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요한복음 12:12-19)
서 론 :
예수님은 유월절 명절에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입성은 스가랴 선지에 의하여 예언된 일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는 이미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무리들로 붐벼대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사람들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맞으려고 성문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입으로 찬양을 외쳤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1.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은 어느 개선장군에 못지 않은 장관이요 환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선장군보다 더 크고 위대한 승리의 영광을 안고 입성하셨지만 이것은 바로 그의 말할 수 없는 고난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맞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1)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겸손한 왕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겸손하다는 히브리말 '아니'는 곤고하다, 초라하다는 뜻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어린 나귀새끼를 타신 것은 그의 겸손에서 나온 것인데 그는 왕으로써 곤고를 겪으셨으며 가난하고 초라하셨습니다. 그는 스스로 종의 자리로 낮추시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빌2:6-10). 그는 우리를 위하여 가난해 지시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고후8:9). 그는 원수의 무리를 위해서 간구하시기 까지 겸손하셨습니다(눅23:24).
(2)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평화의 왕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원수를 무찌르는 칼을 가지고 입성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했습니다(눅2:14). 이사야는 이처럼 말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3)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그에 대하여 예언하신 말씀의 성취입니다.
스가랴의 예언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이 같은 입성에 대하여 그 뜻을 잘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이 일이 스가랴가 예언 한 예언의 성취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2. 호산나를 외친 무리들
예루살렘에 있었던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종려나무가지를 가지고 마중 나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하면서 외쳐댔습니다. '호산나'는 히브리어 '호시아나'의 헬라어 음역입니다. 이 말은 '구원하소서' '이제 구원하소서' '우리들을 구원하소서'란 뜻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의 갈채 또는 찬양의 송영으로 사용되어 온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호산나를 외친 것은 다만 유월절 행사 때문에 습관적으로 부른 찬송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를 이 찬송의 주인공으로 여기고 그를 맞이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이재 그들의 조국이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일을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야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번 예루살렘에 와서 예수에 대한 희망에 부푼 소문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소문도 들었습니다. 그가 이제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몹시 흥분했습니다. 어느 누구인가의 업에서 '호산나'의 찬송이 나오자 그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 암송 시를 다 함께 합창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 같은 환영은 적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라고 기대했든 정치적 메시야는 연약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잡히고 빌라도의 재판에서 사영언도를 받고 골고다의 사형장에서 무력하게 죽어간 것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십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로마의 손에서 구원하심이 목적이셨다면 그 일이 그의 생전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은 표적으로 자기를 믿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을 따른 무리들은 그가 행하시는 표적에 의해 그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에서 예수님을 맞이한 무리들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표적 때문에 모인 무리들이었습니다.
결 론 :
이 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마치 혁명의 가치를 들고 입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선동하거나 이스라엘의 회복을 부르짖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은 그들 군중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으며 그가 과연 메시야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무리들은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대제사장의 선동을 받아 예수대신 바라바를 요구하고 예수에 대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마2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