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9 물날 날씨: 아침 나절 줄곧 부슬비가 내리다 오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아침열기(노래, 말놀이, 책읽어주기, 뒷산 가기)-글쓰기(그림그리기, 시 쓰기)-점심-청소-풍물-교사마침회-부모교육모임(먹을거리), 모두모임(터전 찾기)
[나뭇잎과 벌레 세상]
아침열기를 하려는데 남민주가 교실 벽장에서 울고 있다.
아이들은 바닥에 흘린 매실차를 닦고 민주를 달래고 있다.
“무슨 일이야? 매실 먹다 흘려서 그런 거니?”
아이들이 매실차를 물병에 가져오곤 해서 서로 나눠먹기도 하고
가끔 서로 주기 싫을 때가 있어서 그런 일인가 물었더니 정우가
“그게 아니고요. 우리가 지빈이한테 민주 매실차 주지 말라고 해서 그래요.”
“아니 왜?”
“그냥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그럼 모두 다 사과한 거니?”
“아니 저는 사과했는데.”
“강산이도 사과했니?”
씩 웃고만 마는 강산이 얼굴에 미안함이 드러난다.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하기가 안 되나보다.
선생까지 알고 일이 커졌으니 더 그런 가 웃기만 하고 있다.
“정우, 강산 왜 그랬어?”
“그냥요. 장난으로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려지기에 조금 진정된 민주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주가 무슨 일인지 이야기 해주래?”
“정우랑 강산이가 지빈이한테 나 매실차 주지 말라고 해요.”
“아니 왜? 민주도 매실차 갖고 와서 늘 나눠먹고 그러잖아.”
“안 줄 때도 있다고 하면서 막 주지 말라고 해요.”
다시 감정이 복받쳐 우는 우리 민주 모습에 동무들이 많이 미안한 표정이다.
그냥 사과하고 넘어가기에는 여름학기 한 이야기도 있고 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봐야지 생각하고 모두를 일어나게 했다.
“이렇게 동무들끼리 미안한 일이 있을 때는 서로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가장 좋아요. 어떤 장난도 동무를 슬프게 해서 울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건 더 이상 장난이 아닙니다. 나도 좋고 받아주는 사람도 기분좋게 넘어갈 수 있는 게 장난이고, 서로 속상하면 그건 장난이 아니죠. 우리 푸른샘도 이젠 장난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서로 진심으로 사과하는 연습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옛날에 배운 건데 서로 절을 하며 마음을 나누는 방법으로 아침열기를 시작할께요.”
절한다는 말에 뭐가 웃긴지 키득키득 웃는 아이들에게 이번에는 엄숙한 표정을 짓고 다시 말을 했다.
“웃긴 이야기가 아니고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가 아니잖아요. 맑은샘학교 1학년답게 놀 때 잘 놀고 집중할 때 잘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좋겠어요. 자 시작할께요. 선생님이 말하는 걸 따라 말하고 함께 절합니다.”
“근데 선생님도 해요? 우리끼리 사과하고 절하면 되는데.”
“당연히 선생님도 합니다. 푸른샘에서 일어난 일이고 어린이들과 함께 살면서 도와주고 가르쳐주는 게 있으니 선생님 책임도 있지요. 옛날에 거친 말 하는 선배들이 있어서 선생님이랑 마주보고 108번도 절한 적이 있어요. 자 선생님 하는 말 잘 듣고 따라 말해요.”
동그랗게 서서 나태주 시도 말하고 절하고, 동무들을 사랑하자고 말하고 절하고, 열 번을 하는데 역시 새롭게 하는 절이 재미있는지 웃으며 즐겁게 하다 보니 마칠 때는 모두 얼굴이 환하다.
“선생님이 아는 학교 선생님들은 아침마다 서로 세 번 절하며 아침열기를 했다고 해요.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줄곧 하다 보니 더 서로를 사랑하게 됐다고 해요. 열 번 절하는 거 어땠어요.”
“재미있어요.”
“옛날에 이십 번도 넘게 절한 적도 있어요.”
“으잉 그래. 그런데 서로 미안한 마음이나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겼나요?”
“음...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모두 풀린 마음으로 함께 한숨도 쉬지 않고 부르는 노래를 부르고 권정생 선생님 동화책을 읽어주니 선생 둘레에 모여든다. 별로 재미없다는 아이도 있고 재미있다는 아이도 있다.
