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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람이 꽃이 되어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뭉게구름
아벨서점 곽현숙씨
지혜로운 스승
동인천 배다리에서 27년째 아벨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곽현숙 씨는 6.25동이다.
태어난 지 두 달만에 아버님이 월북하셨는데 그분이 책에 미쳤던 분이었다 한다.
사진으로밖에 뵌 적이 없는 아버지, 한때는 집안을 풍지박산 낸 그를 원망도 했었지만 그토록 책을 좋아하던 아버지처럼 그이를 살게 한 것도 책이요, 사랑과 신앙과 삶의 가치를 배운 것도 책이었다.
그이는 인천에서 태어나 줄곧 인천에서 살았다.
송림초등학교를 마치고 15살에 어머니를 찾아 강화 교동도에 내려갔다.
교동도는 인천에서 9시간 배를 타고 가야하는 이북이 가까운 곳이다.
아버지가 월북하시자 딸 둘을 친가에 맡기고 어머니는 교동도로 재가를 하셨는데, 그곳에서 그는 두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한 분은 그이에게 인의예지신과 영어를 가르쳐주신 목사님으로, 한참 마음이 고프던 시절 책에서 길을 찾게 해주신 분이었다. 또 한 분은 평생 밑받침이 되는 살아 있는 지혜를 가르쳐주신 시골 아버지다.
그는 평생 농사만 지으셨어도 매우 지혜로운 분이셨다.
중학교 못 보내시는 걸 가슴 아프게 생각하신 그분은 어린것을 앉혀두고 당신의 경제를 소상히 말해주셨다 한다.
쌀이 12가마 나는 중에 들어간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보리를 심어 보충하고, 또 보리에 드는 경비는 감자를 심어 보충하고......어렵게 살 때 마음을 합쳐 一助를 해야 한다는 마음 바탕을 깔아주셨다 한다.
초등학교 졸업 때 받은 때 저금을 키워가는 법을 가르쳐주신 것도 그분이었다.
“얼마 안 되지만 제 경제라 하시고 병아리 몇 마리를 안겨주세요.
나는 그분이 만들어준 틀에 병아리를 넣어 산에 올라가 풀어놓으면 닭들이 막 날아다니고 놀다 점심 때 먹이 주면 다시 날라와요.
하지만 중닭이 되면 팔아야 한다는 게 현실 앞에 고민을 하게 되죠.
그때는 아팠지만 현실에 살아야 한다는 것과 이상을 구분하는 법을 배운 거지요.
그 닭들을 팔아 돼지를 사는 것까지 보고 왔는데, 그 다음에 그분은 돼지를 팔아 송아지를 샀다고 하네요.
그분은 사람을 키워주고 기분을 북돋아주시는 분이셨죠. 겨울철에 아버지가 나무 하러 가면 어머니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다 당신의 모습이 보이면 그제서야 군불을 땝니다.
따스한 밥 드릴려고. 남들은 의붓아버지라 삭막하게 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참 따스한 분이셨어요.
사람을 만나가는 언덕언덕마다 고마운 분을 참 많이 만났어요. 그걸 평생 쓰며 살지요”
사람들 속에서 굴러내는 게 귀하다
그이의 첫 직업은 월부책장사였다.
그때만 해도 현금 거래가 없는데다 깔아놓은 외상이 잘 걷히지 않던 시절이라 월부장사들이 자꾸 망했다.
한 곳에서 2년을 일했는데 다른 데서 오라고 하지만 배반하는 거 같애 차마 가지 못하던 그이는 마침 친구들 따라 버스 안내양을 하게 되었다.
그 즈음 대학생이 가르치는 야학을 하다 항도중학교를 갔는데 오래 다니지 못했다 한다.
“이미 그 때 내 속에 다른 게 꿈틀거렸나 봐요. 그러니 상식적이고 형식적인 공부가 마음에 안 차죠. 내가 하루종일 일하고 여기 와서 시간을 채우면 중학교 고등학교 나왔다는 거는 되겠지만 이것이 내게 꼭 필요한가 회의가 왔습니다.
안내양 하면서 별의별 사람 만났죠.
그때는 이해 못할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눈이 생겼어요.
제가 외골수인 성격인데 사람들 속에서 구르면서 그들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조금씩 생긴 것 같애요.
당시만 해도 중학교 못 가는 애들이 1/3은 되던 시절이었데, 돼지우리 같은 기숙사에서 배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살았던 결과가 지금의 우리 경제가 아니겠어요?
