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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따라잡기]
오페라 '투란도트'(Opera Turandot)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는 왜 중국 배경 오페라를 썼나?
오페라 '투란도트'(Opera Turandot)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입력 2024.11.25. 00:46 조선일보
2003년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공연된 오페라 ‘투란도트’의 한 장면이에요. 중국 영화 감독 장이머우가 연출을 맡아서 화제를 모았어요.
올해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서거 100주기입니다. 12월엔 ‘서부의 아가씨’(5~8일·서울 예술의전당), ‘라 보엠’(20~21일·대구오페라하우스), ‘투란도트’(22~31일·서울 코엑스) 같은 푸치니의 오페라들이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그 가운데 푸치니가 남긴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이에요. 과연 이탈리아 작곡가는 어떻게 중국 배경의 오페라를 쓰게 됐을까요.
원작은 페르시아 서사시
‘투란도트’가 탄생한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페라에서 투란도트는 중국 황제의 딸이지만, 정작 원작은 12세기 페르시아 서사시예요. 당장 투란도트 공주의 이름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을 일컫는 ‘투르’의 딸이라는 뜻입니다. 이 서사시에는 일곱 명의 미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 투란도트와 얽힌 수수께끼가 포함되어 있지요.
이탈리아의 카를로 고치(1720~1806)와 독일의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 같은 유럽 작가들이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희곡을 쓰는 과정에서 배경이 중국으로 바뀌게 됩니다.
오페라에서 투란도트는 ‘세 가지 수수께끼를 모두 맞히는 남자와 결혼하겠지만 만약 하나라도 틀리면 참수하겠다’는 엄명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왕자들은 페르시아·타타르 등 중앙아시아 출신이에요. 오페라만 보면 왜 목숨을 내걸고 멀리 중국까지 오는지 의아하지만, 작품의 탄생 배경을 보면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된답니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오역
이 오페라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테너의 아리아가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입니다. 얼핏 제목만 보면 사랑에 빠진 공주가 번민하는 것 같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잘못된 번역입니다.
이탈리아어 ‘네순(Nessun)’은 영어의 ‘노바디(Nobody)’에 해당해요. ‘도르마(dorma)’는 ‘잠자다’라는 뜻의 단어 ‘도르미레(dormire)’에서 비롯했고요. 이 때문에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뜻이 되지요.
이탈리아 월드컵이 열린 1990년 ‘3대 테너’가 콘서트를 열고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어요. 왼쪽부터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 지휘자 주빈 메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오페라를 보면 남자 주인공인 칼라프 왕자가 세 가지 수수께끼를 모두 풀고서 투란도트와 결혼할 자격을 얻지요. 하지만 이 오페라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칼라프 왕자도 거꾸로 공주에게 ‘자신의 이름을 맞히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고 제안하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한 대대적인 탐문이 벌어지지만, 칼라프 왕자는 “승리는 내 것(Vincero)”이라고 호기롭게 선언합니다.
이 아리아에서 칼라프는 “공주 당신도 차가운 침실에서 사랑과 희망으로 떠는 별을 보고 있으리”라고 노래합니다. 공주 역시 밤잠을 못 이루기는 마찬가지일 테니, 결과적으로 운치 있는 번역인 셈입니다. 특히 이 아리아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의 ‘3대 테너 콘서트’에서 불리면서 세계적 인기를 얻었지요.
작곡가의 미완성 유작
클래식 음악사에는 작곡가들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미완성 유작들이 적지 않습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등이 대표적이지요. ‘투란도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후두암으로 투병하던 푸치니는 칼라프 왕자를 연모하는 시녀 ‘류’가 애절한 아리아를 부른 뒤 죽음을 맞이하는 3막 중반까지 쓰고서 결국 눈을 감았지요. 3막의 마지막 이중창을 비롯해 미완성 대목은 후배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1875~1954)가 물려받아서 완성했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 올해 그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토스카’ ‘라 보엠’ ‘나비 부인’ ‘투란도트’ 등 많은 오페라가 공연됐어요. /위키피디아
1926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이 오페라가 초연될 당시 푸치니의 절친한 동료였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토스카니니는 3막 가운데 류의 비극적 죽음에서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관객을 향해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오페라는 끝납니다. 마에스트로(거장)께서 여기서 펜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대체로 알파노의 완성판을 연주하지만, 간혹 이탈리아 현대음악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1925~2003) 등 다른 작곡가가 완성한 버전으로 공연하기도 합니다.
