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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움직이는 기도
느 1:1-11
기도의 능력을 믿고 기도한 자 -
에디. 리컨베커 선장과 두 선원은 태평양 횡단하다가 배가 파선되어 20일간 뗏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그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뜨거운 태양과 갈증, 밤에 추위, 상어 떼들이었습니다.
탈수와 기갈, 상어 떼의 공포 때문에 견디기 힘들 때 베커 선장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물이 침몰치 못하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불이 거스리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의심치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 그리고 기도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자 어디서 갈매기가 날아와 선장의 머리 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갈매기를 잡아서 허기를 채웠습니다.
고기를 미끼로 낚시질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비가 내려 물도 마셨습니다.
불볕더위도 해소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하였고 더욱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주 만에 구조됐습니다.
그들에게 신문 기자들이 어떻게 공포와 역경, 배고픔과 뜨거움, 무서움을 이겼느냐?
선장의 대답은 "믿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는 법은 안 가르쳐 주셨으나 기도하는 법은 여러 차례 가르쳐주셨죠. 그래도 부족할까봐 기도의 Sample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으며 하나님의 집을 가르켜 "말씀의 집"이라기보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했습니다.
『서론』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식적으로 3차에 걸쳐 본국으로 귀환하였는데,
◇ 제 1차 귀환 :
제1차 귀환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사 제국을 세운 고레스 왕 때 스룹바벨의 인솔 하에 이루어졌습니다.(B.C. 537년)
그러나 이스라엘의 귀환과 정착에는
이스라엘의 귀환으로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한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들의 필사적인 방해공작이 뒤따랐는데, 특히 성전 재건을 적극적으로 방해하였습니다.
그 결과 주전 536년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도중에 14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다가, 예루살렘 총독이었던 스룹바벨의 노력과 학개와 스가랴의 독려로 다리오 왕 6년(B.C. 516년)에 제 2성전이라고도 불리는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 제 2차 귀환 :
그 후 아닥사스다 1세 때에 학사요 제사장인 에스라의 인솔 하에 제 2차 귀환이 이루어졌는데(B.C. 458년),
에스라는 귀환한 백성들의 영적 부흥운동을 주도하면서 성전 보호와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중단되어 백성들은 낙담 중에 빠져 있었으며, 이방 대적들은 더욱 설쳤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었고, 예루살렘 성벽은 파괴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바사 제국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받아 왕의 술 관원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11절) 술 관원은 왕이 마시는 모든 술을 관리하며 따라주는 직책인데, 왕의 가장 가까운 측근에서 비서와 경호의 역할까지 담당하던 중책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조국 이스라엘을 한시도 잊지 않고서 항상 그곳의 소식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유다에서 올라온 동생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대적들에게 환난과 곤고를 당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벽은 훼파되었고, 성문은 불타버렸다는 참담한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울면서 금식기도를 한 후 왕의 허락을 받아 폐허가 된 이스라엘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 재건에 헌신하였는데,
◈ 3차 귀환 :
아닥사스다 통치 20년경 느헤미야의 인솔 하에 제 3차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B.C. 444년) 본문은 느헤미야가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기도한 내용인데, 이 시간에는 느헤미야의 기도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한 민족을 위해 기도한 느헤미야의 기도, 그가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역사가 바뀐 것이 1장입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장관이었습니다. 고대시대에는 왕에게 술 따라주고 음식 드리는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혹 독극물이 들어갔을까 해서 먼저 먹어보는 직책인데 왕의 비서실장과 같은 인물입니다.
B.C 586년에 1차 귀환시 고레스의 명령대로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에 의해 성벽이 재건되는 일이 있었고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평신도였는데 그를 통해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무너진 성벽이 재건되는 놀라운 은혜를 1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벽은 삶의 중심 터입니다.
성벽을 재건했다는 것은 늑탈과 약탈을 당하는 중에 안전망이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 울타리를 만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내외적 핍박이 많았지만 이런 고난을 당한 후에 52일 만에 성벽재건이 완성되면서 감사를 돌려드리는 것이 느헤미야서의 내용입니다.
느헤미야 전체의 주제는 내 인생의 성벽을 재건하자는 주제입니다.
