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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춘(仲春)의 계절 4월 14일 화요일, 우리길 화요도보는 왕릉순례 시리즈 일환으로 모처럼 의정부로 해서 가장 멋진 숲길 광릉수목원을 거쳐 광릉으로 가는 길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 모처럼 봄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보통 4월 20일경인 곡우(穀雨)를 앞두고 내리는 비는 곡식에 알맞은 비로 단비를 넘어 ‘금비’에 가까운 비이고, 오랫동안 메마른 농촌을 생각하면 더없이 고마운 비입니다. 그래도 비 맞으며 걷는 우중도보는 사진도 찍는 저도 좀 불편합니다. 그래도 비에 젖은 나무와 풀이 더 생동감 넘치는 것을 보면 우중도보는 또다른 운치를 안겨줍니다. 원래 걷기 좋아하는 분들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걷지만, 어쩌면 비내리는 봄날 걷기는 진정 운치를 즐길 줄 아는 분들의 몫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오래 메말라서 그런가요? 내리는 비가 조금은 부담스럽게 돼서 의정부시가 조성한 ‘소풍길’을 건너 뛰고 바로 광릉수목원으로 향했습니다. ‘소풍길’은 말 그대로 어릴 적 소풍을 다녀오듯 거닐 수 있는 산길과 물길로, 그 이름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 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삶이 어째든 이 세상사는 것은 어쩌면 소풍이 아닐런지요? 소풍길을 안가도 인생이 소풍임을 생각하며 수목원으로 갑니다.
국립수목원이 자리한 광릉숲은 세조가 묻힌 광릉의 부속림 중 일부로 왕실림으로 엄격하게 관리해오다, 일제강점기에 임업시험림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훼손을 면한 광릉숲은 그후 1980년대에 수목원이 조성되었고, 1987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특히 광릉숲 보전대책 추진을 위해 1999년 국내 최고의 산림생물종 연구기관인 국립수목원이 독립 신설되었습니다. 광릉이 들어선 이래 놀라울 정도로 온전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거대한 크기의 원시 자연공간인 국립수목원의 아름다운 숲속을 천천히 걸어봅니다.
개인적으로 광릉수목원 길은 대학시절 사진반 활동할 때 1급출사지여서 더 애틋한 추억이 있습니다. 당시 필름카메라 사진반이 드물고 출사지도 몇 안되던 시절 광릉수목원길은 꼭 가봐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메타세콰이아길이 흔하고 90년대 중반 담양 메타세콰이아길이 널리 알려지기 전 광릉수목원길이 가장 대표적인 가로수길이었습니다. 특히 청량리에서 버스타고 남양주 진접 입구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은 좁은 자동차 도로 양옆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도열하듯 서 있어 그 자체로 환상이었습니다. 이후 가끔 자동차 드라이브 삼아 갔지만 대학 초년생 시절 충격적일 만큼 아름다웠던 길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모처럼 버스 차창 밖으로 보나 했더니 그나마 비가 오는 바람에 흐릿한 잔영만... 날이 맑았어도 많은 세월이 지나 그때만큼의 감동과 충격은 오진 않았을 것입니다.
빗줄기가 조금은 가늘어질 때 국립수목원을 나와 아름드리 침엽수 사이로 이어진 길을 걸어 남양주시 진접읍의 광릉에 닿습니다. 광릉은 조선 7대 왕 세조(世祖)와 정희왕후(貞熹王后)를 모신 능입니다. 세조가 생전에 친히 이곳을 둘러보고 자신의 묘역으로 정해, ‘광릉내’라 불리는 능역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광릉은 같은 산줄기의 언덕을 달리하여, 서쪽 언덕에 세조를, 동쪽 언덕에 정희왕후를 각각 모시고, 중간 지점에 정자각을 하나 세웠습니다. 이를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라 하는데, 광릉이 그 최초입니다. 또 광릉은 세조의 유언에 따라 자연지세를 거르지 않고 이전 왕릉들보다 검소하게 조영되었습니다. 무덤방은 석실 대신 석회다짐으로 메우고, 봉분 주위에 둘렀던 병풍석을 없애고,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능을 조성하는데 동원되는 인력과 비용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광릉의 새로운 변화는 이후 왕릉 조영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동원이강릉은 한 언덕에 두개의 능을 조성했다는 의미. 정자각을 사이에 두고 왼쪽이 세조의 능, 오른쪽이 정희왕후능. 2013년 6월 사진.
