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기자수첩] 과거사에 대한 몇몇 언론사의 사설과 기자수첩

[▦인생타짜(32)]

[기자수첩]과거사 청산과 대통령의 경제인식
 
[헤럴드경제 2004-08-26 11:41]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독립 유공자 등과의 오찬자리에서 경제를 이유로 과거사 청산작업을 비판하는 시각에 대해 "국가적인 사업, 역사적인 사업들을 회피해 나가려는 기도"라고 규정하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 때도 경제, 안전, 혼란을 이유로 엎어버렸고 매번 올바른 주장이 나올 때마다 경제, 안보 그 얘기였다"고도 했다. 노 대통령은 나라가 뒤집어질 듯했던 시민항쟁 때도, 전국의 사업장들이 벌집 쑤신 듯했던 상황에서도 86년, 87년, 88년 계속해서 두자릿수 성장을 했다는 수치를 내세웠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이제부터 과거사 청산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일에 거슬리는 `기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됐다. `경제를 핑계`로 과거사 청산에 매달리는 참여정부를 비판할 경우 자칫 반민특위를 무산시킨 것과 같은 `파렴치하고 반민족적 행위`로 해석되고 오해될 가능성까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경험과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독립 유공자들과의 편한 오찬자리였던 때문인지 이날 노 대통령은 자신의 가족사와 경험을 곁들여 과거사 청산 의지를 소상히 언급했다. 왜곡과 굴절의 역사 속에서 은연중 형성된 잘못된 민족정서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갈대처럼 살아라"라는 비유로 풀었다.

대통령의 역사인식과 명분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경제다. 86, 87, 88년의 두자릿수 경제성장은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 등 이른바 3저 호황에서 비롯됐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특수도 한몫했다. 외부 호재가 사그라들면서 89년 이후 한국 경제는 침체국면에 빠졌고 급기야 97년에 외환위기를 맞았다. `경제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에 국민들이 얼마만큼 공감할지 궁굼하다.

정경부 유근석 기자(ygs@heraldm.com)

[동아일보 사설] 국정원 軍 검찰에 ‘과거사’ 바람 불면

노무현 대통령이 독재시대에 불법 행위를 저지른 국가기관의 고백을 요구해 국가정보원, 군, 검찰, 경찰에 ‘과거사 태풍’이 밀어닥칠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에서 여야 합의로 출범한 1,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범위를 훨씬 넘어 과거 의혹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시작하려는 것 같다.

독재시대에 벌어진 의혹사건의 진상을 가리고 억울한 죽음을 신원(伸’)하기 위한 재조사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최종길 전 서울대 법대 교수 의문사 사건 등에서 국정원, 기무사가 의문사위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며 갈등을 확대시킨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과거사 규명이 수사정보기관의 과거를 무한정 뒤엎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국가안보 기능이 위축되는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정보기관은 독재정치시대에 정권안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인권유린을 저질렀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일선에서 수호하는 책무를 수행했다. 수사기관의 과거사 다루기에서 양 측면이 균형 있게 고려돼야 한다.

국정원이 대통령 언급에 맞추어 시민단체를 참여시켜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민간단체에 군이나 국정원의 민감한 국가기밀이 흘러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들 기관의 자존심과 사기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국정원의 조사 대상에 간첩사건까지 포함될 경우 수사과정의 고문과 조작 여부를 둘러싸고 한바탕 이념논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도 있다. 재조사가 이루어지더라도 그 대상을 구체적 사건으로 최소화해야지 국가기관의 업무 전체가 재조사의 대상이 된다면 혼란이 커질 것이다.

국가기관 재조사에는 전제가 있다. 현 집권세력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구(舊)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치세력의 약화를 노리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사설>여권, `理性의 정치`로 나라 이끌어야

정국이 과거사 규명문제를 놓고 여야간 강(强) 대 강(强)의 맞대 결로 치닫고 있는 것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과연 어느 정파에 있는지를 차분히 따져보는 것은 이 혼란의 한 가운데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집권세력은 과거사 문제를 처음부터 정략적으로 접근했다. 과거사 문제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 도 아니었고, 1년반전 출범할 당시 국정과제도 아니었다. 간첩이 민주투사로 둔갑되는 국가정체성의 대혼란 사태에 대해 한나라당 이 책임규명을 요구하자, 집권세력이 맞대응카드로 들고 나온 것 이 친일·유신규명 카드였다. 1년반전에만 들고나왔다해도 모든 게 정략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될 수 있다.
여러 정권을 거치며 살아온 국민은 집권세력이 ‘친일 3대가 떵 떵거리며 살아온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결국 과 거사 문제가 한나라당을 옥죄며 끌고가기위한 정략적 카드로 쓰 여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게 야당을 몰아세우다 가 집권당의 당 의장이 부친 문제라는 복병을 만나 ‘정치적 징 계’ 를 당하는, 세계 어느 민주국가의 현대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웃지못할 당 의장 교체사태에 부닥쳐 휘청거리고 있다. 그 러면 이쯤에서 여권은 ‘이성(理性)의 정치’를 지향하려는 조짐 을 보여야 할텐데도 새로 취임한 당 의장이 “(신기남 전 당 의 장의) 뜻을 받들어 배전의 결의로 민주개혁평화 세력의 역사 바 로 세우기에 나서자”며 ‘성전(聖戰)’을 독려하는 듯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친일·유신 규명’을 더 크게 외치는 배경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친북·용공세력’을 포함시키자며 역 공을 취하는데 대해 절대 밀릴 수 없다는 강박감이 작용하고 있 는 것 같은데, 이거야말로 여당으로서의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 는 오기이다. 한나라당의 반격이 지나친 부분이 있음에도 마냥 비판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여당으로서는 야당을 몰아치는데에도 완급 조절을 하며 후퇴할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마치 고양이가 막다른 골목이 나올 때까지 쥐를 쫓듯이 강공일색 으로 나가면 그 결과가 어땠는지 역사를 되돌아보면 안다. 집권 세력은 권력을 잡았다고해서 안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무리하면 반드시 부러질 수밖에 없다는 역사공부를 해야 한다. 일단 숨을 고르고 분별력을 회복해야 한다. 이렇게 국정을 이끌다가 임기가 끝나면 어떤 성적표를 내놓고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것인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