있었다. 이를 해소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역대 정책의사결정권자들의 국가 운영 방식은 크든 작든 결과적으로 수도권을 오히려 더 크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해 왔다.
또한 은퇴자가 일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주거 역시 양보할 처지가 못 되니 그것이 그대로 청년들의 일자리를 막고 수도권 진입을 막을 수밖에 없다. 결국 주택 가격은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천정부지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수도권은 점점 늙어가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높은 주택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청년층은 서울에 들어오지 못하고, 서울에 살던 사람은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그 안에서 그대로 늙어가는 게 최선이다. 그 결과는 공동체 소멸이다.
“한국 공동체가 가진 기형적인 고물가의 문제, 수도권 집중의 문제, 낮은 노동생산성의 문제 그리고 이것들이 합쳐져서 만들어낸 노인 문제와 여기서 파생된 청년의 문제는 상호 긴밀히 얽혀 ’자살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비극적인 구조를 완성하고 있다.”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