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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멸치
은빛 파도가 묻은 여린 몸
멸치는 난류성 어류이다. 겨울에는 남쪽 바다 멀리 나가 있다가 봄이 되면 쿠로시오난류를 타고 남해안에 붙는다. 몇 년 사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쿠로시오난류가 서해까지 올라오면서 서해에도 멸치 어장이 형성되고 있다. 그래도 멸치는 여전히 남해에서 많이 나고 남해 것이 맛있다고 한다. 남해와 서해의 멸치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멸치는 보통 마른 멸치로 만들어지는데, 그 가공 과정의 오랜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다. 또 멸치는 어떻게 잡느냐도 중요하다. 경남 남해의 정치망 멸치를 다루게 된 것은 그 이유이다.
1 정치망에 배를 대고 멸치를 거두기 위해 그물을 올리고 있다. 보통 아침 5시쯤에 작업을 한다. 2 막 삶은 멸치이다. 정치망으로 잡은 것이라 멸치가 비닐 벗겨짐이 없이 깨끗하다. 3 남해에는 바닷가에 소나무가 많다. 이 소나무 숲은 상주해수욕장의 모래톱에 있는 것이다. |
크고 작든, 잘생기고 못생겼던 멸치인 것은 같다
멸치는 청어목 멸치과의 생선이다. 15센티미터까지 자란다. 일본 문헌에는 4년을 산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볼 수 있는 멸치는 2년생 아래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삼치, 전갱이, 갈치 등등의 멸치 포식자들이 멸치를 자연수명이 다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멸치는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다 한 종의 멸치이다. 전남 지방에서 정어리라고 부르는 대멸도 멸치이며 볶음용의 아주 작은 멸치도 멸치이다. 볶음용의 작은 멸치는 15일에서 한 달짜리이며 국물 내는 마른 멸치는 1년생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비늘이 두껍고 몸통이 약간 튼실한 것을 두고 참멸치라고 부르는데, 이런 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멸치는 수온, 먹이, 해류 등 생태환경에 따라 그 형질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며, 그 중 살이 탄탄하고 보기 좋으며 맛이 조금 더 있을 것 같은 멸치를 두고 그렇게 부르는 것일 뿐이다. 죽방렴에서 잡히는 멸치를 두고 참멸치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도 잘못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잡히든 멸치는 멸치일 뿐이다.
‘대나무 정치망’과 ‘그물 정치망’
멸치를 잡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기선권현망과 정치망. 이 둘은 다시 그물과 어구의 종류에 따라 여럿으로 나뉘지만 기본은 이 둘에서 비롯한다. 기선권현망은 배 두 척이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멸치 어군이 보이면 그물을 던져 양쪽에서 끌어당겨서 잡는 방식이다. 정치망은 바다에 붙박이 그물을 놓아 조류를 따라 들어온 멸치를 거두는 것이다. 여기서 크게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죽방렴이다. 죽방렴(竹防簾)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든 그물’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얕은 바다에 놓아 물살에 밀려들어온 물고기를 잡는 어구이다. 대나무를 박았다고 하지만 정치망의 일종이며 법적으로도 정치망으로 분류하고 있다. 죽방렴, 즉 ‘대나무 정치망’에서 잡은 멸치가 흠집 없이 곱다 하여 비싸게 팔리고 있는데 잡는 방식을 보면 ‘그물 정치망’의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물 정치망’도 멸치에 흠집 없이 곱게 잡는 것은 같다. 죽방렴에서 나오는 멸치는 극소량이다. 그러나 연중 팔리는 죽방렴 멸치의 양은 상당하다. ‘그물 정치망’의 멸치가 ‘대나무 정치망’ 멸치로 팔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망 멸치가 좋은 이유
