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바닷가에 가면 그리움이 밀린다. 딱히 누구랄 것도 없다. 맨살을 드러낸 암회색 갯벌이다. 가끔 아기 게가 기어다니는 물고인 갯웅덩이에 햇살이 떠 있다. 사람이 그리운 것일까? 사랑이 그리운 것일까? 마음은 방황을 낳는다. 익숙한 길을 오가듯 방황의 여정을 쏘다녔다. 영원한 잠언을 간직한 바다는 오늘 더욱 근엄하다. 그때 해변이 아침 햇빛을 열어 젖혔다. 구름 몇 장이 브라인드처럼 열렸다. 바다의 머리 위에 후광처럼 초록빛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 머리카락을 빗질하는 햇살이 가늘게 퍼졌다. 이 아름다움은 내게 반성을 가르친다. 아침이 시간의 길을 가려는 여인처럼 일어섰다. 아침이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가슴의 통증이 막고 있는 눈물이 느껴진다. 그동안 내 외로움이 만난 여인이 한 둘이 아니다. 휴대 전화에 저장된 여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추억도 지워지기를 바랬다.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 자유로운가? 바로 그때 문자가 왔다. 내 이름만은 지우지 말라는 신호인가? 문자는 간단하다.
"잘 지내요?"
누구인지 모르겠다. 전화기를 던져 놓았다. 생각이 많다. 내가 한 여자에게 모든걸 해볼 수 있을까?
"누구세요?"
"어머 벌써 잊어버리셨나봐?"
"아니 연락처 다 지워버려서"
"에이 저장도 안했으면서"
"이름이......"
"은빈이! 선학동!"
"아! 미안."
"시집 준다며."
"난 보고 싶었지. 왜 인제 전화했어?"
"보고 싶다는 사람이 그래요?"
"내가 어쨌는데?"
"누군지도 몰랐으면서 흥! 이따가 전화해."
신은 고행을 쉽게 끝낼 생각이 아니구나. 홀로 돌아가려던 섬은 다시 아스라하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주 작은 통증이 왔다. 이상하다. 내가 아플 이유가 없다. 빙의된 사람처럼 나는 쩔쩔맸다. 누구의 아픔인가. 수면에 드는 사람처럼 나는 가라앉았다. 한 여자에게 빙의한다는 것은 무섭다.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아프게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별다를 것 없는 날들이 흐지부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