뒷산에 슬슬 올라가다 사실은 아무것도 가꾸지 않는 남의 밭이 아까워 지나가다 두 개 심어 놓은 고구마순이 정말 잘 자라고 있어 아이들이 고구마순을 대견해한다. 찔레꽃과 토끼풀, 아카시아 꽃이랑 산딸기꽃을 확인하며 가는데 뱀딸기가 빨갛게 아이들을 유혹한다. 자꾸 먹고 싶다 해서 한 번 먹어보고 뱉으라니 얼른 따서 입에 넣고 맛보고 뱉는 아이들.
“맛이 어때?”
“달콤하고 맛있어요.”
“그런데 왜 뱉었어?”
“선생님이 뱉으라고 했잖아요.”
“아 그랬지. 선생님도 어렸을 때 많이 따먹고 다녔는데. 맛이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고 밋밋한 맛인데. 먹어도 돼. 어른들이 뱀딸기 먹지 말라고 한 건 뱀이 잘 다니는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뱀에게 물릴까봐 독이 있다고 했던 것 같아. 이름도 그래서 뱀딸기야. 우리는 산딸기 많이 먹고 뱀이 뱀딸기 많이 먹으면 되지 뭐.”
“애들아 여기 봐. 돌나물 꽃이 정말 예쁘다. 돌나물은 돌려나기로 잎이 나있네.” 사진도 찍고 다시 걷다,
“애들아 여기 풀잎 좀 봐. 잎이 나오는 차례가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마주나기로 났어. 지난번처럼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면 좋아.”
“어 이건 어긋나기로 나 있어. 곧게 자라는 녀석들은 거의 다 어긋나기야.”
“아 찾았다. 이건 쇠뜨기처럼 돌려나기야. 봐봐.”
“질경이랑 은행나무, 소나무, 민들레는 무리지어나기로 잎이 나와.”
“줄기는 곧은 줄기, 기는 줄기, 감는줄기로 나누는데 우리가 심은 오이는 감는 줄기야.”
“그런데 잎들이 왜 이렇게 나올까?”
“그렇지. 햇빛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선생은 열심히 말하는데 아이들은 한 번 휙 보고 가거나 자세히 보는 때가 골고루 있는데 오늘이 딱 그렇다. 자세히 보다가도 휙 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더니 가위바위보 하자며 아카시아잎을 따온다.
기륭나무 맞은편에 있는 대나무 세 그루를 지날 때마다 한 번씩 흔들어 보고 가는데 역시 정우가 대나무를 흔들며 그런다.
“대밭에 댓잎이 대대. 그런데 대대 소리가 안나.”
말놀이로 배웠던 “갈밭에 갈잎이 갈갈, 대밭이 댓잎이 대대...”를 기억해서 꼭 그런다.
그러면 나도 “정말 대대 소리가 안나네.” 그러고 가는데 혹시나 해서 대나무 세 그루 뒤 산쪽을 자세히 보는데 앗 찾던 죽순이 올라와 있다.
“야호! 애들아 우리 횡재했어. 죽순 하나 나온 걸 찾아냈어.”
아이들이 몰려와서 서로 만져보려고 손을 내민다.
“만져봐. 위쪽에서부터 여기까지가 부드럽고 아래쪽은 벌써 단단해져간다. 조금 일찍 찾았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래도 먹을 수 있어. 점심 때 선생님이 삶아줄게 초장에 찍어 먹자. 먹을 거지?”
“네.”
“얘들아 산딸기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가자.”
“어 애들아 이 나무 좀 봐. 송충이가 잔뜩 있어.”
“정말이네요. 선생님 저기도 있어요. 여기도 있어요.”
아이들이 가르 키는 곳을 자세히 보니 정말 나무 곳곳에 송충이 딱 붙어있다.
“송충이 색깔 좀 봐. 털이랑. 나무색이랑 비슷한 색깔을 내는 녀석들이야. 비슷한 색깔로 위장하는 것랑 비슷해.”
“ 어 이건. 애들아 여기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고 있어. 여기 좀 봐.”
