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47대 헌안왕 또는 48대 경문 왕의 아들이라고 도 하지만 출생도는 미상 왕실에서 버려져 유모의 손에서 자라다 10세를 전후 해 세달사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고 선종이란 이름을 얻었다.
891년 궁예는 초적의 우두머리 중 한명이였든 영동의 기훤의 세력이 무질서하고 자신을 잘 대우하지 않자 궁예는 이듬해 북원의 양길 진영에 합류한다. 궁예는 양길의 부하를 얻어 강원 경기 황제 금성 철원을 점령한뒤 양길과 결별하여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였다. 896년 경에는 왕건 부자가 투항하여 그의 휘하에 들어왔다. 899년에는 평안도와 한산주의 30여성을 공략하능 한편 양길군을 격파했다.
결국 세력을 확장한 끝에 901년에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른 궁예는 911년 까지 경기 강원 황해의 대부분과 평안 충청 일부를 점령하고 남서해의 해상권까지 장악해 후삼국중 가장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918년에 신승겸 복지겸등 왕건을 지지하는 신료들이 주도한 쿠데타를 맞아 왕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 쿠데타의 원인은 여러가지로 분석되지만 대체로 태봉 내의 다양한세력간 다틈에서 궁예측이 밀렸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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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小浦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소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