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왜 이렇게 손님이 많지.”(웃음) 기자도 가끔 들려 빵도 사고 냉수도 한 그릇씩 얻어 마시는데, 오늘은 무슨 날인지 유난히 분주해 보인다. “평소엔 손님도 없는 것 같던데, 인터뷰 좀 하려고 했더니 훼방꾼들이 많네요” “아니에요. 원래 손님 많아요. 빵이 맛있잖아요.” 사장님(?)의 목소리가 쾌활하게 높아지고, 이번엔 가지런한 이빨까지 보이며 또 웃음.
“필(feel)이 온다”
“요새는 필이랄까, 느낌이 와요. ‘오늘은 이빵을 만들면 잘 팔리겠구나. 아침에 오늘 이빵을 만들어봐야지’ 하고 맘을 먹으면, 그 빵은 맛있게 만들어질 뿐 아니라 잘 팔려요. 이제 1년을 조금 넘겼는데, 그새 내공이 쌓인 걸까요?”
하지만 기자는 본래 예리한 질문을 잘 해야 하는 법.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혹시 맛은 없는데 자활사업이라니까 사 주는 것 아니에요? 아니면 우리밀로 만들어 건강에 좋다니까...”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대답. 이번엔 함께 일하는 정효선 씨다. “처음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전혀 아니에요. 오히려 시중 빵집하고 맛이 다르지 않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예요.”
우리밀 100%, 우리 재료 100%, 정읍의 우리밀빵 전문가 조명순, 정효선씨의 빵빵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아직 매출이야 월 3백만원에서 5백만원 정도로 만족스럽진 않지만, 정읍에서 유일한 우리밀빵 생산 업체로써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물론 아까 손님이 좀 많았던 것은 퇴근시간이 걸린 탓이지만.
요새는 그래도 의욕이 조금 솟는 것 같다. 사회연대은행에서 1천만원 지원금도 받고, 정읍시청과 보건소 등지에 방문판매와 판촉행사를 하면서 소비량도 꽤 늘었다. 하지만 아직은 기대 이하, 맘에 차지는 않는다.
제빵 제과 기술이 아직 경지(?)에 이르진 못 했지만, 시중 빵집에서 만드는 웬만한 빵 종류는 대부분은 소화하고 있다. 잡곡이나 통밀을 재료로 하는 갖가지 식빵들, 다양한 케익과 쿠키, 아이들이 즐겨 먹는 마늘빵, 소보르, 단팥빵 따위는 기본이다. 두부스틱, 호박빵 등 새로운 시도도 해본다.
함께 일하고 있는 20대의 아리따운(?) 아줌마 정효선씨(29세)는 정읍에 있는 전북과학대학이라는 전문대학의 호텔조리학과를 다니며 익힌 제빵 제과실력을 맘껏 뽐내고 있다.
‘밀밭풍경’과 '서로 살림'의 그물
'밀밭풍경’이라는 예쁜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지금은 함께 일하지 않지만, 처음 우리밀빵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했던 초대 사장님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밀밭풍경’이라는 간판을 보고 기자가 떠올린 건 ‘술 익는 마을’. 스스로 생각해도 좀 쑥스러워 말은 못했지만...
밀밭풍경이 지금의 자리에 매장을 내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그러니까 1년이 좀 넘었다. 정읍자활후견기관이 추진하는 자활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했으나, 단순히 돈벌기 위한 사업만은 아니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농촌지역인 정읍에서도 밀밭을 구경하기도 어렵거니와 우리밀로 만든 가공품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마침 유기농산물 직거래를 취지로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밀빵에 대한 수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여타 시민사회단체와 한살림의 격려속에 건강한 우리먹거리를 통해 지역공동체도 일구고, 자활의 네트워크도 형성하자는 데 뜻이 모아졌다.
지금은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조명순씨(43세), 제빵제과기술을 가진 정효선씨, 그리고 배달과 제과제빵 도우미 역할을 하는 박규호(20세) 씨, 이렇게 세명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보건복지부와 자치단체가 인정하는 자활공동체는 아니지만, 지역사회에서 유일한 우리밀빵 제조업체로 인정을 받고 있는데다, 웰빙 바람을 타고 매출도 꾸준하게 늘면서 자립의 기반을 조금씩 닦아나가고 있다.
돈
누구나 한번쯤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지만, 대개는 무슨 일이 잘 안 될 때 떠올린다. 좋은 일을 당해 ‘내 팔자는 참 좋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기자도 요사이엔 가끔 운명과 팔자를 떠올리곤 하는데, 역시 ‘세속적 성공(?)’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밀밭풍경의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조명순 씨에게서도 만만치 않은 인생의 아픔과 곡절이 느껴진다. “아뇨.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애들도 잘 크고, 우리밀빵사업도 잘 될 것 같고요.” 곡절은 곡절로 남겨두어야 할 일. 이미 단단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연출하려는 그이에게 곡절많은 사연의 안팎을 따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경제문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조명순씨의 경우 결혼을 빨리해 큰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 작은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인데 생활비는 혼자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자활사업에 참여해 얻을 수 있는 돈은 이것저것 합쳐도 70여만원에 불과하다. 통신비와 전기 수도세 등 공과금만 해도 30만원이 넘는다. 먹고 사는 생활비야 줄이고 줄이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문제는 아이들 교육비다.
“옷가지나 핸드폰, MP3와 같이 애들이 갖고 싶은 것을 사주지 못해 아이들이 ‘왜 책임도지지 못하면서 낳았느냐’ 라고 따져 물을 때에는 너무너무 괴로웠죠.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도 이해를 많이 해줘요. 당장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게 되는 첫째 학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지만...”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순간순간 모면하기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뚜렷한 대책이 없다. 자활과 경제적 자립은 당위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인 것이다. 함께 일하는 정효선 씨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다쳐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남편과 거동이 어려운 친정 아버지, 문제는 역시 돈이다.
희망만들기
물론 돈 자체가 목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으나, 행복의 필요조건인 것을.
조명순 씨나 정효선 씨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들 돕는다’ 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에서 1천만원 도움을 받긴 했지만, 더 이상의 도움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밀밭풍경은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진 아파트 단지 인근에 있다.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매장을 열기는 쉬었지만 썩 좋은 자리는 아니다. 공간도 13평밖에 되지 않아 비좁고 폼도 안 난다. 빚을 내서라도 시내로 나가고 싶은 게 두 분의 마음이다.
“거저 도와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제가 정말 바라는 것은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거예요. 그 일에 책임도 지고 싶고요. 도움만 받으려 한다는 얘기는 듣기 싫어요.”
더불어 일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조명순 씨와 정효선 씨의 모습은 밀밭풍경보다 더 예쁘다. 당당하게 우리밀빵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섬세함을 겸비한 밀밭풍경 속에서 기자는 희망이 싹을 발견한다.
불우이웃 할 때 ‘불우(不遇)’의 본래 뜻은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곡절은 모든 이들에게 있기 마련이며, 희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반드시 '좋은 때'를 만나게 된다. 밀밭풍경 속의 희망의 싹이 튼튼하게 자라서 꽃을 피우고 과실을 나누는 때가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