그런데 광릉 해설사 분의 해설은 다르더군요. 세조는 죽기 전 이곳에 와보지 않았으며, 참도는 당연히 있었는데 훼손되어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세조가 백성의 노역을 생각해서 참도를 만들지 말라고 해도 예법(禮法)에 어긋나는 왕릉 조성은 있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말씀해서 약간 혼란스러웠습니다. 인터넷에서 광릉수목원이나 광릉을 검색하면 세조가 죽기 전 친히 이곳을 지목했고 참도도 만들지 말라고 나와 있는데, 해설사 분의 단호한 말씀도 일리는 있을 것 같고... 해설사의 말을 듣다보니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이 많아 대화가 길어지는 바람에 정희왕후릉은 올라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세조가 죽기 전 자신의 묻힐 곳은 와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조는 형인 문종이 재위 2년도 안돼 죽고 어린 단종이 들어서자 김종서 황보인 등 신권이 강해지는 것을 명분으로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단종을 몰아내고 임금에 오릅니다. 피부병 등 지병이 많은 세조, 자신의 명이 오래가지 않음을 아는 순간, 자신의 묻힐 곳을 어찌 생각하지 않았겠나요? 그리고 죽으면서 가장 불편할 상대는 누구였을까요? 형인 문종이 아니었을까요?
재위 2년 만에 죽은 문종은 지금의 구리시 동구릉에 묻혔습니다. 이곳에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건원릉도 있죠. 아버지 세종은 여주 영릉, 할아버지 태종은 대모산 헌릉에 묻혔습니다. 세조도 죽으면 동구릉 근처에 묻힐 것 같으니 동구릉 문종의 묘 만큼은 피하고 싶었겠죠. 그리고 세종 사후 2년만에 형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은 내치고 세조도 재위 14년 만에 죽습니다. 이 시기 20년도 안돼 세종 문종 세조 세 왕의 왕릉을 만드는 대역사가 이뤄집니다. 그러니 세조가 왕릉 조성에 최대한 민폐를 끼치지 말고 검소하게 하라는 말은 어찌보면 자연스런 일입니다.
보통 왕릉 조성시 홍살문에서 정자각 까지는 참도가 만들어지는데 광릉에는 참도가 있지 않다. 역사기록엔 세조가 백성의 노역을 생각해서 만들지 말라고 했고, 현지 해설사분은 당연히 있었는데 훼손되었다고 한다. 어느쪽 말이 맞는지...
언덕 위 높은 곳에 올라있는 세조의 능을 바라봅니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어린 조카를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했던 세조도 죽음 앞에서는 불안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높은 곳에서 감시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해설사분 말로는 광릉은 풍수지리상 명당이 아니었고 세조의 능이 높아 바람이 거세서 주위에 소나무 대신 삼나무나 가리비나무 등 키가 큰 나무들을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왕릉 보다 세조의 능이 높아 보입니다. 정희왕후 능에 오르신 분들 말로는 안개 낀 광릉 일대가 다 보인다고 감탄하시더군요. 조금 아쉬었지만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세조는 자신의 능 자리를 정한 뒤 그 주변과 진입로에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를 심고 능원과 산직을 두어 관리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광릉숲은 광릉이 들어선 이후 엄격하게 보호된 지역이었기에 우리에게 남겨질 수 있었습니다. 또 이곳에 임업 관련 기관이 일찍이 들어서 100년 가까이 나무를 심고 가꾸어 와 자연림 못지않은 인공림이 함께 성장해 온 덕분에 우리 숲의 미래까지 볼 수 있게 합니다. 이것도 어찌보면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권을 잡은 세조의 강박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과정속에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거대한 크기의 원시 자연공간이 남겨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비오는 봄날, 세조의 고뇌와 역사의 흔적이 흠뻑 물든 광릉과 아름답고 가치 있는 광릉수목원을 걸은 하루,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 가게 되면 세조 생전에 이곳을 방문했는지와 참도의 흔적을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몸 상태가 엉망이신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책임감과 신입회원 소개하는 즐거움(?)에 투혼을 발휘하셔서 나오신 그린비님과 그린비님 만큼이나 몸 상태가 안좋으심에도 나오셔서 궂은 총무일을 맡아주신 자운영님, 그리고 참숯불고기와 감자전을 맛보게 해주신 사진작가 에비앙님에게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좋은 길에서 뵙겠습니다.
낙화는 유수처럼
* 비오는 날이라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서 화질이 안좋네요. 그마저도 밧데리 나가서 핸폰으로 찍고, 나중에야 큰카메라로 찍고... 3가지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거대한 크기의 원시 자연공간인 광릉수목원
국립수목원 안내도
봄 내음 물씬, 갖가지 수목들이 경쟁적으로 봄을 맞이 하네요.
평일 비오는 날, 사전예약제임에도 방문객이 많더군요.
빗물을 듬뿍 담은 진달래가 매혹적이네요. 에비앙님 흉내내내서 한 컷...
광릉숲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됏음을 알리는 표지
살구나무라고 하는데 예쁜 꽃이 피워서...
숲과 나무의 진화, 한국적 마을정원의 한 모델을 보여주네요.