시대 시대마다 희생자가 많습니다.
배운 사람들이 그 희생을 똑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때 고생했던 친구들을 보면 배웠든 못배웠든 인간미 넘치는 삶을 살아요.
사람이니까 사람 속에서 굴러내는 게 귀하다는 생각이 들죠. ”
고생하는 중에도 한푼두푼 모아 책을 사서 읽으며 스스로 마음을 키워갔다.
다 읽은 책들을 둘 데가 없어 교동도에 쌓아두면서, 그 ‘보석’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한다.
한참 예민한 18살이란 나이에 그이에게 상처를 주었던 건 목재공장에 들어갔다 기계에 손을 다친 일이었다.
기아 돌아가는 데 뚜껑도 안 덮여 있는 상태에서 일을 하다 봉변을 당한 것이다.
수십 바늘을 꿰매고 난 후, 집에 걱정 끼칠까봐 외갓집에는 시골 엄마한테 간다고 하고, 엄마한테는 외갓집에 있다고 하면서 송림동 로타리 시장에서 호떡 장사를 했다.
“ 거기서 시장의 생리에 대해 알게 되죠. 시장이라는 데가 ‘입으로는 인심이 넘쳐나고 속으로는 자기 이익이 깐깐한 곳이구나’ 싶었어요.
시장을 관찰하면서 시장이 만만하지 않은 곳이구나, 내 나이에 이런 것까지 배워야 하나 싶어 7개월만에 그만두었죠”
그분이 내 속에 함께 사셨다
20살에 한 결혼이 아들을 낳은 지 8개월만에 끝나자 그이는 혼자 사는 목표를 세워야 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헤어질 생각을 하면서 아이한테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11살 때부터 나를 버텨온 아버지 하느님이 내 아이에게도 함께 하리라는 믿음이 왔습니다.
여지껏 나를 키워온 아버지는 너에게도 함께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었죠.
아이를 친가에 맡기고 나는 아이를 데려올 엄마로서의 조건을 만들어야 했어요.
나를 보호해줄 곳이 아무데도 없고, 여자 혼자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책방만은 나를 보호해줄 것 같고 알고 싶은 게 참 많아 책을 못 떠난 사람이니까 나를 키워줄 것 같았어요”
그런 고민을 하던 중 24살에 아는 언니가 30만원 빌려준 종자돈으로 책방을 시작했다.
당시는 꽤 큰 돈이었는데 몸도 약한 상태의 그이에게 결혼지참금을 선뜻 빌려주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가 내 삶이었어요. 하나도 내 맘대로 안 된 게 없죠. 내가 뭘 할 것인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그분이 다 일러주셨어요.
74년 책방을 하면서 78, 9년까지 아버지와 책이 내 삶의 전부였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나 힘들게 사니까 거기에 빠졌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니예요.
오히려 그분 때문에 내 삶이 의미가 있게 되었던 거죠. 떡 주세요. 밥 주세요 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알고 싶어서 사는 사람이고, 마음이 고프니까 밤새 뒹굴고 마음의 갈증 때문에 힘들 때마다 그분은 그걸 다 충족시켜주었으니까요. 사람들은 고생했다, 한이 많겠다 얘기하기도 했지만, 내게 고생이란 없어요. 그냥 삶이죠.
고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양상이고. 그래서 고생했다는 생각 속에 한이 묻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참 미안하지만 ‘미안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나는 이렇게 고생했는데, 너희들은 뭐야?’ 이건 한입니다. 한은 승화되어야 하죠. 삶은 남들이 보기에 어떻든지 간에 그 속에 들어가면 다 진지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 순간순간 하느님은 생각을 정립하고 묻는 걸 정확하게 묻게 해 주며 그이속에 함께 살았다.
평생 그의 반려가 된 하느님을 만나게 된 동기는 언니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이는 8살 때 언니를 잃었다. 당시 11살이던 언니는 외할머니댁에서 널을 뛰다가 떨어졌는데 엄마 얼굴도 못 알아보고 2주일만에 떠났다 한다.
“언니가 죽은지 일주일 후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꿨어요. 언니가 나랑 놀다 ‘이제 가야 돼’ 하더니 하늘로 올라가요. 어린 나이에 언니가 너무 보고 싶고 아버지도 그립고 누구랑 얘기할 사람도 없었죠.