남해군에는 죽방렴을 제외한 정치망 어민이 40여 명에 이른다. 정치망은 연안에 설치되어 있다. 부두에서 빤히 보인다. 배로 10분 남짓이면 닿는다. 그물은 대체로 T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T의 아래 획은 물고기 유도 그물에 해당하여 위의 가로 획 양쪽 끝에는 물고기가 들어가는 그물이 붙어 있다고 여기면 된다. 물고기가 들어왔을 것으로 여겨지면 가로 획 부분의 그물을 훑어 물고기를 몰아서 뜰채로 건져올린다. 그물은 위아래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큰 물고기가 멸치를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 분리해놓은 것이다. 정치망에 들어온 멸치를 뜰채로 건져올려 뭍의 멸막(멸치를 삶아 말리는 곳)으로 이동하는 데 10분 남짓 걸린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뜰채로 올리자마자 죽지만 이 시간이면 거의 살아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멸막에서는 커다란 솥에 물을 끓여 준비해두었다가 멸치가 들어오면 곧장 삶게 된다. 이때 천일염으로 간을 한다. 삶은 멸치는 채반에서 물기를 빼고 건조기에 들어가 말려지게 된다. 정치망 멸치를 죽방렴 멸치라고 속여 팔 수 있는 것은 멸치 잡이에서 건조까지 단시간에 끝내 멸치의 질이 좋기 때문이다. 기선권현망은 다소 먼 바다에서 조업을 한다. 멸치떼를 쫓아 그물을 던져 양쪽에서 잡아끌어올리므로 멸치가 그물에 손상을 입으며, 배에서 즉시 삶는다고 하더라도 건조까지는 할 수 없으므로 살이 터지고 변색이 되는 등 질이 다소 떨어지게 된다. 정치망 멸치는 그 고급한 질에 비해 소비자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남해군에서 정치망 어업을 하는 어민들이 ‘남해 정치망 자율 공동체’를 조직하여 공동 브랜드 작업을 하고 있어 앞으로는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소매점에서 파는 멸치에 일본어 표식이 세워져 있는 것을 흔히 본다. 지리, 가이리, 고주바, 주바 등등 크기에 따른 분류 표식이다. 이 일본어로 인해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생산자들이 우리말로 분류한 것이 있다. 2센티미터 이하는 자멸, 2~5센티미터는 소멸, 5~7센티미터는 중멸, 7센티미터 이상은 대멸이다. 유통 현장에서도 널리 쓸 말이다.
마지막 떨림이 끝나고 풀죽은 멸치
막 건져올린 멸치이다. 단 몇 초 만에 팔딱이던 동작을 멈추고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정도에서는 손에 올리면 약간의 떨림이 느껴지는데, 숨이 멎기 전 근육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리라. 이 상태를 지나면 바로 부패가 일어나므로 최대한 빨리 멸막으로 가져가는 일이 남았다.
출처:(팔도식후경, 황교익)
남해 시금치
겨울에 맞는 봄의 맛
시금치는 이른 봄에 먹는 채소였다. 가을에 순이 돋고 겨우내 겨우겨우 살아가다가 땅이 녹고 봄바람이 살랑 불 때에야 먹을 수 있는 크기가 된다. 그러다, 재배기술과 품종개발 덕에 사철 시금치를 먹게 되었다. 비닐하우스 등 시설에서 재배하여 가을에 일찍 거두기도 하고 봄이 지나서도 거둔다. 고랭지에서는 여름에도 재배한다. 제철이 아닌 시금치이니 가격이 좋아 이런 재배법이 크게 번졌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사철 먹게 되는 시금치 맛에 뭔가 비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시금치 맛은 단맛이 큰 특징인데 그 단맛이 오간 데가 없이 그냥 풀내만 나는 시금치에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다시 등장한 것이 겨울 시금치이다. 경북 포항, 전남 신안, 경남 남해 등지의 겨울 노지 시금치이다. 이들 시금치는 각각 포항초, 섬초, 남해초 등 지역의 이름을 달고 있다.
뽀빠이와 시금치
시금치의 원산지는 아프카니스탄 주변의 중앙아시아이다. 7세기경에 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11∼16세기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우리 땅에는 조선 초기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생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시금치는 우리 민족에게 아주 친숙한 채소이다. 차례상에 '가채(家菜)'로 오르고 한국의 대표 음식인 비빔밥, 김밥 등에도 반드시 들어간다. 서민의 상차림에는 콩나물 옆에 이 시금치나물이 오르지 않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시금치가 일상의 식단에 크게 번진 데에는 철분이 많아 아이들의 성장발육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일정 역할을 하였다. 밥상 위 시금치나물에는 우리 아이가 만화영화 주인공 뽀빠이처럼 시금치 먹고 튼튼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금치의 철분 '신화'는 1870년 독일의 한 과학자가 시금치의 영양성분 중 철분에 대해 소수점을 한 칸 뒤에 잘못 찍는 바람에 생겨난 일이었다. 수십 년 후 이 수치는 바로잡혔지만 일상에 퍼진 '시금치 철분 신화'는 뽀빠이와 함께 아직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잘못된 정보도 크게 번지면 바로잡기 어려운 것이다.
