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혜 선
탤런트
그 시절 청파동에서
저는 2005년 평화대사로 임명을 받은 후 지금까지 많은 행사와 많은 세미나에 참석하며 세계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왔습니다. 이 모든 평화대사 활동의 중심에는 세계평화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문선명 총재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남영동에 있는 수도여자중학교에 입학한 1955년에서 56년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6.25사변 직후였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부흥회를 참 많이 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전하는 말씀에 대해서 어렴풋하게 듣게 되었는데 통일교회도 부흥회를 자주 열었습니다. 마침 통일교회가 있던 청파동과 가까운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또 가까운 친구 중 한명이 어느 날은 통일교회 부흥회가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찾아간 곳이 바로 지금도 있는 청파동 통일교회였습니다. 그렇게 통일교회를 처음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어 제가 이렇게 평화대사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은 평화대사 세미나가 있는 용평을 가는 길에 갑자기 그 옛날 청파동 교회가 보고 싶어져서 촉박한 시간을 쪼개 들렸습니다. 그런데 청파동에 도착했을 때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적에 봤던 청파동 교회는 세종문화회관처럼 컸었는데 세월이 흘러 찾아간 청파동 교회는 자그마한 일반 가정집이 아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가졌던 강당도 지금에서 보니 작은 대청마루인 것입니다. 참 많은 생각이 들면서 그날따라 왜 그렇게 청파동 교회가 보고 싶었나 가만 생각을 해보니 그게 바로 추억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 통일교회를 접해보고는 2005년이 되어서야 저와 통일교회의 그 두 번째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에도 평화대사 위촉세미나에 참석을 제안 받고 중학교 시절 추억이 묻어 있는 통일교회라는 생각에 흔쾌히 평화대사 임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평화대사라는 이름을 걸고 많은 활동을 하면서 1년에 한 두번씩 문선명 총재님과 한학자 총재님을 모시고 행사를 하게 될 때면 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청파동 교회에서 가까운 자리에서 뵈었던 문선명 총재님이 떠올라 정말 아버님 같고 어머님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문선명, 한학자 총재님을‘참부모’ 라고 호칭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낯선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두 분께서 평화대사들을 대하시는 모습을 보며 정말 부모님 같다는 느낌을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 동안 평화대사 활동을 하면서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챙겨주시고 신경 써 주신 것들에 총재님 내외분과 정도 많이 들어서 문선명 총재님께서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되었지만 문득문득 생각이 많이 나고 그리운 마음도 커서 꿈속에서라도 한번 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통일교회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통일교회는 이상한 교회라고 생각하고 문선명 총재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를 하고 있지만 저와 같이 통일교회를 경험을 하게 되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문선명 총재님같은 분이 계셔서 세계적인 인류화합이 이루어지는 다문화 가정과 언론,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의 사회적 공헌과 세계적인 활동도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다문화 가정이 처음 우리나라에 자리 잡게 된 것도 문선명 총재님이 주관하시는 합동결혼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처음 올림픽 공원에서 수십만 쌍의 합동결혼식을 보면서 문선명 총재님이 아니면 감히 누가 이런 행사를 할 수 있을까? 전 세계를 무대로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와 인종을 넘어선 인류 대화합의 장을 여신 분이 다름 아닌 문선명, 한학자 총재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볼 때 통일교는 이단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선명 총재님을 하늘로 보내 드린 지 벌써 1년이 되어가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지만 그 분께서 세계평화를 위해 끝없는 노력과 헌신의 길을 잊지 않고 평화대사의 본분을 다해서 평화의 그 날을 하루 빨리 이룩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첫댓글 참부모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