그러다 하느님은 부르면 온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됐죠.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야지 생각했습니다. 그후 그분은 내 친구가 되어 주었죠 ”
인간은 자기가 자기이길 원하는 게 있다
두 살 때 친가에 맡긴 아이를 초등학교 때 데려온 그이는 아들에게서 배운 게 참 많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넓어지고, 젊은 세대를 이해하게 되고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키워지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다.
“그 아이 환경이 어떻습니까? 나는 그 아이가 처한 환경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물질이나 먹는 거, 그리고 메이커 사 입혀서 그 아이를 혼란시킬 수는 없었죠.
외로움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스스로 서야 하고 네가 지킬 건 지켜줘야 한다.
저는 부족한 것이 우리를 키운다고 가르쳤습니다. 억눌리면 스스로 일어서려는 꿈틀거림이 생깁니다. 그러면 도전하게 되고 발전하게 되죠. ”
하나뿐인 귀한 아들이지만 경제적으로 절제시켰고, 책임질 건 철저히 책임지는 자세를 가르쳤다.
2000원짜리 신발을 사 신겼더니 잃어버렸다며 실내화를 신고 돌아온 아들에게 모른 척하고 또 고만한 신발을 사줬다 한다.
“사실 어릴 때부터 같이 산 게 아니니까 불협화음도 많았는데, 중학교 2학년 때 아이가 성적표를 버리고 와 혼을 냈습니다. 그게 상처가 되었나 봐요.
나중에 그 일에 대해 일기 쓴 걸 보고 무릎 꿇고 사죄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괴롭힌 거 같다고 말예요. 놀라웠어요.
내가 잘못했다는 한 마디가 그 아이를 얼마나 평화롭게 만드는지.
책을 통해 인간은 모두에게 자기가 자기이길 원하는 게 있다.
사랑한답시고 소유하려 했던 거죠. 일기장을 보면서 아이가 한편 반항한다는 게 좋았습니다.
반항은 사람의 기본이자 가능성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살아가며 누구나 ‘나’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게 아닙니까”
그이는 세 사람 이상 모인 곳이면 배울 게 있다고 가르치기도 했다.
단점을 볼 때는 그냥 미끄러져 버려라. 나 하나만 들여다봐도 벅차게 나쁜 게 많은데 남의 나쁜 점까지 새길 필요가 있느냐. 하지만 장점은 잘 기억해 봐라.
아들이 사회복지과에 진학해 장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된 것도 대등한 인격체로서의 조언이 아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학력고사를 보고 아들이 의기소침해 있어요. 네가 대학에 가길 정말 원하는가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여요. 그래서 말했죠.
어제까지 어떻게 살았든 오늘의 네가 중요하다.
예수는 사랑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 했다. 네가 원하면 가는 거야. 가면 가지는 거야.
내 몸 전체로 혼이 가는 거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면 평생 못 가.
이게 내가 배운 예수의 사랑이다. 한참 후에 아이가 제 말을 이해하더라구요.
그후 20일 동안 열심히 공부하더니 합격하더군요. 중심으로 바라면 됩니다.
그래서 전 제 마음대로 삽니다. 원하는 것의 척도가 어디까진가, 그것이 내 것이라 확신하는가가 중요하죠”
책 밖에서 만난 책
24살에 시작한 책방을 32살에 다시 시작하기까지 그이에게 2년간의 공백이 있었다.
배운 건 없고 책방이 참 많은 걸 알아야 하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생겨 책방을 그만두었다.
그 시간 동안 그이는 현실에서 걸어 다니는 책을 만났다.
“어릴 때부터 책방에만 있으니 고생도 세상도 다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 같고, 그래서 책방을 그만두고 세상을 떠돌았어요.
공장도 다니고 배달도 하고 집 짓는 데 가서 일도 하면서. 그때 집안대소사도 다 맡아 하게 되었지요.
마지막엔 식모도 살아봤는데, 밥도 잘 못하지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왔습니다 하니 막 웃더군요.
한 50일 동안 부엌에서 생활하면서 참 행복했어요. 부엌이란 게 마음만 있으면 최저의 가격으로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더군요.
그걸 연구하느라 재밌게 지냈죠. 하지만 갇혀 있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알았죠.
그게 식모 사는 이들의 아픔이란 것도 느꼈고. ”
책이 사람을 도와야지 사람이 책에 매이면 안 된다는 것도 현실과 부딪쳐 살면서 깨달았다. 책속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책이 들어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또한 이 세상에서 행동하게 하지 못하는 거라면 사상이 아니라는 것도, 인간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도 느꼈다.