지금 우리 인생의 성벽이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신앙이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가정의 기초가 흔들리는 가정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새롭게 재건되고 새롭게 부흥되기를 원합니다. 무너져 가는 것이 새롭게 쌓여지길 원합니다. 이 일들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이 시간에 느헤미야 기도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자기 희생적인 기도를 하였습니다.
1 자기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생각하면서 울며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동생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의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면서 크게 슬퍼하며 금식기도를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당시 세계 제일의 제국인 바사 제국의 왕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술 관원이란 직책은 왕이 정말로 신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직책입니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왕이 마시는 술에 독을 타서 왕을 시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는 중요한 직책입니다. 그런데 포로로 끌려온 백성의 후손인 느헤미야가 왕의 신임을 받아 이 직책을 맡음으로써 출세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신의 안일과 영화보다,
자기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더 염려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바사 제국의 고관으로 영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루살렘에 대한 참담한 소식을 듣고서 슬픔에 잠겨 금식하며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느헤미야의 직책은 단순히 왕이 마시는 술만 관리하는 직책이 아닙니다. 왕을 가장 가까운 측근에서 수행하는 비서와 경호 책임자의 역할은 물론이고, 때로는 왕을 자문하는 상담자의 역할도 하는 직책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왕의 신변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직책인 것입니다. 때문에 표정관리를 잘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왕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왕이 먹고 마시는 음식이나 술 등에 독을 타서 왕을 시해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왕으로부터 의심을 살 수 있는 표정이나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런 느헤미야의 행동은 얼마든지 왕의 오해를 살 수도 있는 행동입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끌려온 민족의 후손입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지금도 바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슬퍼하면서 금식기도를 한다는 것은 왕의 의심을 사서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슬퍼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금식기도를 하였다는 것은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서 기도하였음을 의미합니다.
2, 바사 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보다 자기 민족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 기도했습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가 왕에게 나아가 자신의 소원을 아뢰기로 결심하였음을 보여 주는 기도인데,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는 말은
왕이 흔쾌히 자신의 청을 허락하도록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느헤미야가 왕 앞에 나아가 아뢰려고 한 소원은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훼파된 예루살렘 성을 다시 재건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 사실은 느헤미야 2장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느헤미야의 기도는 그가 바사 제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와 특권을 포기하는 자기 희생적인 결단에서 나온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이 어떤 어려움을 당하든, 예루살렘이 어떻게 되었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 안일과 출세만을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바사 제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서라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기 민족 곁으로 돌아가서 그들을 도우려고 결심하였습니다.
마치 모세가 애굽 왕실의 부귀영화를 떠나 자기 동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하였던 것처럼 (히11:24-27), 느헤미야 역시 바사 왕실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포기하고서
대적들이 설치고 있는 거칠고 황폐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 성읍을 재건하는 고난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바사 제국의 왕이 자신의 청을 흔쾌히 허락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당시 왕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는데, 어떤 때는 신하들에게 호의를 베풀다가도 신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 때는 그 태도를 급변시키는 변덕을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요셉 당시 애굽의 바로가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에게 노하여 감옥에 가두었다가, 후에 술 맡은 관원장만 복직시키고 떡 맡은 관원장은 사형시킨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창40장)
느헤미야 역시 왕에게 그의 소원을 아뢰기 위해 왕 앞에 나아갔다가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왕 앞에 나왔다는 이유로 왕의 진노를 살 수도 있으며,그가 왕에게 아뢴 소원에 대하여 왕이 그 진의를 의심하거나 불쾌하게 여기고서 진노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기도는 바사 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느헤미야가 바사 왕을 가리켜 말할 때 왕이라고 하지 않고 이 사람이라고 한 사실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란 말은 세상 나라의 왕에 대한 느헤미야의 시각을 보여 주고 있는데, 느헤미야는 세상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는 피정복민들의 생사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닥사스다 왕이라고 할지라도 신앙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그런 인물로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적으로 볼 때는 대단한 인물처럼 보이는 아닥사스다 왕 역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고 못 가는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면 아닥사스다 왕이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믿은 것입니다.
