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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차십덕(飮茶十德)
당(唐), 유정량((劉貞亮)
음차십덕(飮茶十德)-1
차는 왕성한 기운을 흩어 버린다.(以茶散郁氣) --->우울한 기운
음차십덕(飮茶十德)-2
차는 수면을 쫓아낸다.(以茶驅睡氣)
음차십덕(飮茶十德)-3
차는 생기를 북 돋운다.(以茶養生氣)
음차십덕(飮茶十德)-4
차는 병을 덜어준다.(以茶除病氣)
음차십덕(飮茶十德)-5
차는 예의와 인의를 빛낸다.(以茶利禮仁)
음차십덕(飮茶十德)-6
차는 공경과 의리를 나타내 보인다.(利茶表敬義)
음차십덕(飮茶十德)-7
차는 맛을 알게 한다.(利茶嘗滋味)
음차십덕(飮茶十德)-8
차는 신체를 기른다.(利茶養身體)
음차십덕(飮茶十德)-9
차는 도를 행하게 한다.(以茶可行道)
음차십덕(飮茶十德)-10
차는 뜻을 고상하게 한다.(以茶可雅志)
[음차십덕(飮茶十德)]
음차십덕(飮茶十德)-1.차는 왕성한 기운을 흩어버린다.
우리의 육신과 정신은 특별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때때로 심신 그 자체에서 왕성한 기운이 요동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 하여 인간의 근본 고통 여덟 가지 중에 하나로 본다.
몸과 마음의 기운이란 꼭 필요한 시간과 필요한 상황에서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경우라면 그것도 큰 고통이다.
이러한 불필요한 기운 때문에 스스로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수많은 불행까지 불러일으킨다.
차를 마시면 우리의 몸과 정신에서 불필요하게 나타나는 왕성한 기운을 흩어버린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몸과 정신을 안정적으로 차분하게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몸과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 맑고 밝아지며 본심으로 돌아와서 건전한 사람이 된다.
불필요한 기운 때문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는 동양차를 많이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음차십덕(飮茶十德)-2. 차는 수면을 쫓아낸다.
밤을 새워가며 참선을 하거나 경전을 공부하거나 기도를 올리거나 시험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수면이 큰 문제다.
그래서 초심문(初心文)에도 ‘오랜 세월동안 도를 장애하는 것은 수면보다 더 큰 것은 없다[曠劫障道 睡魔莫大].’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수면은 피로를 풀어주는 훌륭한 역할도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만큼은 취해 주어야 하는 일이지만
한편 과다하면 모든 일을 다 망치는 것도 수면이다.
잠을 즐기고 잠을 많이 자는 사람치고 성공한 사람은 없다.
공부를 잘한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수면관리를 잘한 사람들이다.
수면관리를 잘하여 하고자 하는 공부를 성취하려면 반드시 차를 많이 마셔야한다.
오랜 세월동안 사찰에서 차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오는 것도 수행자들이 차를 마시며 수면을 쫓아내는 훌륭한 방편으로 잘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수면을 쫓아내는 데는 차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
음차십덕(飮茶十德)-3. 차는 생기를 북돋운다.
차나무는 무수한 식물 중에서 그 약성이 매우 특별하다.
차를 만들어서 수십 년을 두어도 그 약성은 끊임없이 진화하여
약효는 더욱 좋아지고 맛은 부드러워지며 우리 몸에는 더욱 이로운 역할을 한다.
참으로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기운이 떨어지고 정신이 미약함을 느낄 때 차를 마시면 생기가 솟아나고
정신이 맑아져서 새로운 기운을 느끼게 된다.
산중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이들은 환경 때문에 음식이 언제나 부실하지만
그래도 기운을 잃지 않고 공부에 필요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은 차를 마시는 덕이다.
특히 맑고 밝은 기운을 솟아나게 하는 데는 차보다 우수한 것은 없다.
음차십덕(飮茶十德)-4. 차는 병을 낫게 한다.
차가 모든 병을 낫게 하지는 않지만 특히 독(毒)에 의한 병은 그 효과가 뛰어나다.
