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필요없는 사람들(눅5장27-32)
출 처| 박종순목사
오늘 말씀의 제목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의사가 필요 없다니, 병원 문 닫으라는 얘기야"라며 항변하는 의사, "병원 문 닫으라면 내 직장은 어떻게 되라는거야"라는 병원 직원들, "나는 지금 의사가 치료중인데 의사가 필요 없다니" 라며 걱정하는 환우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의사의 바램은 병든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완전히 고치는 것이고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희망은 병들지 않고 병원 신세 안지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다.
31절을 보면"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의사나 병원의 무용론을 주장하신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과거에는 의학의 관심이 치료였습니다. 병든 사람을 어떻게 고치느냐 어떤 약을 쓰느냐가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방의학이 주목받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질병을 예방할 것인 가를 연구하는 것이 예방의학입니다. 병원마다 건강검진센터를 개설하고 운영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발병원인이 규명되어야 치려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가 아프고 팔이 올라가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약국에서 파스를 사다 붙이고 물파스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계속 아팠습니다. 지압 잘한다는 곳을 찾아가 지압을 받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정형외과를 찾아갔더니 척추 디스크에 문제가 있다 진단이 내렸습니다. 그 부분을 치료하자 씻은 듯 팔이 통증이 사과 졌습니다. 원인을 치료한 것입니다. 여자들의 경우 깨끗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지니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피부에 좋다면 국적도 가리지 않고 다국적 화장품을 바릅니다. 팔등신이라도 얼굴에 주름이 지고 주근깨나 잡티가 덕지덕지 끼어있으면 미인 축에 끼지 못합니다.
한의사 김소형씨의 글에 의하면 사람의 피부는 피부 바깥층에 있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표피와 표피 밑에 자리잡고 있는 피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피는 신진대사와 세포분열이 일어나 일정기간이 지나면 제 수명이 끝나 때가 되어 몸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몸에 때도 붙어있지 못합니다. 이태리 때밀이 수건으로 피가 날 때까지 밀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피부는 폐가 주관한다고 합니다. 폐는 모든 장기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장부에서 열이 생기면 폐에 자극을 주고 그 때 일어나는 증상으로 메마르고 건조한 기운이 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피부가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몸안에 열이 많아 그 화가 대장에 미치면 변비가 일어나고 변비는 곧 피부를 거칠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기미 주근깨 여드름 잡티가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굴에 기미나 주근깨 잡티 여드름이 생기는 것은 얼굴 때문이 아니라 폐나 장기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리적 현상이라는 것이 한의사의 설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끗한 피부를 유지하려면 유명 브랜드 화장품을 쓰는 것보다 그 원인을 제공하는 장기를 치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체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정치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고 가정이 그렇고 내 삶이 그렇습니다. 왜 세상이 어지럽고 점점 더 어려워 갑니까? 왜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까? 원인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레위라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기사입니다. 레위의 직업은 세관 직원이었습니다.
본문은 그를 부르신 과정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명령에 결단했습니다.
27절을 보면 "나를 좇으라"고 하셨고 28절을 보면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 세무공무원은 로마국세청의 지시를 따라 과세와 징수를 책임지고 있었던 탓으로 유대인들이 경원하는 직업이었던 사케오가 그랬던 것처럼 마태도 그런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나를 좇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케오의 경우도 "사케오야 내려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경우를 보면 타협, 의논, 협상이 아닙니다. 일방적 명령이었고 촉구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답하고 따른 사람은 제자가 됐고 망설이거나 주저한 사람은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9:16 이하를 보면 어떤 돈 많은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 얻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돈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돈으로 좋은 일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 라는 뜻으로 그런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21절에서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22절을 보면"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영생의 길을 묻기만 했을 뿐 영생의 길을 선택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관심이 신앙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관심이 신앙은 아닙니다.
영생이나 진리에 대한 궁금증이 신앙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곧 신앙은 아닌 것입니다.
잘 믿어야지, 바로 믿어야지 라는 생각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만 한다면 신앙으로 발전하지 못합니다. 레위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것은 신앙의 적입니다.