Ⅱ.둘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본문 5절 전반 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서 크고(??)라는 말은 큰, 위대한, 힘센이란 뜻을 지닌 말인데, 인격에 적용될 때는 그 인격의 존귀성 혹은 다른 사물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가리킵니다.(시57:10, 71:19, 76:1)
따라서 이 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기도한 것인데, 하나님은 위대하시기 때문에
느헤미야 자신은 물론이고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능히 도와주실 수 있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윌리엄 케리는 아시아 선교의 선두에 섰던 사람인데, 인도 선교를 위해 배를 타고 가면서 다음과 같은 위대한 말을 남겼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으라! 위대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어주실 것을 기대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어야 하는데,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알고 믿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고백하며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역사 해 주시는 것입니다.
75세에 소명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후손에 대한 복과 기업에 대한 복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99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을 믿고 따랐지만,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였습니다. 경배해야 할 하나님으로 믿고 따랐지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는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성취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자,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가정불화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기도하였는데, 당시 아닥사스다 왕은 세계적인 제국인 바사를 통치하는 위대한 왕으로서 사람들의 생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런 아닥사스다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기 때문에 왕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분이시며, 위기에 처해 있는 자신의 민족을 능히 도우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으로 믿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본문 5절 후반 절을 보면,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에게 언약을 지켜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신실하신 분이시며,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출2:23-25을 보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고서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의 어려움과 연약함을 친히 체휼하시고 돌아보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언약에 대하여 신실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의 신실하심과 풍성한 긍휼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라고 느헤미야가 기도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며 살려고 한 자신의 기도를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조상들을 통해 주신 언약을 기억하사 기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고난 중에 있는 자기 민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느헤미야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그 공로에 대한 대가로 언약을 지켜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바사 제국의 궁궐에 있으면서도 이방 종교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신실하신 분이시며, 그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에 대한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며 살기 힘든 바사 제국의 궁궐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계명을 따라 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느헤미야의 기도는 자신은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신의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고난 중에 있는 자기 민족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을 지켜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 한다는 것입니다.
3.셋째, 이스라엘의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1.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며 회개하였습니다.
본문 6-7절을 보면,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 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 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며 회개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는데,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신분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야로 기도하오며라는 말은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들 들은 그 날부터 당장 기도에 돌입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 함을 자복하오니라는 말은 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되기 이전에 범한 범죄 행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데, 느헤미야는 자신과 상관없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죄처럼 생각하는 철저한 연대의식을 가지고 회개하고 있음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한 죄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한 것인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가 준 계명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면 열국에 흩어버리시겠다고 경고하였습니다.(8절)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바벨론 각 지역으로 흩어져 사는 백성이 되어 바사 제국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을 듣는 그 순간부터 인간적인 방법들을 고려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울며 금식하면서 기도하면서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며 지었던 죄를 자신이 지은 죄처럼 여기며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의 회개기도는 이스라엘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바로 직시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느헤미야는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 즉 대적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이 훼파당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산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하며 살았고,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는 가증한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이스라엘의 방패와 요새가 되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문제의 근원을 바로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이 먼저 자신들이 범한 죄를 철저히 회개하여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는 길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자신과 자기 아비 집이 범죄 하였다며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2,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회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본몬 8-10절을 보면,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일찍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시어서 이스라엘을 회복해 주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만을 위해 회개기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까지 염두에 두고서 회개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로 맺어진 하나님의 종입니다. 특히 본문 10절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 그의 큰 권능으로 애굽에서 구원하여 그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그냥 버려 두신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찍 모세를 통해 주신 약속,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범죄 하면 그들을 열국에 흩어버리는 심판을 행하시지만, 그들이 다시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불러모아 회복하시겠다고 한 약속을 기억하여 지금 고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 9절의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게 하시려고 선택하신 땅임을 의미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인 가나안으로 돌아왔지만, 포로생활을 하던 때와 별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주변에 있는 대적들로부터 억압과 능욕을 당하고 있었으며,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은 대적들에 의해 훼파되고 불에 타는 수치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이 계속 이런 상태로 고난을 당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죄를 자신의 죄처럼 여기며 먼저 회개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약속을 성취해 주실 은총과 사랑을 기억하면서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과 어려운 고난에서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회개하며, 눈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호소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길이 된다고 기도한 것입니다.
