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사상(選民思想)의 올바른 이해(理解)
<원리강론p551>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애급에서 박해(迫害)를 받아 나온 아브라함의 혈통적(血統的)인 후손(後孫)이 제1 이스라엘의 선민(選民)이었고, 제1이스라엘 선민(選民)에게 이단자(異端者)로 몰리면서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을 받들고 제2차로 복귀섭리(復歸攝理)를 계승(繼承)해 나온 기독교신도(基督敎信徒)들이 제2이스라엘 선민(選民)이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한국(韓國)으로 재림(再臨)하신다면 한국민족(韓國民族)은 제3이스라엘 선민(選民)이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p547~548>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실체헌제(實體獻祭)’를 위한 아벨의 입장(立場)을 확립(確立)하기 위하여 얍복강에서 천사(天使)와 씨름하여 승리(勝利)함으로서 ‘승리(勝利)했다는 뜻’ 으로 받은 이름이다(창32/28) 야곱은 이와 같이 아벨의 입장(立場)을 확립(確立)한 후(後)(장자권복귀후) ‘실체헌제’에 성공(成功)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家庭的)인 기대(基臺)’를 이루었었다. 그러므로 이 기대(基臺) 위에서 그 뜻을 계승(繼承)한 후손(後孫)을 이스라엘 선민(選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어서 이스라엘의 선민(選民)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勝利)한 민족(民族)을 의미(意味)하는 것임으로 야곱의 혈통적(血統的)인 후손(後孫)이라고 해서 그들을 전부(全部)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유태인(猶太人)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祖上)이라고 생각(生角)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子孫)이 되게 하시리라. 고 하였다(마3/9),
또.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에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9/6), 대저 표면적(表面的) 유태인(猶太人)이 유태인(猶太人)이 아니요 표면적(表面的) 육신(肉身)의 할례(割禮)가 할례가아니라 오직 이면적(裏面的) 유태인(猶太人)이 유태인(猶太人)이며 할례(割禮)는 마음에 할지니(롬2/28~29), 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공연(空然)히 아브라함의 혈통적(血統的)인 후손(後孫)이란 사실(事實)만을 가지고서 선민(選民)이라고 자랑하는 유태인(猶太人)들을 책망(責望)한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후손(後孫)들이 모세를 중심하고 애급인들과 싸우면서 그 땅을 떠날 때에는 이스라엘선민(選民)이었지만, 그들이 광야(廣野)에서 하나님을 반역(反逆)할 때에는 이미 이스라엘선민(選民)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광야(廣野)에서 쓸어버리고, 모세를 따른 그 후손(後孫)만을 이스라엘선민(選民)으로 삼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손(後孫)이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을 배반(背反)한 10지파로 된 북조(北朝)이스라엘은 벌써 이스라엘 선민(選民)이 아니었기 때문에 멸망(滅亡)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2지파(支派)로 된 남조(南朝) 유태(猶太)만이 이스라엘 선민(選民)이 되어 예수님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유태인(猶太人)들도 예수님을 십자가(十字架)에 내어줌으로써 이스라엘선민(選民)의 자격(資格)을 완전(完全)히 상실(喪失)하고 말았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대(對)해서 위(位)에서 예거한 것과 같은 말씀으로써 선민(選民)에 대한 의의(意義)를 밝혔던 것이다.
<말선327-112> 제4차 아담권시대이기 때문에 뜻은 만국(滿國)의 오색(五色) 인종(人種)을 넘어서 문화배경(文化背景)을 넘어서 한 형제(兄弟)로 취급(取扱)하기 때문에 국경(國境)을 넘고 민족(民族)을 넘고 종파(宗派)를 넘고 그 다음에 교파(敎派)를 넘어서 결혼(結婚)할 때가 왔다구요. 그래 선민시대(選民時代)가 없어요. 만국선민시대(滿國選民時代)에 들어간다 이거예요. 한국(韓國)사람 이면 한국(韓國)사람 끼리 해야 잘 산다는 생각(生角)이 없어야 돼요. 그런 시대(時代)는 지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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