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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생애
미혼모인
그는 압둘파타 존 잔달리와 조앤 시블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곧 양부모인 폴 잡스와 클라라 헤고피언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자신을 버린 친부모(그는 친부모를 '생물학적 부모'라고 불렀다)에 대해서 큰 상처를 받았으며,
끝까지 친부모에 대해 냉정을 유지했다.
양부모에게서 어렸을 때 입양 사실을 전해 들었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를 결석하고 말썽을 부리는 등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몇년 후 그는 학생용 전자기기 키트를 손에 넣었고,
전자제품 조립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양부모가 입양 서약서에서
반드시 대학을 보낼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도 학비를 모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잡스는
1972년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대학교에 입학한 후 1학기만 다니고 학교를 그만두었고,
학교 기숙사에 머물면서 청강을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지냈다.
이 때 청강한 캘리그래피 강의는
잡스가 갖고 있던 미적 감각을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후일 애플 컴퓨터의 디자인과 폰트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에도 영감을 주었다.
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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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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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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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나 성공한, 실리콘밸리 키드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1955~2011년)는 1955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생부는 시리아계 압둘파타 잔달리(Abdulfattah Jandali), 생모는 미국인 조앤 쉬블(Joanne Carole Schieble)이었다. 두 사람은 쉬블 아버지의 강한 반대로 결혼할 수 없게 되자, 아이를 폴-클라라 잡스(Paul Reinhold Jobs, Clara Jobs) 부부에게 입양보냈다. 잡스는 양부모에 대해서 "그들은 1,000% 내 부모"라고 한 반면, 친부모에 대해서는 "그들은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어린 시절의 잡스는 사고뭉치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은 그의 수학능력을 테스트한 뒤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잡스가 월반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HP의 엔지니어 래리 랭(Larry Lang)은 어렸을 때 그를 이끌어준 멘토 중 한 명이다.
랭에게 히스키트라는 전자 장치를 소개 받은 잡스는
기계와 전자공학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거대한 컴퓨터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열세 살 때 잡스는 실리콘밸리 창업의 원조라 할 수 있는
HP의 공동 창업자 빌 휼렛(Bill Hewlett)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주파수 계수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을 지원해 달라고 했다.
휼렛은 이 맹랑한 소년에게 부품뿐만 아니라
여름방학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내주었다.
잡스가 고등학교 때 만난 가장 큰 인연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1950년~ )이다.
그는 그때까지
자기보다 전자장치를 잘 조립하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당시를 풍미했던 히피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다만 두 사람의 성격은 상당히 달랐다.
워즈니악은 말 그대로 '뼛속까지 순수한 엔지니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기계뿐 아니라 고전 문학과 음악도 좋아하는,
예술적 감성과 영적인 탐구심이 강한 스타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자란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많은 IT 업체의 창업자들이
다른 곳에서 나서 실리콘밸리로 이주해 일을 시작했지만,
잡스는 실리콘밸리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스무 살, 애플을 만들다
잡스의 대학 시절은 짧았지만, 스탠퍼드대학 졸업 연설 덕분에 널리 알려져 있다. 2005년 잡스는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 참석해 15분가량의 짧은 연설을 한다. 이 연설이 아이폰의 대성공 후 전 세계에 다시금 알려지면서 '괴짜 기업가'였던 그의 이미지는 '21세기 철학자'로 승격되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항상 갈구하고, 항상 무모하라.",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던 일을 하겠는가?",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아직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봐라." 연설을 통해 잡스가 남긴 많은 명언은 사람들에게 진한 여운을 주며 회자되었다.
잡스는 연설에서 리드대학에 들어간 지 겨우 6개월 만에 그만 둔 이유로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학비로 들어갈 정도로 학비가 비쌌지만,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퇴 후에는 재미없던 필수과목 대신 흥미 있는 과목들을 청강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 중 하나가 캘리그래피(서체 디자인)였다. 이는 10년 후 매킨토시의 유려한 서체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1974년에는 게임회사 아타리에 들어갔으며, 인도로 수행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타리는 잡스에게 '브레이크아웃'이라는 벽돌깨기 게임 설계를 맡기면서, 칩을 50개 미만으로 사용하면 줄어든 칩에 비례해 보너스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보수를 반씩 나누는 조건으로 도움을 청했고, 워즈니악은 불과 4일 만에 45개의 칩만으로 게임을 설계해 낸다. 하지만 잡스는 5,000달러를 받은 뒤 워즈니악에게는 총 보수를 숨긴 채 겨우 350달러만을 주었다고 한다.
1975년 워즈니악은 직접 키보드가 달린 컴퓨터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다음해 워즈니악은 이를 개량해 나무 상자에 키보드와 본체를 넣은 투박한 모양의 '애플I'을 만들어 잡스에게 보여줬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내는 데 천재적인 능력이 있는 잡스는, 그것이 바로 '미래'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자동차를 팔아 부품을 구입하고 워즈니악에게는 HP를 관두고 이것을 만들어 팔자고 제안했다.
리사
곧이어 두 사람은 애플컴퓨터를 창립했다. 1977년, 사실상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라 할 수 있는 애플II가 세상에 나왔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컴퓨터의 형태, 즉 모니터, 본체, 키보드, 디스크 드라이브가 달린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컴퓨터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애플II는 전 세계에서 200만 대가 팔렸다. 1980년 애플은 주식 시장에 상장되었고 두 사람은 백만장자가 되었다.
