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석평마을의 석송령(石松靈)
경북 예천에는 볼거리가 많다. 그중 하나가 감천면 천향리 석평마을에 있는 석송령(石松靈)이다. 예천에서 영주로 가는 28호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첫 삼거리가 풍기로 들어가는 길이다. 곧 바로 난 영주 쪽으로 달리다 보면 석송령 입구라는 큰 간판이 보인다. 잠깐들어 가면 도로와 바로 붙어서 부자 나무 답게 넓은 광장을 가지고 있는 석송령과 만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
된 이 소나무는 마을의 안녕과 단합을 지켜주는 동신 목(洞神木)이다. 이 나무는 약 6백 년 전 마을 앞을 흐르는 석간천 상류에서 홍수를 타고 떠내려 오던 어린 소나무를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심었다고 한다. 우선 생김새부터가 신비롭다.
나무의 밑동은 어른 세아름이 넘고 중간 양편으로 보통 소나무의 밑동보다 더 굵은 줄기가
뻗어 있다. 나무높이 10m, 가슴높이 둘레가 4m, 나무 가지의 폭은 동서 32m, 남북이 22m에 이른다. 키는 10m, 그늘면적만 2백평을 넘는다. 멀리서 보면 소나무 숲으로 착각할 정도로 거대하다.
이 석송령은 1천4백여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부자 소나무이다. 이 나무가 석송령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이수목이란 사람이 영험이 있는 나무란 뜻으로 석송령(石松靈)이라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말 쯤에 이 마을에는 이수목이라는 분이 살았는데 이 마을에서는 넉넉한 살림살이여서 부러운 게 없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고 대를 이을 자식이 없어서 늘 고민했다고 한다. 몇대째 손이 귀한 집안이다 보니, 이 분에게는 하다못해 양자를 보내 줄 일가 친척 하나 없어 근심이 많았다고 한다 .
자식이 없었던 그는 자기 소유의 토지 6.600㎡를 상속 등기해 주어 이때부터 이 나무는 황목근과 함께 토지를 가진 부자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이수목이란 사람이 자기 땅을 이 소나무 명의로 기증하고 마을을 떠나자 주민들이 "석평동의 영험있는 나무"라며 이름을 짓고 등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이 나무에 얽힌 야화가 재미있다. 어떤 일본인이 이 소나무를 베려고 했다. 우리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고 일본군함의 재료로 쓰기 위해서였다. 순사와 인부를 동원해 장비를 자전거에 싣고 부근 개울을 건너는데 갑자기 자전거 핸들이 부러져 순사가 즉사했다는 것. 6 .25 때는 인민군이 이 소나무 밑에 야전병원 막사를 세웠는데 단 한번도 폭격 으로 인한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마을 주민들은 나무의 보호 관리를 위해 석송계를 조직하고 매년 정월 보름을 기하여 마을의 번영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85년에는 대통령이 직접 5백 만원의 특별관리비를 보내 주었는데 주민들은 석송령 장학회를 구성, 지역 중.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석송령 애호사상 선양에 힘쓰고 있다. 특히 예천군에서는 이 석송령을 군의 상징목으로 선정하여 활용하고 있다. |
첫댓글 요즘 다움에서부터 읽을 거리가 많아서 좋군요 책은 아니 사서 보는데 말이죠... ^_^ 빌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