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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성경본문 : 계시록 22:1-21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창2:10, 겔47:1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겔47:12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 속히 오실 그리스도
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계19:10
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계1:1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단8:26, 단12:4, 단12:9, 계1:3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벧전3:22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히9:2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오늘은 부활 후 세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능력과 기쁨을 매주일 경험해야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산다고 하는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에 잡히고 소심하고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부활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때문이요 내가 부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주의 사도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모인 곳의 문들을 굳게 닫고 있었는데 주님은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안을 주셨고,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에 성경을 한 장의 성경을 읽고 강해하는데 내일로 구약에서 신약을 다 끝내게 됩니다. 마지막 한 장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함께 요한계시록 22장을 읽고 내일부터는 창세기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여러 번 성경을 강해하였는데 가장 어려운 성경은 요한 계시록이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상징적인 용어들과 이해하기 어려운 환상과 숫자들이 연속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는 로마제국의 박해 아래에서 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들을 내고 있었으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배교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잠시 잠깐 후면 심판받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 세상 권력을 무서워하지 말고 역사를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여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싸워 승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는 목적은 로마 제국의 박해 하에 있는 성도들에게 부활의 신앙으로 어떠한 어려움과 핍박을 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핍박 아래에 있는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소망을 간직하라고 쓰신 성경입니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자기도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13:10)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고 하셨습니다.
스위스의 교육가인 페스탈로치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내심이 없으면 교육가로서는 낙제생이다. 애정과 기쁨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 생명을 양육하는데 조바심을 갖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또 양육하여야 합니다. 부모가 되신 여러분, 우리의 자식들이 사람될 때까지, 그래도 나가서 사람 노릇할 때까지 참아주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책망하시지 않고 참아주셨기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신 요한 계시록의 교훈은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말고 지금 당하는 핍박 때문에 황제에게 무릎을 꿇지 말고 그 입을 맞추지 말고 엎드려 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수고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소망의 인내가 없이는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언제나 강조하는 신앙에는 감사와 겸손과 인내입니다.
야고보 선생님은 인내를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보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안에는 인내를 강조하시는 말씀이 아주 많은 것을 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1:12)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5:11)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덕목이 인내입니다. 사람이 인내하지 못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봅니다. 귀한 것 중의 귀한 것이 인내입니다. 오래 참아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에 있어 아름다운 덕목이 있다면 인내인데,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꼭 간직하여야 하는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음의 열매 곧 인내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언제나 승리자의 모습이지 패배자가 아니며,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계시며, 철장 권세를 가지신 심판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7교회에 보내시는 편지에서 마지막 결론은 언제나 비슷한 문구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모두 이런 식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이기셨으니 우리도 주님을 앞장세우면서 나아갈 때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어린 양 앞에서 서서 찬송과 감사를 드리는 천천 만만의 헤아릴 수 없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 흰옷을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 세상이 큰 환난에 휩싸인다고 하여도 우리는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고, 우리 주님을 모신 자녀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하면서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21:7)라고 하셨습니다.
계시록 21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부활하여 살아가게 된 영원한 도성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모시고 있습니까? 우리의 매일 매일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우리는 뒤따라가면서 열리게 될 부활의 열매가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부활의 신앙이란 가치관의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자들의 삶을 면밀히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고난 주간이 되면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나귀를 대령하고,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나귀의 등에 얹고 길에 펴면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고 호산나를 불러 외쳤습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좋은 자리를 부탁하는데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오면서 "누가 더 크냐 ?" 하면서 다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으러 가시고 있는데 제자들은 오직 출세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길에서 누가 더 큰 사람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 다투는 것을 보면 참으로 무익한 사람들 같아 보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러 가시는데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있어 고난주간의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은 죽음보다 더 무섭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예루살렘을 빠져나갈 것이냐, 어떻게 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으로 고민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가 출세는커녕 이제는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날이 지나가고 안식 후 첫 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 다니던 여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뛰어 들어오면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무덤에 달려가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모셔들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제자들에게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은 것처럼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늘의 소망을 주시고 우리의 부활을 위하여 주님이 살아나셨고 부활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죽음이란 주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는 것이요, 생의 다른 형태요,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성도들의 죽음을 귀하게 보시고 있으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에는 유대인들이 무서워 자기들의 숨어 있는 장소의 문들을 굳게 잠그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한 복판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이 되는 적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 열흘 동안 전혀 기도에 힘쓰며 집회를 열었습니다.
