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변기영님의 동부민요 공연에 초대 받아 서울에 가는 김에 시티 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순서울산이며 결혼 후 부산에 내려오기 전까지 33년을 산 서울이건만 이젠 혼자서는 어디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결혼식 등 집안 행사에 참석하러 서울에 가도 당일로 볼 일만 보고 오는 때가 많아 아직 청계천이 어떻게 변했는지 구경도 못했다.
광화문에 분수 광장도 생겼다던데 가보고 싶은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지만 우선 어려서 살던 동네며 학교 다닐 때 주 활동 무대였던 종로쪽과 인사동 거리를 거닐어 보고 싶었다.
반포에서 내가 다니던 제기동 성당까지 네비게이션으로 10분 거리라고 나오길래 기계마저 촌사람이라고 놀려 먹는가보다고 생각했는데
내부 순환로를 타니 거짓말처럼 짧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못보던 고층 건물로 처음엔 동서남북도 모르겠더니 경동 시장이며 홍파 초등학교 등 눈에 익은 건물들이 나타나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거다.
언덕 위에 있던 제기동 성당은 놀랍게도 거리로 나앉았고 사제관 자리에 새로 부속건물이 들어섰지만 성당 자체는 1957년 준공 당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성당 입구 계단에서 7살때 오빠랑 나란히 첫영성체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선명하다. 그리고 대학교 때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마당이며 결혼식 때 남편과 같이 사진을 찍었던 성모상 앞도 좀 좁아지긴 했어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성모상 앞에 서니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한밤 중에 태어난 나를 할머니가 포대기에 싸서 새벽 미사에 데리고 가 세례를 주었을 때부터 줄곧 나의 성장을 지켜보았던 성모상.
이렇게 나이 들어 찾아 온 나를 알아보시려나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음 달이면 결혼 30주년이다. 바람이 몹시 불던 그 날 우리들의 출발을 축복해 달라고 빌었던 간절한 기도가 떠올라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긴 여정에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세월을 돌아 남편과 다시 성모상을 찾아 올 수 있었던 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나를 지켜주신 그분의 큰 사랑이었음을 알고 있다. 이제 세상 떠날 때까지 내가 당신의 딸로 남을 수 있길 다시금 기도하였다.
왠지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곳에 오래 남고 싶었다.
모교인 고려대학교를 스쳐지나며 내가 살던 집 골목을 눈으로 더듬어 찾아보니 어쩌면 그렇게 좁은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가 살던 집엔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한 생각도 들었지만 내려서 굳이 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정든 사람들이 살지 않는 그곳은 이미 추억 속의 장소일 뿐이다.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르고 산책로가 생겼다는 게 대단하긴 해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주변의 협소하고 복잡한 차도엔 차량과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데 저 혼자 여유작작한 개천 풍경이 내 눈엔 생뚱맞고 자연스럽지가 않은거다. 마치 개천을 모시고 사는 듯해 경주의 서천 둔치에서 느끼는 그런 한가롭고 편안한 맛이 그곳엔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공간을 양보해 청계천 시장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연과 접하며 숨통을 트고 살 수 있게 된 건 정말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종로5가에서 이화동 가는 쪽에 옛날 우리 중,고등학교 교정이 있었는데 강남으로 학교를 옮긴 후 뭐가 들어섰는지 모르겠다.
탑골공원은 여전히 노인 천국을 이루고 있었고 건너편에 3.1빌딩이 검은 자태로 남아있는게 너무 반가웠다.
대학교 다닐 때 그 곳 지하다방 '서브웨이'가 우리들 아지트였는데 신청곡을 받아 음악도 틀어주고 가끔씩 무명 가수들이 통기타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었다. 오빠가 신청한 마이클 잭슨의 '밴'이란 노래를 처음으로 들은 곳도 그곳이고 김민기의 '친구'를 듣고 우울한 시대의 아픔을 토로하던 곳도 그곳이었다.
