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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탄후마니타스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mijie
제13장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 모딜리아니의 《머리를 땋은 소녀》와 고대 가요 《공무도하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1884-1920),《머리를 땋은 소녀》 (Girl with Pigtails), 1918년경, 캔버스에 유채, 60.0 × 45.5cm, 나고야시 미술관 소장.
한 소녀가 화면 밖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길쭉하게 늘어진 목과 타원형의 얼굴, 그리고 무언가를 갈구하듯 독자를 똑바로 응시하는 맑고 투명한 푸른 눈동자. 이 독특하고 애수 어린 화풍의 주인공은 바로 20세기 초 파리 몽파르나스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천재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다.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해 남프랑스 코트다쥐르에 머물던 1918년경에 그린 것이다. 이 시기 모딜리아니는 아버지가 되면서 아이들의 초상화를 여러 점 남겼다.
평소 그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미학에 자부심을 느끼며 철저하게 절제된 '형태(Form)'를 우선시하는 화가였다. 그래서 그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대개 영혼의 가려짐을 뜻하듯 눈동자가 아예 비어 있거나 흐릿하게 칠해져 있곤 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다"던 그의 말처럼, 그는 외형적인 닮음을 넘어 인간 내면의 지독한 고독을 담아내고자 했다. 평생 미(美)를 추구했으나 살아생전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고, 알코올과 마약에 의존하며 파괴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 그의 생애는 흔히 예술가에 대해 품는 퇴폐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지만, 정작 그가 남긴 캔버스 위에는 언제나 기도와도 같은 깊은 고요함이 흐른다.
인물의 감정을 극적인 표정이나 몸짓으로 설명하지 않는 그의 방식은 이 고요함을 더욱 짙게 만든다. 모딜리아니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현실의 비례에서 벗어난 변형은 인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선과 형태의 리듬을 드러낸다. 이탈리아 마니에리스무스의 우아한 인체 표현과 아프리카 조각의 간결하고 응축된 형태는 그의 조형 언어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그는 동시대의 여러 미술 사조를 거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의 얼굴을 단순화하고 변형했다.
이 고요한 응시 앞에서, 문득 수천 년 전의 아득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가요 중 하나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이다.
公無渡河 (공무도하)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공경도하) 임은 끝내 그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当奈公何 (당내공하) 가신 임을 어이할꼬
《공무도하가》는 고조선 시대의 배경 설화를 가진 4구체의 한역 시가로, 남편인 백수광부(머리가 하얗게 센 미치광이 사내)가 물에 빠져 죽자 그의 아내가 공후라는 악기를 타며 부른 노래이다. 이 작품은 집단 서사 중심의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밀하고 서정적인 감정을 노래한 한국 최초의 서정시로 평가받는다.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적 매개체는 단연 '강(물)'이다. 시상이 전개됨에 따라 강의 상징적 의미는 세 단계로 깊어진다. 첫 구절(공무도하)에서 강은 아직 건너지 않은 공간으로, 사랑과 안위를 지키고자 하는 '위태로운 경계'이다. 그러나 임이 만류를 뿌리치고 들어서는 순간(공경도하), 강은 돌이킬 수 없는 '이별과 단절'의 벽이 된다. 마지막으로 임이 휩쓸려 목숨을 잃는 순간(타하이사), 강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죽음' 그 자체로 화한다. 짧은 네 줄의 노래 속에 대상을 지키려는 마음과 그 마음만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었던 운명적 죽음, 그리고 홀로 남겨진 자의 깊은 원초적 비탄(한, 恨)이 응축되어 전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은 붙잡으려 하지만 삶은 때로 그 손을 빠져나간다. 간절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만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의 예술적 생애 역시 이 '강물로의 투신과 단절'이라는 모티프와 기이하게 연결되어 있다. 본래 그는 회화보다 조각에 깊은 열망을 품었던 예술가였다. 그러나 돌을 깎을 때 발생하는 극심한 돌가루는 그의 약한 폐를 갉아먹었고, 조각 자재를 구할 수 없는 지독한 재정난까지 그를 가로막았다. 결국 건강과 재정상의 이유로 조각을 영영 포기해야만 했던 비극의 기점에서, 하나의 일화가 전해진다. 1909년경 고향인 이탈리아 리보르노에 머물던 시절, 동료들이 자신의 조각품들을 조롱하자 울분을 참지 못한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석상들을 차가운 운하 강물 속으로 던져버리고 파리로 떠났다.