중국에선 공연 금지되기도
오페라의 배경인 중국에서는 정작 오랫동안 이 오페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중국 당국에서 공식적인 금지령을 내린 적은 없지만, 중국에 대한 부정적 묘사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지요. 잔혹하게 남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공주부터 전제주의적 지배에 시달리는 군중까지 이 오페라에도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왜곡된 시각을 일컫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녹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1949년 공산화 이후 문화혁명의 혼란을 겪는 과정에서 서양 오페라 전체가 금기시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투란도트’는 1990년대 들어서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공연되기 시작했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감독 장이머우(張藝謀)가 연출하고 주빈 메타가 지휘한 1998년 베이징 자금성(紫禁城) 공연입니다.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의 ‘5월 음악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300여 명, 그리고 중국 배우·무용수 600여 명 등 유럽과 중국의 협력을 통해서 탄생한 초대형 공연이었지요. “베이징 사람들아. 포고문을 들어라”라는 1막 첫 장면부터 베이징 한복판에서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공연 이후 한국에서도 야외에서 초대형으로 열리는 ‘운동장 오페라’가 봇물 터진 듯 쏟아졌지요. 한때 금기시됐던 ‘투란도트’가 어느덧 중국의 문화적 자신감을 반영하는 작품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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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란도트
Opera Turandot
요약 〈투란도트〉는 중국 공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3막 구성의 오페라이다. 푸치니가 작곡한 이전 오페라와 다른 스타일이었지만, 갑작스런 죽음에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있다. 1972년 10월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국내초연되었다.
자코모 푸치니(1858~1924)
ⓒ CORBIS | All rights reserved
푸치니의 색다른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작곡가 스스로도 ‘창의적이고 독특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소재와 음악적인 면에서 이전의 푸치니의 오페라들과는 다른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선, 동화에서 소재를 가져왔고, 실제 있을법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환상적인 우화에 가까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푸치니는 18세기 극작가인 카를로 고치(Carlo Gozzi)의 희곡 《투란도테》(Turandotte)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20년 대본 작가 주세페 아다미(Giuseppe Adami), 레나토 시모니(Renato Simoni)와 함께 세심한 대본 작업에 착수한다.
푸치니는 기존의 투란도트 이야기가 가진 환상적이고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를 오페라로 옮기기 위해 원작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4명의 현자를 세 명의 대신(大臣) 핑, 팡, 퐁으로 대체했고, 투란도트에게 사랑을 깨닫게 만드는 인물 ‘류’를 새롭게 창조했다.
이 작품은 대부분의 푸치니의 오페라처럼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지만, 그의 오페라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바로 ‘류’라는 여인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3막 ‘류’의 죽음 이후, 얼음처럼 냉혹한 투란도트 공주가 회심하고 칼라프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대단원의 결말로 이어지는 장면을 위해 작곡가는 매우 고심했다고 한다. 당시는 그를 괴롭히던 인후의 종양으로 건강도 매우 악화되어 있던 때였다.
미완의 역작, 세상과 만나다.
푸치니는 결국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를 완성하지 못하고 1924년 11월 29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끝까지 푸치니와 돈독한 우정을 유지했던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투란도트〉의 완성과 초연을 계속 추진하였고, 프랑코 알파노가 푸치니가 손을 놓은 류의 죽음과 장례 행렬 뒤의 음악을 이어서 완성시켰다. 우여 곡절 끝에 1926년 4월 25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오페라 〈투란도트〉가 처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입장객들은 검은 정장을 착용함으로써 대작곡가의 죽음을 추도했다. 3막 1장 류가 죽는 장면이 끝나자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지휘를 멈추고 관객석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마에스트로 푸치니가 작곡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무대에는 커튼이 드리워졌고 관객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최고의 작곡가의 최후의 길에 애도와 존경을 표했다.