상한 음식을 먹었거나 독기가 있는 음식이나 음료를 먹었을 경우에서 얻은 병은 차를 마심으로서 치료되는 예가 많다. 항암효과나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성인병에는 그 약효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서기 225년, 중국 건흥(建興)3년에 촉(蜀)나라의 재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운남(雲南)지방을 평정하려 왔었다.
촉나라 군사들이 도화강(桃花江)에 이르러 강물을 마시고 몸을 씻고 하여 중독이 되었다.
장기(瘴氣)라는 물이나 습기에 의한 병에 걸려 모두 쓰러졌다.
위급한 시기에 다행히 그 지방의 풍토와 수질을 잘 아는 만복인(蠻濮人)이라는 원주민이 있어서 그들을 도왔다.
차를 끓인 강차탕(薑茶湯)으로 모두를 해독시키고 입에는 차 잎을 물게 하여 무사히 강을 건너고
장기(瘴氣)라는 독성을 면할 수 있게 하였다.
좀 더 부연하자면, 차위군(茶爲君) 수위신(水爲臣), 즉 ‘차는 임금이고 물은 신하다.’ 라는 말이 있다.
차와 물이 잘 만나야 훌륭한 맛을 내고 그 효과도 높아진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도 마치 그와 같다.
그리고 또 차가 비록 하품이라도 좋은 물이면 그것을 잘 보완하며, 물로 얻은 병은 좋은 차로 고칠 수 있다.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면(병이 들면) 신하가 고치고 신하가 잘못하면 임금이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정치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나 가정도 마찬가지다.
차와 물이 잘 만났을 때는 물이 가지고 있는 효과와 또 차가 가지고 있는 효과의 몇 배를 더 얻을 수 있는 길이 이 차를 마시는 일이다.
그 후 제갈량은 맹획(孟獲)이라는 장군을 일곱 번을 잡았다가 일곱 번을 놓아주면서 남쪽지방을 비로소 평정하였다.
공명선생은 차가 이처럼 신비한 효력이 있는 것을 알고 씨앗을 많이 따서 여러 지방에 널리 전파하여 재배하게 하고
차를 군수품으로 정하여 반드시 지니고 다니도록 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매년 6월 19일에 운남지방에서는 공명선생이 차를 부흥시켰다[孔明興茶]고 하여
축제를 성대하게 베풀고 있다.
공명선생을 차의 성인[茶聖], 또는 차조(茶祖)로까지 높이 추앙하여 동상까지 세웠다.
차는 이처럼 그 약성이 뛰어나므로 해당되는 병에는 그 효과가 어떤 신약의 해독제보다도 우수하다.
음차십덕(飮茶十德)-5. 차는 예의와 인의를 빛낸다.
다도(茶道)니 다예(茶藝)니 하는 말을 곧 잘 쓰는데 도나 예술의 기본은 예의와 인의에 있다.
도와 예술이 사람관계에 표현되려면 예의와 인의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다도(茶道)를 공부하는 데는 그 첫째가 예의와 자비롭고 어진 마음을 닦는 것에 있다.
어쩌면 다도공부는 예의와 자비롭고 어진마음을 쌓자는 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일본에 다도가 우수하다는 말을 듣고 우리나라의 어떤 선비가 일본 다도의 대가를 찾아가서
우리나라에서 기본적으로 행하는 예의를 잘 갖추어서 공손히 다도를 물었더니
처음부터 그 선비를 자세히 살피던 다도인이 선비에게 다도를 가르칠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선비가 지금까지 보여준 일거수일투족의 동작과 공손하고 예의바른 모습은
도저히 일본 사람으로서는 흉내 낼 수 없다고 하였다.
오히려 배워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고 하였다.
움직임의 순서와 격식은 어떠하든 관계없이 그 움직임에 예의와 공손함이 풍겨 나오게 하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정신을 잘 갖추고 있기에 동작을 어떻게 하든 모두가 다도에 잘 부합한다고 하였다는 이야기는
다도를 하는 사람이면 다 아는 말이다.
그렇다.
무엇이든 그 정신이 우선이기 때문에 근본인 정신이 이미 다도에 부합하면 동작은 모두가 지엽이다.
지엽만 배우고 근본인 정신이 따라주지 않는 다면 다도가 아니다.