그에게 조각이란 영혼의 본질을 깎아내는 일이었으나, 가혹한 운명은 그 조각들을 깊은 물 속에 묻어두라 명령한 것이다. 강물에 가라앉은 조각상들과의 단절. 그 상실의 고통을 겪은 뒤에야 그는 비로소 캔버스로 돌아와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머리를 땋은 소녀》가 보여주는 극도로 길게 늘어진 목과 기하학적인 얼굴 윤곽은, 그가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깊은 강물 속에 영원히 빠트려야 했던 그 조각상들의 슬픈 실루엣일지도 모른다.
화면을 채우는 조형 요소들을 세밀히 들여다보면, 감각적인 몰입은 더욱 깊어진다. 아치형으로 정형화된 눈썹, 아몬드 모양의 눈동자, 그리고 다소 경직된 듯한 표정은 아프리카의 원시 조각과 가면에서 얻은 영감의 흔적이다. 특히 자세히 보면 두 눈의 크기와 위치가 미세하게 비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인위적인 형태 속에 살아있는 인간의 묘한 생동감과 심리적 움직임을 불어넣는 모딜리아니 특유의 장치이다.
어깨와 몸은 넓은 색면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세부 묘사는 절제되어 있다. 화면 왼쪽의 푸른 회색과 오른쪽의 갈색 벽은 서로 다른 색채의 무게를 이루고, 붉은 옷은 그 사이에서 인물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따뜻한 색조의 얼굴과 차가운 배경의 대비는 소녀를 화면 가까이 끌어오면서도, 그 내면에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만든다. 감정은 길게 늘어진 형태와 단순한 선, 색채 사이의 긴장에 스며 있다. 조금 벌어진 입술 역시 특정한 말을 가리키지 않기에, 관람자는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는 화면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림 속 소녀에게는 눈앞의 강도 없고, 떠나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노래 속 여인의 목소리가 맺은 뒤의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간청이 끝난 자리, 더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적막의 시간이다. 노래가 이별의 순간을 말한다면, 그림은 그 순간을 지나온 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한다. 말과 침묵, 떠남과 남겨짐의 거리감 속에서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상실의 감각을 공유한다.
실제로 모딜리아니의 삶에는 또 다른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1917년 무렵 만난 잔느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1898-1920)과 함께 살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딸이 태어났다.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이어진 그들의 삶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모딜리아니는 1920년 1월 24일 결핵성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모딜리아니가숨진 지 불과 이틀 뒤,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던 22세의 잔느는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주겠다"는 말을 남긴 채 아파트 5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들의 사랑을 《공무도하가》의 서사와 겹쳐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을 고대가요의 비극과 동일시하거나, 죽음을 사랑의 완성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다. 잔느의 죽음은 한 인간이 겪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며, 사랑의 깊이를 죽음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의 짧은 생애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남겨진 이에게 얼마나 깊은 상흔을 남기는지 생각하게 한다.
《머리를 땋은 소녀》는 두 사람의 마지막을 예언하는 그림이 아니다. 이 작품의 제작 시기로 알려진 1918년경은 모딜리아니가 프랑스 남부 니스에 머물며 아버지가 되었던 때와 겹치지만, 그림 속 소녀가 그의 딸인지 혹은 특정한 개인적 기억을 담고 있는지는 확인된 사실과 구분해야 한다. 작품이 전하는 인상이 단지 작가의 사생활을 추측하는 데서만 비롯되지 않고 충분한 해석의 공간을 만드는 이유다.
현재 이 작품은 일본 나고야시 미술관(Nagoya City Art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이 일본 나고야에 안착하게 된 배경에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가공할 만한 '버블 경제(Economy)'와 깊은 연관이 있다. 1980년대 중반, 나고야시는 1988년 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전 세계를 돌며 미술관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인 마스터피스를 찾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넘쳐나는 자본을 바탕으로 서양 명화를 사들이던 시기였고, 나고야시는 1986년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약 3억 6천만 엔을 투입하여 이 작품을 파리 시장에서 전격 매입했다.
처음에 나고야 시민들은 시 예산을 외국 화가의 그림에 지나치게 많이 쓴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1988년 미술관이 정식 개관하고 베일이 벗겨지자 반론은 순식간에 찬사로 바뀌었다. 그림 속 소녀의 처연하면서도 맑은 눈빛에 나고야 시민들이 완전히 매료된 것이다. 이후 1990년대 초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미술관은 극심한 재정난에 부딪혔고 추가적인 명화 구입 소장 예산이 전면 동결되었다. 그러나 이 암흑기 속에서도 《머리를 땋은 소녀》를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관람객이 나고야를 찾았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 한 점이 미술관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재정을 지탱하는 등불 역할을 해낸 셈이다.