“책은 필요할 때 만나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친구를 만나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집 짓는 노가다 하다 <감자>를 만났어요.
나는 8시간 열심히 일해서 품삯을 받는데 어떤 아줌마들은 감독한테 잘 보여서 설렁설렁 일하고 챙겨가는 걸 보고 어찌나 재밌던지, ‘어, 감자가 여기 있네’하고 웃었습니다.
책 속에서 만난 일이 현실에 있고, 현실에 있는 일을 책 속에서 만나고 말이죠.
책이 생활과 맞물리지 않으면 죽은 책입니다.
소화도 안 된 책을 먹고 휘둘리고 사면 안 됩니다.
자기도 행하지 못하는 사상이 사상이겠습니까? 사람이 책을 먹어야지 책이 사람을 먹으면 곤란하죠
자기도 행하지 못하는 수많은 잣대를 남에게 들이대게 만드는 생각만의 지식으로 되어선 안 됩니다. 작은 사건 하나 보세요.
다 내 속에 다 있습니다. 나 편하자고 하면 강도, 살인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맘속으로 수없이 살인하면 살죠. 거기서 벗어날 사람이 누구입니까.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고고하게 살인하죠. 현실의 살인자는 교묘하지 못해서 살인합니다”
몸으로 사는 사람들이라 일이 힘들고 거치니 밥먹듯 욕하고 싸우고 했지만, 그이는 그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한다.
성질 막 내고 욕하는 사람도 싸우는 사람도 다듬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지 마음속은 누구보다 아름답고 순수하다는 거다.
겉만 보고 그들에게 손가락질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공장 다닐 때 한 아줌마는 일하다 계속 졸아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바람을 핀답디다. 그때 하루 일당이 2,000원인데 그걸 벌어다 밤새 춤을 추고 공장 와서 조는 거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춤을 춰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얼마나 외로우면 그렇겠습니까?
책방 돌아오기까지 여기저기 떠돌면서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외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식모 살던 집에서 김구의 백범일지를 읽고 용기가 생겼어요. 내가 너무 아는 게 없어서 도망다녔는데, 삶은 누군가 알아서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깨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락을 펴놓으면 자기 양식은 각자가 알아서 찾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김구가 그랬다지 않아요? 알아서 배우라고 펴놓고 도망가고 펴놓고 도망가고... 책을 덮으면서 그래, 내가 많이 알지 못한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어요.
나는 자락만 펴놓자. 나는 오로지 내 노동으로 묻혀서 완전히 없어지고 책은 살아나게 하자.
진짜 외로운 사람들이 목말라 찾아와 쉴 수 있게 하자.
그래 두 달만에 다시 책방으로 돌아왔죠”
오병이어의 기적
“자유로 들어오는 책과 자유로 나가는 책 사이에 나는 중매쟁이 노릇만 합니다.
나 하나만 제대로 서 있으면 책들은 들어오고 나가는 게 자유스러워지죠.
스스로 알아서 흘러가고 흘러와요. 주고 주고 또 주어도 12광주리가 남는 게 그분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한 개를 가지면 두 개 가지고 싶고 애착이 생겨 많이 가져도 남을 주지 못하죠.
하지만 그분의 사랑은 1개를 주면 2개가 돌아오고 또 4개가 돌아오고, 수없이 돌고도는 사랑의 방법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우리 책방은 주고 또 줘도 마음은 풍요로운 것, 그것이 사랑의 흐름입니다.
흐르고 넘쳐 12광주리 가득 넘치는 것입니다.
주고 싶은대로 줘도 또 남는 그런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합니다.
그 흐름에 맞춰 나는 어떻게 춤을 출까?
그래, 나는 책장사니까 책으로 춤을 춰야지 생각했습니다 ”
그이의 책방엔 천장까지 책이 가득하다. 책방에서 머지않은 그이의 집도 입구에서부터 마루, 방 할 것 없이 책으로 그득하다.
그이의 최근 깨달음은 먹고 남은 12광주리도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가고 또 가도 또 들어오는 책이 오병이어의 흐름이오, 남아도는 책도 누군가 필요할 때 친구처럼 딱 맞아떨어질 수 있는 책이기에 소중하게 잘 간직해야 한다는 게 남은 광주리에 대한 그이의 해석이다.
