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이 문구점은 그냥 문구점이 아니다
이용남 입력 2021. 03. 03. 18:30
수십년 역사 담긴 '동인천화방·문구' '삼성문구'.. 문방구의 쇠락에도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
[이용남]
새 학기가 시작됐다. 지난해엔 코로나19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재잘대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2021년 3월에는 아이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정상적으로 등교를 이어나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신학기가 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문방구다. 문구나 참고서를 사기 위해 들락거렸던 추억의 공간이다. 새로운 노트, 예쁜 연필, 전과, 속담집, 필기류를 구매하러 문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문방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컴퓨터가 일반화되고, 학교에서 문구류를 지원하면서 문방구를 찾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1980~1990년대 동인천 일대는 인천 학생들에게 '문구용품'의 성지였다. 대동, 칠성, 축현, 싸리재, 삼성, 부영문구 등 5~6개의 문방구가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곳은 인천여고, 인일여고, 인천여중, 대건고등학교, 제물포고등학교, 축현초등학교 등 10여 개의 학교가 모여 있어 거리의 반은 학생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방구가 잘 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동인천 주변에 있던 학교들이 떠나고, 문구 수요가 줄면서 문방구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문방구의 전성시대는 지나갔지만 아직도 동인천 일대에는 40, 50년 넘은 문구점이 남아 있다. 이들은 동인천 문구점의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없다.
동인천에 있던 축현초등학교 자리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들어서 있다. 학생교육문화회관 맞은편에는 '동인천화방·문구'이라는 간판을 단 노포 문구점이 50년 넘게 영업을 하고 있다.
인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동인천화방·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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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인천화방·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기씨 부부. 이 문구점은 문을연 지 54년이 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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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인천화방·문구는 오래된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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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화방·문구점은 김정순 할머니(92)가 시작했다. 할머니는 35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 셋을 키우기 위한 삶의 방편으로 문구점을 열었다. 장사를 위해 송학동에서 동인천으로 이사도 했다. 주변에 학교가 많고, 여자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1970~1980년대 이곳에 밀집한 학생들이 몇 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김정순 할머니가 운영하던 축현문구는 장남 김영기(66)씨가 하던 화방을 합치면서 동인천화방·문구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지금은 김영기씨 부부가 가게를 지키고 있다.
장남 김영기씨의 회고에 의하면, 문구점은 신학기인 2월말부터 3월까지 정신없이 바빴다. 이때는 온 가족이 장사에 매달렸다. 신학기에 팔 문구를 정리하고, 참고서, 수련장을 포장하느라 잠잘 시간을 쪼개서 일을 해야 할 정도였다. 문구점에서는 100여 가지가 넘는 문구용품을 팔았다. 당시엔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했다.
김영기 사장은 "신학기때는 온 식구가 쓰러질 정도로 일을 했다"고 말한다.
동인천화방·문구도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든 시기를 견뎌야 했다. 그 어떤 때 보다 고달팠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납품도 거의 없고, 누가 주문하면 갖다놓는 정도입니다. 요즘은 손님 한두 사람 왔다가는 정도여서 슬슬 문구점을 접을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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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농구스타들의 얼굴이 새겨진 노트들 |
ⓒ 이용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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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인천화방·문구점 내부엔 오래된 문구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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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화방·문구점은 노포 문방구의 정취가 물씬난다. 지금은 구매가 어려운 90년대 농구스타들의 얼굴이 새겨진 노트들, 2000년대 학생들의 우상이었던 H.O.T 멤버들의 모습이 담긴 포장지, 열쇠통이 달린 다이어리, 잉크병 등 옛 문구들이 구석구석 놓여 있어 정겨움을 더한다. 이런 옛 문구들만 찾는 고객들이 가끔 문방구를 찾아와 이 물건들을 사가곤 한다고 귀띔한다.
문방구는 이제 김영기씨 부부가 소일하며 지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체취가 남아 있고, 노포의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손님을 맞는다. 김영기씨는 세상의 변화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컴퓨터보다는 직접 부대끼고, 체험하며 배웠던 옛날의 교육방식이 더 좋았던 것 같다며 문방구의 쇠락을 아쉬워했다.
1977년 시작한 삼성문구, 44년의 역사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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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문구 장길룡 사장. 그는 44년째 삼성문구를 지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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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문을 연 삼성문구도 노포 문방구다. 삼성문구 장길룡(71) 사장은 경동 기독교병원 근처 동서대약국옆에 있던 달성사에서 문구일을 배웠다. 시골에서 상경한 청년은 문구사업이 괜찮아 보였고 이 일을 잘 배워 내 사업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
삼성문구 자리는 예전엔 지금보다 한 블록 위에 있었다. 몇 걸음 차이 안 나는 거리였지만 판매 수익 차이는 컸다. 몇 번의 이사를 통해 1979년 현재 자리에 안착했다.
문방구는 잘 됐다. 유동인구도 많고, 예전에는 동인천으로 문구를 사러왔기 때문이다.
20평에서 시작한 가게는 38평으로 늘렸고,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문구들을 갖다 놓았다. 가게는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저녁 10시에 문을 닫았다.
삼성문구도 2000년 축현초등학교가 이전하고 본격적인 인터넷시대를 맞으면서 점점 장사가 힘들어졌다.
장길룡 사장은 이때부터 사업다각화를 모색했다. 문구만 파는 것이 아니라 회사, 학교 등을 대상으로 문구를 납품했고, 시청에 파일, 문구 입찰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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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문구에서는 1990년대부터 인천화교학교 학생들의 문구류를 납품하고 있다. |
ⓒ 이용남 |
삼성문구는 1990년대부터 인천화교학교인 중산학교에 문구를 납품하고 있다. 화교학교와 화교유치원 아이들이 필요한 노트, 작문, 수학, 한자연습지, 스케치북, 연필, 사인펜, 색종이를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해 보낸다. 중산학교는 삼성문구의 오래된 고객이다.
장 사장은 IMF때도 어려운 걸 못느꼈는데 작년 코로나 때문에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
"IMF때는 학교 직거래가 많아 장사가 그런 대로 잘 된 편이에요. 근데 코로나는 개학을 안 하니까 학생들이 공부도 안 되고, 실습도 못하니까 학교에 납품을 사실상 못했어요. 작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까지 해온 게 있어서 버틴 것이죠."
장 사장은 문방구를 혼자 운영하지만 그래도 쉬는 시간이 너무 많다. 그 만큼 손님이 뜸하다. 직원을 둔 적도 있지만 2005년부터 혼자 해오고 있다.
"아직은 건강하니까 80세까지는 일하고 싶어요. 저의 청춘이 묻어 있는 이 곳을 계속 지키고 싶은 마음입니다."
장길룡 사장은 51년째 인천 중구에 살면서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운동협의회 회장을 맡아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I-View' 편집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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