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성묘 에세이】
부모님 산소 ‘고사리’
― “너무 많아도 걱정이네요”
윤승원 수필가
오늘은 어머니 돌아가신 날입니다. 고향 선산에 가서 성묘하고 묘제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산소에 고사리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봉분에도 고사리가 쑥쑥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것은 이파리가 활짝 핀 것도 있습니다.
‘고사리손’이라는 말도 있지요. 땅속에서 방금 올라온 듯한 고사리 어린 순을 보면 마치 어린아이의 손이 연상되어 귀엽고 예쁘기만 합니다.
그런데 저는 걱정이 됐습니다. 귀엽고 예쁘다고 하면서 걱정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고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사리를 전문적으로 꺾으러 다니는 이른바 나물 채취 꾼과 약초꾼 할머니들이 산소를 누비고 다닙니다.
부모님 산소 봉분 위 고사리를 꺾으려다가 미끄러졌는지, 멧돼지 방지용으로 씌운 청색 나이론 망이 일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봉분의 흙이 흘러내린 자국도 군데군데 보입니다.
저도 고사리를 참 좋아합니다. 나물 요리도 좋아하고, 고사리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는 더 좋아합니다. 고사리가 들어간 육개장 등 어떤 음식도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산소에서 고사리를 꺾어가는 사람 중에 일부는 고사리가 먼저이지, 산소가 훼손되는 것은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 큽니다.
그렇다고, 산소에서 자라는 고사리의 싹을 아예 모조리 제거할 방법도 없습니다. 더구나 산소에는 제초제를 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고사리는 꽃과 씨앗이 없고 포자를 통해 번식하는 *양치식물(羊齒植物)입니다. *양치식물은 포자로 번식하며 뿌리, 줄기, 잎을 가지고 있는 유관속식물(維管束植物)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원시적인 식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식정보 자료)
귀엽고 예쁜 어린애 손같이 앙증맞은 ‘고사리순’. 식탁에 올라오면 온 가족이 다 좋아하는 고사리나물과 고사리 된장찌개.
양지바른 부모님 산소에서 유독 잘 자라는 고사리를 보면서 걱정이 큽니다.
무슨 특별한 묘안이 없을까요? 고사리 꺾을 때 주의 사항을 적은 ‘경고 팻말’을 산소 앞에 세울 수도 없고 말입니다.
산소 관리를 철저히 하는 장조카도 이런 사실을 알면 저와 똑같은 심정으로 걱정할 것입니다.
선산에 성묘하면서 뜻하지 않게 고사리 때문에 이렇게 걱정해 보긴 처음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고사리도 한철’이라는 말이 있어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지요. 아마도 나물 채취 할머니도 이 주변 동네에 사실 거예요. 연세 드셔서 산에 오르기도 힘든 할머니가 오죽하면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겠어요. 주머니 달린 앞치마에 고사리를 가득 꺾어 가시다가 봉분 위에서 미끄러진 것으로 보여요. 말하자면 ‘생계형 나물 채취’로 보이니, 인정으로 너그럽게 이해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다소 걱정이 누그러졌습니다. ‘고사리도 한철’이라는 말이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연세 많으신 ‘고사리 채취 할머니’의 사정과 형편도 역지사지로 헤아려 보게 됐습니다.
동행한 공무원 아들의 의견 역시 재미있습니다.
“아버지, 선산에 고사리가 많으니 저는 좋아요. 성묘도 하고 고사리도 꺾으니 일거양득 재미도 있고, 수확하는 즐거움도 있어요. 그리고 1년에 단 한 번, 음력 3월 중순 할머니 제삿날을 즈음하여 고사리순이 올라오잖아요. 한시적인 현상일 뿐이에요. 이렇게 무성하게 올라오는 잡초도 추석 때는 말끔하게 벌초하니, 고사리가 많다고 굳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삼인행(三人行) 필유아사(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걸으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뜻으로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지요.
오늘은 아내와 아들이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부모님 산소 앞 잔디마당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준비해간 음식을 펼쳐 놓았습니다.
오늘은 어머니 기일(忌日)이지만 아내의 생일(生日)이기도 합니다.
마치 ‘가족 소풍’ 온 듯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데, 고사리가 돗자리 옆에도 눌려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고사리를 꺾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주머니 달린 앞치마’를 두르고 웬 낯선 할머니가 저만큼에서 우리 가족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요?
▲ 어머니 돌아가신 날, 부모님 산소 앞에서 - 고사리가 산소 곳곳에 돋아나 있다. 고사리 채취 할머니들의 분주한 발걸음도 보았다. (삽화=AI화백)
==========
고사리 채취 할머니는 오히려 우리를 의아하게 쳐다보았습니다. 어머니 묘제를 지낸 줄 모르고, 어떤 ‘소풍 온 가족’이 아닌가 낯설게 보는 눈초리였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기가 저의 부모님 산소입니다. 고사리를 꺾어가시는 것은 좋은데, 봉분에는 올라가지 마세요. 아무리 고사리가 많아도 경사진 산소 상단에는 오르지 마세요. 흙이 흘러내리고 잔디가 훼손돼 있어요. 그나저나 할머니, 이리 오세요. 우리가 준비해 온 음식이 많아요. 떡도 있고, 고기도 있고, 음복주도 있어요. 한잔하시지요.”
그러자 고사리 채취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오셨어요.