지식은 정보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가슴을 키우는 건 살아있는 글이다.
목마른 누군가가 이곳에서 어떤 글을 만날지 모르니까 책이 많지만 좋은 책을 보면 또 사게 된다.
“초점은 아버지한테 맡기고, 주인은 저들이 알아서 흘러가는 책이라 믿고 나는 노동만 맡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수없이 가르침을 줍니다. ‘살아있는 가슴에 살아 있는 글들이’가 아벨의 표어죠.
살아 있는 가슴이 살아 있는 글들과 만나는 곳이 이곳입니다.
하늘에 머리를 두고 사는 게 사람이니 하늘이 그립고 마음이 고프죠.
어려운 중에도 힘을 내게 해 준 것은 누군가의 양식이 될 수 있다는 거, 누군가의 그리운 마음이 만나고 싶은 글을 공급하는 게 제 책임이니까 많아도 책을 또 사게 되요. 충분한 양식이 공급되어야 하니까.
언제 누구의 마음이 글 속에서 친구를 만나고 길을 만날지 모르니까. 그걸 보충해줘야 하는 창고다 이렇게 생각하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출 줄은 모르지만 저의 최고서비스는 좋은 책을 갖다 놓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울 거래처 사람들도 한 20년 된 사람들인데 말없이 인격이 통하는 사람들이죠.
헌책 구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아요. 마진률도 낮고.
하지만 뭔가 따뜻하고 부담 없는 그런 서점 하나쯤은 인천에 있어야겠다.
이 넓은 우주 속의 지구, 그 속에 우리나라 하고도 인천 배다리에 있는 나 하나가 작은 시민입니다.
소시민적 삶 그거 하나라도 잘 살아주는 게 엄청 크게 잘 사는 거다.
어느 지역에 살든지 각기 자기 분야에서 제대로 서 있어야 한다.
서로 제대로 서 있으면 좋은 사회가 되지 않겠어요?”
살면서 사회가 너무 아니다 싶은 모습을 보여줄 때 그이는 아프고 고통스럽다.
좋은 사회가 그립고, 세상이 다 휩쓸리는 쪽으로 가고, 뭐가 지켜져야 하는지도 없는 현실 속에서 개개인이 주는 상처보다 세상이나 정치 돌아가는 모습이 상처가 될 때가 많았다 한다.
“옛날에 장영자 사건 나면서 하루 한끼 100만원 얘기 나오고 할 때 예배 보고 싶은 생각도 안 나 그냥 앉아 있었어요.
당신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아버지와 얘기했죠.
아이 키울 때 밥은 먹이겠는데 우유는 못 먹이겠대요. 그래 책방 하면서 새벽에 우유배달을 나간 적이 있어요.
그 때 새벽에 나가보면 고생하는 사람들 너무 많아요.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이 서너 시에 나와 구루마에 쓰레기 잔뜩 싣고 앞에 자전거 달아서 연안부두까지 가는 거예요. 그 무거운 걸 오토바이 살 돈도 없으니까 자전거 페달을 밟고.
눈물이 나죠. 그런 사람들이 세금을 내는데, 한쪽에서는 흥청망청 하는 걸 지켜보는 게 고통이었죠.
그래서 기도를 하는데 환영이 보여요.
사과장수가 사과를 가득 이고 가다 넘어져 사과가 땅바닥에 다 흩어져서 굴러다녀요.
그런데 흩어진 사과를 열심히 광주리에 담아주는 몇 사람이 보여요.
그분은 ‘내가 여기 있노라’ 말씀하세요.
너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불평 안 합니다.
나처럼 없는 사람이 더 많고, 빈한 사람들은 그냥 당하고 사는, 이 수레바퀴가 언제나 제대로 돌지 모르고 마음이 아픕니다.
진눈깨비가 쏟아지는 날 아이가 신문배달을 나갈 때 너는 많이 배울 거다 생각하지만 마음은 아프죠.
왜 밑에 사람들만 당해야 하는지...... 서로 조금만 기울이면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는데 그게 안돼서 안타깝고”
생수가 흐르는 곳
그이의 헌책사랑은 각별하다. 헌책방은 좋은 의미의 베스트셀러가 고인 곳이다.
출판사들이 망하고 책이 품절되는 현실에서 서점에서 사라진 책들, 그래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양서들이 돌고 돌아 헌책방에 이른다.