1 입자루가 붉은 시금치가 반드시 재배종인 것은 아니다. 붉은 개량종도 많다.
2 경남 남해군은 섬이다. 겨우내 따스하고 눈을 보기도 어렵다. 겨울 시금치 재배 적지이다.
3 시금치는 대부분 소규모 농가에서 재배한다. 한나절 거두고 한나절 포장하여 다음날 경매에 낸다.
포항초, 섬초, 남해초
겨울 시금치를 전국적인 브랜드로 만든 최초의 지역은 포항이다. 1980년대에 포항초라는 이름이 생겼다. 처음에는 재래종의 시금치였으나 요즘은 개량종을 주로 심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신안의 섬초가 소비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역시 지역의 재래종으로 시작하여 요즘은 개량종도 제법 심고 있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는 남해의 남해초가 제법 크게 알려지고 있다. 재래종도 있으나 역시 개량종을 주로 심는다. 이 세 지역의 시금치는 포항의 일부 비닐하우스 재배 시금치 빼고는 다 노지의 시금치이다. 시장에 나오는 시기도 10월 말에서 3월 말까지로 비슷하다. 재배 환경도 '바다 옆의 밭'이라는 특징에서 비슷하다. 맛도 그닥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캐스트의 제목을 '남해 시금치'라 하였지만 포항초나 섬초와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또, 남해 옆의 경남 고성 해안가에서도 시금치 재배를 많이 한다.
재래종이 밀리는 이유
재래종이 귀해지고 개량종이 늘고 있는 것은, 첫째는 재배 기간 때문이다. 재래종은 파종 후 90일 정도 자라야 먹을 만한 크기가 된다. 가을에 심으면 이른 봄에나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개량종은 40일 정도만 거둘 수 있다. 또, 재래종은 크기가 작아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적다. 개량종의 한 품종인 '무스탕'과 비교하면 포기당 무게가 서너 배는 차이가 난다. 농가에서는 이 재래종과 개량종을 적절히 배합하여 심는다. 일찍 거두는 것은 개량종을, 늦게 거두는 것은 재래종을 심는 식이다. 그래서 한 밭에 여러 품종의 시금치가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재래종의 재배 장점도 있다. 재래종은 씨앗을 직접 받아서 파종을 한다. 종자 값이 안 드는 것이다. 개량종은 해마다 종묘회사에서 종자를 사야 한다. 개량종은 자가채종을 하여서는 시금치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개량종 중에서는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시금치에서조차 '입맛의 식민'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설탕 뿌린 것 같은 단맛
남해의 시금치 농사는 대면적이 드물다. 대부분 늙은 농부 한두 명이 생계를 위해 유지하는 손바닥만한 논밭에서 시금치를 키운다. 오전에는 시금치를 거두고 오후에는 이를 다듬어 단을 묶는다. 다음날 아침에 지역 농협의 공판장에 가지고 나가 산지경매를 한다. 농협에서 수거하여 가락시장 등 대도시 도매시장에 내어 경매를 부치는 일반의 농산물 거래와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상인이 산지로 내려와 사간다고 보면 된다. 농민 입장에서는 시세를 바로 알 수 있고 상인들에게 다른 지역의 작황과 가격 정보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농민들을 만나면서 어떤 품종의 시금치가 맛있는지 내내 물었는데, 답은 항상 같았다. "품종보다는 언제 나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1월 말부터는 어떤 품종이든 설탕 뿌린 것같이 달다." 과연 그랬다.
보기 힘들어지는 재래종
재래종 시금치이다. 잎자루가 길고 잎이 무성하지 않다. 잎의 끝이 뾰족하고 옆선의 굴곡이 심하다. 맛은 이 재래종이 개량종에 비해 더 있다고 하나 재배 조건에서는 개량종에 못 미친다. 가을에 파종을 하여 90일 정도는 키워야 수확이 가능하다. 시장에서는 재래종, 개량종 구별 없이 팔린다.
