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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파노라마
역대하는, 열왕기상하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왕위에 올라 성전을 건축하는 것과, 분열왕국이 되었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觀點)이 다릅니다.
열왕기상하에서는 북왕국과 남왕국, 즉 분열 왕국의 역사를 교차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반면, 역대하에서는 북왕국의 역사를 생략한 채 언급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이는 역대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점이 되는데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속사”(救贖史)라는 관점으로 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다윗 언약을 배반하고 떨어져나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북왕국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역대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 1-9장은 솔로몬 왕에 대한 기사인데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고
㉡ 10-36장은 르호보암(10-12장), 아비야(13장), 아사(14-16장), 여호사밧(17-20장), 여호람(21장), 아하시야(22장), 요아스(23-24장), 아마샤(25장), 웃시야(26장), 요담(27장), 아하스(28장), 히스기야(29-32장), 므낫세, 아몬(33장), 요시야(34-35장),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36장) 등 19명(아합의 딸 아달랴 제외)의 왕들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여기 북왕국과 구별된 특징이 있는데 북왕국은 반역으로 인하여 왕통(王統)이 자주 바뀌었으나, 남왕국의 왕통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대상 17:14)하고 언약하신 대로 바뀜이 없이 다윗의 자손으로 계승되어 내려왔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미 야곱이 임종 머리에서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창 49:10)하고 예언한 바입니다.
② 그런데 이들 왕들은 왕위에 오를 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라는 잣대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다윗의 길로 행한 왕과
㉡ 여로보암의 길로 행한 왕으로 나누어집니다. 즉 어떤 업적(業績)에 의해서 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을 보수했느냐, 아니면 이를 버리고 여로보암처럼 우상을 숭배했느냐를 따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다윗의 길로 행한 왕은 흥왕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반면, 여로보암의 길로 행한 왕은 쇠퇴하여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것은 선한 왕도 시작은 좋았으나 나중이 나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사도 바울이 죄론(罪論)의 결론으로 말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롬 3:20)는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서는 이를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 역대하의 중심주제는 “성전”입니다. 역대상에서 다윗이 성전을 건축할 자재와 터와 설계도를 준비하였다가 솔로몬에게 위임(委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솔로몬은 “그 터에, 그 설계”대로 성전을 건축했던 것입니다. 어찌하여 성전이 중심주제가 되는가? 이점이 성전낙성식 때에 행한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6:20-21) 합니다.
㉡ 솔로몬은 하나님이 자신이 건축한 성전이라는 건물(建物)에 계신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성전의 기능이 무엇인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의 만남의 장소, 즉 중보(中保)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보의 역할 중에 핵심적인 문제가 “사(赦)하여 주옵소서” 한 죄를 대속하는 문제입니다. 죄가 해결되어야만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죄가 사하여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지는가? 만일 성전에 죄를 사하는 기능이 없다면 죄인들에게 성전도 별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성전에 지성소(至聖所)는 있는데 번제단(燔祭壇)이 없다면 하나님과 만남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설계대로 지은 “번제단”에서 대속의 제물이 드려짐으로만이 죄 사함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④ 그렇다면 “성전”이 누구에 대한 모형으로 주어졌는가 하는 답은 명백해지는 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임마누엘 하신 목적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한, 중보(中保)의 역할을 담당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 그리고 “중보”의 핵심 사역은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딤전 2:6)한 대속(代贖)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전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려줄 제사장도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성전이 있고
㉢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번제단이 있고
㉣ 대속제물을 드려줄 제사장을 갖게 된 것입니다.
⑤ 그러므로 역대하는 열왕기와는 달리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역대상에서 다윗의 허물을 덮어준 기자는 역대하에서는 타락했던 솔로몬의 허물을 덮어준 채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 또한 열왕기에서는 극악한 왕으로 묘사되어 있는 므낫세 왕까지도 그가 회개하고 돌아와서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33:12)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대속제물로 말미암아 가능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번제단은 그리스도께서 대속제물이 되어주실 것에 대한 예표였던 것입니다.
⑥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역대 왕들이 언약을 배반하고 성전을 훼파하고 우상을 세워 숭배하는 패역을 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계획을 대적하는 일이었습니다.