“감히 말하건대 헌책방은 생수가 흐르는 곳이죠.
사람들 마음에 고여 있고 잠겨있던 것들이 흘러 들어오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저는 여기 와서 잠겼다 가라고 그럽니다.
애들이 하루종일 이거저거 떠들어보다 한 권 사들고 가던지, 뛰어놀던지, 충분히 잠겼다 가라 그럽니다.
아벨은 사람들이 키워가는 곳이죠. 보이지 않는 마음들이 10년 20년 변치않고 십 년 후에 와도 엊그제 온 듯 하고.....책방에 들어서는 표정들이 풍요한 농장에 들어서는 거 같죠.
구석구석에서 책을 보고 고르는 모습, 음악과 책에 파묻혀 있는 모습 바로 기도죠.
천원짜리 들고 와서 하루종일 고르다 한 권 사가는 아이들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뒤적뒤적하다 아이들이 뭘 고를지 물어보면, ‘너를 잡아끄는 책이 있을 거다.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다 있단다’, 그렇게 얘기해주죠.
두 권밖에 살 수 없는 돈으로 세 권을 골라놓고 갈등하는 어떤 학생과 싸운 적이 있는데, 누구는 옆에서 학생이 돈도 없는데 그냥 깎아주지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악착같이 싸워줍니다.
벌레 씹은 표정으로 타협하는 게 아니라, 두 개를 사고 싶지만 선택이 필요하다는 거를 설득하죠.
‘하나를 깊이 보면 열 개가 다 통한단다. 열 개를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단다.
우리에겐 진짜 한 개를 보듬는 게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 어떤 것을 버리고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거라는 걸 이해할 때까지요”
손님 중에는 잔득 쌓아두고 많이 사줘서 생색을 내는 듯이 깎아 달라고 흥정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
고물상에서 2, 30원 받아다 천 원 이천 원 받을 수 있냐는 의중도 비친다.
그럴 때마다 그이는 흥정을 안하고 그가 생각을 바꿀 때까지 설득하고 싸운다고 한다.
그이에게는 하루 매상 몇 푼 안 되는 가게에서 한 사람이 그 몇 배의 매상을 올려주는 게 중한 게 아니라, 각각의 생명체로서의 책이 꼭 만나야 할 마음자리에 가는 게 무엇보다 중하다.
그이는 자신이 무시받는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책이 그를 키워왔기에 그이에게 항상 소중했던 건 책이다.
책을 하챦게 말하는 사람, 책을 몇 푼의 가치로 흔들어댈 때 안하무인으로 혼을 낸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당당합니다. 나는 책 가격을 함부로 매기지 않습니다.
내가 소중한 건 남도 소중하니까. 책이 얼마짜리든 나는 책의 가치를 알고 그래서 거기에 가치를 매깁니다. 사람들이 책의 가치를 종이쓰레기처럼 대한다면 책을 만질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죠.
지식이 많다고 해서 크게 부리는 것보다 어떤 것에 진정 가치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십대부터 변치 않는 생각은 책 하나 하나가 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글 하나 쓰고 책 한 권 써내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혼을 뺍니까? 그 많은 사람의 피와 혼을 빼서 나오는 양식이거든요.
그래서 흥정은 절대 안 합니다. 흥정하는 걸 원치 않지요.
흥정해야 하는 삶을 용납할 수 없어요. 남들은 배부른 소리라 할지 모르지만 내게 어느 책 하나 귀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책값은 안 깎아주고 대신 차비를 보태드릴 수는 있다고 얘기하죠.
때로 나하고 흥정하지 말고 이 책을 보고 이 책의 가치와 대화하십시오 합니다”
한편 그이는 책방의 풍요로움이란 이상을 지키기 위해 인색한 장사라는 현실을 수긍해야 한다.
이상을 지키기 위해 오는 고통을 지지 않으면 어떤 자리든 지키고 보전할 수 없으니, 겉보기에 인색이지 어느 정신에 이르면 인색이 아니기도 하다.
“ 70도 넘은 할아버지가 와서 무영탑을 찾아요.
젊을 때 읽은 책인데 그리워서 다시 찾아온 거죠.
그 책의 줄거리에 대사도 막 하시면서 세로로 써진 시커먼 책을 보물 다루듯 고르시죠.
그 정서를 즐기려고 오는 마음 나도 함께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5, 6년 전 컴퓨터가 대중화되고 전자책 나온다 하면서 헌 책방이 의미가 있겠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죠.