어린 여종 앞에서 선생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여 베드로는 수 천명 군중 앞에서 "예수를 믿어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노라.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외쳤습니다. 전에는 제사장의 뜰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이 이제는 대제사장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을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후에 이렇게 사람을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치관이 주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하늘 나라를 위하여 준비하는 시간이지 이 땅에서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우리 주님을 만난 후에 변화된 것을 보면 우리의 가치관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주를 핍박하고 교회를 잔멸하려고 나가던 사람이 변하여 주님을 증거하고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나라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아름다운 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 성벽은 전체가 형용색색의 보석들로 쌓아 놓았습니다.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수정 같은 보석들이 성벽의 쌓는 재료였습니다. 그 성으로 출입하는 성문이 있었는데 열두 진주문이 있었는데 성의 길들은 유리 같이 맑은 정금으로 깔려 있었습니다. 하늘나라는 해나 달빛이 필요가 없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 우리 주님이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늘 나라는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갈이 흐르고 있는데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오서 길 한 가운데로 흐르고 있어 언제 마시고 싶으면 마실 수 있었습니다. 멀리 가서 마셔야 하는 불편이 없고, 길 한 가운데로 흐르고 있기에 언제나 쉽게 마실 수 있었습니다. 갈 좌우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 사귀는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었습니다.
이 생명수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왔으며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흐르고 있기에 하나님과 우리 주님이 보내시는 성령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생명수를 마시면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에덴 동안의 생명나무에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고, 사람이 감히 에덴 동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려고 그룹들로 하여금 두루 도는 화염검을 가지고 에덴동산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마음대로 생명수 샘물을 마시고 생명 과일을 따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다시는 저주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 되는데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시는데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습니다.
처음 것들이 지나가고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어린 양 예수님을 섬기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밤이 없이 없습니다.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기 때문이었습니다.
6-21은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속히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예언의 말씀으로 주신 것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7절 말씀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에 영적인 잠에 빠져 있고 세상적인 일에 취하여 하나님의 말씀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런 행동은 자녀된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주실 때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신 것인지 대개 알고 있으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잠깐이요, 우리 주님 오실 때는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봉하지 말고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거나 알지 못한다고 핑계할 수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계시 문학입니다.
이러한 계시록 같은 것은 알아듣는 사람은 알고 믿으라는 뜻이 있고, 알아듣지 못할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관리들은 옛날 희한한 이야기로 알 것이요,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한없는 소망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것이었습니다.
11절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감사하고 한편 두려운 마음이 들고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오히려 완악하여 하나님을 대항하고 대적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 주님은 속히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오실 때에 주님이 주실 상이 있는데 우리 사람들이 이 세상에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의의 두루마기를 갖추어 입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두루마기는 어린 양의 피로 씻어 깨끗하게 하고 빨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옷을 입혀주시고 의의 겉옷을 입혀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이들은 다 의의 겉옷을 입고 들어가야만 합니다. 의의 겉옷 예복을 입지 않으면 거룩한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의 공로를 힘입어 들어갑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옷 입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죄를 대속하셨고,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면서 주님과 함께 주가 예비해놓으신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성 밖에는 영원히 타는 불 못이 형성되어 있는데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이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21:8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 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 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 지옥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9:48-49) 지옥이란 곳은 들어가는 문만 있지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영원히 들어만 가는 일방통행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감격이요, 감사한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심판의 날에 받을 상급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충성스러운 종으로 살아갈 때에 주어지는 상급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상급도 사실은 다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공로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만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덤으로 칭찬하시고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서 더욱 큰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말 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대로 말하고 믿고 행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첨가하려고 할 것도 없고, 나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제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너무나 감격하여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라"(빌3:20)라고 하셨습니다.
1967년에 월남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6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다가 협상으로 풀려 나온 플룸(Charlie Plunb)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간증하고 전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 청년 미국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로 중위로 많은 꿈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훈장을 받고 출세하고 고향의 아가씨와 결혼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도 아니고 첫 번째 출격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추락하고 전투기에서 탈출하였으나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의 그 수많은 꿈도 다 사라지고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밀려오는 좌절감으로 죽음의 공포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가 전투복에는 적은 포켓용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자기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는 살아계시는데 주님 안에 부활의 열매로 참여할 것을 믿었습니다. 전혀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가치 있고 가치 있게 죽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택하십시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부활하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꿈을 다 접어야 했지만, 예수님은 그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고, 죽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된 것이 가장 큰 축복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 다시 오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사모하면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