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8월 25일 정부가 가장 유력한 안으로 내놓은 호남고속철 노선. 천안을 분기로 논산을 거쳐 목포로 이어진다. 교통 공학적으로 서울과 호남을 잇는 가장 빠른 안이었다. <매일경제> 1993년 8월 26일자
“장난치고는 너무 심한 장난이다. 서해안고속도로 공사 현장이나 한번 가보고 와서 그런 발언을 했으면 좋겠다.” 1993년 8월 24일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밝힌 호남고속철도의 조속한 건설 방침에 대한 김원기 전 민주당 의원의 반응입니다.(<동아일보> 1993년 8월 26일자 참고)
노태우정부 첫 검토… YS ‘즉흥 발언’
사실 호남고속철은 1990년 노태우정부 때 처음 검토됐습니다. 경부고속철에 막대한 건설비용이 투입되면서 미뤄졌던 것을 YS가 다시 꺼내들었던 겁니다. 당시는 선거철도 아니어서 대부분의 언론조차 ‘생뚱맞게’ 여겼지요. 하지만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YS의 발언 다음 날 1990년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세 가지 건설 안을 발표합니다. 세 가지 안 중 1안(대전역 분기)을 제외하고는 천안이 분기점이었습니다.(<매일경제> 1993년 8월 26일자 참고)
이어 1995년 9월 호남고속철 연구용역을 맡은 교통개발연구원(현 한국교통연구원)이 서울~천안~논산~익산~광주~목포(총 노선 346.3㎞)를 기본노선으로 발표합니다. 천안~논산 직결노선이 서울에서 호남을 잇는 가장 빠른 노선이란 게 대전 미경유의 이유였습니다. 대전이 기존 경부선 및 경부고속철의 혜택을 받는 지역이란 점도 고려됐습니다.(<동아일보> 1995년 9월 24일자 참고)
노선을 놓고 충남과 호남권이 직선을 주장하고, 대전은 정부대전청사 이전에 따른 인구 증가, 충북(오송)은 청주공항 연계성을 들어 각각 경유노선 타당성을 주장합니다. 그렇게 2년여 간 지역 갈등만 부채질해놓고 정부는 호남고속철 전면 재검토를 발표합니다. YS정권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시점입니다. 경부고속철 사업비가 크게 늘어나 재원조달이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더구나 2개월가량 후면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호남고속철 조기 건설’이란 YS의 ‘즉흥 발언’은 허언이 돼 버렸습니다.(<한겨레> 1997년 9월 24일자 참고)
호남 출신 대통령의 호남 챙기기
1997년 말 대선에서 김대중대통령(DJ)이 당선됐습니다. 그리고 1998년 7월 말 호남고속철 사업 재추진 계획이 나옵니다. 이때도 가장 유력한 노선은 대전을 거치지 않는 1995년 교통개발연구원 용역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곧 계획은 중단됐습니다. 신규 대형국책사업은 벌이지 않겠다는 정부의 예산 기조 때문이었습니다.(<동아일보> 1998년 8월 31일자 참고)
그렇다고 호남이 첫 배출한 대통령이 호남을 위한 사업을 절대 포기할리 없겠지요. 1999년 10월 교통개발연구원의 ‘호남고속철도사업계획 재검토 결과보고서’가 공개됩니다. ‘서울~천안 경부고속철 공유, 천안~익산 신설, 익산~목포 기존 호남선 전철화’로 예산을 최대한 쥐어짠 수정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DJ정부도 호남고속철의 첫 삽은 고사하고 노선조차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전, 충남, 충북은 중부권 분기노선 유치를 놓고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이때도 충남과 전주 경유와 직선로를 각각 원했던 광주, 전북, 전남의 이해관계가 일치했습니다.(<동아일보> 1999년 10월 13일자 참고)
행정도시, 오송에 힘 실어준 돌발변수
노무현정부가 출범하면서 호남고속철 건설 계획은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최우선 사업이 신행정수도 건설이었기 때문입니다. 행정수도 건설에 따른 배후 역 필요성이 대두됐던 겁니다. 앞서 12년간 정부 논의에서 소외된 충북 오송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돌발요인이 생긴 셈이죠. 실제 분기역 선정 시 ‘행정수도 입지’를 배점 기준에 포함시키느냐 여부가 논란이 됐습니다. 건설교통부가 이를 기준에 넣지 않기로 한 발 물러섰지만, 기존 선정항목 중 경제성, 교통수요에서 행정수도 입지가 자연스럽게 고려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중부권 분기노선 유치 경쟁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는 더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세종시 중심지인 정부세종청사에서 오송역은 18㎞, 대전역은 28㎞입니다. 서울에서 호남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통로에 위치한 천안은 2005년 6월 30일 발표된 평가 결과에서 가장 낮은 배점을 받았습니다.
