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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열등하다는 신화가 깨어져야
언제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던 여성이 남성의 지적 능력과 동등한 경쟁자로 떠올랐을 때 '남성은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신화는 현실적인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우리 문화 속에서 여성의 지적 열등성이 강조되어 자연스럽게 그 반대 편에 있는 남성의 지적 우월 신화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남성의 지적 성취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남성은 버거운 경쟁의 길로 나선다. 더욱이 여성은 감성적이고 남성은 지성적이라는 구별이, 지식의 세계에서 감성은 지성보다 열등하다는 차별로 이어져, 남성세계에서도 우열을 가르는 잣대가 된다.
(나는 외아들로 태어났다. 시골 국민학교 선생님이신 아버지는 상당히 엄격한 분이셨다 위로 누나 둘은 모두 고등학교만 졸업했고 유일하게 나만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공부를 잘 했던 누나들과 달리 내 성적은 겨우 전문대에 진학할 정도였는데,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조리학과에 지원했다. 이 사실을 아신 아버지는 합격 통지서를 찢어 버리고 노발대발하셨지만 큰 호텔의 조리사가 되겠다는 서약 끝에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 아마 내 꿈이 조그만 가게를 차려 소박하게 살려는 것인 줄 알면 당장에 그만두라고 하실 것이다. (21세, 학생))
요리사나 미용사, 보모, 간호사 등 여성의 직업으로 구분되는 영역에 남성이 종사하기는 쉽지 않다. 이 남학생이 조리학과를 들어가기까지 아버지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던 것처럼, 남성들이 여성적인 섬세함이나 따뜻한 감성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직업에 뛰어들려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만 한다.
여성이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관념에서 여성적인 일은 열등하고 사내 대장부가 하기에는 적합치 않다는 편견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다보니 남성의 직업 사이에도 철저한 위계질서가 만들어져, 진짜 남성으로 지적 권위를 가지려면 남성은 자신의 다양성을 포기하고 몇몇 이상형에 속하는 지식과 직업으로 편입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남성간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자유로운 삶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주
1) 김주성,
"경쟁의 미학: 현대적 삶의 원류를 찾아서"
,
"철학과 현실"
, 1993년 가을, 37쪽.
오늘날 남성의 경쟁은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과도 같다고 한다.
이는 이긴 것과 진 것을 합하면 제로가 되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패배한 자의 손실만큼이 승자의 몫이 되므로 더욱 철저히 남을 누르고 승리하게 위해 가리지 않고 덤벼들 수밖에 없는 무모한 경쟁을 의미한다. 이런 경쟁 속에서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게 되고 경쟁이 과열될수록 부정한 수단이 동원되기도 한다.
2) 한국 여성 개발원,
"여성 백서"
, 1991.
3) 여성을 위한 무임,
"일곱가지 여성 콤플렉스"
, 현암사, 1992, 179--180쪽.
4) 앤터니 기든스,
"현대 사회학"
, 김미숙 외 옮김, 을유 문화사, 1992, 377쪽.
5) 송나라 진종
"권학편"
.
6)
"배제 80년사"
, 배제 학원, 1965, 367쪽.
7) 한국여성개발원,
"초, 중등학교 교육 과정에 나타난 남녀 역할 연구"
, 1993, 40--48쪽.
8)
"체육"
6학년, 10--11쪽, 한국 여성 개발원, 윗책.
남자 어린이는 여자 어린이에 비하여 성장의 변화가 늦게 와 준비 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이 빠른 사람은 근육, 골격이 발달하고, 턱에 수염이 돋아나며, 목소리가 굵어지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감정의 변화가 심해져서 충동적인 행동이 자주 나타나고, 이성의 친구에게 관심을 갖게 되며, 희망과 포부에 부플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차츰 믿음직스럽고 용감한 남성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여자 어린이는 남자 어린이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엉덩이가 넓어지며, 몸에 부드러운 곡선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정신적으로는 감정의 변화가 심해집니다. 이성의 친구와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는 등 감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여자는 월경과 같은 생리현상이 시작되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름답고 부드러운 여성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9)
"불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성차별 교육"
,
"여성"
1집, 56쪽.
10) 조동화,
"사내들이여, 암탉을 울지 못하게 하라"
,
"가정의 벗"
, 1993, 1월호.
참고 문헌
1) 이종성,
"개화기 근대 교육 수용 과정에 나타난 교육 갈등에 관한 연구"
, 고대 대학원 석사논문, 1981.
2) 양소영,
"개화기의 서재필 사상 연구"
, 숙대 역사교육 석사논문, 1992.
3) 조혜정,
"한국의 여성과 남성"
, 문학과 지성사, 1991.
4) 이만규,
"조선교육사"
2권, 거름, 1991.
5)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권, 이규현 옮김, 나남, 1990.
외모 콤플렉스
나보다 키가 큰 여성을 만나면 부담스럽다.
나는 신체적으로 강한 람보형의 체격을 갖고 싶다.
세련미는 좋지만, 여자같이 치장하는 남자는 꼴불견이다.