이틀 동안 묵상을 했는데, 그때 받은 답은 이렇습니다.
책은 생명의 흐름이다. 깊은 마음을 닦아내는데는 책다운 책이 필요하다.
과학과 정보는 요즘 책을 못 따라가겠지만, 가슴에 남는 책은 그래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결론이었죠”
그이는 몸이 아프면서 시골 가서 살고 싶기도 하고 자다가도 시골에서 책방을 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 자연을 즐기고 누리기에는 너무 미안하다고 한다.
“여기서 느끼는 흐름, 음악에 빠져서 듣는 모습, 책에 몰두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어디 가서 볼 곳 같지 않아요.
이 헌책 냄새 다른 곳에서 맡을 수 없을 것 같고...사람들과 대화하지 않고 나는 나타나지 않고... 노동으로 살고 나는 죽고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내가 아파서 책들이 엉망이고 하지만 사람들이 불평 안 하고 아벨을 포용해줍니다. 그러면 전 제가 불성실한 게 미안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다짐하게 되죠.
이곳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음이 지켜주고 있죠. 작은 책방이지만 정말 잘 지켜졌습니다. 사람의 향기를 느끼고 키워가게 해주시고 넘치게 해 주시고.
사실 싸우던 사람들도 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책방 안에서이기 때문이죠. 장사치의 횡포가 아니라 그들과 대화하려는 것이니까. 사랑이 아니면 싸울 수 없습니다. 제가 싸우든 말든 여기 책들은 깍듯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우아한 주인입니다. 나는 중매쟁이로 관리하는 것만으로 즐겁습니다”
하루하루 살 뿐
“사람들은 30년동안 이만큼 이루었다 말하기도 하는데 그 말은 내게 그냥 저쪽으로 가버립니다.
‘맞아. 내가 얼마나 애쓰고 고생해서 이걸 세웠는데’ 하는 생각은 바닥에도 없어요. 뭐를 이루었다 세웠다 그런 생각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삽니다.
중요한 건 오늘 이 시간 내 책방으로 들어오는 생명이 귀중하죠.
이러다 내일 무슨 일이 생겨 훌쩍 가면 끝나는 거고. 그러나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한다 생각해요.
이루고 말고 하는 건 없습니다.
목적을 똑바로 하고 살았다면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게 충분히 있습니다.
그걸 하면서 얼마나 얻었겠습니까?
거기다 뚜껑을 씌우고 옷을 입히고 꾸쭈메니(루즈)를 발라야겠어요?
내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툭툭 털고 일어나 떠나보세요. 시궁창 속에 내 한 몸 담그고 있어도 내 속에 들어 있는 생각, 추억만으로 즐거울 거 아닙니까?
그러니 보는 눈이 이쁠 거고 듣는 게 즐거울 거고”
그이는 사랑은 흐르는 거라 한다.
비우면 흐르고 비움은 목마름이고 그런 곳으로 흘러가는 게 자연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자연히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하느님의 사랑을 그는 제한된 신앙의 테두리에 가두지 않는다.
각자의 삶은 사랑으로 더 가까이 가게 하는 매개이자 통로다.
직접적이고 완전하게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조건에서 발을 빼지 말고 사람 속에서 같이 뒹굴어야 한다.
“그분은 떠들어대는 사랑이 아니라 남의 마음줄을 타고 동합니다.
마음이 왔을 때 거짓 없이 마음으로 안아주고 그가 참으로 외로울 때 전이된다는 거죠.
사람을 통해서 신명을 통해서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예수가 왜 인자로 왔겠어요.
그러니 내 마음과 꿈이 타인에게 가야지 나한테 머물러서는 그분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군더더기가 없는 선명한 연출이죠. 미사여구가 필요 없습니다.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삶의 조건에서 벗어나지 말아야죠.”
그이는 누군가를 불쌍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나름대로의 아름다움, 표적, 가치 찾음이 다 그들 속에 있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모습을 보고 불쌍하게 본다는 것은 생각의 형상이다.
그런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 누구든 하늘로 머리를 뒀으면 스스로 당당하게 도와주고 싶어하지 도움을 받는 자리에 서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그가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는 걸 인정해 줘야 합니다.
서로 인정해줘야 동등한 인격으로 가는 거죠. 왜 엎드려 구걸하게 합니까?
