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ng isilang ka sa mundong ito
Laking tuwa ng magulang mo
At ang kamay nila,ang iyong ilaw
At ang nanay at tatay mo'y
'Di malaman ang gagawin
Minamasdan pati pagtulog mo.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는 꿈이 이루어지는걸 보았지
우리의 꿈이 실현된것이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지
At sa gabi'y napupuyat
ang iyong nanay
Sa pagtimpla ng gatas mo
At sa umaga nama'y kalong
ka ng iyong amang
Tuwang-tuwa sa iyo.
넌 우리에겐 너무도 소중한 아이였지
네가 방긋 웃을 때마다 우린 기뻐했고
네가 울 때마다
우린 네곁을 떠나지 않았단다
Ngayon ng malaki ka na
Nais mo'y maging malaya
'Di man sila payag
walang magagawa
Ikaw nga ay biglang nagbago
Naging matigas ang iyong ulo
At ang payo nila'y sinuway mo.
아들아 넌 모르겠지
아무리 먼 길도 갈 수 있다는것을
우리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위해서는
신에 맹세코 너를 끝까지 돌봐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한다면 너를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거라는것을..
Di mo man lang inisip na
Ang kanilang ginagawa'y
para sa iyo
'Pagkat ang nais
mo'y masunod ang layaw mo
"Di mo sila pinapansin.
계절이 여러번 바뀌고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 지나갔구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거지
이제 너도 어느새 다 자라버렸구나
Nagdaan pa ang mga araw
At ang landas mo'y naligaw
Ikaw ay nalulong sa
masamang bisyo
At ang una mong nilapitan
Ang iyong inang lumuluha
At ang tanong "Anak,
ba't ka nagkaganyan?"
그런데 무엇이 널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
넌 우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구나
큰소리로 네마음을 말해보렴
우리가 너에게 뭘 잘못했는지 말이야
At ang iyong mga mata'y biglang
lumuha ng di mo napapansin
Pagsisisi at sa isip
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Pagsisisi at sa isip
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Pagsisisi at sa isip
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그런 너는 어느새 나쁜 길로
접어 들고말았구나
아들아 넌 지금 망설이고 있구나
무엇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말이야
넌 너무도 외로운거야
네 옆엔 친구 하나 없는거지
아들아 넌 지금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있구나
우리가 너의 외로움을 덜어 주련다
네가 가야 하는 곳이 어디이든지
우리는 항상 문을 열고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 가사 출처 - lyrics )
Freddie Aguilar(프레디 아길라)
본명은 퍼디낸드 패스큐얼 아길라(Ferdinand Pascual Aguilar),
애칭은 카 프레디(Ka Freddie),1952 2월 5일~ )는
필리핀의 남성 싱어송라이터, 밴드 리더, 영화배우, 시인이다.
12세 때였던 1965년, 라이브 클럽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가수로 첫 데뷔하였으며,
1978년 조지핀 키포(Josephine Quiepo)와 결혼 하였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슬하 2남 2녀를 두었다.
결혼한 해인 1978년 자작곡 《Anak》으로 세계적인 히트를
거두며 일약 명성을 떨쳤다.1989년 영화 《Sakuko》의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하였다.
( 출처 - wikipedia )
▒ 1978년 ‘프레디 아길라’가 부른 ‘아낙(Anak)’은 아시아권은 물론
미국 등 세계적으로 유행한 노래. ‘아낙(Anak)’은 필리핀 고유의 언어인
타갈로그어로 ‘자식’ 혹은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 노래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인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프레디 아길라가 작곡한 노래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에 이 노래가 한창 유행했었다.
이 노래를 부른 ‘프레디 아길라’는 현재 진행형 필리핀 국민가수이다.
하루에도 몇 번 씩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그의 동상이 서있는 곳도 있다.
아울러 그는 필리핀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저항가수이며,
마르코스 독재에 항거하던 시위의 한가운데서 그는 늘 노래로 저항에 나섰다.
그의 많은 노래들은 필리핀에서 방송이 금지되었다가 1986년
마르코스가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 풀렸다.
특히 그가 부른 바얀코(Bayan Ko, 나의 조국)는 저항의 거리에서
필리핀인들이 사랑했던 노래다.
그래서 그는 국민 가수, 최고의 저항 가수이고,
그가 부른 노래가 최고의 인기 노래인 것이다
프레디 아길라는 지금도 빈민가에서 생활하며 술집여자,
해외 이주노동자, 감옥에 갇힌 이들의 아픈 삶을 노래로서
그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필리핀 국민과 함께 해 온
프레디 아길라의 노래는 여전히 그들의 사랑을 받는다.
Freddie Aguilar(프레디 아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