남성에게도 외모 콤플렉스가 있을까. 외모에 대한 관심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남성과 외모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치장하는 남성'은 언제나 꼴불견 남성의 순위에 올라가는 명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남성도 예외일 수는 없으며, 그와 함께 수수하고 털털한 남성이 남성답게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성공하는 비즈니스맨의 조건으로 적극성, 자신감, 육체적 엘리트를 꼽으며, 대통령 후보들의 외모 가꾸기 역시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다.
빠른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으로 직장인으로 능력을 보여 주어야 했던 아버지들에게 외모는 부차적인 문제였지만, 이른바 영상 세대에게 외모는 능력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외모에 관심을 쏟는 일은 여자나 할 일이지 대범한 남자의 일은 아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의식으로 남성의 외모 콤플렉스는 외모 가꾸기에 매진하는 여성과는 다른 복잡한 양상을 띤다.
예쁘장하다는 말을 들어서도 안 되고 남자답지만 아무렇게나 생겨서도 곤란하다. 그렇다면 남성은 어떠한 외모를 이상형으로 생각하는가. 왜 많은 남성에게 외모가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등장하게 되었는가. 이들의 외모 콤플렉스는 여성의 외모 콤플렉스와 어떻게 다른가 등의 문제를 살펴보는 일은 남성을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외모 콤플렉스의 내면화-숨겨진 진실
기존의 남성들은 못생겨도 능력과 재담, 또는 돈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뭔가 그렇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상형의 외모를 부추긴다 해도 실제 이들이 없다면, 굳이 이상형에 연연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형이 어떤 이익을 준다면, 그 순간부터 외모는 콤플렉스로 작용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남성이 외모 콤플렉스를 갖게 되는 원인이다. 특히 이러한 남성의 외모 콤플렉스는 세대에 따라 그 양상이 다양하며, 열등한 외모를 보상하는 방법 또한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가슴앓이형-소극파
분명 잘생긴 외모가 부럽지만 쩨쩨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모르는 척하고 살아 온 남성. 이들은 비교적 구세대에 속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다. 눈은 치켜 올라가서 사납게 보이는 데다, 키도 작은 편이어서 항상 앞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국민학교 6학년 때 우리 반에는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공부도 잘했지만 큰 키에 웃는 얼굴이 매력적이었다.
그게 부러워서 남몰래 흉내내 보기도 했지만 영 내 꼴은 고쳐지지 않아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가 된 ㄱ씨는 항상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지만.
"그게 어디 드러내 놓고 떠들 일입니까.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를 닮아서..."
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남성의 외모 콤플렉스는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속병이 될 확률이 더 높아서 자신의 외모가 추하다고 생각하는 추형 공포증은 남성이 여성보다 3배 정도 많다고 한다.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이 오히려 강한 집착증을 만들어 낸 결과이다.
보통 사람들은 수려한 얼굴, 탄탄한 육체의 남성을 능력 있고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마르고 왜소한 체격은 허약하고 신경질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 한 국민학교 여교사는, 뚱뚱하거나 왜소한 남자 아이들은 인기가 없고 늘 침울하게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은 커서도 자신감이 없고 적극성을 가지기가 어렵다. 특히 키가 작은 남성은 절망적이다. 해결할 방법도 없이 열등감을 마음 속에 담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모가 절대적인 여성과는 달리, 남성들은 여러 가지 보상 방법을 찾아 낸다. 탁구나 바둑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준다든가, 학문으로 승부한다든가 나름대로 최고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히틀러나 나폴레옹, 로트렉과 바이런, 강감찬이나 한명회 등의 인물들이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한 영웅으로 자주 거론되는 이유도 남성의 가치가 외모로 판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미인 밝힘형-보상파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전통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은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미인 아내를 얻음으로써 보상받고 싶어한다. 2세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아내의 미모는 그의 능력을 말해 주며 사교에 도움을 준다. 이들은 재벌과 여자 연예인의 스캔들을 부러움으로 바라본다.
(나는 정주영 콤플렉스가 있다. 연탄 배달부에서 대재벌로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인 그가 외모는 볼품없지만 돈의 위력으로 예쁜 여자들을 얻었다는 소문은 평범한 날 기죽인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권력과 돈만 있으면 못생겨도 미인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
22세인 이 대학생은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애인을 동반하고 걸어 갈 때면 그가 능력 있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잘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와 걸어가는 모습은 어색하게 생각한다. 실제 조사에서도 이상적인 아냇감으로 '예쁘고 섹시한 여성'을 원하는 남성이 상당히 많았다.
여성의 미모를 밝히는 남성은 대체로 외모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자신의 외모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외모는 여성이나 가꾸는 것이지 남성과는 무관하다는 성별 고정 관념이 강해서, 선뜻 외모 가꾸기에 나서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남성은 미인을 소유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대리 욕망을 갖는다. 그러나 여성을 상품처럼 소유하고자 할 때 남성 자신도 능력에 따라 상품화되는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공작새형-신세대 적극파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데 여자와 남자가 따로 있는가. 이른바 신세대는 파마와 무스, 성형 수술 등으로 외모를 가꾼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금기는 있다. 계집애 같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취직을 하게되면 빨간 블라우스는 더 이상 입을 수 없다.
라이어넬 타이티에 의하면, 요즈음 남성들의 외모 가꾸기는 배우자를 골라야 하는 필요성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자유 연애가 보편화되고 지배적인 남성보다는 부드러운 남자를 선호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남성도 자신의 외모를 박력이나 거칠음만으로 내버려 둘 수는 없게 된 것이다.