1978년에는 마우스로 구동하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갖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리사'를 출시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키보드를 이용해 알파벳과 숫자만 입력할 수 있었다. GUI 기술은 잡스가 제록스의 팔로 알토 연구소(PARC)에서 처음 본 것을 상용화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제록스는 이것의 가치를 몰랐다. 마치 워즈니악이 애플I을 만들었을 때 그 가치를 바로 알아차린 것처럼, 잡스는 GUI 기술을 보자마자 이것이 패러다임을 바꿀 놀라운 기술임을 알아차렸다. 리사는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바로 사라졌지만, 1984년 이보다 값을 낮춘 '매킨토시'가 나오게 된다.
매킨토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잡스를 상징하는 제품이다. 사실 애플II는 천문학적 성공을 거뒀지만 잡스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워즈니악의 작품이었다. 잡스는 자기만의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 했고, 그 첫 작품이 리사였고 결실이 매킨토시였다.
우선 매킨토시는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마우스+GUI' 컴퓨터였다. 모니터와 본체를 일체화해 디자인의 단순함을 구현한 점,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모토로 삼은 점,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이 만든 기념비적 광고를 통해 '제품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철학을 전달하려 한 점 등 매킨토시는 잡스의 제품 철학을 농축시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빠른 성공은 빠른 몰락을 불러왔다. 독선적 성격, IBM 호환 PC의 급속한 보급에 따른 매킨토시의 판매 부진 등으로 회사 안에서 입지가 좁아졌던 잡스는 서른 살이 되던 1985년, 자신이 "설탕물이나 팔 거냐"며 펩시코(펩시콜라 제조사)에서 직접 영입했던 존 스컬리(John Scully)에 의해 경영 일선에서 쫓겨났다. 스무 살에 만든 회사에서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겨우 서른 살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것이다. 비참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 일이 있은 후 1997년 애플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10여 년은 잡스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잡스 역시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최고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잡스는 이 기간 넥스트를 창업하고 픽사를 인수하는 등 두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최고경영자(CEO)로서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 체득했고, 기술력과 창의성을 배가시켰다. 픽사는 잡스가 CEO이던 시절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나중에 〈토이스토리〉로 세계적 성공을 거둔 뒤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잡스에게 커다란 부를 안겨주었다
잡스와 그의 부인 로렌 파월
파월은 잡스 사망 후 「포브스」가 발표한 억만장자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100위) 올렸다.
1989년에는 부인 로렌 파월(Laurene Powell Jobs)을 만났다. 잡스는 로렌을 처음 보자마자 사랑을 느꼈다고 했지만, 사실 로렌이 임신을 했을 때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로렌이 충격을 받고 그의 곁을 떠나자 결국 잡스는 로렌과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하고 이후 세 자녀를 낳으며 가정적인 남자로 변모한다. 자녀들과 수영장에 같이 가고, 학교 수업도 참관했으며, 할로윈데이에는 무서운 괴물 분장도 할 정도였다.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을 통해 자신의 치부까지 들어내는 전기를 집필토록 한 것 역시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남기고 싶어서였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의 독선적인 경영 행태는 1997년 애플에 돌아와서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12년 동안의 경험 덕분에 잡스는 애플 복귀 후 아이맥, 아이팟, 아이북, 아이폰, 아이패드 등 IT 업계에 길이 남을 혁신적이고, 아름답고, 이용자를 세심하게 고려한 제품을 계속 선보일 수 있었다.
잡스가 애플 복귀 후 제일 먼저 선보인 제품은 아이맥이다. 모니터와 본체 일체형 디자인에 투명한 색상을 입혀 감성을 자극했다. 그때까지 윈도 운영체제를 장착한 수많은 IBM 호환기종의 컴퓨터들이 나왔지만 컴퓨터에 감성적 디자인을 접목시킨 제품은 거의 없었다. 아이맥은 이런 세상에 충격을 준 것이다. 덕분에 1997년 10억 달러의 적자를 냈던 애플은 다음해 4억 달러의 흑자로 전환했다.
MP3 플레이어 아이팟은 기계뿐 아니라 '생태계'를 만들면서 시장을 창출해 낸 첫 작품이다. 이전에도 다양한 MP3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MP3 플레이어는 CD에서 추출한 MP3 음악파일을 재생하는 단순한 기계일 뿐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무료 음악공유 서비스 '냅스터'로 CD 판매가 급감한 후 파일 형태의 음원 유통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음반 제작자들을 설득했다. 결국 음원 파일을 불법 복제가 아닌 유료로 유통시키는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를 만들었다. 미려하면서도 편리한 이용자 환경과 아이튠즈를 통한 편리한 음원 구매 방식이 결합해, 아이팟은 세상에 둘도 없는 MP3 플레이어가 되었다
세상을 바꾼 미친 사람들
아이폰으로 대성공을 거뒀지만 잡스는 췌장암 수술 후유증으로 점차 건강이 악화되었다. 아이패드를 발표할 때 그는 평소처럼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했지만, 눈에 띄게 수척해 보였다. 하지만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한 가지에 집중했다. 후임인 팀 쿡(Timothy Cook) CEO가 진행한 아이폰4S 발표회를 집에서 지켜봤던 그는,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1997년 잡스가 복귀한 다음해, 애플은 '미친 사람들(crazy ones)'이란 TV광고를 내보낸다. 이 광고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존 레넌(John Lennon) 등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영상을 보여주며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낭독한다.
"여기 미친 사람들이 있다. 부적응자. 반항아. 문제아들. 정해진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인용하거나, 그들을 부정하거나, 찬양하거나,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하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류를 진보시킨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천재성을 본다. 자기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야 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라'라는 매킨토시의 슬로건과 함께 광고가 끝난다. 사실 실제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잡스가 직접 이 내레이션을 녹음한 영상이 잡스 별세 후 공개되었다. 지나칠 정도로 자의식이 강했던 잡스야말로 자신의 창조물로 세상을 바꾸길 원했던 미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