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부터 국철희님에 대한 음해성 자료들이 복사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91년에 올려진 한겨레 신문인가요? 누가 이런 해묵은 자료를 찾아내 뿌리고 있는지 혹시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바로그사람, 그분이 뿌리고 있는게 맞습니다. 요즘 오죽 답답하면 저런 자료를 찾아내 뿌리고 있을까... 처음에는 국철희씨를 경쟁대상도 아니라고 큰소리치더니 좀 쫄리기 시작했나 봅니다. 솔직히 안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요즘 떠도는 국철희 관련 찌라시에 대해서는 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국철희씨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혹시라도 마음아파하실까봐 글을 올려봅니다. 국철희 그는 누구인가? 서울대나온 빨갱이 아닌가? 여러분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정답은 결코 빨갱이도 사회주의자도 아니라는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국철희는 서울대 81학번입니다. 그 당시 시대상황 상, 서울대 다니는 학생이 운동권이 아니라면 그게 이상한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국철희는 서울대를 다니면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입니다. 자신은 대학에서 공부한답시고 볼펜이나 굴리고 있었고 같은 나이 또래들은 공장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산재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 비참함과 함께 현실참여를 고민하게된 것입니다.
군부독재가 판치던 지난 91년 상황을 돌아봅시다. 국철희 수배~ 라는 기사가 뜬 해 입니다. 87-88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태우 군사정권은 대학나온 사람이 노동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무조건 사상에 문제가 있다고 보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공안 당국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악질법을 적용해 노동자들과 학생을 분리해내는데에 주력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쉽게 그들을 격리하는 방법으로 공안사건 즉 무슨 무슨 조직사건을 잘 만들어냈습니다.
요즘 떠도는 국철희관련 찌라시 내용을 보면 국철희씨가 지난 91년 3월 경수노련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수배가 되었다는 신문보도내용입니다.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교육을 시켜 6명이 구속되고 9명이 수배되었다는 경찰의 발표내용인 것 입니다. 수배자 명단에 국철희씨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신문 기사 내용만 보면 국철희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도망다니는 수배자임에 분명합니다.
국철희는 91년 당시 안산 대우공업이라는 공장에 취업해 일을 하고 있을때 였습니다. 당시에는 봄만되면 조직사건이 터질때였습니다. 터졌다하면 이유 불문하고 국철희는 소환대상이었습니다. 서울대학다니던 사람이 공장에 취업을 하고있었으니 공안당국 입장에서 그는 당연히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국철희 그는, 툭하면 엮어넣으려는 경찰에 맞서 그가 할 수 있는것은, 출석요구를 해도 출석하지않는게 최선이었습니다. 경찰은 91년 3월 경수노련 사건을 발표하면서 경찰에 출석하지않고 공장에서 일 잘하고 있는 국철희를 수배자명단에 포함시켜 발표하기에 이르릅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연출됩니다. 국철희가 수배중인데도 몇달 후 당당하게 결혼식을 올렸다는 겁니다.
결국 경찰은 국철희가 아무런 죄가 없다는것을 인정한 겁니다. 즉 수배만 해놓고 잡아가지도 않는겁니다. 잡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구색맞춰 발표가 중요했던 거지요. 국철희씨는 결혼한 후 나중에야 경찰에 수배된 상태이니 조서를 받으라고 통지가와 경찰서에 출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저것 다 끌어들여도 죄가 되지않자 경찰은 오래전에 타 회사앞에서 집회를 여는데 거기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제3자개입금지 위반으로 처벌을 하게 됩니다. 신문에는 간첩이라도 적발한듯 수배자명단에 국철희를 올려놓고 나중에는 흐지부지되는 겁니다.
방송이나 신문에 조직사건이 나가고 난 이후에 재판과정은 잘 알려지지도 않던 시절입니다. 그러다보니 당시에 조직사건으로 연루되어 수배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민주화운동 피해자로 분류되어 보상을 받은적있습니다. 국철희씨도 피해자로 인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구리시 그리고 면목동에 위치한 녹색병원을 아십니까? 구리시에 위치한 원진레이온의 산업재해 실태에 관심을 갖으면서 구리시에서 원진 노동자들을 위한 연구소를 차리고 사회에 원진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려내는 주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진노동자 전문 병원인 녹색병원도 탄생하게 된겁니다. 현재 녹색병원 양길승 원장님이 당시 병원설립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서울대 선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후 국철희는 1996년 택시현장에 들어오게됩니다. 다른 학생출신들과는 다르게 국철희는 이번에도 현장에 취업해 택시기사들과 삶을 함께 하고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는 개인택시를 평생직장으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을 어느 반열에 올려놓기 위해 활동한적이 없습니다.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성범, 은수미, 김기식의원 등이 국철희 후보가 서울대 재학시절 같은 과 바로 아래 후배들이었습니다. 그들도 똑같은 운동권이었습니다. 택시 동료들보다 조금 더 배웠다는 이유가 빨갱이소리까지 들어야 한다면 이건 너무나 억울한 일입니다. 국철희는 서울개인택시의 자산이며 보배입니다. 위기에 처한 서울개인택시! 이제는 국철희를 활용해 우리 업권을 지켜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