경상도 청년인 김군은 미팅에서 번번이 실패의 쓰라림을 당한 후 하숙집 동료의 충고를 귀담아 듣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박력 있다. 남자답다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남성다운 박력이 여성에게는 오히려 무례하게 보인다는 겁니다. 옷이나 머리 모양 이야기나 하는 친구들을 한심하게 여겼는데, 이제는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기도 하고, 세련된 옷차림을 따라 해 보기도 합니다. )
이 경우처럼 여성들은 상대의 외모가 스마트하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것이 좋은 것이라고 끊임없이 교육받은 여성들이 이제는 거꾸로 남성들의 외모를 밝히고 지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앞둔 여성은 남성의 외모를 첫째로 꼽지는 않는다. 물론 잘생긴 것이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능력과 책임감, 유머와 포부를 더 중시한다. 그것이 외모 가꾸기에 나서야 하는 남성의 고민인 것이다.
스포츠 맹신형-관리파
운동으로 건강과 탄탄한 육체를 유지하려는 유형으로 가장 많은 남성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대체로 남성은 신체적 건강 관리가 남성으로서의 자기 관리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이 원하는 운동은 줄넘기나 아령 따위의 운동이 아니라 테니스와 헬스, 골프 등 부와 여유를 상징하는 운동이다.
"배가 나오고 뚱뚱한 외양은 남자로서 큰 약점이다"
는 문항에 79.3%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15.4%가 대체로 그렇지 않다, 4.8%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흔히 금복주라고 말하는 불룩한 배가 동양에서는 복과 지혜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에 불룩한 배는 나태함과 무기력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용모가 중역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꼽힌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경영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고 생각한다. 중역 세계에서 경쟁이 심화되면서 용모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또 다른 요인으로 첨가된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빈번한 대인 관계가 필수인 비즈니스에서 개인의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장 생활을 하는 남성들에게 외모 콤플렉스는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 정문 앞에 10분만 서 있으면 요즈음 엘리트 사원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거의 획일적으로 보이는 말끔한 그들의 외모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신체적인 엘리트다운 외모를 갖추었다고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너무 작아도, 험상ㄱ게 생겨도 엘리트 대열에 끼기 어렵다.
설사 외모가 그렇게 크게 작용하지 않더라도 사회생활에 득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한 남성들의 외모에 대한 갈등은 심화된다.
남성외모의 변천사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시대 남성의 외모 콤플렉스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오늘에 와서 남성의 외모가 더욱 문제시되는가. 다른 시대에는 남성의 외모가 어떠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적 가치가 본질이 아니었던 남성의 몸은 여성의 몸보다는 중시되지 않았으며, 그래서인지 언제나 똑같았던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남성의 몸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어떤 때는 건장한 육체미의 아폴론을, 또 어떤 시기에는 연약한 몸매에 창백한 미소년을 남성의 이상으로 만들어 냈다.
남성미의 상징인 아폴론, 여성미의 상징인 비너스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즉 남자는 어떠해야 하고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그 시대의 외모의 이상을 반영한다. 대충이나마 다양한 아폴론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한 남성상과 그 문제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은 아름다운 성
남성미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아폴론은 그리스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원래 그는 점술과 예언을 주재하며 지성과 도덕, 율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숭상받았다. 고대 그리스 귀족 청년의 이상이었던 그의 모습은 당시 만들어진 나체 조각상에서 보듯, 넓은 가슴팍과 강한 허리의 완강한 육체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단정한 이목구비와 넓은 이마가 조화된 용모였다.
남성만이 지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도덕적 선을 추구할 수 있었던 이 시기에는 아름다움 역시 남성의 것이었다.
"영혼 속에 조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의 육체 속에 조화를 세울 것"
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운동으로 단련된 힘과 영혼이 조화된 상태를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했다.
그림이나 조각에서 여성이 미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은 그보다 훨씬 후의 일이었다.
그리스의 아폴론을 이상으로 삼았던 르네상스 시기의 남성상도 떡벌어지고 힘 있는 어깨와 가슴, 튼튼한 허리와 팽팽한 허벅지를 소유한 전사형의 남성이었다. 힘과 에너지가 뛰어난 남자가 찬양받던 이 시기는 특히 신 중심주의의 금욕을 거부하고 인간의 관능을 중시하여 남성미도 상당히 관능적인 면이 두드러졌다. 근육과 성기를 드러내기위해 달라붙는 옷을 입었으며, '라츠'라는 앞주머니를 달아 성기를 커 보이게 만드는 옷이 유행하기도 했다.
우리 나라도 고대인은 대체로 기골이 장대한 남성미를 숭상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무령왕은 신장이 팔척이요 눈과 눈썹이 그림 같으며, 구수왕은 신장이 칠척이요 위엄 있는 몸가짐이었다고 한다. 비교적 자세한 인물 형상은 고려가요에 나타난 처용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복이 성왕하여 내밀은 턱에?/ 칠보에 겨워서 숙어진 어깨에/ 길경에 겨워서 늘어진 소맷길에/ 슬기 모이어 유덕하신 가슴에/ 복과 지가 모이어 포만한 배에/ 동락태평하여 긴 정강이에..."