『결론』
중국에서 성공적인 선교를 하였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서 선교사님이 선교 사역에서 그렇게 성공하실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며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 질문에 테일러는 오직 기도로 사람들을 움직였을 따름입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테일러는 저는 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움직이시도록 하였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힘으로 사람을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움직이시도록 하십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당시 세계 제일의 제국이었던 바사국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백성의 후손으로서 세계 제일의 제국인 바사국 왕의 신임을 받는 출세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신의 안일과 영화보다는 자기의 조국인 이스라엘과 자기 민족을 더 사랑하며 염려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예루살렘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고난 당하고 있는 자기 민족과 함께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청을 거절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는 동시에 자기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며 회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언약에 신실하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여, 자기 민족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에서 구원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민족이 당하고 있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고난당한 자기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기도한 사람이며, 더 나아가 자기 민족의 구원과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느헤미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심으로 인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재건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과 개혁에 앞장을 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꼭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3절에서 17절에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시편 68편 5절에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전멸직전에 있는 이스라엘민족 구원을 위해 금식기도한 에스더의 기도는 왕령을 거역하면서 한 그의 기도는 오히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금령을 어긴 에스더를 벌하지 않고 그의 소원을 듣고 전멸직전의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의 대적인 하만이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하였습니다
예화-
2003 2월 12일 현대 호텔의 아버지라 불리운 케몬스 윌슨(Kemmons Wilson)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것은 세계적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수성가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태어 난지 9달 되었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어린 시절 미국은 경제적 대공황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인생의 기둥이었던 어머니마져 실직하자 친구에게 50불을 빌려 극장 안에서 팝콘 장사를 시작합니다. 이 팝콘 사업으로 1,700불을 번 그는 자신과 어머니가 살 집 한 채를 구입합니다. 그는 또다시 그의 집을 잡고 돈을 빌려 다시 식당 내 전자음악 연주박스(Juke Box)사업을 시작합니다. 그후 그는 다시 제재소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동업자들에 의해 해고됩니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동업자에 대한 복수심이 끓어올랐습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울분에 찬 그가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 아내의 권유로 믿음을 갖게 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자포자기한 나머지 그는 가출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간의 방황끝에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죽고 싶소. 모든 노력을 다해 봤지만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소." 아내는 자기 남편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한 가지 시도를 해보지 않았어요. 당신은 당신이 처한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보신 적이 없잖아요." 이상하게도 이 말이 그에게 큰 감동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그래, 맞아. 나는 이 일에 대해 기도해 본 적이 없지!" 그는 아내와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기도하는 동안 마음속에 있던 직장과 상사를 향한 미움과 복수의 감정이 다 사라졌습니다. 머리 속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얻어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잘될 수가 없었습니다. 5년만에 그는 작지만 자기 기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후 아내 자녀들과 함께 워싱톤을 여행하다가 값싼 비위생적인 호텔에 투숙했다가 값도 저렴하고 깨끗한 호텔의 비전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건축을 하면서 여기 저기 여행을 하다 보니 좋은 호텔이 없습니다. 좋은 호텔은 있지만 너무 비싸고, 작은 호텔은 너무 분위기가 안 좋아서 제가 새로운 호텔을 지었으면 합니다. 우리 이웃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베풀기 위해서 아주 깨끗한 호텔 그러면서도 적절한 가격에 쉼을 제공할 수 있는 호텔을 짓고 싶습니다."
테네시주 멤피스 교외에 작은 호텔을 짓기 시작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 십계명의 순종, 그리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이웃을 대접하는 황금률의 원칙에 따라 호텔을 경영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이것이 세계적인 홀리데이인 호텔 체인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홀리데이 인 호텔의 창업자인 케몬스 윌슨입니다. 그는 고난의 시간을 지나며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그의 직업의 장을 그의 소명을 실현하는 장이 되게 한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다른 어떤 때보다 경제적으로 위축된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불의 붑법이 판을 치고 백성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신앙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아우성들입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불평불만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오늘 우리가 맞고 있는 이 모든 현실이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한 결과임을 믿고 믿는 자들이 먼저 마음을 찢고 통회자복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느혜미야의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국가적 위기에 처한 오늘, 교회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3대 비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다른 기도가 필요합니다. 역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만나 뵙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일에 크게 쓰임받는 세계로의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