그래서 차를 잘 마시는 일은 예의를 배우고 자비롭고 어진 마음을 기르게 한다고 하였다.
음차십덕(飮茶十德)-6. 차는 공경과 의리를 나타내 보인다.
앞에서 “다도는 예의와 인의를 빛낸다.” 라고 하였는데
다도는 공경과 의리와 예의까지 모두 함께한다.
그와 같은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도가 아니다.
다도를 하는 목적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모범이 되는 예의범절(禮儀凡節)을 익히자는 것에 뜻이 있다.
그래서 차 공부를 하는 데는 반드시 그 첫째가 예의범절을 가르친다.
그리고 차가 무엇인지를 다음에 가르친다.
예의범절이 다듬어진 연후에 차를 배워야 차를 마시는 사람의 품격이 추하거나 천박하지 않게 된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 그 행동거지가 추하거나 천박하면 동양에서의 차를 마시는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찬물도 선후가 있다.”라는 말을 잘 쓴다.
하물며 도며 예술인 차를 마시는 일이겠는가.
음차십덕(飮茶十德)-7 . 차는 맛을 알게 한다.
모든 동양문화의 시원은 거의가 중국이다. 차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다도가 그렇고 화도(花道)가 그렇고 서도(書道)가 그렇고 불교가 그렇고 유학(儒學)이 그렇다.
차가 맛을 알게 한다는 것은 차의 특징 중에 하나가 모든 맛을 깨끗이 씻는 역할 때문이다.
차가 혈관 속의 지방성분을 씻고 몸속의 노폐물질을 씻을 뿐만 아니라 방금 먹고 마신 모든 음식의 맛을 깨끗이 씻는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미식가가 아니라도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차와 함께 한다.
음식을 먹기 전 부터 중간, 그리고 먹고 난 후에까지 언제나 차를 수시로 마신다.
그래야 각각의 다른 음식 맛을 알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차를 마시지 않으면 그 음식이 갖는 독특하고도 미세한 맛을 완전히 느낄 수 없다.
앞의 맛과 뒤의 맛이 뒤섞여서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래서 사이사이에 꼭 차를 마시어 앞의 음식 맛을 씻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기름기도 바로 바로 제거하는 역할도 함께 한다.
입 속의 맛과 기름기를 씻는 데는 차보다 우수한 것은 없다.
우리나라의 음식은 대개가 밥을 먹기 위한 밥반찬이다.
그래서 밥을 먹고 반찬음식을 먹는다.
반찬요리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반드시 따라다닌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다른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후식 정도다.
중국음식은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완전하기 때문에 밥이 굳이 필요치 않다.
밥이나 국수나 만두는 모든 식사가 다 끝나고 마지막에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한다.
굳이 밥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 중국음식의 특징이다.
하나하나가 그것만 먹어도 되는 완전한 음식이기 때문에
사이사이에 반드시 차를 마시어 앞의 음식 맛을 씻고 다시 뒤의 음식 맛을 새롭게 감상할 수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마치 일본 음식에서의 생강을 먹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훌륭한 식사법인 것 같다.
음차십덕(飮茶十德)-8. 차는 신체를 기른다.
차를 마시면 정신이 건전하여 인의예지와 겸손과 공경심과 자비심과 어진 마음 등과 같은
정신적인 것만 잘 닦여져서 우수한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육신의 건강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진다.
내장이나 혈관에 있는 지방이나 노폐물과 같은 성인병을 유발하는 일체 장애요소들을 모두 씻어낸다.
차가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며 혈압을 떨어트리고 혈당을 낮추는 것은 모두가 차의 특효 중에 특효다.
동양의 차나무는 거의가 녹색 빛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중국 차 중에서는 특히 자주 빛을 띠는 자색(紫色) 차라는 것이 있다.
일명 건강 차라고도 하며 혈압을 낮추는 특별한 효과가 있다고 칭찬이 대단하다.
당나라 때 다경(茶經)을 쓴 다성(茶聖) 육우(陸羽)라는 분은 자색 차가 가장 훌륭하고 그 다음이 녹색의 차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은 중국에서 자색 차를 배양에 성공하였다고 차 잡지에 기록하였다.