출처:(팔도식후경, 황교익)
남해군 지역 특산물 현황
구분계절별봄(3~5월)여름(6~8월)가을(9~11월)겨울(12~2월)
① 작목명 | 마늘종 | 남해남도마늘 | 보물섬쌀 | 시금치 | |
② 생산현황 | 재배면적(ha) | 872ha | 872ha | 700 | 1,210 |
연간 생산량(톤) | 3,245 | 14,877 | 3,400 | 13,988 | |
③ 주요 생산단지(업체) | 동남해농협, 새남해농협 | 동남해농협, 새남해농협 | 남해군농협 쌀방앗간 | 보물섬남해클러스터조합공동사업법인 |
지역 특산물 추천 사유
① 마늘종 : 겨울을 월동하고 생산되는 남해마늘종은 육질과 당도가 뛰어나 조림반찬, 마늘종 장아찌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② 남해남도마늘 : 주요 품종이 남도마늘로 겨울이 나기 전에 잎이 자라 올라와 월동후 5월말경 수확하는 품종으로 재배기간내 해풍에 노출되어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강해, 생마늘로 구운 고기와 함께 먹으면 식감이 좋고, 김장용으로 저장성이 뛰어나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다.
③ 보물섬남해쌀 : 깨끗한 해풍과 친환경지역에서 친환경농법으로 밥맛 좋은 품종을 선택하여 고품질 쌀 생산.
④ 시금치 : 깨끗한 남해의 월동 시금치로 단맛과 식감이 우수하며 품종 단일화, 기계파종 재배기술 보급으로 품질 좋은 시금치 생산.
남해마늘종
남해 남도마늘
보물섬남해쌀
남해시금치
출처:(지역별 대표 농특산물 모음집, 농촌진흥청)
남해군 호도[虎島]
새섬 옆의 호랑이 모습을 한 범섬
요약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에 위치하고 새섬 옆의 호랑이 모습을 한 범섬으로 면적은 0.139km2, 해안선 길이는 3.8km이며 인구는 15가구 26명이다. 군청에서 호도마을에 모노레일카를 시설해 주었다. 국비로 5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었다고 한다. 이런 시설이 완료되면 이도 현상은 줄어들 것이고 노약자만 살고 있는 섬에도 다소 활기가 넘칠 것으로 예상된다.
호도 개요
호도는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0.139km2, 해안선 길이 3.8km, 인구는 15가구 26명이다. 군청에서 직선거리로 37.6km, 남해도 남단에서 1.2km 해상에 위치하며, 부근에 고도 · 목과도 · 조도 · 예도 등이 있다. 호도는 일명 범섬이라고도 한다. 남해군 주민의 대부분은 큰섬인 남해도와 창선도에 분포하여 살고 있다. 남해군의 유인도인 조도, 호도, 노도에는 모두 69가구 189명이 생활하고 있다. 나머지 65개의 섬은 무인도이며 가장 외해에는 세존도의 경치가 빼어나다. 남해는 1973년 6월, 660m의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1980년에는 남해와 창선도 사이에 연도교가 건설되면서 남해도와 창선도가 하나가 되었다. 그동안 경남의 동부권과 교통이 불편했던 남해와 창선도에 3개의 섬을 5개의 교량으로 잇는 삼천포대교가 들어서면서 서천(삼천포)과 이어졌다. 남해와 창선도 그리고 삼천포를 잇는 길이 개통되면서 재도약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 길은 삼천포와 통영, 부산으로 곧장 이어진다. 남해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미조항, 여기서도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호도와 조도는 고속도로와 도로망의 눈부신 발달로 거리의 단축성과 편리함 때문에 많은 차량들이 찾아온다. 아름다운 미조항은 남해군의 최남단에 자리잡고 있다. 미조항 근해에는 보석처럼 박힌 16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멋진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그 보석들 중에서 중심이 호도이다.