라고 묘사되어 있다.
처용이 당대의 미남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은 큰 턱, 긴 팔과 다리, 두툼한 가슴과 불룩한 배를 복과 지와 덕의 상징으로 숭상하였음을 보여 준다. 탄탄한 근육질의 아폴론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지와 덕을 상징하는 남성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 때의 남성들은 예복으로 치마를 입기도 하고 화장을 했다고 한다. 신라의 화랑은 미모남자장식이라 전하는데, 머리에는 관을 쓰고 금은 주옥으로 장식한 무복을 입고 금동으로 만든 신을 신었다. 허리띠에는 칼을 차는 장식과 패물을 달고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로 치장하고 얼굴에 화장하니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고대의 남성은 기골이 장대한 육체를 숭상하며, 비교적 자유롭게 아름다움을 추구했으리라 짐작된다.
연약한 소년다움이 이상
남성이 가장 아름다운 시대를 꼽으라면 서구의 절대 왕조 시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억센 것은 추하게 생각하던 귀족 사회에서 남성도 사치한 게으름뱅이가 되었다. 남성은 여성을 숭배하는 연애쟁이가 되어 화려하게 치장하고 소년의 미성숙함, 연약함을 이상으로 삼았다. 거친 지배자의 성욕보다는 섬세한 기교가 향락적인 생활에 적합한 것이었다.
이 시기의 남성은 연약한 몸매에 알롱쥐페뤼케(남성용 긴 가발)를 늘어뜨리고, 백분으로 화장한 창백한 안색에 에스카르팽(무도화)을 신었다.
이러한 모습은 아프로디테가 사랑한 절세의 미소년인 아도니스와 흡사한 이미지였다. 성적 자극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남성은 정복자가 아니라 사랑받는 존재였다.
우리 나라도 육체 노동을 천시한 양반 사회에서는 중세 서구와 마찬가지로 노동을 연상시키는 힘을 추하게 여겼다. 조선 시대 남성은 옥골 선풍이라 하여, 살결이 희고 연약한 이미지를 선호했다. 춘향전의 이도령도 백옥 같은 고운 얼굴에 분세수 곱게 한 미남자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러한 유교적 선비상이 남아 종종 귀공자 같은 남자에게 '깎아 놓은 밤 같다'거나, '밤에 만져도 선비'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화려한 서구의 남성상과 달리 금욕주의를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의 남성상은 성적인 이미지와는 완전히 분리된다. 남성의 치장은 유교의 전통 속에서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육체보다 정신을 중시하여, 남성의 몸이 성적인 이미지로 보이는 것은 천박한 일로 여겼다. 사소절에 이르기를, 군자가 거울을 보는 것은 의관을 바르게 하고 바라보는 태도를 존엄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눈썹과 구레나룻을 다듬으며 날마다 요사스럽게 몸단장을 일삼는 것은 남의 첩이 된 여인이나 할 짓이라고 하였다. 다채로운 색과 모양은 아녀자의 것이지 남성의 것은 아니었다. 남성은 큰 도포로 육체의 선을 완전히 가리고 예의와 격식을 표현하는 긴 소맷자락과 지배를 상징하는 갓으로 위엄을 갖추었다.
아름다운 여자, 강한 남자
서구의 남성이 아름다운 성이기를 거부하고 여성만을 유일하게 아름다운 성으로 규정한 시기는 19세기로 추측된다. 1830년대 말경에 남성은 파마와 향료, 실크, 성적인 밝은 색깔의 옷입기를 그만두었다. 자본가 상이 남성의 이상으로 떠올랐다. 이제 남성은 사랑받는 미소년이 아니라 광포한 정복자로 변한 것이다. 정력적인 눈매, 긴장한 똑바른 자세, 의지를 내보이는 몸짓, 자신에 찬 음성, 활기찬 걸음걸이와 힘에 넘치는 근육을 갖추어야 했다.
자본가들은 합리적인 이성과 차가운 논리를 보여 주고자 자신의 육체를 가려 성적이고 육체적인 이미지를 갖추었다. 회색 양복, 헐렁한 바지로 탄탄한 허벅지와 성기를 가리고 넥타이로만 남성임을 상징하였다. 그리고 모든 정력은 일하기 위한 에너지로 표현되었다.
오늘날의 남성상은 이러한 자본가상에 근거하여 강인한 육체와 냉철한 지성의 조화를 이상으로 한다. 육체가 곧 정신의 강인함을 보여준다고 규정되면서 남성은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대신 일에서의 성공을 얻을 수 있는 도구적인 외모를 추구하고 여성은 성적인 아름다움을 본질로 삼게 된 것이다.