애초부터 나 같이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한 사람들, 그래서 갈증이 있었고 무지한 세상에서 마음이 고파서 거리에서 뒹구는 사람들, 생명이기 때문에 앎을 향한 그리움에서 그런 게 아니겠어요? 갈증이야 말로 고귀하고 진짜 사랑의 그릇이 되는 준비과정이죠”
거지가 되어도 철학이 있는 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그이의 철학이다.
낮은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기울이게 해 주냐는 거다.
가여운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것만으로 그 사람들을 풍요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게 해주는 사람들의 몫과 삶도 소중하다.
“ 꼭 있어서 줘야만 주는 것입니까? 사람에게는 주고 싶은 마음의 배설구가 있습니다.
없는 사람들은 그가 낮은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배설구를 열어주고 제대로 흘러가게 해주는 보시 역할을 해주는 겁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선심 쓰듯이 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누군가에게 줄 게 더 많다는 것은 다른 데 가 있어야 할 것이 자기 창고에 쌓여있다는 것인데, 미안해하면서 줘야지 왜 선심을 쓰듯이 합니까?
친구처럼 감사하며 주어야 합니다”
죽어서 산 아벨
최근 그이는 몸이 아프다.
매일 무거운 책을 묶고 싸고 들고 옮기며 살아온 고된 일 탓이다.
그 노동강도를 상상하려면 매일 이사를 한다고 생각하면 되리라. 하지만 그 노동이 황금 같은 걸 주고 가슴을 키워주었다 한다.
고생한 적이 없다 한다.
그이는 돈도 벌지 못하고 몸도 성치 않은 현재의 처지를 한스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옛날처럼 꿈을 꾸고 도전한다.
“내 환경에 대한 불만은 없었어요. 저는 알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고, 사람이든 책이든 고통이든 매순간 내가 부닥친 현실에서 배울 걸 찾았으니까요.
내가 산 한계 내에서 많은 걸 얻었습니다. 돈은 벌지 못했지만 정신은 살아남았죠.
내가 돈을 많이 벌어 4층 빌딩을 산들 그게 시멘트 바닥인데 성이 차겠어요?
사람이 되면 내가 다니는 데가 다 책방이 될 수 있단 말이죠.
내 삶은 지금 이 생에 있습니다.
이 생이 가기 전에 꿈꾸고 도전해 보는 겁니다.
천국은 2000년 전의 예수한테만 있는 게 아니예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했어요.
저는 그분에게 날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악기가 되어 당신의 춤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으니까요.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진정한 악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 속에서 뒹굴어야죠”
아벨은 죽어서 살았다.
순수한 촌놈인 아벨은 그 순수한 마음으로 하여 첫제사가 흠향되었듯 첫마음을 지키며 살자는 게 그이의 바램이다.
하지만 아벨이라는 ‘첫마음’은 갈수록 무겁기도 하다.
“내가 살아온 고비마다, 수없이 몸을 굴리며 산 나의 이력 어느 거 하나 부끄러운 게 없습니다.
그 하나라도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아니겠죠.
그 과정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은 채워주고 부족한 건 메꿔주고 내가 낮은 자리에 있어 사람들이 위안을 얻기도 하고 내가 살아온 만큼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나는 아버님을 비롯해 사람에게서 좋은 걸 많이 캐고 살았어요.
구비구비 내 안에 잠겨있는 삶과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그걸 쓰면서 삽니다.
인생이 오랜 것 같지만 펼쳐보면 하루를 사는 거더라구요.
사실 내 방 꾸미고 산 지 40년이 걸렸습니다.
내가 6.25입니다. 일반 사람들의 수준, 내가 바로 그 수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노동하는 젊은이들을 그는 ‘작은 예수’라 부른다. 하지만 그는 크든 작든 자신의 몫을 하고 자기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조카가 운동권인데 그런 살아있는 예수들이 젊은이들이 고통당하고 죽고 할 때 그걸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한다는 게 괴로웠던 적이 있었죠.
이렇게 고통이 만연한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이렇게 팔짱을 끼고 앉아 있어야 하는가. 한창 고민하고 신부님하고 상담하고 그러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난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역시 책장사 열심히 해야지’ 다짐했습니다.
작은 예수든 봉사든 헌신이든 지식을 나누어주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게 강하게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강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을 떳떳하게 살도록 노동으로 썩어지는 게 중하다 생각했죠.
하느님은 작고 무력한 데 계신다니까. 그런 마음으로 사는 날까지 살아야지요.”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