한때 화가의 작업실에 놓였던 캔버스는 화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아 오늘날의 관람자와 마주한다. 그림 속 소녀가 누구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그 얼굴은 화면 안에 보존되어 있다. 한 사람의 생애는 끝났지만, 그가 바라보고 그린 순간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계속 해석된다. 강을 건넌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를 향해 외쳤던 말은 노래가 되어 전해진다. 떠난 이를 붙잡을 수 없었던 여인의 목소리는 수천 년의 시간을 지나 현재에 도착한다. 그림은 얼굴을 남기고, 노래는 목소리를 남긴다. 둘 다 죽음을 없애지는 못하지만, 사라진 존재를 기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애도는 떠난 이를 잊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떠난 자리에서 삶을 멈추는 일도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억하면서도 남겨진 시간을 살아가는 것, 더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마음속으로 이름을 부르는 것. 사랑은 때로 그런 방식으로 이어진다.
다시 소녀의 눈을 바라본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이례적으로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에 있다. 평소 형태 뒤로 감추어두었던 화가의 솔직한 감정이 캔버스 위에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다. 그 어떤 것도 요구하거나 호소하지 않은 채, 그저 맑은 눈으로 마주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 소녀의 시선은 화가의 마음을 소리 없이 전해준다. 평생을 유랑하며 보상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화가가, 결국 그토록 갈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다정함'과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강물은 흐르고, 사람은 떠난다. 붙잡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했던 얼굴을 기억하고, 그 사람에게 건넸던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이제 그 간청은 떠나는 이를 멈추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떠난 이를 향해 남겨진 마음의 목소리로 들린다.
모딜리아니의 소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정면을 향한 시선을 유지한다. 그 침묵 앞에서 모든 이별을 막을 수는 없어도, 함께했던 시간이 남긴 의미까지 잃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백수광부가 실성한 유랑민이었든 신성한 샤먼이었든, 그를 잃은 아내의 슬픔이 유구한 노래가 된 것처럼, 모딜리아니가 남긴 소녀의 푸른 눈동자는 시공간을 넘어 지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다.
건널 수 없는 강과 돌아오지 않는 임 뒤로 노래와 얼굴이 가만히 흘러온다. 비록 운명의 물길을 막아서진 못했을지라도, 함께했던 시간이 남긴 다정함은 이 작은 캔버스 위에 켜켜히 고여 있다. 그러니 강물 같은 푸른 슬픔이 잔잔히 흐르는 그 눈동자를, 이제는 쓸쓸하고도 담담히 들여다보아도 좋으리라.
□ 작품 캡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1884–1920)는 20세기 초 파리 몽파르나스를 무대로 활동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천재 화가이자 조각가다. 당대 파리를 휩쓸던 입체주의나 야수파 같은 주류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고향 이탈리아의 마니에리스무스 전통과 아프리카 원시 조각의 간결한 형태미를 융합하여 독보적인 인물화 양식을 구축했다. 평생 가난과 알코올 중독 속에서 파괴적인 삶을 살다가 서른여섯의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그의 연인이자 영원한 뮤즈였던 잔느 에뷔테른 역시 이틀 뒤 뒤를 따르며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
《머리를 땋은 소녀》 (Girl with Pigtails, 1918년경)는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을 피해 프랑스 남부 니스에 머물던 시절에 제작된 모딜리아니 성숙기 초상 예술의 정수다. 당시 연인 잔느와의 사이에서 첫 딸을 얻으며 아버지가 된 기쁨 속에 있던 화가는 이 시기에 유독 아이들의 초상화를 많이 남겼다. 길게 늘어진 목과 부드러운 타원형의 얼굴, 가느다란 선처럼 뻗은 코와 비대칭을 이루는 눈의 형태는 사실적 재현을 넘어 선과 형태가 이루는 독특한 리듬감과 내밀한 심리적 움직임을 자아낸다. 특히 영혼의 가려짐을 뜻하듯 인물의 눈동자를 아예 비워두거나 흐릿하게 처리했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소녀의 눈에는 맑고 투명한 푸른 눈동자가 또렷하게 담겨 있다.

첫댓글 오랫만에 모딜리아니의 "머리를 땋은 소녀" 다시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미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