아이들이 몰려와 다시 보고 간다. 여름이 되어가니 산 속에는 정말 벌레가 많다. 나뭇잎이 그득하니 먹을 것이 천지인지라 녀석들이 나뭇잎마다 달라붙어 있다. 정말 벌레들의 천국이다. 쐬기에 물리지 않도록 긴 옷과 다녀 온 뒤 옷을 잘 털고 잘 씻어야 할 때다. 살인진드기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에게서 사람을 격리시키는 세상이 올까 무섭기도 하다.
뒷산 놀이터와 텃밭에 들려 나무집을 더 세우고 우리가 만든 지름길로 내려오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려고 한다. 갖고 간 우산을 펼치고 어서 가자 외치는데 아이들은 겉옷에 달린 모자 쓰고 먼저 뛰어가버린다. 아이들 모두 긴 겉옷을 입고 와서 추워하지 않아 좋다.
교실로 와서 죽순을 놓고 그림을 그린다. 자세히 보고, 그리고, 만지고, 냄새 맡고, 나중에 먹으면 글이 저절로 잘 나오길 바라는 선생 마음이 들어있다.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답게 정말 형태를 잘 잡는다. 다 그린 다음 죽순 껍질을 모두 나눠서 벗겨보라는데 껍질이 멋있다고 서로 가지려고 한다. 뭐든지 호기심을 갖고 놀이감으로 쓰려는 아이들이라 예쁘다. 한참 쉬고 글쓰기를 하는데 죽순, 뱀딸기, 잎 나기, 송충이 저마다 쓰고 싶은 대로 짧은 글을 쓴다. 모두 시다.
점심 때 얼른 죽순을 삶아 찢어서 아이들에게 주니 정말 맛있다며 잘 먹는다. 다른 모둠 아이들도 먹고 싶다고 해서 그 조그만 죽순으로 모두를 먹였다.
죽순 맛을 보니 자꾸 안골 대나무숲이 생각이 나서 얼른 점심 먹고 손호준 선생이랑 안골에 갔다. 옛날과많이 달라진 안골이다. 산쪽으로 걸어가는데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뭐지 하며 가까이 가서 보니 아니 앵두가 아닌가. 아이고 비닐주머니가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늘 주머니에 비닐주머니를 갖고 다녔는데 겉옷을 안 입고 다니니 이럴 때 낭패다 싶다. 옛날 안골 터전에서 살 때는 앵두나무쪽으로 갈 일이 없어서 몰라봤던 것이 갑자기 얼마나 아쉬운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이들 먹일 생각에 손호준 선생과 내 손 가득 앵두를 따서 대나무밭쪽으로 갔는데, 어라 대나무숲이 사라졌다. 죽순이 많이 자라버려서 거의 없다. 죽순 따러 갔다 앵두만 따서 왔다. 그래도 빈손이 아니니 얼마나 좋은가.
돌아와 아이들 앵두 먹는 모습에 그냥 배가 부르다.
청소 시간에는 마당 자루 텃밭과 마당 화분에 심어 놓은 채소들을 모두 뜯으니 정말 많은 양이 나온다. 부지런히 따먹어야 빨리 자라는 쌈채소라 손길이 자주 가야 한다. 승민이 활동보조를 하시는 김미성 선생과 하루선생으로 사는 양미연 선생 가져가시라고 신문지에 잘 싸놓으니 아무 것도 아니지만 정성을 드리는 것처럼 마음이 좋다. 옥상에 아이들이 심어 놓은 채소들도 아이들이 집에 가져가도록 슬슬 도울 때다.
첫댓글 에고~~ 우리 예쁜 민주가 많이 속상했겠네요. ^^;; 죽순이랑 앵두 참 맛있었어요. 선물로 주신 채소는 마침 정우 할머니께서 오셔서 나누어드렸어요. 야들 야들한 상추가 쌉싸름하니 맛있었어요.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날집에돌아온민주는송충이가산에너무많다면서..자기몸에도붙어기어다니는것같다해서옷을다벗고송충이가있는지살펴봐주었었는데...매실차사건으로눈물흘린이야기는전혀~~못들었네요.미안하다사과하는아이들,마음으로달래주시고올바르게이끌어주시는선생님을대하니~모든것들이배움이라는생각이듭니다.아이들생활이담기고선생님의사랑이담긴글을통해서참많이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