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시중(奉時中)
[생졸년] 1537년(중종 32)~1569년(선조 2) / 향년 32세
[본관] 하음(河陰) / 인천광역시 강화지역의 옛 지명
[거주지] 전라남도 남평현(南平縣) 죽림촌(竹林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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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 이재(李縡) 撰비문
학생 봉공 묘표〔學生奉公墓表〕
아, 이곳은 효자 봉시중(奉時中)의 묘소이다. 봉씨는 하음(河陰)에서 나왔으니, 고려 위위경 우(佑)가 그 시조이며, 조선에 들어와서는 휘유례(由禮)와 즙(楫)이 부자지간으로 판서를 역임하였다. 그 후손인 판사 윤인(允仁)과 훈도 장(璋) 2대가 효자의 부친과 조부이다.
살던 곳은 남평현(南平縣)의 죽림촌(竹林村)이다. 효자는 장성하여 태헌(苔軒) 고경명(高敬命) 공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훈도공이 병에 걸려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공이 그물을 설치하여 잡으려다가 바람과 우레를 만나 잡지 못하여 울면서 돌아왔는데, 도중에 갑자기 팔딱거리는 큰 잉어가 있어 가져다 올리니, 훈도공의 병이 드디어 나았다.
뒤에 훈도공의 상을 당하여 묘소에 여막을 짓고 거처하면서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고 절을 올렸고, 또 반드시 모친을 시봉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호랑이가 곁을 지키며 떠나지 않았고, 또 그의 행차를 호위하는 것처럼 하니,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상을 마치자마자 결국 누적된 피로로 인해 병이 나서 33세 되던 기사년(己巳年,1569, 선조 2)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뒤 만력(萬曆) 기유년(己酉年,1609, 광해군 1) 고을에서 현에 아뢰고, 현에서 조정에 아뢰어 비로소 복호(復戶)하라는 명이 내려졌으며, 신해년(辛亥年,1611, 광해군 3) 특별히 그 집에 ‘효자(孝子)’라고 정려(旌閭)하였다.
아, 강에서 잉어가 뛰어오른 것은 왕상(王祥)의 효성에 하늘이 감응한 일에서부터 처음으로 역사서에 보인다. 그러나 말세에는 거짓이 만연하여 고을 사람들이 효자를 칭송할 때면 반드시 버릇처럼 이 일을 원용하였으므로, 처음에는 백 년이나 천 년 만에 겨우 한 번 있던 일이 지금은 거의 그런 일이 없는 고을이 없으니, 거짓과 실제가 뒤섞인 것이 이와 같다.
공처럼 실제 행실이 있는 분도 역시 그 사이에 끼어 있어서 사람들이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집안에서 부모를 섬긴 행실이 진실로 남들보다 대단히 훌륭한 점이 있었으니, 한 고을과 한 현에서 믿어준 것이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이와 같은 행실이 있다면 필시 이와 같은 감응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만일 공과 같은 사람에게 이러한 감응이 없었다면 옛부터 효도에 감응한 일은 모두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니, 어찌 옥돌〔珉〕이 싫다고 하여 진짜 옥을 버려서야 되겠는가.
공이 세상을 떠난 지가 지금 거의 200여 년인데 공론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그가 살던 고을을 가리켜 효자촌(孝子村)이라고 하니, 공의 깊은 사랑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천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어찌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이처럼 깊은 감동을 줄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그 후손이 모두 효를 가업으로 삼고 있으니, 역시 봉황의 깃털 하나를 볼 수 있다. 내가 도가 쇠미한 세상에 태어나 감히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삼가지 않을 수 없기에 이렇게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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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학생 봉공 묘표 :
이 글은 봉시중(奉時中, 1537~1569)의 묘표이다. 봉시중의 본관은 하음(河陰)이다.
[주02] 왕상(王祥)의 …… 보인다 :
효행에 감응한 기이한 사적으로, 왕상의 고사이다. 왕상의 계모가 한겨울에 생선을 먹고 싶어 하여 왕상이 얼음을 깨고 물에 들어가려
고 하자 얼음이 저절로 깨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왔고, 또 계모가 참새 구이를 먹고 싶어 하자 참새들이 그 집으로 날아들었다.
《晉書 卷33 王祥列傳》
[주03] 옥돌〔珉〕 :
민(珉)은 옥과 비슷하게 생긴 돌을 가리키고, 옥은 진짜 옥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현인(賢人)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유한다.
[주04] 봉황의 깃털 :
훌륭한 부모를 닮은 뛰어난 자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사람 왕도(王導)의 다섯째 아들 왕소(王劭)의 자가 대노(大奴)였
는데, 그의 자질이 아버지처럼 비범하였기 때문에 환온(桓溫)이 그를 두고 말하기를 “대노에게는 본래 봉황의 깃털이 있구나.[大奴固
自有鳳毛]”라고 찬탄했다는 데에서 온 말이다.《世說新語 容止》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