월드컵 경기 때 숱하게 지켜본 장면들입니다만 남미나 구라파 축구와 아세아 축구의 다른점이 있습니다. 구라파 축구는 공을 한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간이 짧습니다. 공을 잡자마자 바로 빠른 패스로 다른 사람에게 연결해 줍니다. 경기운영이 빠릅니다. 그런데 아세아의 축구는 한사람이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길고 느립니다. 그러다가 발빠르고 체력 좋은 선수 들에게 번번이 공을 빼앗기고 맙니다.
신앙은 버리고 일어나 좇아야 합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지금 결단하십시오.
2. 예수잔치를 벌였습니다.
29절을 보면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닌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고 했습니다. 훗날 레위는 마태라는 이름을 가진 제자가 되었고 마태복음을 쓴 저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나라나 잔치가 있습니다. 고대 왕궁에서는 한달 씩 잔치를 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왕실에서도 한 주간씩 잔치를 열기도 했습니다. 잔치는 사람이 많고 음식이 풍부하고 흥이 넘쳐야 합니다. 싸우기 위해 벌리는 잔치는 없습니다. 성경은 잔치로 시작해 잔치로 끝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잔치로 시작해 잔치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예수님이 공적사역을 시작한 후 첫 번째 베푸신 기적이 가나 혼인 잔치에 가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잔치로 시작된 예수님의 사역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에서 영원히 그 축제가 계속됩니다.
미국 대통령 취임잔치 중국황제의 등극잔치 왕가의 결혼 잔치 등 크고 굵직한 잔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만 예수 잔치보다 더 큰 잔치는 없습니다. 그 어느 잔치도 예수 잔치에 비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잔치보다 더 크고 뜻깊은 잔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돌잔치, 생일잔치, 결혼잔치, 회갑잔치, 은혼잔치, 금혼잔치 일평생 수 없는 잔치를 접합니다만 그러나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빠지면 안됩니다. 교회는 예수 잔치의 지상모델입니다. 함께 모이고 만나고 사귀고 돕고 사랑하고 이런 공동체가 어디 있겠습니까?
20여년 전 일입니다. 음력 12월30일에 모시고 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집이 있었습니다.
그 해 겨울 12월말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웠습니다. 장례식을 해 넘길 수 없다는 이유로 12월 31일 2일장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한강이 꽁꽁얼고 길은 미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섣달 그믐날이라는 이유로 일가친척들이 장례식에 나타나질 않습니다. 그런데 그 추운 날 구역식구들과 교인들이 앞장서 장례식, 하관식에 참여하고 그 가정을 도왔습니다. 저는 그때 끈끈한 예수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 잔치는 동기도 순수하고 방법도 깨끗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더 좋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잔치가 열려야 합니다.
3. 의사 얘기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30절을 보면 왜 예수는 세리들과 함께 먹느냐, 왜 죄인들과 함께 마시느냐 라며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31절에서 의사얘기로 답변하셨습니다. "세리들,죄인들 그들은 의상릐 손길이 필요한 환우들이다. 나는 의사다. 그들에게 의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셨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나가 32절에서는 "내가 위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구절속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들어있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과연 죄 없는 사람이 있느냐 누구냐 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3:10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3:23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했습니다. 나도 너도 죄가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잔치는 의인들의 축제가 아닙니다.
영화 대부는 마피아 가문과 그 조직을 다룬 영화입니다. 어느 날 마피아 패밀리의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저마다 연미복 파티드레스, 검정색 정장으로 치장하고 수 백 명의 마피아 패밀리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그 장소가 습격을 받아 피로 물들게 됩니다. 이것이 겉을 꾸미고 치장한 세상잔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잔치는 용서받은 죄인들이 함께 모여 감격하며 감사하며 나같은 죄인을 노래하며 벌리는 잔치입니다. 지난날엔 병들었고 의사가 필요했던 사람들! 그러나 이제는 의사가 필요 없는 사람들이 모여 벌리는 잔치가 예수 잔치인 것입니다. 오늘도 그 잔치에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주님을 찬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