호도 아름다운 항구, 미조포구
미조항에서 조도와 호도행 등 주변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다 보면 독특한 모양의 섬들을 만날 수 있다. 영락없이 엎드린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는 호도, 날아가는 새를 닮았다는 조도, 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무인도인 사도 등 이곳의 섬들은 제각기 생김새에 따라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호도와 조도의 관문인 미조항에는 방금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이 넘치지만, 6월에는 두말할 것 없이 ‘멸치’라고 할 수 있다. 초여름 미조항에서는 은빛 멸치들을 그물에서 털어내는 어부들의 쉬지 않는 손놀림을 구경할 수 있다. 구릿빛 얼굴을 한 어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그물에 걸린 멸치를 털어내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미조항 언덕에 위치한 무민사는 조선 중엽에 세워진, 최영 장군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그 당시 미조진항을 수비하던 첨사(종3품)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최영 장군의 영정과 칼이 바닷가에 있으니 찾아서 잘 모셔라”하고 사라진다. 꿈에서 깬 첨사는 노인이 가르쳐준 바닷가에서 나무로 만든 궤짝 속에 든 최영 장군의 영정과 칼을 발견하고 사당을 짓고 이름을 무민사라 했다고 한다. 지금도 봄, 가을이면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남해 미조항
호도 돌아보기
미조항에서 출발하는 조도호를 타면 섬의 서북쪽 방향의 선착장에 내려준다. 작은 마을이라 조용하기만 하다. 선착장이라고 하지만 포구 같은 느낌은 전혀 없다. 60-70년대 영화 속에 나오는 선착장 모습이다. 조그만 배가 두 척 묶여 있다. 포구 안으로 들어가면 딱딱한 시멘트 바닥 뒤쪽에 건물 한 채가 전부인 마을이다. 3층짜리 건물이 가운데를 차지해 왕관처럼 보인다. 이 건물이 호도의 경로당 겸 펜션이다. 선착장 오른쪽 방파제 가는 길목에는 다양한 어구들이 있고 컨테이너와 창고용 건물이 몇 채 있다. 옆으로 시멘트로 된 계단길이 있다. 이 길이 마을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계단을 오르면 길은 좌우로 갈리는데, 왼쪽은 선착장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마을로 가는 길이다. 직진 길을 택하면 얼마 가지 않아 또 길이 갈리는데 직진하는 길은 평지길인데 비해 오른쪽은 계단길이다. 계단길을 타면 옛날 초소로 사용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예전에는 최대 27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1973년도에 23가구 주민 139명, 분교생 23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떠나고 나이든 사람들만 남았다. 현재 15가구 2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섬의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다 하여 어부들은 범섬이라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호도의 기차 모노레일
선착장에서 조금 더 가면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상당히 경사진 비탈길로, 한참 올라가야 마을이 나타난다. 평지에서도 지팡이를 들고 걸어야 하는데 노인들에게는 고생길이었다. 바다에서 잡은 고기와 해산물을 이고 지고 올라가야 하고, 농산물을 수확하여 미조항에 나가려면 그 물건을 가지고 내려와야 한다. 그냥 올라가도 버거운데 나이가 많은 노인들만 살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섬이다. 그래서 군청에서 호도마을에 모노레일카를 시설해 주었다. 국비로 5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었다고 한다. 이런 시설이 완료되면 이도 현상은 줄어들 것이고 노약자만 살고 있는 섬에도 다소 활기가 넘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을 주민들은 이것을 ‘모노리’라 부른다. 이 모노리 덕분에 어른들의 뭍 나들이가 한결 쉬워졌다. 화물칸도 있으니 참 다행이다. 쌀이나 무거운 가스통을 운반하기에 적당하다. 이 시설은 일제(日製)다. 아무튼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사는 이곳에 꼭 필요한 교통시설이다. 이런 시설은 울릉도의 죽도와 여수의 광도, 제주도의 추포도와 횡간도에 설치되어 있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복지는 필요한데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대부분 뒷전에 밀리고 있다. 육지에는 복지가 넘치고 중복되고 있지만, 섬에는 전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예산이 배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배를 가지고 복지 시설이 없는 곳을 다니면서 섬복지를 실시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다. 배삯이 비싸면 한 달에 두 번 정도 행정선을 이용해도 된다. 복지사들과 자원봉사자들만 확보하면 된다. 먼 섬은 위험 부담이 있고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호도나 조도, 노도 같은 육지와 가까운 섬부터 시작하면 가능하다. 모노레일을 도입한 호도 노인들에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전기를 사용하다 보니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단다. 한 달에 60만원 정도라는데 이것을 노인들이 공동으로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다. 그래서 전기세 걱정에 모노리 사용을 자제하고 특별히 짐이나 몸이 아프면 몰라도 걸어서 다니기도 한다. 남해군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직 해답이 없다. 이것은 명백히 섬 주민들에 대한 차별 대우가 아닌가 싶다. 모노리는 호도 섬 주민들의 대중교통이다. 육지에서 노인들은 지하철이 무상이다. 버스공영제를 실시중인 신안군은 65세 이상이면 시내버스도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교통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혜안이 필요한 부분이다.