허리우드 극장은 없어졌지만 낙원 상가의 악기상들과 낙원 떡방들은 자리를 조금씩 옮겨 앉았을 뿐 터주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밀리는 차량으로 구경도 포기하려던 차에 운 좋게도 주차 자리가 생겨 인사동 거리를 걸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소녀 시절에 골동품점에서 은장도를 산 적이 있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가 모르지만 아마 내 딴엔 옛 여인들처럼 정절을 지키는 요조숙녀가 되고 싶었던가 보다. 인사동 거리도 그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마치 전 세계인들의 벼룩시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물건 보다는 중국, 일본, 북한 등등 다른 나라에서 쏟아져 들어온 물건들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도 기념품으로 난전에서 호박 모양의 단지를 샀는데 겉에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인들이 그려져 있었다. 일제냐고 물었더니 아저씨 왈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물건이라나. 골동품 장사들의 말은 늘 부풀려져 있어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그래도 비싸지 않은 가격에 예쁜 단지를 하나 건졌다는 게 기분을 좋게 한다.
남편은 만원에 3개씩 하는 넥타이를 샀는데 보기엔 좀 야하더니 매니까 산뜻한 게 꽤 괜찮다. 본인도 만족스러운지 역시 서울 물건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군. 눈요기도 하고 이것 저것 자잔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 거리에서 한껏 자유를 맛볼 수 있어 즐거웠다.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의 동부민요 공연은 한시간 남짓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동부민요라는 이름으로 처음 무대에 올린거라니 그 의미는 크다 하겠다.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로 이어지는 태백산 동쪽 지방의 민요로 척박한 환경 속 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나 있어선지 무겁고 깊은 한을 느끼게 한다. 특히 변기영님이 부른 경상도 지방의 상여소리는 가슴을 에이는 절절함으로 듣는 이의 애간장을 끊게 한다.
아직 불모지인 동부민요를 개척하기 위해 그간 노고를 아끼지 않은 변기영님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그 자리가 명창에게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갖는데 힘이 되어주었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이번 과거로의 추억 여행과 멋진 공연의 여운이 내게도 삶의 활력이 된 것 같다.
강행군에 피곤할만도 한데 몸도 마음도 가볍기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자꾸 마음이 그 거리에서 떠돌아 다니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거다.
다음 번 나들이에는 또 어디를 가볼까? 아무래도 가을 바람이 단단히 들었나보다.
첫댓글 타임머신 타고 간만에 즐거운 나들이 하셨네요..... 좋은 추억은 오래 오래 간직해야 되는데 나이가............^&^
아직 치매기는 없으니 좀 더 오래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걱정해주셔서...
오빠랑 함께 잘 다녔는가 봐요? 보통 음악다방은 애인과 함께 가는데~~ 이번 글도 잼나게 읽었어요. 다음글 기대할께요...
오빠 노릇한다고 대학 새내기인 내게 음악 다방 구경을 시켜준 거예요. 잼나게 읽어주시는 전광석화님 때문에 행복하네요.
언제 읽어도 감칠맛이 나요..제가 그 거리를 걸어다는것 같은 느낌... 제 추억도 아닌데 저까지 추억속에 젖어듭니다...
자주 좋은 시간 만드셨서 즐거운 여행 만듭십시오... 또 그렇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느티나무님의 비슷한 시절에 저도 함께 서울에 있었겠어요.저는 종로2가 낙원떡집 부근 교동초등학교 옆에 살았었는데요.이렇게 세월이 흘러서 경주에서 뵙게 되네요.느티나무님은 범생 이셨나봐요.그러니 명문학교를 다니셨고 저는 오로지 띵까띵까만 좋아했으니 ....,
무늬만 범생이었어요. 나름 좀 놀았어요. ㅎㅎㅎ
과거로의 추억여행을 하는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글 잘 읽었습니다. 생기로운 모습도 활기차구요 ~ 고려대학교와 제기동 성당은 그리 멀지가 않는 거 같은데 맞나 모르겠어요?
언제 가보셨나요? 맞아요. 안암동과 제기동은 한길 맞은편에 있어요.
제기동 성당은..그랬구나요. 딸아이가 그곳에 살아서 가본 기억이 납니다. 경동시장도. 청계천..시민휴식공간으로의 역활은 충분히 하고 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실패작이라고도 하더군요. 가을나들이..만원에 3개짜리 넥타이..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