자색 차를 싹이 자주 빛이라고 하여 자아(紫芽)라고도 부르고
줄기가 자주 빛이라고 하여 자조(紫條), 자경(紫莖), 특별히 곱고 아름답다고 하여 자연(紫姸)이라고도 부른다.
설사 자색 차가 아니라도 차가 우리의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효과에 대해서는 익히 아는 바이다.
동양 차를 많이 마시면 정신도 건전하고 몸도 건강하여 밝고 맑은 세상을 만드는데 반드시 일조를 하리라고 믿는다.
음차십덕(飮茶十德)-9. 차는 도를 행하게 한다.
당나라의 조주종심(趙州從諶,778~897)는 옛 부처[古佛]라는 이름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도인이다.
시호는 진제며, 법명은 종심, 속성은 학씨이다.
778년 산동성 임치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고향의 용흥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숭산 소림사 유리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안휘성 귀지현 남전산의 남전보원(南泉普願:748∼835)선사의 문하에 입문하여 법을 이었다.
80세가 될 때까지 지방을 순례하며 여러 고승을 찾아다녔다.
80이 넘어서야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에 머물러 호를 조주라 하였다.
897년 120세로 입적하였으며, 제자들에게 사리를 수습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기기도 했다.
120세를 사실 때까지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차와 연관된 법어를 차 이야기에서 안할 수 없다.
조주스님은 어떤 수행자가 불법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차를 마셔라[喫茶去].”라고 대답하였다.
도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나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나
갑의 질문에나 을의 질문에나
한결같이 그 답은 “차를 마셔라.”였다.
그래서 시자가 어느 날 하도 어이가 없어서 스님은 누구의 어떤 질문에나 모두 한결같이 “차를 마셔라.”라고 같은 대답만 하십니까? 라고 물으니
조주스님은 그때에도 역시 “차를 마셔서라.”라고 대답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도는 사람의 삶이다.
차를 마시는 일도 사람의 삶이다.
특별한 뜻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도란 보고 듣고 밥 먹고 차 마시고 하는 일일뿐이다.
그래서 조주스님의 도를 이야기 하면 반드시 조주청다(趙州淸茶)를 떠올린다.
차를 마시면서 도를 안다면 그보다 더 유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차와 도가 둘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요는 차를 어떤 마음으로 마시는가 하는데 있다.
조주스님은 차를 마시는데 보통 사람들은 온갖 망상과 잡념을 마신다.
과거, 현재, 미래의 온갖 세상사를 다 마시고 있다.
자신의 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일까지 마신다.
그래서 조주스님은 “차를 마셔라.”라고 하였다.
잡념이 전혀 없는 청정하고 텅 빈 마음의 청다(淸茶)를 마신다면 차로써 도를 알고 도를 행하면서 사는 길이 열린다.
불가(佛家)에 유독 차 이야기가 많은 것도 그래서 이리라.
차를 파는 가게에나 거실에 끽다거(喫茶去)라는 족자만이라도 하나 걸어두면 그 주인을 달리 본다.
만약 그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어떻겠는가.
이 글(음차십덕)을 지은 당나라의 유정량(劉貞亮)이라는 사람도 아마 여기까지 이른 사람인 것 같다.
음차십덕(飮茶十德)-10.차는 뜻을 고상하게 한다.
차를 마시고 도를 행할 수 있으면 그것은 차를 마시는 일의 지극함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차선의 이득이라도 얻어야 한다.
차선의 이득이란 사람의 뜻을 우아하고 고상하게 하는 길이다.
사람의 행동거지와 삶이 품위가 있고 격조가 있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차를 즐기면서 차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차를 도로 승화시키려는 정신과 자세가 있다면
설사 그러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인격과 뜻과 품위는 매우 고결하고 우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도는 자연스런 것이며, 고고한 것이며, 적정한 것이며, 유현한 것이며, 소박하고 간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차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회를 만들고 환경을 만들어 되도록이면 차를 가까이 하여야 하리라.
그래서 차가 가지고 있는 열 가지의 덕을 십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삶이 되도록 하는 일이
차와 맺은 인연을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고 보람되게 하는 길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