현대의 우리 나라 남성상도 이러한 자본가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개화기 이후 남성의 기본 의상인 양복은, 어깨는 넓고 바지는 헐렁하며 회색이나 검은색으로 강인하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더욱이 유교의 전통으로 치장에 대한 금기가 엄격하고 육체보다는 정신을 중시하는 사고가 강해 남성 외모는 더욱 감추고 모른 척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
남성 외모의 이상형
남성과 여성의 외모는 그 의미와 모양새가 상당히 다르다. 여성의 외모가 성적으로 규정되는 반면, 남성의 외모는 기능적으로 규정된다. 여성의 아름다움이 애인이나 아내로서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요구된다면, 남성은 가족을 부양하고 보호해야 할 보호자로서의 외모가 요구된다. 즉 한 가족의 아버지로서 신념과 관대함, 친절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힘을 보여 주는 동시에 직장인으로서 자기 확신, 경쟁, 경험, 공격, 야망 등을 표현하는 외모여야 한다.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 여성의 몸은 큰 눈, 높은 코, 가는 허리, 날씬한 각선미 등 구체적인 형태로 규정되지만, 남성의 몸은 기능이나 사회적 지위, 우월성 등을 상징하는 육체의 이미지가 더욱 중시된다. 따라서 남성의 외모는 인상 좋은 얼굴, 큰 키와 넓은 어깨,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로 나타난다. 남성이 꿈꾸는 이상형의 체격을 설문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나보다 키가 큰 여성을 만날 경우 부담스럽다-58.9%
우리 속담에
"키 큰 사람치고 싱겁지 않은 사람이 없다"
거나
"작은 고추가 맵다"
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위로에도 불구하고 큰 것은 강하며, 작은 것은 약하다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남성에게 큰 키는 첫째 가는 외모의 조건이다. 설문 조사에서도
"자신보다 키가 큰 여성을 만날 경우 부담스럽다"
는 문항에 58.9%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대체로 그렇지 않다 22.4%, 전혀 그렇지 않다 18%의 응답이 나왔다. 이 결과로 보면, 2/3 정도의 남성이
"남자는 여자보다 커야 한다"
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혼의 경우는 63.4%가 그렇다고 답해 52.7%인 기혼의 경우보다 키가 커야 한다는 압박감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여성은 자기보다 키가 큰 남성을 원하고, 남성이 여성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남자의 어깨에 팔을 두른 여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여자가 건방져 보이거나 어쨌든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 부유층에서는 키가 작은 아들에게 천만원이 넘는 성장 호르몬을 맞추는 사례로 떠들썩했다. 남자에게 큰 키는 재산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 남자는 키가 커야 할까. 몸으로 표현하는 의사 소통에서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분석한 낸시 헨리는 큰 키로 내려다보는 자세는 우월함의 표시라고 말했다. 대체로 여성들은 남성보다 작으므로 남성들을 올려다봐야 하는 데에서 이미 열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흔히 키가 큰 사람은 고용될 기회가 많고 더 많은 봉급을 받고 의장으로 선출될 확률이 크며, 키가 큰 남자에게 특권과 높은 신분을 부여하는 데 익숙해서 자동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는 남성들은 키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다'는 곧 '우월하다'로, '작다'는 '열등하다'로 가치가 정해져 큰 것은 남성다운 성격에서 지배자로서의 대범함과 관련해서 생각하며, 작은 것은 무능력이나 소외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
"남자는 큰 것이다."
작은 일에 언제까지나 고민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상황이 자기 앞에 펼쳐진다 해도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자의 가슴은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새겨 넣을 수 있을 만큼 넓고 큰 것이다. )
나는 신체적으로 강한 람보형의 체격을 갖고 싶다-77.3%
남성다움은 힘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힘은 냉정하기를 은연중에 요구하는 감정적인 힘인 동시에, 위험한 운동에 필요한 신체적인 힘을 포함한다.
근육은 신체적으로 강인함을 보여 주며, 연약한 여성과는 다르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근육형의 대명사라면 역시 람보를 손꼽는다. 영화 '람보'시리즈는 속편까지 계속 흥행에 성공할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서 주인공 람보는 억센 근육과 뛰어난 전투력, 정의를 지키려는 불굴의 의지, 약한 자의 위험에 뛰어드는 휴머니티 같은 요소들로 남성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이 영화를 보며 람보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은 남성은 드물 것이다.
"신체적으로 강한 람보 형의 체격을 갖고 싶다"
라는 문항에 대해서 응답자의 77.3%가 그렇다, 13.8%가 대체로 그렇지 않다, 8.9%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대부분의 남성이 근육질의 람보형 체격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육질의 체격은 넓은 어깨와 가슴으로 약한 자를 감싸는 보호자 이미지이다.
(원래가 갈비씨인 나는 여름을 무척 싫어하는 편이다. 몸이 약해 여름을 타기 때문이기도 하니만, 여름철에는 빈약한 몸뚱어리를 옷으로 감출 수가 없어서다. 겨울엔 그래도 옷으로 깡마른 몸을 가릴 수가 있다. 그러나 여름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름은 그야말로 외로운 계절이다. 흔히 가을을 고독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나한테는 그렇지 않다. 가을과 겨울엔 두둑하게 옷을 차려입고 나서면 내 풍채도 웬만큼의 볼륨을 갖추어, 연인과 데이트를 하다가도 어느 정도 포근한 포옹을 해 줄 수 있지만, 여름에는 안아 줄 자신이 도무지 없어지는 것이다. )
이 작가의 말처럼 근육질의 풍채는 여성을 감싸 주는 남성의 표상이므로 골체미 소유자는 여성 앞에서 자신감을 가지기가 어렵다.
