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활약 한국인 건축가 안지용·이상화씨의 기발한 '바이크 행어'
아래쪽 자전거 형태 페달 밟으면 행어 돌아가 자전거 찾을 수 있어
유지비 연간 15달러에 불과, 뉴욕 "우리 市에 설치 좀…" 의뢰
석유 한 방울 필요 없이 100%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전거는 이론의 여지 없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그린 시티(Green city)'를 표방하는 세계 대도시들이 자전거 도시를 향해 일제히 경주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전거도 공해(公害)가 될 수 있단다. 이 두 젊은 건축가의 관점에선.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건축가 그룹 매니페스토(Manifesto) 아키텍처의 안지용(38)·이상화(34)씨가 디자인한 자전거 거치대 '바이크 행어(Bike hanger)'가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다. 7일 미국의 유명 건축 웹진 '아키 데일리(Arch Daily)'에 소개된 뒤 IT잡지 와이어드(wired),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삽시간에 온라인에 퍼졌다.
- ▲ 서울 한 건물 외벽에 자전거 거치대‘바이크 행어’를 설치한 가상도.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건축가 안지용씨와 이상화씨가 디자인했다. 아래쪽 자전거 모양의 페달을 밟으면 거치대가 돌아가 자기 자전거를 찾을 수 있다. /매니페스토 아키텍처 제공
이들이 만든 바이크 행어는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 길쭉한 타원형 거치대. 30여대의 자전거가 타원을 그리며 매달려 있고 사람의 힘으로 작동된다. 아래쪽에 달린 자전거 형태의 페달을 밟으면 행어가 돌아가 자기 자전거를 찾을 수 있다. 작동 원리도 참신하지만 멀리서 보면 마치 자전거로 만든 거대한 설치 예술품 같기도 해 네티즌들로부터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자전거 자체는 친환경적인데 자전거를 세울 때는 사람들이 밟고 써야 하는 땅을 차지해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26일 전화로 만난 안씨와 이씨는 "자전거가 지닌 친환경 메시지를 최대한 실천하고 싶었다"며 "자전거가 많아지면서 생기는 주차 공해도 염두에 뒀다"고 했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최근 일본 등지에서 등장한 고층 자전거 타워나 자전거 엘리베이터는 전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다. 반면 바이크 행어는 전기가 전혀 소모되지 않아 유지비가 연간 15달러밖에 안 든다. 외벽에 붙이는 형태라 지면(地面)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제작비는 크기와 형태에 따라 4만~10만달러(약 4340만~1억860만원) 정도다.
작품 아이디어는 '자전거 도시'를 내세운 서울에서 나왔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다고 자전거 도시가 되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진정한 자전거 도시가 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 지난해 서울을 둘러봤다. 각 지자체에서 이른바 '디자인 자전거 거치대'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었지만 외관적인 미(美)에만 치중한 게 아쉬웠다. 그러던 중 건물 틈새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1~1.5m 정도의 틈이 있더라. 쓰레기를 쌓아두거나 그냥 버려둔 공간이었다. 딱 자전거가 들어갈 만한 너비였다." 버려진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 친환경이라는 목표에 더 가까워졌다. 이 작품은 지난해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도 수상했다.
- ▲ 재미 건축가 안지용(위 사진 왼쪽), 이상화. 안지용·이상화의 KAIST '김병호 IT융합센터'설계 공모전 출품작 '오픈 패러독스'.(아래 사진)
서울에서 힌트를 얻은 아이디어였지만 작품은 조만간 뉴욕에서 먼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뉴욕시 디자인담당자가 "아이디어가 환상적(wonderful)"이라며 뉴욕시와 뉴욕에 있는 대학 몇 군데에 바이크 행어를 설치해 달라고 의뢰해 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두 사람은 미국의 음악 방송 MTV의 무대 디자인과 올 6월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디자인 박람회 '모던 애틀랜타'의 한국관 설계 등으로 미국에서 한국의 디자인 파워를 알리고 있다. 지난해 KAIST의 '김병호 IT융합센터' 설계 공모전에 출품한 '오픈 패러독스'로 미국건축가협회 뉴욕지부가 시상하는 디자인어워드(AIA NY Design Award)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뉴욕을 기반으로 한국적인 어휘로 해석한 한국 건축과 디자인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