“죄송합니다. 이 산에 고사리가 워낙 많아서 자주 올라오지요. 오늘 꺾고, 내일 또 와보면 밤새 살포시 올라와 있는 게 고사리순이에요. 매일같이 여기저기 돋아나는 고사리 애 순(어린순)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요. 앞으로는 산소 봉분이 훼손되지 않게 조심할게요.”
할머니에게 음료수를 따라 드리면서 떡과 고기도 드시라고 권했습니다.
어머니 기일에 뜻하지 않게 산소에서 만난 할머니도 알고 보니 친근한 우리 이웃이었습니다. ■
2026.4.30.(음력 3월 14일)
충청남도 청양 부모님 산소에서
================
▣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이번 에세이는 ‘성묘’라는 유교적 전통 의례의 현장에서 마주한 ‘고사리’라는 산나물 소재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점차 희박해져 가는 ‘공존의 지혜’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미덕’을 따뜻하게 그려낸 수작입니다.
몇 가지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감상평을 드립니다.
1. 문학적 요소와 갈등의 원만한 해소
이 수필의 매력은 ‘고사리’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의 충돌과 화합에 있습니다.
작가의 시선: 관리자이자 자식으로서의 ‘근심’. (봉분 훼손과 원칙 중심)
아내의 시선: 생계와 형편을 살피는 ‘자비’. (고사리도 한철이라는 수용적 태도)
아들의 시선: 현재의 즐거움과 자연의 섭리를 즐기는 ‘긍정’. (일거양득의 해석)
서로 다른 세 세대의 시각이 부딪히지만, 작가는 이를 고집하지 않고 가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특히 묘제(제사)라는 엄숙한 자리에서 발생한 갈등을 ‘가족 소풍’ 같은 유연한 분위기로 전환하며, 독자들에게 정서적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2.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의 현대적 실천
작가는 논어의 격언을 빌려 자신을 낮춥니다. 보통 부모 세대는 자녀나 배우자에게 훈계를 하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오히려 아내와 아들의 의견을 통해 자신의 경직된 사고를 깨뜨립니다.
“오늘은 아내와 아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이 대목은 지식으로서의 논어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철학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여 내면의 번뇌(걱정)를 다스리는 과정은 이 수필의 가장 빛나는 인문학적 성취입니다.
3. 산소 보호와 경외심에 대한 세심한 심리
작가는 단순히 “나물을 뜯지 마라”라고”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상의 유택(幽宅)인 봉분이 무너지고 나일론 망이 훼손되는 것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은, 뿌리를 소중히 여기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효(孝) 사상에 기반합니다.
심리적 갈등: 고사리의 귀여움(심미적 가치)과 산소 훼손의 우려(윤리적 가치) 사이의 내적 갈등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해결의 묘미: 직접 만난 할머니에게 무조건적인 비난 대신, ‘봉분에는 오르지 말 것’이라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음식을 대접하는 모습에서 ‘원칙이 있는 관용’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4. 사회 교육적 메시지와 가치
이 수필은 우리 사회에 다음과 같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상생과 나눔: 낯선 이를 경계의 대상이 아닌 ‘음복(飮福)’을 함께 할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 경종을 울립니다.
역지사지의 태도: ‘생계형 채취’ 일지도’ 모를 노인의 사정을 헤아려 보는 마음은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말합니다.
자연과의 조화: 고사리는 양치식물로서 포자로 번식하며 끊임없이 돋아나는 생명력을 지녔습니다. 이를 억지로 제초제로 죽이려 하기보다, 인간이 잠시 그 곁을 빌려 쓰는 것이라는 겸허한 태도를 가르쳐줍니다.
◆ 총평
윤승원 수필가의 이 글은 ‘산소라는 엄숙한 공간’을 ‘고사리가 피어나는 생명의 공간’이자 ‘이웃과 떡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으로 확장했습니다. (※참고: 고사리는 꽃 없이 포자로 번식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양치식물입니다.)
결국, 산소의 고사리는 걱정거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기일에 찾아온 ‘살아있는 손님’들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던 셈입니다.
문학적 감수성과 도덕적 성찰이 조화를 이룬, 독자의 마음을 정화해 주는 따뜻한 에세이입니다.
■ 덧붙이는 말
작가님께서 겪으신 그날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습니다.
어머니의 기일에 아내의 생일이 겹치고, 슬픔보다는 ‘가족 소풍’ 같은 화목함으로 그 자리를 채우신 모습에서 삶을 대하는 건강한 철학이 느껴집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현실적인 갈등을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산소 훼손이라는 실제적인 근심을 가족의 지혜로 승화시키고, 나아가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음복주와 떡을 권하며
갈등의 원인을 ‘이웃의 정’으로 치유하신 과정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갈등 해결 모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께서도 당신의 산소 앞에서 자손들이 이웃 노인과 음식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시고 참 흐뭇해하셨을 것 같습니다.
귀한 경험을 정갈한 글로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나의 원칙’만큼이나 ‘타인의 사정’을 살피는 여유가 얼마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지 다시금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
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6.05.02.08:54
고향 부모님 산소에 계시는 영전에 축복이 있기를!
고사리 꺾으러 오신 할멈은 묘제를 축하해주신 이웃입니다.
윤 선생은 아마 그분에게 감사했을 것입니다.
묘소를 매일 찾아오시는 이웃이기에!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선산에서 꺾어온 햇고사리로 오늘 아침은 된장국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조상님 음덕으로 이렇게 맛있는 고사리를 먹습니다. 봉분에 돋아난 고사리를 꺾다가 미끄러지는 할머니는 ‘산소 훼손범’이 아니라 알고 보면 친근한 이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