그러나 최근 남성의 패션은 스타일에서 중대한 변화가 오고 있다. 오늘날 남성의 체격은 근육질이면서도 늘씬한 신체를 지향하게 되었다. 벗으면 람보, 입으면 안성기 즉, 힘과 지적인 매력이 겸비되어야 하는 이중의 가치를 이상형으로 삼기 때문에 도달하기에는 더욱 까다로운 조건이 되고 있다.
"남자는 육체미를 해서라도 근육을 키울 필요가 있다"
는 문항에 대해서 대졸 이상 75.8%, 대학 재학 72.4%, 고졸 이하 65.8%가 그렇다고 대답해 대부분 사무 전문직에 종사하는 대졸 이상의 남성이 근육을 키우려는 의지가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일정 정도의 능력과 시간을 소유한 남성이 금상첨화격으로 외적인 힘까지 두루 갖추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근육질의 체격은 실제 일을 하기위해 힘이 필요하다기보다는 남성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적인 능력과 힘의 조화는, 육체를 가꿀 만한 돈도 시간도 없는 남성에게는 설상 가상의 어려운 목표가 되는 것이다.
잘생긴 이목구비, 좋은 인상
남성의 외모를 이야기할 때 얼굴에 대해서는 그다지 말하지 않는 편이다.
잘생긴 얼굴은 타고나는 것이고 미적인 면과 밀접해서 여성스러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에게는 예쁜 얼굴이 중요하지만 남성의 신체적 매력은 얼굴 생김보다는 기능적인 몸매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원만한 인간 관계를 위한 인상을 중시하는데, 이는 얼굴 생김까지도 기능적으로 보려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예쁘다'는 말 대신 '인상이 좋다'는 말을 쓰지만 결국 잘생긴 얼굴을 선호한다. 최근에 늘어나는 관상 성형은 실력 못지 않게 외모가 중시되는 요즘의 풍조를 말해 준다. 쌍꺼풀 수술을 받은 고교 2년생 이군은
"눈이 위로 치켜 올라가 인상이 험하다는 놀림을 많이 받아 항상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로 말한다. 명동의 유명 성형외과 병원에는 이런 남학생이 하루에 10여 명씩 찾아온다고 한다.
기업체에서는 면접에서 관상가를 데려다 놓고 신입 사원의 당락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취업을 앞둔 대학 4년생 박 군은
"저는 입술이 두꺼워 고민입니다. 결단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하는데 수술을 하자니 쑥스럽고..."
라고 말끝을 흐린다. 여성만의 문제였던 얼굴이 관상이라는 이름으로 남성에게도 강조되는 것이다.
세련미는 좋지만, 여자같이 치장하는 남자는 꼴불견이다-91.2%
남성다운 외모에 덧붙여지는 항목은 여자같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에 우리는 남성이 아름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성 패션의 변화를 소개한 한 기사에서는 그 동안 사회적 인습과 편견에 갇혀 미처 누리지 못했던 옷입기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남성의 치장을 '공작새 혁명'이라고 말한다. 숫공작의 화려한 깃털처럼 남성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시대라는 것이다. 분명 남성의 외모는 변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여성의 전용물이었던 화장품, 무스, 파마, 다이어트 상품 등이 남성과도 친숙해졌으며 더 이상 수수하고 털털함이 남성미의 대명사도 아니다.
그런데도 91.2%의 남성이
"여자같이 치장하는 남성은 꼴불견이다"
라는 의견에 동의하였다. 6%가 대체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고, 2.5%만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25세 이하에서는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가 87.2%, 26--30세에서는 91.7%, 31--40세에서는 94.4%, 41세 이상은 91.8%로 나타나 신세대라 불리는 20대는 약간의 변화를 보여 주지만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다운 외모는 거부함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남성 외모의 이상형을 큰 키, 강인한 근육, 좋은 인상에 세련되지만 여자같지 않은 외모로 설명하였다. 여성의 외모가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설명되는 데 견주어 남성의 외모는 세분화되어 있지 않다. 여성은 구애받는 존재로 몸의 아름다움이 본질적 가치이지만 남성의 외모는 기능적인 면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남성미는 단순히 이지적이고 강인한 자본가상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 전통적 이미지인 큰 키와 강한 근육에 남성에게 금기였던 치장이 세련미 또는 자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관상이라는 형태로 얼굴 생김새도 중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남성의 외모가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외모 콤플렉스를 부추기는 대중 매체
현대 사회에서 남성이 외모에서도 남성다움을 증명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콤플렉스를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중 매체의 영향을 들 수 있다. TV, 영화, 광고, 잡지 등의 대중 매체는 대중적 신화를 만들어 내고 전파하는 중요한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러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있으나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 체계를 확대하여, 생활 양식, 이념, 취미, 패션에 이르기까지 획일화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획일화는 대부분의 매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되어 남성의 몸도 여성의 몸만큼이나 상품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새로운 람보의 탄생-영화
사회학자 거즌은 남성다움의 다섯 가지 원형으로 군인, 개척자, 전문인, 부양자, 지배자를 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문가나 부양자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개척자의 시대도 지났다. 그러자 전통적인 남성 이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게 되었다. 남성은 무엇으로 위대함을 보여 줄 것인가. 영화는 그 대안의 하나가 되었다.