모노레일로 호도 마을 돌아보기
마을이 시작되는 지점은 ‘호도길 21’번이다. 한 채가 아닌 여러 채가 엉겨 붙은 형태다. 수리에 수리를 겹겹이 한 것이다. 왼쪽은 오래 된 것이고 오른쪽은 조립식 주택이다. 그 사이는 마당이다. 몇 개의 골목길이 있는데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폭이다. 그러나 그런 길도 사실 몇 개 되지 않는다. 이어진 골목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밭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그 아래로 학교터가 있다. 밭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아담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최고점 140.8m의 구릉이 있을 뿐 지역이 대체로 평탄해 농경지가 많다. 그래서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단층 건물들이 몇 채 있는데 빈집도 섞여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가을 햇살에 빛난다. 한쪽에서는 튼튼한 건물이 생기고 있는데 펜션시설이다. 멀리서 봐도 학교터임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보전이 잘 되어 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운동장이다. 그러나 정작 가까이 다가서자 정돈되지 않은 탓에 잡초가 무성하다. 이곳이 미조초등학교 ‘호도분교’터다. 노도와 마찬가지로 호도분교도 마을 주민이 이용하고 있다. 경남의 폐교 중 대지 면적(843m2)이 가장 작은 호도분교는 교실 2칸, 화장실, 운동장 등이 있으며 마을 주민 한 사람이 5~6평 남짓 되는 숙직실에 머물면서 관리를 맡고 있다. 학교터는 이곳에서 괜찮은 위치에 있다. 바로 옆은 낭떠러지다. 바로 바다와 담을 경계하고 있다. 분교 근처에 있는 가옥의 옥상에는 위성 안테나가 설치돼 있다. 호도에도 교통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 개통되었기에 귀농을 하는 분들에게는 좋을 것 같다. 전기는 물론 물 문제도 오래 전에 해결되었다. 배만 있으면 황금 어장터가 있다.
인터넷을 하는 집은 바로 어촌계장이다. 집안에 들어가 보니 잘 보관되어 있는 지게와 바작 그리고 밭갈이에 쓰이는 쟁기, 절구통 등 농기구들이 즐비하다. 옛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간직하고 있는 마음이 아름답다. 이 마을에 있는 옛것을 다 모으고 이웃 섬에서도 구해온다면 호도에 작은 민속 박물관을 하나 차려도 좋을 것 같다. 마을 주변으로 밭이 있는데 주로 배추와 고구마 등이 재배되고 있다. 마을 전체가 걸어 다녀도 몇 분 걸리지 않을 크기다. 섬의 중심부에서 약간 아래쪽으로 마을이 있다. 물론 산 능선이라 어디서건 주변 조망이 좋다. 밭에 올라서기만 해도 남해안의 모습이 들어온다. 집집마다 파란색의 대형 물통들이 많다. 호도는 지난 2009년 9월에 육지에서 상수도가 들어와 식수난에서 벗어난 상태다. 빈집도 있지만 사람 사는 집이 더 많다. 밭 사이의 포장도로를 타고 능선을 오르면 동남쪽으로 이어지는데 맞은편 해안 바로 앞이다. 섬 모양은 호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클로버처럼 생겼으며, 해안 곳곳에 해식애가 발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해군의 기지로 이용되었던 배경을 고려하면 오른쪽 언덕 어디쯤에 해군기지 터가 있을 것이다. 호도와 미조항을 이어주는 도선인 ‘조도호’는 호도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상태가 아주 깨끗한 조도호는 2012년에 취항한 도선이다. 원래 이곳은 ‘갈매기호’가 주민들의 발이었다. 그러다가 16년 만에 폐선되었고 지난 2010년 건조되었다. 19톤급으로 하루 일곱 차례 사항마을과 조도, 호도를 왕복하고 있다. 조도호는 32명의 승객을 한번에 실어 나를 수 있다.
출처(한국의 섬 - 경상남도)
2022-10-18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