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너를모른다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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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1952년 충남 연기에서 출생, 수도여고와 고려대 독문과에서 수학. 계간 〈문학과지성〉 1979년 가을호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을 발표함으로써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와 시선집 『주변인의 초상』 번역 시집 『죽음의 엘레지』를 비롯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호』 『자살 연구』 등의 역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