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잘 증거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세계, 믿음의 세계에 있어서의 음주 문제에 있어서, 우선 그 중에서도 포도주와 관련된 음주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로 그러했듯이 지역 특성 상 석회가 섞인 물을 해결하는 음료적 용도, 당시 의술이나 치료제가 부족했던 시기에 있어서의 치료적 용도, 또한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전통과 문화가 녹은 관례나 의례적 측면, 특히 여러 상황과 형평과 특성 등에 따른 하나님의 뜻과 계획들, 신앙적인 의식과 예식들 등에 있어서의 도구적 측면 등이 아닌 육체적, 정욕적, 세속적인 경우인 것이라면 실상 마시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보지도 말라는 강력한 명령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실제로 술의 주 성분인 알코올은 감정과 신경과 정신과 관계와 질서와 상황 등을 흩트리고 집중하지 못하게 하며, 말초적인 면을 자극하고 혼미하게 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을 잃게 하기도 하는 것으로 복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사실상 현실적으로 맨 정신인 상태에서도, 게다가 아무리 치열하게 애쓴다고 하더라도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되는 것, 십자가의 길, 좁을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인데 술과 함께 진실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되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렇게 술과 함께 성령님으로 충만케 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예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렇기에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증거된 것과 같이 술에 취하는 것과 성령님의 충만에 대해 대비적으로 강조하면서 명령하시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술은 우리 인생들의 여정들 속에서 그리 잘못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게다가 생각 이상으로 오랜 시간을 아주 친밀하게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있어 왔으며,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신앙적인 차원과도 관련이 없다고 여겨질 수 있는 측면도 있고, 특히 구약과 신약 성경 속에서 오해나 착오, 실수와 혼란의 단초들을 제공하는 면도 작지 않다고 볼 수 있으며, 더군다나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나 크고 작은 문제들 속에서 도움이나 유익이 되어 보이는 측면들도 작지는 않다고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술 문화가 여러 모양의 모임과 공동체들 속에서 워낙 보편화된 부분도 큰 현실이기도 한 것인데..
그렇지만 바꾸어 생각해 보면 그러한 부분들이야 말로 어떤 면에 있어서는 더욱 큰 문제가 되고 위험할 수 있으며 더더욱 악한 양향력도 될 수 있는 실제와 특성이기도 한 것으로 그렇듯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쉽게,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더 심각함이 될 수 있고 원치 않는 영향력들이 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오늘날에 있어서의 사회적인 거대한 악행과 말로는 표현도 못할 추악한 음행들이 쌓이고 또 쌓이며 갈수록 더 가중되고 심각해져 감에 있어 결코 작을 수 없는 기초나 시작이 되며, 중대한 거점이나 중추가 되고, 어떤 면에서는 진지나 본부까지도 될 수 있거나 되어 왔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날 이미 심각해져 있고 거대해져 있는 죄악과 방탕과 타락들에 있어서 싸우고 저항하며 변화시키고 역전케 함에 있어서, 동시에 더욱 순전하고 치열하며 절실하고 뜨거운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결단하고 몸부림치며 나아감에 있어서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갈수록 영향들이 클 수 있으며 실천이 가능한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지혜로울 수 있으며 생각 이상의 효력과 열매들이 될 수 있고,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반대 급부로서의 말씀의 운동, 영적 각성과 부흥 운동, 갱신과 개혁 운동 등 말씀대로의 신앙과 열정이 더 치열해 질 수 있고, 그러면서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불길도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오늘 이 시대에 있어 그러한 주요한 대상과 표적들, 실상 긴급한 사안과 영역들 등에 있어서의 가장 대표적인 것, 가장 최우선 순위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이 다른 그 무엇보다 술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어쨌든 분명한 것은 그 시작과 과정과 진행과 결과들 등 모든 부분들에 있어서 결코 인간적인 힘들이나 세상적인 방법들이 아닌 그 처음에서 부터 전적으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 땅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다른 그 무엇보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 더욱 자세한 것은 공유된 예배 및 설교 활용, 참조하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공유된 것은 행복카페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2024년 11월 3일(주일) 주일 오전 예배 전체('보지도 말지어다'/잠언23:29~31/음성)입니다
https://youtu.be/wC4wnNfog-k?si=rqaWTuDJHCBoJ6Rf
(혹 설교 부분만 필요하신 분들은 바로 위에 유튜브 링크 눌러 주세요)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잠232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