미국 영화와 홍콩 영화의 범람은 영웅이 되고 싶은 남성의 꿈을 대변한다.
서부 영화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서 람보의 실베스타 스탤론, 홍콩 무협 영화의 주윤발에 이르기까지 이들 영웅은 큰 키에 수려한 용모,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로 의리를 위해 싸우는 전사이다. 군인으로 표현되는 남성다움이 이상형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이른바 남성다움을 몸으로 보여 주는 일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나이 학교라 할 수 있는 군대의 경험은 남성과 여성을 구분짓는 중요한 근거가 되어, 전사적인 힘을 이상형으로 삼게 만든다.
그러나 최근의 영웅들은 좀 더 세련되고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초근육형의 우직한 힘만이 아니라 지적인 전사이다. '범죄와의 전쟁', '기업 전쟁', '지식 전쟁'에서 승리하는 새로운 영웅의 외모는 말쑥하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강인한 신체와 힘을 지닌 전사라는 면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스포츠 신화-TV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러 나간 아버지 대신 TV는 남성다움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맡는다. 함민복 시인은 텔레비전을 아버지라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텔레비젼을 아버지라 부르고 싶다
테레비가 가족을 침묵시키고 둘러앉게 한다
가족 중 텔레비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
어머니 테레비를 갖다가 버릴까요
독서가 잘 안되서 그러는데요
나는 요따위로 싸가지 없이 불효막심하게
말할 수도 없다 테레비가 정말 나의 아버지인가 )
이 시인의 말처럼 아버지 대신 남성다움을 가르쳐 주는 TV에 등장하는 스타는 쉽게 시청자가 동일시하는 모델이 된다. TV가 만들어 낸 많은 스타 중에서도 스포츠 스타는 남성들이 열광하는 대상이다. 스포츠에서 나타나는 가치는 주로 신체적 건강, 공격성, 경쟁, 인내, 자기 수양, 무리에의 귀속 등이다.
수렵 시대 초목을 달리던 사냥꾼으로, 영토를 넓히고 종족을 보호하던 전사로서 힘의 지배를 보여 주었던 남성다움이 이제는 스포츠속에서 이루어진다. 스포츠는 남성의 가치를 과시하는 문화적 상징으로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함을 증명하는 '마지막 요새'인 것이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거친 공격으로 스포츠 스타들은 남자 아이들의 영웅으로 숭배되며, 그들의 빛나는 군육질의 몸매는 뭇 남성들을 매료시킨다. 휴일을 스포츠 관람으로 보내고, 아침 출근길의 전철에서 스포츠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는 운동 선수들의 멋진 모습을 매일 대하는 남성들이 그들의 신체를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성다움과 세련미의 조화-광고, 남성 잡지
멋있는 남자란 남성다움을 세련미로 포장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특히 광고는 상품으로 남성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다.
최근 남성은 상품의 판매 대상으로 주목받게 되었고, 광고는 남성의 외모를 남성다움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광고들을 눈여겨보면, 남성용품의 광고가 강조하는 특징을 알 수 있다. 남성용품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계, 양복, 화장품 광고에서 몇가지 실례를 들어 보자.
1. 성공의 상징, 시계
시대를 앞서가는 진정한 자신감의 표현-피에르 가르뎅에는 섬세한 디자인과 독특한 개성이 있습니다...
앞설 것인가, 뒤따를 것인가... '성공의 상징' 보메 메르시에
테크 호이어의 강인함과 정밀도 그리고 내구성, 긴장된 승부의 세계에서도 거침없는 승부를 거머쥐는 오직 승자만이 발견한다.
2. 명예의 상징, 양복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명사의 정장 하이 에이미,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세계 유일의 기사 디자이너 하이 에이미, 18세기 수상 관저가 들어선... 다우닝가 10번지, 이 거리의 주인이었던 쳄벌레인, 로이드 그리고 처칠의 체취와 만난다.
자기 표현의 진정한 자유 까르뜨 블랑슈. 나는 예의와 격식을 존중하는가?
나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신적 여유를 중시하는가? 까르뜨 블랑슈는 이 두 가지 물음에
"예스"
라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신사, 바로 그들을 위한 새로운 트래디셔널 웨어입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 크리스찬 디오르
3. 성적 매력의 상징, 남성 화장품
뭔가 있는 남자, 카리스마. 다가오면 가슴이 멎을 것만 같은 그의 향취.
말로는 표현 못 할, 그러나 까닭 모를 매력으로 다가오는 뭔가 있는 남자.
그 이름 카리스마.
이러한 광고가 성공과 명예, 지배력 같은 남성적 가치를 상품으로 보여 줄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한 최성애는 이 시대를 도금 시대라고 비판한다. 남성다움을 도금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남성들의 외모 가꾸기를 부추긴다. 자신이 진정한 남자라는 정체성을 지니기 어려운 오늘날, 상품이 남성다움을 대신해 줄 수 있다는 광고는 상당히 유혹적이다.
남성 잡지 역시 남성의 외모 가꾸기를 강조하는 요인으로 등장했다.
