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7일
늦잠을 자고 모텔 창문을 여니 날이 맑다.
차에 수북히 눈이 쌓였다. 이런 일이 있나ㅣ, 세상이 온통 하얗다. 이런 날을 얼마만에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걱정 반, 기쁨 반이다.
전통사찰 금성까지 약 2km,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강변 주차장에 주차, 1km가 줄었다.
강변주차장, 걸어서 영동향교를 지나 금성사, 다시 강변주차장에 오니 눈이 많이 녹았다.
중화사에 가다가 눈이 믾이 쌓였으면 체념하기로 하고 중화사로, 다행히 오르는 길에 눈이 녹았다.
영국사를 갈까, 망설였다. 영국사 사진은 있다. 5년 전에 천태산 산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사는 충남 금산군에 가까다. 내가 계획한 노정에 없다. 그러나, 그러나, 가고 싶었다.
금성산 금성사(錦城山錦城寺) /전통사찰, 영동군 향토유적
- 충북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
신라 무열왕 때 품일(品一)장군과 아들 화랑 관창(官昌)이 백제와 사우기 위해 황산벌로 가던 중 이곳 중강곡(中江谷)에서 야숙. 16세 관창은 황산벌에서 전사, 품일장군이 돌아올 때 이곳을 지나다, 아들 명복을 비는 마음에서 사찰을 건립하여 품관사라 함.
임진왜란(1592년)때 소실, 1946년 9월 승려 박남파(朴南波)와 신도들이 법당, 요사를 짓고 금성사라 하였다.
1986년 승려 박진구(朴眞究)가 주지로 와 쇠락한 법당과 요사를 철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새롭게 전각을 지었다.
(금성사 안내판 인용)
品官寺. 금성산은 품관산 또는 부용산(芙蓉山)이라고도 한다.
1980년 실시한 단국대학교 발굴조사단은 신라시대 기와편과 송 태종 때 연호인 ‘太平興國(태평흥국)’이란 글씨가 새겨진 기와를
발견, 금성사가 신라와 고려시대에 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임진왜란 후 조선시대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보유한 문화재는 없으며 역사적 가치를 가진 절이다..
범종각
삼성각
천마산 중화사(天摩山 重華寺) /전통사찰
- 충북 영동군 영동읍 화산리
676년(문무왕 16)에서 701년(효소왕 10) 사이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 용화사(龍華寺)라 함. 그땐 남각산(南角山)에 있었다.
화엄종(華嚴宗) 대찰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260년(원종 1) 보각국사(普覺國師)가 중창하였다.
1530년(중종 25)에 폐사(廢寺), 명종 때 현재 위치로 옮겨 다시 짓고 사찰명을 중화사라 하였다.
구전에 서산대사 휴정(休靜)이 옮겼다고 한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다 탔고, 중화사 승려 모두는 기허(騎虛) 영규대사의 의승군으로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80여 년 동안 폐허로 있다가 1677년(숙종 3)에 다시 짓고, 1797년(정조 21) 정진(淨寘)이 전당(殿堂)을 모두 중수하였다.
1857년(철종 8)에는 백여(伯汝)가 대웅전을 중수하였고 1908년의 중창을 거쳐 1934년에 보진(步震)이 중수하였다.
2013년 7월 10일 대웅전에 불이 나서 목조여래좌상과 목조보살좌상이 타버렸. 이 두점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가지고 옴, 내용을 조금 손을 봄)
중화사 주차장에서 본 경치
중화사
극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