무슨 나무인지 모르지만 참 기품이 있어 보여서...
나무데크 등 걷기 좋은 숲길입니다.
비가오니 윤물무성 유정천리의 길로 보이네요.
"낙엽을 태우면 커피 볶는 냄새가 난다"는 이효석이 생각나기도 하고.. 갑자기 봉지커피 대신 원두커피가 땡기더군요...
날이 좋고 고급기종으로 찍었으면 하는 욕심이 나는 장면...
봄에서 여름으로.... 비내리는 날이지만 한동안 멍하니 서 있고 싶은 곳...
빗줄기는 가늘어질 생각을 안하고...
광릉숲 자체가 대한민국 공기청정기
동물원 가다가 구제역으로 중간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인간의 문명과 이기심이 동물에게도 피해를...(핸폰 사진)
광릉숲 넘어 광릉으로... 80-90년대 이 길은 대한민국 가장 멋진 길이었는데...
광릉 안내. 세조와 정희왕후에 대한 간략한 설명
높은 곳에 위치한 세조의 능. 바람을 막으려고 능 주변에 소나무 대신 삼나무 가리비나무 등 키 큰 나무를 심었다고 하네요.
정희왕후의 능. 짝수날은 정희왕후 홀수날은 세조의 능을 개방합니다.
세조의 농. 죽기 전 백성의 노역을 생각해 간소하게 하라고 했지만 20년 사이에 세종 문종 세조 등 3왕의 왕릉을 조성하면 백성의 원망이 높아지고 세금이 막대하게 지출했을 것임. 2013년 6월 사진
근처 원조 욕쟁이할머니집으로...
고풍스러운 곳
시래기정식이 유명합니다.
럭셔리한 에비앙님 식탁. 사실은 기사님을 위해 대접한 것인데 먹기는 제가...
식사를 마친 오후 4시경. 빗줄기는 여전하고 처마 빗물을 이어 받게 한 막걸리병에서는 굵은 물줄기를... 농촌 들녁은 기름져 가겠죠?
* 단체 개인 사진(똑딱이 사진이라 화질이 ...)
수목원 식물원 앞에서 단체사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회원소개는 빼놓을 수 없죠~
그린비님 타임~~ 가장 좋아하는 시간 신입회원 소개시간. 소개멘트가 이젠 거의 예술수준~ 해리님 왈~ 작업멘트 같다고~~
우비에 우산가지... 우중도보의 진수를 보여주시네요~
윤이랑님 가람님 방글이님 단미님
비가 오니 모자를 다 쓰시네요..
우비 패션이 화사합니다.
홍연화님과 맑음님... 수목원이 환해지네요.
홍연화님 단미님 트래킹고수님 스텔로님 맑음님.... 수목원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트래킹고수님과 엘리님. 엘리님이 뭐라고 하신 것 같은데..
가운데 정든길도 함께...
박글님과 디엠님. 디엠님 우의는 자목련과 잘 연결되서 디엠님이 자목련 한가운데 있는 것 같네요~
그린비와 단미님... 드디어 그린비님이 짝(?)을 찾으셨네요. 단미와 그린비는 사랑하는 연인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네요. 인터넷에서는 '단미그린비로 되어 있는데 해석을 읽어 보시죠. '그린비'의 '비'는 '아비(오라비)'에서 따 온 것으로 남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워하다'에서 따 온 '그린'과 결합되어 '그린비' 즉 '늘 그리워하는(생각하는) 남자'란 뜻이다. '단미'의 '미'는 '어미(할미)'에서와 같이 여자를 뜻하는 말이고, '달콤한'의 뜻인 '단'과 결합되어 '단미'가 되었다. '달콤한(사랑스러운) 여자'란 뜻이다.
우리길은 아름다운 우리말의 보물창고입니다.