‘충북의 잔 다르크’ 박근혜… 열린당, 천안 지지 철회
대전, 충남, 충북이 화해가 어려울 정도로 피터지게 싸우는 과정에서 ‘잔 다르크’가 등장합니다. 충북의 ‘잔 다르크’죠. 바로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2005년 1월 27일 충북을 방문해 당론으로 오송 분기를 확정지었습니다.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후 후속대책을 놓고 왈가왈부 할 때였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서처럼 박 전 대표는 당내 수도권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 안을 당론으로 고수하고 있었지요.(<충청투데이> 2005년 1월 27일자 참고)
박 전 대표에 이어 한 달 후에는 호남권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오송 분기 지지 선언을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들은 뒤 여야의원 206명이 호남고속철 조기 착공을 촉구하는 대정부 결의안을 채택한 직후였습니다. 천안에 호의적이었던 호남권이 행정중심복합도시 안의 건교위(특별법 해당 상임위) 통과로 입장을 바꾼 겁니다.(<충청투데이>2005년 2월 26일자 참고)
가장 억울한 충남… 정략적인 남공주역 신설
호남고속철이 추진돼온 과정을 되짚어보면 가장 억울한 쪽은 충남입니다. 실제 오송 분기 결정 이후 대전은 “겸허히 수용”한 반면 충남은 “원천 무효”라며 반발했습니다.(<충청투데이> 2005년 7월 1일자 참고)
충남이 주장했던 것처럼 오송 분기가 순전히 ‘정치적’으로 결정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정부 출범과 세종시 건설이 결국 서울과 호남을 가장 빠르게 잇는 천안 분기의 교통 공학적 타당성을 무력화시켰으니까요. 분기역을 빼앗긴 충남 수부도시 천안도, ‘저속철’이 아닌 ‘고속철’ 경유가 가능했던 논산도 모두 피해자인 셈입니다. 여기서 ‘정치적’이란 표현은 국가정책의 추진과정을 말한 것이지 '정략적‘이란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느닷없이 ‘공주역’ 신설이 등장한 겁니다. 2006년 3월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당의장이 대전에서 열린 ‘행복도시 건설지역 주민 의견 수렴’ 간담회에서 오송~익산 사이에 공주역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이죠. 이는 충북의 즉각적인 반발을 샀습니다. 행정도시 관문인 오송역의 위상을 축소시킬 거란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허허벌판에 들어선 남공주역이 바로 이때 비롯된 겁니다.(<충청투데이> 2006년 3월 7일자 참고)
오송 분기가 국가정책목표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해량한다 해도 남공주역은 순전히 ‘정략적’으로밖에 볼 수 없지 않습니까? 제4회 지방선거를 2개월 여 앞두고 이반된 충남 민심을 잡아보겠다는 ‘꼼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정략․지역갈등으로 점철한 25년사 종결 판, 호남이 결국 얻은 것?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역갈등으로 점철된 ‘호남고속철 25년사.’ 어젯밤 국토부의 KTX호남 운행계획 기습 발표는 그 종결 판입니다.
호남고속철은 결국 서대전역을 경유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대전역 이용객을 위해 서울~익산 구간 18편을 우선 운행하고 향후 수요에 따라 운행편수를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서대전역에서 서울을 왕래하는 이용객은 종전대로 KTX를 타면 됩니다. 반면 호남을 왕래하는 이용객은 익산에서 고속철 전용구간을 다니는 KTX를 갈아타야 합니다.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국토부는 호남에서 주장하는 ‘저속철’ 논란도 종식시키고 서대전역 이용객의 다수인 서울 왕래 이용객 수요도 동시에 충족시켰다는 입장입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서대전권~익산 이하 호남권 간 이동수요는 전체 호남고속철 이용객의 5.9%, 2014년 기준으로 1일 평균 1449명입니다. 또 서대전권 1일 평균 이용객수는 상․하행 통틀어 5800여명입니다. 그러니까 서대전권에서 서울 방향 이용객이 호남행 이용객보다 4배 많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양으로 삼은 꼴입니다.
어차피 2005년 오송에 호남 분기역을 빼앗긴 대전은 그렇다 치고, 호남은 ‘저속철’ 논란을 야기해 무슨 이익을 취했을까요? 국토부는 현재의 호남 KTX 운행편수를 62회에서 68회로 6회 늘려주기로 했습니다. 82회 전체를 ‘고속철’로 다니게 해달라는 주장을 결국 관철시키지 못했습니다. 대전권에서 호남을 오가는 1일 1449명에게 불편만 안겨준 것밖에 더 됩니까? 대전권의 호남 관광 수요만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호남-대전․충남의 정치적 단절도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그래서 이번 국토부의 결정은 고도의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호남 고립’입니다. 이는 호남이 자처한 고립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