1926년 4월 초연 당시 포스터
ⓒ Mushii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중국적인 소재와 음악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중국적인 소재와 음악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전의 오페라와는 차별된 모습을 보인다. 이국적인 장치를 위해 푸치니는 상당히 신중을 기했고, 실제로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중국의 악기들과 리듬, 관련 연구 문헌들을 자세히 검토하였다고 한다. 중국적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중국 음악에서 가져온 몇 가지 선율을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공이나 탐탐, 종, 첼레스타, 글로켄슈필 등 여러 가지 타악기들을 오케스트라에 포함시켰는데, 다양한 타악기들은 오페라에 풍부한 색채감과 입체적인 음향 효과를 더했다. 5음 음계와 4음 음계의 사용, 불규칙적인 박자, 모호한 조성감을 주는 인상주의적인 화성 등은 이국적이고 신비스러운 정취를 풍기는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효과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작품의 내러티브 구조에 맞도록 절묘하게 배치되었다.
1막
북경의 궁전 앞 광장에서 관리가 나타나 투란도트 공주의 칙령을 발표한다. 황제의 딸 투란도트 공주는 자신이 내놓은 세 가지 수수께끼를 푸는 구혼자와 결혼할 것이며,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자는 처형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한편, 광장 거리를 헤매고 있던 이국의 왕자 칼라프는 뜻밖에도 타타르 왕국에서 추방되어 시녀 류의 보살핌을 받으며 떠돌이 생활을 하던 자신의 아버지 티무르를 만난다. 부자의 재회가 이루어진 광장에서 궁중의 함성과 함께 성곽 위에 투란도트 공주가 모습을 보인다. 공주는 이미 자신에게 구혼했다가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페르시아 왕자의 처형을 집행하라고 지시한다. 칼라프는 투란도트의 모습을 본 뒤 그녀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스스로 도전자가 되어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기로 결심한다. 티무르와 류의 간곡한 만류와 황궁의 대신인 핑, 팡, 퐁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칼라프는 징을 3번 울림으로써 운명의 시험대에 서게 된다.
2막
대신 핑, 팡, 퐁이 새로운 왕자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내심으로는 새로운 왕자가 승자가 되어 이 어두움을 걷어내 주길 바란다고 노래한다. 이 장면은 푸치니가 의도한 ‘중국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칼라프는 투란도트가 낸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어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하지만 남자에 대한 증오를 간직한 투란도트는 이름도 모르는 이와 결혼할 수 없다며 결혼을 불허할 것을 황제에게 청하고, 황제는 투란도트에게 약속은 신성한 것이니 이행하라고 요구한다. 칼라프는 투란도트가 새벽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고 기꺼이 목숨도 내놓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마땅히 자기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막
공주의 포고령에 따라 모든 백성은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잠들 수 없다. 핑, 팡, 퐁은 칼라프에게 이곳을 몰래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칼라프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결국 티무르와 류는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류는 자신만이 이 왕자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티무르를 고통에서 풀어나도록 한다. 결국 류는 단검으로 자결하고, 왕자는 류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열정 속에서 투란도트에게 ‘죽음의 공주여’라고 외치며 그녀의 얼굴 베일을 벗기고 키스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에 빠진 칼라프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이야기해주고 투란도트는 그를 이끌고 군중들 앞에 선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는 대신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 말하며 포옹한다. 군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주요 음악
1막 류의 아리아, ‘들어주세요 주인님’(Signore, Ascolta!)
1막에 나오는 류의 아리아. 투란도트에게 반한 칼라프가 수수께끼에 도전하겠다고 하자 왕자를 남몰래 연모하는 류가 이를 만류하며 부르는 아리아이다. 5음 음계에 바탕을 둔 서정적인 선율과 애절한 류의 마음이 어우러진다.
1막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울지마라, 류’(Non piangere, Liu)
1막 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기로 하는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혹시 자신이 잘못되면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라는 부탁의 말을 전한다.
2막 투란도트의 아리아, ‘옛날 이 황궁에서’(In quest regina)
2막에서 투란도트 공주가 부르는 아리아. 옛날에 궁전을 쳐들어온 타타르군인들에 의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로우링 공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외국의 젊은이들에게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어 복수하게 되었으며, 아무도 자신을 차지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음정이 크게 도약하고 고음역이 많은 극적인 곡이다.
3막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
3막 첫 장면에 나오는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제목의 원래 의미로 보자면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이다. 투란도트는 왕자의 이름을 밝혀내기 위해 아무도 잠들지 말라고 명하고, 왕자는 날이 밝으면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과 공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유명한 아리아이다.
3막 투란도트의 아리아, ‘처음 흘려보는 눈물’(Del primo pianto)
3막의 후반부에 나오는 투란도트의 아리아. 칼라프 왕자의 열정적인 사랑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자신의 마음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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