㉠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대처해주셨는가? 참으로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긍휼히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악한 왕이 성전을 헐고 더럽히면, 선한 왕을 일으키셔서 다시 세우시고 성결하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역대하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어진 “성전”을 헐려는 자와 세우려는 자의 격전(激戰)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그리고 그 절정을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데서 보게 됩니다. 그들은 성전을 헐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사흘 만에 다시 세우셨던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시 118:22-23, 마 21:42)하는 것입니다.
⑦ 가장 대대적인 성전정화는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 때입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을 정화하고 성대하게 유월절을 지켰는데 북쪽 이스라엘까지 보발꾼을 보내어 “여호와께 돌아와”(30:8) 함께 유월절을 지키자 하고 초청을 합니다. 이것이 북이스라엘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회개할 기회였는데 저들은 “조롱하며 비웃”(30:10)다가 끝내는 앗수르에게 멸망 당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 요시야 왕도 므낫세가 훼파한 것을 대대적으로 개혁을 했는데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34:15)하게 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취급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⑧ 22장과 24장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인간의 패역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씨를 진멸”하려는 음모 중에서도 한 살 난 요아스라는 왕의 씨를 보존하시어 “하나님의 전에 육년을 숨겨”(22:10, 12) 두십니다.
㉠ 그러나 이런 은총을 입고 왕위에 오르게 된 요아스는 어떻게 보답했는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숭배합니다. 그리고 이를 간하는 은인 대제사장의 아들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이는 것(24:18, 21)을 보게 됩니다. 인간이란 이처럼 사악하단 말인가?
㉡ 역사서를 상고해보면 이러한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점을 사도 바울은,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서 죄가 총공세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공세를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심으로 격퇴하셨던 것입니다.
㉢ 이렇게 행해주심으로 구속사는 중단됨이 없이 이어져 내려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서 선지자 이사야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사 42:3)하고 말씀합니다. 역대하의 역사(歷史)는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꺾지도 끄지도 않으셨습니다. 만일 이렇게 해주시지 않으셨다면 구원계획은 벌써 실패로 돌아가고, 우리는 소돔과 같고 고모라와 같이 되고(사 1:9) 말았을 것입니다.
⑨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7:1-2)한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에 대한 예표였던 것입니다.
㉠ 이처럼 영광스럽던 성전이,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36:19)하고 불길에 휩싸이게 되고 맙니다. 복음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됩니다.
이 점에서 분명해야 할 점은 솔로몬의 성전이 불에 타고 파괴당하게 된 것은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으나, 참 성전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헐리게 된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라는 점입니다.
⑩ 이 점에서 구약의 성전과 오늘의 예배당 건물을 동일시하는 혼동과 오류를 경계해야 합니다. 천주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였을 때에 성당(聖堂)을 꾸미기에 급급했던 중세의 암흑기를 잊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라는 점을 명심한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요점입니다.
㉠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다락방에 충만한 것이 아니라 120명 제자들에게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이라는 주제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한 진행형(進行形)입니다.
㉡ 이 성전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계 21:6) 하고 완성(完成)될 것입니다.
⑪ 복음서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끝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신 부활을 말씀함과 같이 역대하도 성전이 파괴당한 것으로 끝나고 있지 아니합니다.
㉠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36:22, 23) 하는 회복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제2의 성전을 건설하는 자들을 행해서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以前)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9)하고 격려하십니다.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게”될 임마누엘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⑫ 역대기의 1차 독자들은 포로에서 귀환한 “남은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역대하는,
㉠ 예루살렘이 멸망 당하고 성전이 불에 타고, 백성들이 포로로 사로잡혀가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게 해주셨고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해주셨습니다. 즉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하셨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 그리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들과 함께 계시고 약속하신 바를 기어코 성취하신다고 격려해주고 있습니다.
⑬ 그러면 역대기가 신약의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바가 무엇인가?
㉠ 첫째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불에 타고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통해서, 인간의 자력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그리하여 둘째는, 유일하신 중보자인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한다는 것과
㉢ 셋째는, 메시아언약 즉 복음진리를 보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 결론은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하게”(고전 10:11)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서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며,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