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이 있었다.
본인은 보았다고 했음에도, 수사관은 그건 거짓이고 절대로 볼 수 없다고 한다.
당사자는 분명한 사건을 직접 보았다고 했음에도 뒷날에 해석하는 사람들은 그 수사관처럼 당사자의 체험을 무시하고 수사관의 편을 들어주고 말았다.
이런 수사사건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주어야 될까. 엉터리 수사라거나, 봐주기 수사라거나, 하나마나 한 수사라고 하면서 엉터리 수사관이라고 할 것이다.
일식이 있었다. 달이 해를 가린 현상이다. 이를 두고 해를 품은 달이라고 해품달이라고 하면 어떤가?
어쨌든 해품달을 세종대왕은 보았단다. http:www.kotenmon.com/star/emap/index.jtml에서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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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1433년 6월 17일 이날은 세종대왕 15년 6월 1일이다. 이날에 일식이 있었다고 했다.
일식이 있었다[日食]는 것은 일식을 보았다는 말이다. 일식을 보지 못한 경우에는 “不食”이나 “不見”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이날의 일식을 직접 보았거나, 관상감의 직원들이 이 일식현산을 보았다는 것이 옳다.
그런데 그렇게 일식현상을 보았다는 그 일식도를 보면, 정말로 한반도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으며, 그것도 서경 134.7도의 북아메리카의 서쪽 경계에서부터 대서양 북부를 거쳐 유럽 중심부를 지나 동경 43.7도 서남아시아의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의 동쪽 경계가 되는 홍해 이서쪽까지의 일식대이다.
이러한 일식대를 세종대왕의 시대에 보았단다. 이런 현상을 어찌 조선사람들이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보았다는데 왜 “한국천문연구원”에서는 “지구상에 日食이 있었으나 동아시아에서는 관측할 수 없었음”이라고 했을까? 이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결국 조선 사람들은 이 일식현상을 볼 수 없었다는 해석인데, 그것은 단지 한반도 바람들은 볼 수 없었다고 해야 하며, 조선사람들은 보았다는 말이다.
그럼 또 하나 다른 해의 일식현상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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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양력 1438년 9월 19일의 일식현상이다. 세종대왕 20년 9월 1일인데, 이 날은 구식례(救蝕禮)는 하지 않았지만, 조정의 회의와 시장을 열지[朝市] 않았다. 일식현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경 58.2도의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에서부터 대서양 중부를 지나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동경 67.9도의 아라비아해까지의 일식대이다.
이런 일식대를 세종대왕이 직접 보지는 않았을 지라도 관상감의 직원이나, 조선 사람들은 이 일식을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일식은 중앙아시아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며, 유럽과 서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볼 수 있는 일식대이다.
일식현상을 이제 알고 보니, “한국천문연구원”에서 펴낸 『조선시대 일식도』 등은 철저하게 한반도가 조선인 것으로 풀이한 것이며, 일식도도 동경 90도 이동쪽으로 제한 하여 그려놓았는데, 『산해경의 비밀 읽기』에서 조선의 강역을 동해에서 지중해, 즉 서해까지로 뻗어진 것이고, 그 중심에 조선이 있었음을 보고 세종대왕의 일식을 보았다는 서아시아와 유럽 및 아프리카 지역의 일식대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절대로 조선을 한반도에 가두어둘 수 없다. 일식현상을 절대로 한반도로 가두어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일식현상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을 지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그곳까지도 모두 조선이었음을 말해준다. 그 아프리카가 전라도일 것이라는 력사적 사실은 앞으로의 과제다.
동경 120도 이서쪽의 일식현상을 우리나라에서는 한결같이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조선사람들은 분명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유럽 및 아프리카 지역을 통과하는 일식대까지도 일식을 보았다고 했다.
당사가가 보았다는 사실을 력사가들이, 해설가들이 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보았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주면 그 지역이 곧 조선이 된다. 그러면 조선은 아시아의 동쪽 끝에서부터 서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까지를 포함하는 강역이 된다.
함부로 조선을 작다고 단정짓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