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가을 가요 2 - 17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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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건]
2001년 10월 8일
밀입국하려던 중국 동포 등 25명 시신 수장(水葬)
한국으로 밀입국하려던 중국인 등 25명이 질식사한 고기잡이배 제7태창호의 어창 입구.
중국동포 11명과 중국인 등 60명이 한국 어선에 숨어 국내로 밀입국하려다
선상에서 25명이 집단 질식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들의 시체는 모두 바다에 버려진 것으로 확인됐고,
나머지 35명은 여수 부근 대경도와 돌산도 등에 상륙했다가
2001년 10월 8일 전원 검거되어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신병이 인도됐다.
이들 밀입국자들은 지난 1일 오후 8시쯤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서
100t급 중국 어선을 타고 출항, 6일 오전 1시쯤 제주도 남방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태창호로 옮겨 탔다.
처음 갑판에서 머물던 이들은 해안이 가까워지자 7일 오전10시쯤 배 뒤편 물탱크와
그물(어구) 창고에 35명, 25명씩 나눠 숨었다.
그러나 고기 창고로도 사용되는 그물 창고는 높이 3m, 넓이 3평 남짓한 크기인데다
어구 등으로 입구를 완전히 덮는 바람에 이곳에 숨었던 25명은
불과 3시간 뒤인 7일 오후 1시쯤 선원들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선장 이씨 등은 8일 오전 3시30분쯤 가막만 등대 부근에서 생존자 35명을 한국 어선에 인계했고,
운반책 여모(52)씨에게서 핸드폰으로 수장 지시를 받고 소리도 앞 해상으로
나가 오전 6시쯤 숨진 밀입국자들을 바다에 던졌다.
중국인 밀입국자 25명의 수장사건을 수사중인 전남 여수해양경찰서는
9일 밀입국자 사체를 바다에 버린 제7태창호 선장 이모씨 등 선원 8명을
중과실 치사와 사체유기 등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오늘의 인물]
1992년 10월 8일
빌리 브란트 전(前) 독일 총리 사망
동방정책을 추진, 독일통일의 초석을 마련했던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1992년 10월 8일 7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브란트는 서독의 국부인 아데나워와 함께 오늘의 통일 독일이 있기까지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1913년 12월 18일 독일북부의 뤼벡에서 여점원의 사생아로 태어난
브란트는 어린시절 가난한 생활을 통해 일찍부터 사회주의에 빠져들었다.
서베를린에서 정치생활을 시작한 그는 서베를린 시장(1957년),
사민당 당수(1964년) 등을 거쳐 1966년 대연정(大聯政)을 구성, 부총리겸 외무장관으로 재직했다.
1969년 사민당 출신으론 전후(戰後) 처음으로 독일 총리에 취임했으나,
1974년 보좌관 귄터 귀욤의 스파이 활동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브란트 전 총리의 이름이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1년
베를린장벽이 설치될 때 아데나워 당시 총리가 소극적인 대응을 보인데 반해
서베를린 시장으로서 적극적으로 나선데 따른 것이다.
브란트가 `독일에 필요한 것은 서(西)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이 아니라
동(東)에 대한 화해의 몸짓`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부터였다.
1969년 10월 총리로 선출된 브란트는 곧바로 오스폴리티크(동방정책)라는 이름의 대화합정책에 착수했다.
이 정책의 성공적인 수행을 인정받아 브란트는 197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동서독은 1972년 양국간 통행협정과 동서독 기본조약체결,
1973년 유엔동시가입 등으로 공존과 통일을 향한 장도에 접어들었다.