중후하신 분들.. 이백님 뚱이아빠님 나길님 제월당님 수미산님 노 코멘트~ 죄송합니다~ 패스~~ 역쉬~~ 화면이 화사해집니다. 핸폰으로 찍은 사진인데... 새삼 이백님의 폰카의 힘을 생각합니다. 정든길님은 잠시 명상중... 하하늘님 자운영님 스텔로님 엘리님이 계셔도 표정인 안변하는 요산님과 매봉님 방글이님과 엘리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 순간을 즐기세요~~ 방글이님 연송이님 하하늘님 나길님 노란우산 속 고요바다님 트래킹고수님 똥이아빠님 자운영님 수미산님 홍연화님 고수님... 남자단체 사진 찍어주셔서.. 숀 코넬리도 울고 갈 중후한 멋, 제월당님 이 사진의 진실은??? 호방 호탕하신 우리길 왕비마마 엘리님 엘리님 만세이~~ * 마음에 안드시는 사진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조치하겠습니다. * 시간 나시면 지난 3월 10일 찾은 ‘영월 산꼬라데이길, 단종애사의 장릉과 청령포’도 읽어보세요. 수양대군과 단종의 악연, 역사의 길도 함께 느껴 보시죠. ==> 클릭
첫댓글 낙화유수님의 꼼꼼하게 올리신 후기 감동입니다.... 어떤 해설가라 하더라도 따라 올수 없는 해박함 ~~
감사합니다. 덕분에 광릉과 수목원을 제대로 다녀왔네요. 진정으로 운치를 즐기는 고수로서 ~~^^
하루 지나고 보니 새삼 정감이 더 가면서 풍경이면 풍경 인물이면 인물 모두 멋집니다. 거듭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
아침에 눈을뜨니 낙화유수님의 기행문을 천천히 들여다보니 머리가 맑아진다^^ 수필인듯, 역사이야기인듯, 더불어 멋진사진에 멘트까지~~ 그래서 오늘은 낙화님이 더 멋져보인다~~~
사진의 진실이 약간은 왜곡된(?) ㅋㅋ
그렇다고 딱히 해명할 것도 없고...쩝
늘 역사해설가 같으신 낙화님
수고 많이셨습니다.
우리를 배반하고 가셔서 혼자만 맛있는거 드시고...
그것도 용서합니다.
다음 길에서 뵈요.
영월 후기 때도 감탄했지만ᆢ역시 ᆢ아는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실감납니다ᆢ왕릉도보는 꼭 참석해야겠어요ᆢ카메라렌즈가 비 맞아서 맘 아팠어요ᆢ
그린비가 우리말이군요ᆢ저는 green bee 라생각했죠ᆢ
해설사보다 더 귀에 쏙 들어오는 해설을 곁들인 현장감 있는 사진들...
여유와 멋스러움이 닉하고도 참 잘 어울리신다 생각 했었는데... 역시나 입니다..
감사하며 즐감하고 갑니다..
먼저 구경하고 낙화유수님의 글을 읽으니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네요
좋은 해설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약 부작용 중에도 책임감으로 도보를
리딩해주신 그린비님.일일 총무 맡아
수고해주신 자운영님 감사합니다
금비에 젖은 광릉수목원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그에 버금가는 역사에 닉네임 해설까지 더해져
이아침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낙화유수님의 후기에서 역사공부 잘 하고갑니다!!!
낙화유수님의 구수한 해설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사진 감동입니다~
비오는날의 정취라 더 아음다웠던것 같아요~~
회원님들 모두 모델이십니다 최고예요
감사합니다~^*^
공부하게 되는 낙화유수님의 후기~
세조가 아무리 만들지 말라고 했어도 무덤은 후손들이 만드는 것이라서 참도를 만들었을 것 같아요~
그러나 해설사의 말처럼 훼손이 되었다면 복원을 하는게 맞을텐데 왜 하지 않을까요?
역사 공부, 엄청 시켜 주시네요
사진에 역사까지 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ㅎ
역시 낙화유수님이세요 ^^
음..담부턴 왕릉갈땐 공부좀하고 가야겠습니다.
낙화님 후기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또 까먹고 ..
멋진사진 역사공부 모두 고맙습니다
여쩜 멋진사진과 해박한 지식.....감사 무한대입니다..
역쉬낙화유수님`후기``저도모르게빠져듭니다~~~그린비님과단미님의그런좋은뜻이잇엇군요!!!1감사드려요^^
바쁘신 중에도 함께 해 주신 시간이 좋았지요.
비가 오니 광릉도 수목원도 더욱 싱그럽고 고즈넉한 느낌의 날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시간을 오늘 또 되돌아 볼 수 있어서...다시금 감사 드립니다.^^
정성들여 광릉에 대한 기록까지 적어놓으시니 사진과 함께 다시한번 리마인드되어 문화답사 기행을 아주 잘 다녀 온듯 합니다.
빗속에서 담아낸 사진과 좋은 글 감사히 즐감했습니다.
조선사를 다시 보게 되네요. 귀천의 싯구는 생각만 해도 아련해 오고요.
수목원과 어우러진 길벗님네들의 싱그러운 모습이 보기 좋았구요.
조선초기의 역사잘감상 했습니다 낙화유수님 조예 깊은 역사기록
재미난사진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봉사 잘해주시고 자주 만나요 ^ ^~~~
귀천이 아닌 우리길의동행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은 쭈~욱 이어집니다.
낙화유수님의 해박한 우리역사해설, 그린비와 단미의 아름다운 우리말해설, 먹방의 진실 ㅎㅎㅎ
이모두가 아름다운 해설 멋진 후기였습니다. 굿이예요~~ 먹방님에겐 지송 하지만 먹방의 진실은 더 구~ 웃~ 이구요 푸~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