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30. 큐티
민수기 21:10 ~ 20
우물물아 솟아나라
관찰 :
1)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으로 떠나다
- 10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 이스라엘은 에돔을 통과하지 못했다. 싸우고 격파하여 통과할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을 따라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경선을 따라서 북으로 올라가 “오봇”에 이르렀다. “오봇”은 ‘땅에 판 구멍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해 동남쪽 모압의 남동쪽 국경 근처로 여겨진다. 석회동굴이 많아서 “오봇”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여겨진다.
- 11절. “오봇을 떠나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 해 돋는 쪽 광야라는 의미는 요단 동편을 의미한다. “이예아바림”은 모압과 에돔이 만나는 곳으로 대부분 암석 투성이인 매우 황량한 곳이었다.
- 12절. “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 “세렛”은 비가 오면 형성되는 ‘와디’ 지역이었다. 모압의 남동쪽을 지나 사해의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지형이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광야의 험한 곳들을 방황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었다.
- 13절. “거기를 떠나 아모리인의 영토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라” => 아모리 족속은 아브라함 이전부터 가나안 땅에 거주한 족속이었다. 이들은 헤스본을 중심으로 한 남 왕국과 바산을 중심으로 한 북 왕국으로 나누어져 발전했다. 여기서는 남 왕국을 가리킨다. “아르논 강”은 ‘급류’라는 뜻의 강으로, 북부 아라비아 산지에서 가파른 골짜기를 따라 약 32km를 진행하여 사해 동쪽으로 흘러 들어 간 긴 강이다. 당시 아모리와 모압의 경계선을 이루었다.
- 14절 ~ 15절.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 “여호와의 전쟁기”는 이름만 알려진 책이다. 출애굽 여정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관점에서 기록된 책으로 전승되고 있다. 수바는 아르논 지역에 위치한 아모리인의 영토이고 그 곳에 “와헙”이라는 요새가 있었다. 아르논 강이 모압과 아모리족의 경계선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 16절.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 “브엘”은 ‘우물’, ‘물웅덩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땅을 파서 물을 주신 곳이다. 광야에서 물을 얻는 것은 생존과 연관된 것이다. 또한 광야에서 우물을 파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마실 수 있는 놀라운 우물을 허락하신 사건이 있던 곳이었다.
2) 우물물아 솟아나라
- 17절.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 하나님의 명령으로 땅을 팠고, 그곳에서 물이 터져나왔다. 죽음의 땅에서 물이 터져 나옴으로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을 노래하는 장면이다. 이 노래가 “여호와의 전쟁기”에 수록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우물물아 솟아나라”라는 찬양을 부르는 이스라엘 회중들의 기쁨을 엿보게 된다. 250여만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축들이 마시기에 충분한 물은 일반적인 우물이 아니었다. 큰 물이 솟아나는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반석을 두 번 쳐서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지 못했던 사건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 18절.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우물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지팡이로 팠다. 사실 지팡이와 규로 우물을 판다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는 것이다. 삽이나 곡괭이로 파야 맞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에게 자신들의 지위를 상징하는 지팡이와 규로 땅을 파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 그것은 이들의 지도력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되었다. 우물물은 거세게 터져 나왔고, 갈증에 시달리던 250여만의 백성들과 가축들은 풍성히 목을 축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물물아 솟아나라”는 노래가 터져 나왔고, 백성들에게 전승되었다.
- 19절.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 “맛다나”는 그 위치가 불분명하다. “나할리엘”은 ‘하나님의 급류 골짜기’라는 뜻의 지명으로, 급류가 형성될 만큼 가파르고 험준한 지형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바못”은 ‘바못바알’의 줄임말로 ‘바알의 산당’이라는 뜻이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아모리 족속에 의해서 붙여진 지명이었다.
- 20절.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 “모압 들”은 동으로 아라비아 사막까지 뻗어있고, 서로는 요단강과 사해가 만나는 지점에서 끝나고, 남으로는 아르논 지류가지 뻗어있는 거대한 고원지대이다. “비스가 산”은 모압 평지 전체와 사해까지 굽어볼 수 있는 높은 산이었다. 모세가 이 산에 올라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신 3:27). “비스가 산”의 정상을 이루는 한 봉우리가 바로 모세가 임종한 “느보 산”이다. 이제 정복전쟁이 임박하게 되었다.
가르침 :
1) 원망과 불평으로 하나님의 큰 진노를 경험한 이스라엘은 여전히 광야의 험한 지경을 행진했다. 이것이 마치 유리방황하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그 속에서 묵묵히 모세의 인도를 따라가는 이스라엘과 그들을 인도하는 모세는 속이 탔을 법도 하다. 게다가 또 다시 물이 없어 갈한 상황이 이어졌다. 광야의 삶은 목마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250만의 무리에게 목이 시원하게 물을 공급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이 거듭되었고, 이제 모세가 아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지팡이를 들고 땅을 파서 물이 터져 나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삽이나 곡괭이가 아닌 지팡이로 땅을 팠다. 사실 땅을 팠다기 보다는 두드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옹달샘처럼 스물 스물 솟아난 것이 아니라, 폭포가 거꾸로 흐르듯이 터져 나오게 되었다.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준행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2)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지팡이를 두드려 우물물이 펑펑 터져나오는 사건은 이스라엘에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일어난 기쁨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향후에 모세가 죽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기쁨을 전수받게 된 것이다.
3) “우물물아 솟아나라” 이 찬양이 기쁘고 즐거운 이유는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다음세대로 영적 지도력을 흘러가게 하시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정복전쟁을 감당할만한 수준이 되었고, 일사분란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세우시는 새로운 지도자와 더불어 가나안의 강력한 족속들과 싸움을 벌일 준비가 되었다. 드디어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적용 :
1)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일하시는 분이시다. 결코 시간을 잘못 택하시거나 다른 존재에게 주도권을 내어주시는 일이 없으신 분이시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이길 자가 없다. 그리고 그 때까지 설령 광야 1세대가 다 죽더라도 때가 되고 수준이 되도록 기다리시고, 참으심으로 준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시고 붙잡고 계시다. 그것을 믿는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2)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직접 지팡이를 들고 땅을 두드렸다. “우물물아 솟아나라”는 노래를 부르며 함께 땅을 두드렸다.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말씀에 순종하자, 거친 광야에서 물이 솟구쳤다. 마치 폭포가 거꾸로 솟아오르듯이 물이 터져 나왔다. 메마른 땅에서 솟구쳐 나오는 물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다짐했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만 따르겠노라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진정한 생명의 길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명령만 따르겠노라고 분명한 다짐을 하고, 참된 믿음의 작정이 이뤄져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큰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소망하자.
3) 오늘 오후부터 멘토링랩이 시작하다. 두 번째의 모임. 이 모임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과 카이로스의 하나님의 작정하심을 기대하게 된다. 주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