브란트는 ‘과거의 적’에 대해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데 있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브란트가 1970년 폴란드를 방문, 바르샤바 유태인 거주지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에 의해 희생된 영령에 대해 참배하는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52건
ㆍ2011년 · 美 '대통령의 피아니스트' 로저 윌리엄스 별세
ㆍ2010년 · 중국 반체제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ㆍ2005년 · 인도·파키스탄 대지진 발생
ㆍ2004년 · 아프라카 케냐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 아프리카 여성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
ㆍ2002년 · 단말기 보조금 3년간 금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국무회의서 의결
ㆍ2001년 · 배리 본즈, 박찬호로부터 미 프로야구 사상 최다 홈런 수립
ㆍ2001년 · 밀입국하려던 중국 동포 등 25명 시신 수장(水葬)
ㆍ1998년 · 프로야구선수 타이론 우즈, 첫 외국인선수 MVP에 선정
ㆍ1998년 · 원로 삽화가 김영주씨 별세
ㆍ1998년 · 조세 사라마구 노벨문학상 수상
ㆍ1997년 · 김정일 당총비서직 공식승계 발표
ㆍ1994년 ·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완간
ㆍ1992년 · 현승종 제24대 국무총리 취임
ㆍ1992년 · 세인트루시아의 시인 데레크 월코트, 노벨문학상 수상
ㆍ1992년 · 빌리 브란트 전(前) 독일 총리 사망
ㆍ1990년 · 무용가 한영숙 사망
ㆍ1988년 · 탈옥수 지강헌 사건 발생
ㆍ1985년 · 남북체육회담, IOC주재로 로잔에서 열림
ㆍ1984년 · 삼성반도체 256KD램 개발
ㆍ1983년 · 창경원 동물가족,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사 시작
ㆍ1983년 · 전두환 대통령 서남아, 대양주 6개국 순방 등정
ㆍ1983년 · 중공, 신학대 개설
ㆍ1982년 · 폴란드 자유노조 해체
ㆍ1980년 · 서울지검, 처음으로 순회법률상담제 실시
ㆍ1978년 · 미국, 크루즈미사일 실험성공 발표
ㆍ1977년 · 예비군, `쌍용 작전` 개시
ㆍ1975년 · 살인마 김대두 검거
ㆍ1975년 · 김옥선 의원 파동
ㆍ1973년 ·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 사망
ㆍ1970년 ·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 사망
ㆍ1968년 · 법관추천회의, 새 대법원장에 민복기 선출(21일 정식임명)
ㆍ1967년 · 체 게바라 볼리비아 정부군과 전투중 총상 입고 체포
ㆍ1967년 · 영국 정치가 애틀리 사망
ㆍ1963년 · 유엔총회, 월남의 불교도박해 조사단파견 결의
ㆍ1962년 · 이승만대통령, 미군의 철수연기를 요구
ㆍ1959년 · 정부, 대일통상해제 원칙을 결정
ㆍ1955년 · 국회, 한국통일방안 결의
ㆍ1952년 · 한국휴전회담서 유엔측 무기한 휴전통고
ㆍ1951년 · 휴전회담장소 판문점으로 결정
ㆍ1951년 · 역사학자 김성칠 작고
ㆍ1951년 · 한국-미국 재정협정 조인
ㆍ1943년 · 총독부, 생산증강 노무강화요강 발표
ㆍ1942년 · 인도서 반영국소요. 3천명 사상
ㆍ1929년 · 제1회 경ㆍ평축구전
ㆍ1928년 · 장개석,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
ㆍ1910년 · 중추원 부의장에 김윤식, 고문에 이완용 등 14명 임명
ㆍ1908년 · 구세군 한국본영 창설
ㆍ1895년 · 명성황후, 일본에 의해 시해(을미사변)
ㆍ1895년 ·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 출생
ㆍ1879년 · 독일-오스트리아 동맹
ㆍ1871년 · 시카고 대화재
ㆍ1735년 · 중국 청조 13대 황제 옹정제 사망
[출처 : 조선닷컴]
첫댓글 추억의 가을 가요를 게시해주셔서
추억에 잠시 젖어 봅니다
오늘의 역사에는 밀입국자는 없어야 하는데
한국에 오면 돈을 많이 번다고, 참 안타깝고 한심합니다
독일 통일의 초석을 마련하신 빌리 그란트 수상의 사망
우리나라에도 그런 분이 계시면 좋겠어요
박경리님의 토지 완간하셨다는 날이네요
노벨 문학상감인데 왜 않되는지 참으로 감명깊게 읽어답니다
그 외 많은 사연 많이 배웁니다
벌써 어둠이 내려 캄캄해졌네요
편안하시고 즐거운 불금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