(남자의 외적인 미의 최고는 역시 탄탄한 육체이다. 뚱뚱한 사람이 여유있어 보이던 시대는 벌써 지나갔다. 군살이 붙지 않은 단단한 몸은 그야말로 여자들이 요구하는 근사한 남자의 모습이다. 남자들이 늘씬하게 뻗은 여체를 동경하듯이. )
상업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움은 긍정적 가치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광고나 잡지는 남성의 가치를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며, 성공이나 명예, 남성의 매력을 화려한 상품으로 보여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계, 양복, 구두, 화장품이나 다이어트 식품에 이르기까지 남성용 상품도 다양하고 화려해지고 있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이 곧 우리다"
라는 한 사회학자의 분석처럼 남성 역시 자신의 가치를 외모로 드러내려 하는 것이다. 남성이 새로운 소비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던 광고가 남성에게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런 광고의 영양으로 남성의 외모 가꾸기는 더욱 부추겨 질 것이다.
남성의 외모 콤플렉스는 평등화의 징조인가
그렇다면 남성의 외모 쿰플렉스는 남녀가 평등해지는 징조인가. 물론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분이 불명확해지고 그에 따라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구분이 불필요해진 측면도 남성이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되는 요인이다.
그러나 인습과 편견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로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남성다움을 확인하기 어려워진 현대 남성에게 외모로 남성다움을 증명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주는 한, 남성의 외모 콤플렉스는 남성다움에 부과된 또 하나의 짐이 되기 쉽다.
한 잡지의 기사에서는 남성의 아름다움을 공작새의 우아함에 비유하면서 남성의 삶을 품위 있게 이끌어 가는 모습이 진지한 남성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남자의 아름다움을 꿋꿋이 지켜 나가는 남자야말로 남자"
이며
"아름다운 삶을 과시하는 것이 남자의 자부심"
이라는 것이다. 남성용품의 광고에서도 세련된 남자야말로 성공과 개성을 표현하는 진정한 남성이라고 말한다.
결국 남성의 세련미는 여성다움과는 구별되는 남성다움의 확장이며, 남성에게 외모가 남성다움의 한 형태로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오늘날 남성은 능력과 외모를 겸비한 만능인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으나, 성고정 관념에 따라 여성으로서 남성으로서 대상화되고 장식된 외모는 오히려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파괴하고 남녀의 관계를 힘겹게 만들수 있다.
남녀에게 서로 다른 고정된 외모를 강조함으로써 키가 작고 여성스러운 생김새를 지닌 남성에게 깊은 좌절감을 주기도 하고, 힘 세고 키가 큰 여성에게 공연히 열등감을 주기도 한다.
고정적이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임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의식은 차츰 변화되어 나갈 것이다. 또한 시대에 따라 남성미도 변화를 거듭해 왔다는 사실에서, 남성의 외모도 언제까지나 주어진 남성다움의 표현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며 점차 자유로운 표현으로 바뀌어 갈 가능성을 발견한다.
주
1) 한국일보, 1993. 11월 8일자.
2) 죠이스 브러더스,
"남자 그는 누구인가"
, 정용택 역, 본당, 1991, 117쪽
3)우에노 치즈코,
"90년대의 아담과 이브"
, 이재호/야노 유리코 역, 동풍, 1991, 37쪽.
4) 미셸 푸코,
"성의 역사"
2권, 문경자/신은경 역, 나남, 1990, 120쪽.
5) 고려가요
"처용가"
중 일절.
6) 전완길,
"한국인, 여속-멋 5000년"
, 교문사, 1980, 155--156쪽.
7)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 이기웅/박종만 역, 까치, 1987,14쪽.
8) Una Stannard,
"The Mask of Beauty"
, Women in Society, Basic Books, Inc., 1972, 191쪽.
9)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 이기웅/박종만 역, 까치, 1986, 22--41쪽.
10) 낸시 M. 헨리,
"육체의 언어학"
, 김쾌상 역, 일월서각, 1990, 116쪽.
11)
"맨즈라이프"
, 1990년. 11월.
12) 마광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자유문학사, 1989, 54쪽.
13) 일간 스포츠, 1990. 8월 2일자.
14) 일간 스포츠, 1993, 9월 10일자.
15) 조형,
"남성 지배 문화-오늘의 위기"
,
"또 하나의 문화"
4호, 1988, 41쪽.
16) 함민복의
"텔레비젼: 오우가"
중에서,
"TV 가까이 보기 멀리서 읽기"
, 현실 문화 연구, 1993, 148쪽.
17) 오기애,
"스포츠 보도와 정치적 신화"
,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석사논문, 1987, 13쪽.
18) 최성애,
"혼수전쟁"
, 청산, 1993, 54쪽.
19)
"요즘 여자들은 피지컬 엘리트를 좋아한다"
,
"맨즈라이프"
, 1990, 11월.
20) P. 스트럴/A. 재거 편집,
"여성 해방의 이론 체계"
, 신인령 역, 풀빛, 1983, 38쪽.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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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절"
, 김종권 역, 명문당, 1985.
2) 김성배,
"한국의 금기어, 길조어"
, 정음문고, 1974.
3) 김부식,
"삼국사기"
, 이병도 역, 을유 문화사, 1983.
4) 고석주,
"광고의 성 차별주의에 대한 소비자 의식 연구"
,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논문, 1985.
5) Michael S. Kimmel, Changing Men, Sage, 1987, 3장, 10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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