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성탄 밤미사 강론 >(12.24.수)
인류의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요즘에는 아기 낳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지만, 성모님은 가장 전통적이고 자연스러운 출산 방법인 ‘자연분만’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형편이라 다른 선택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온 세상이 어둠에 잠긴 밤, 베들레헴의 허름한 마구간에서 구세주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기의 첫 울음소리와 함께, 온 세상에 새로운 희망의 빛이 비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기의 탄생만큼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의 생명이 이 세상에 온다는 것은 엄청난 기적입니다. 작고 연약한 그 존재 안에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아기는 너무나 무기력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주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작은 손가락, 보드라운 볼, 평화롭게 잠든 얼굴을 보면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아주 냉정한 인간도 아기 앞에서 부드러워집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분이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을 것입니다. 권력자, 군주, 왕의 모습으로 태어나실 수도 있었겠지만, 아주 연약한 모습,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의 모습을 선택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으로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심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 기쁨과 걱정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합니다. ‘태어날 아기는 건강할까?’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그런데 그들은 값싼 여관에서조차 방이 없다며 거부당해 추운 겨울밤 마구간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출산이 임박한 아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은 얼마나 미안했겠습니까? 또 따뜻한 방 없이 짐승들 사이에서 아기를 낳아야 했던 마리아의 고통은 어떠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불평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아기는 그들만의 아이가 아니라, 하느님이 특별히 보내주신 선물이고, 인류의 구세주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믿음 덕분에 그들은 모든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부모들도 공감할 것입니다. 아이를 낳기도 키우기도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교육에 대한 걱정,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늘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며, 하느님이 그들을 키워주시고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지난 6월 29일 사제 은경축 행사 준비를 위해 제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다른 사진들보다 백일 때와 돌 때 사진에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우리도 한때 이렇게 작았고, 누군가 우리를 안아주었고, 우리의 탄생을 축복해주었기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생명 앞에서 겸손해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네 가지로 정리해보면,
첫째, ‘죄 많은 인간을 하느님이 버리지 않으셨다’라는 표징입니다. 원죄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멀어졌을 때, 그분은 우리를 즉시 심판하시지 않고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자녀를 부모가 포기하지 않듯이, 하느님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표징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셋째,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가 보잘것없는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겸손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넷째, 작고 보잘것없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해줍니다. 하느님은 초라한 마구간, 가난한 목동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느님 외에 기댈 데 없는 사람들 안에서 인류구원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세주 아기가 탄생하던 밤,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메신저로서, 하느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분의 계획을 전해줍니다. 올해의 천사로 선발된, 초 3 김지유(미카엘라), 초 1 김지안(라파엘라)가 참 예쁩니다. 성탄 밤에 천사들이 노래한 것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였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예수님의 탄생 덕분에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될 수 있었고, 하느님과 인간도 화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 세상에 평화가 가능해졌습니다. 하루라도 전쟁 없는 날이 없는 현 상황에서 참된 평화는 무기를 내려놓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빛의 소식을,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소식을, 외로운 이들에게 사랑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밤 우리는 2천 년 전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만 모인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인류를 위해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마구간에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마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잡다한 것으로 가득 차서 예수님을 맞이할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마구간이 아주 초라했지만, 구세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살아오면서 상처가 있거나, 어둠이 있어도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시다. 그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사랑으로 살아갑시다. 성탄의 기쁨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 성탄을 다시 한 번 더 축하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