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호
[202301]레지오 영성1
올바른 지향과 겸손을 위한 식별이동훈 시몬 신부 서울 무염시태 Se.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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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시고, 뽑아 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더욱 확실히 깨닫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고 또한 여러분에게는 우리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2베드 1,10-11 공동번역 성서)/<성무일도 제1주간 토요일 아침기도 성경소구>
크든 작든 어느 단체 또는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로서 가장 필요한 자질과 품성은 ‘올바른 지향과 겸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리더로서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구성원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더러 그것이 자신만의 고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식별’이 필요하고 제대로 된 식별을 위해서는 기도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식별은 자신보다 기도와 식별의 훈련이 된 영적 동반자와 함께하는 것이지 혼자서 식별을 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영성 서적이나 책을 많이 읽고, 영성 강좌를 많이 듣고, 피정 자주 한다고 해서 식별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올바른 식별을 위해서는 동반하는 영적 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적절한 영적 동반자나 지도자가 없을 경우, 함께하는 팀 구성원의 조언에 경청할 필요도 있다.
예전에 대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의 영성 지도를 했던 때가 있었다. 간혹 신학생들과 영성 면담을 할 경우 딴에는 이미 자신의 성소를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을 해놓고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영적 동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결정을 영적 지도자가 반대할 것 같아서 자신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감추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자 문제이거나 본당 신부와의 관계에서 오는 교회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다
로욜라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는 두 가지의 영적 식별에 대한 내용(영신 313-336항)이 나온다. 영의 식별이라고 해서 따로 무슨 특별한 영적 현상에 대한 식별만을 떼내어 다루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알고 닮고 따르는 감각 그리고 그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이해하며 생각과 행동을 다듬어 나가는, 일반적인 영성 생활 내지 신앙생활의 여정이라는 배경에서 영의 식별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이다.
영의 식별 규칙은 신앙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만나게 되는 주요한 장애물, 즉 좌절감, 두려움, 희망의 상실, 그리고 마음을 괴롭히는 움직임 등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다룬다. 우리의 영신 상황에는 악한 영의 흐름과 선한 영의 흐름이라는 두 가지 영의 흐름이 있는데, 악한 영의 흐름을 잘 식별하여 선한 영의 흐름으로 나아가도록 하고 있다. 영성 생활에는 실망과 속임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실망과 속임수를 잘 식별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자는 것에 식별의 취지가 있다.
여기서 식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아니라 하느님(혹 하느님의 뜻)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멀어지고 있느냐의 움직임과 방향이다. 그래서 식별의 태도는 하느님과 성령께 항구히 주목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내가 옳다’고 하는 생각에 나를 가두어 두는 완고함을 막는다. 내 모든 것의 진원지는 내가 아닌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냐시오 성인이 추구한 목표는 “삼위일체이신 그리스도와 함께함으로써 교회에 봉사함”이라는 말로 잘 요약된다.
직책을 맡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불러 주셨다는 믿음 가져야
첫 번째 식별 규범(영신 313-327항) 중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식별 규범은 자신의 내적․심리적 혼란이나 실망, 죄 중에 죄책감에 시달릴 때의 상황이다. 보통의 경우 우선은 그것을 피하고 자신이 심리적으로 편하기 위해 스스로 결정과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냐시오는 이 규범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절대로 이미 선택하고 결정한 것들에 대해 섣불리 변경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영신 318항 규칙 5). 이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면서 의탁해야 하며, 이 실망에 거슬러서 힘껏 대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영신 319항 규칙 6). 더러는 고해성사를 통해 은총의 상태를 회복하고 안정을 찾은 후에 식별을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생각에서 그릇된 결정과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영적 동반자와 함께 식별하기에는 너무 멀리 간 경우이다. 영적 지도란 영적 지도자와 피지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둘만의 대화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면담관계 안에는 피지도자와 지도자 그리고 하느님이라는 3중 관계라는 내적 관계가 있다. 그러니 기도가 동반되지 않고서 어떻게 식별이 올바른 지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보다 자신의 정당함만을 고집할 터인데 어찌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면서 리더로서의 어떤 직책을 맡은 사람은 오늘 선정한 독서가 제대로 읽히기를 바란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시고, 뽑아 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더욱 확실히 깨닫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직책이 부여되었을 때 순명하겠다는 입바른 말로 겸손을 포장하고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스스로 직책을 선택해서 맡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불러 주시고 선택하셨다는 믿음 없이는 이 겉으로 겸손함을 포장한 내적 교만함과 올바르지 않은 지향만 갖고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