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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하려면(3)
마가복음6:34~44
2007년 1월 28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34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36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41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42다 배불리 먹고
43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설교:
제가 자랄 때는 아주 촌구석에서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도시락을 '변또'라는 일본식 표현을 흔히 사용했었습니다.
누런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사각 ‘변또’에는 보리밥과 한쪽 옆에 뚜껑이 없는 반찬통에 ‘콩장’이나 ‘마늘짱’ 또는 고추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서울이나 도시서 사신 분들은 그런 것을 모르셨겠으나 가방도 없어서 보자기에 책과 함께 변또를 둘둘 말아서 어깨에 메고 학교를 갑니다. 가다보면 변또 반찬통에서 국물이 흘러나와 책을 적시기도 하고 옷을 적시기도 합니다.
보온이 전혀 안되는 도시락이기에 겨울에는 그 변또를 학교 조개탄 난로 위에 층층이 올려놓습니다. 수업시간 내내 냄새가 진동하고 맨 밑에 올려진 변또에서는 탄내가 납니다. 그러면 반장은 아랫것을 위로 올려놓습니다. 그래서 아래에 올려놓지 않으려 합니다. 중간쯤 올려 진 것이 제일 먹기 좋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4시간 끝나고 먹어야 하는데 세 시간째 수업이 마치면 한 숫가락 두 숫가락 파먹다가 들켜 선생님에게 혼도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저는 몸이 부실하다고 가끔 계란 프라이를 해서 변또 속 밥 위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 하나는 매번 고추장 반찬을 싸왔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밥을 1/3을 먹고는 나머지는 고추장을 퍼 놓고는 뚜껑을 덮어 흔들어서 비빔밥이라고 먹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왜 매번 고추장을 반찬으로 가져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도 어렵게 살던 때라 반찬이라는 게 별로 없습니다. 반찬이 마땅치 않으니 마당에 담겨놓은 고추장 항아리에서 한 숱갈 떠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콩장이나 마늘짱을 보면 3~40년전 그때 생각이 납니다. 우리 집만 그런지 모르지만 제일 흔한 반찬이 콩장이었습니다. 이 콩에다가 간장 절인 것, 그 콩장 아니면 무말랭이, 그래도 그거라도 먹는 아이는 행복한 아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그 점심도 못 싸오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게네들은 숟가락 하나만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친구 한 숟가락, 저 친구 도시락 한 숟가락 먹으면 점심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에 예수님께 보리떡 5개 물고기 두 마리가 드려집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주 평범한, 어찌 보면 가난한 사람들의 도시락입니다.
그런데 그 도시락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도시락이 주님께 드려지자 한명밖에 먹지 못할 도시락이 5,000명이 먹고도 남는 믿겨지기 힘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주님께 그 정도는 간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창세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우주를 창조하신 주님, 그분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생명의 주인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놀라운 기적을 행하십니다.
문제는 이런 기적은 모양과 형태는 다를 터이나 오늘날 우리 삶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07년도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한해가 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을 살펴보세요. 기적이 일어나려면 몇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1.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으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당시에 예수님께 모여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사람들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말이 5천명이지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치면 약 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것이 일번적인 견해입니다. 그들이 때가 저물었는데도 왜 안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기적을 보려고 온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병 고침 받으려고 온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 가르침이 너무 오랜 시간이 되다보니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듣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호기심에 온 사람들은 배고파 다 돌아갔을 것입니다. 아마도 기적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다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어떤이는 도시락을 싸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배는 좀 고프지만 그래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좋다고 여겼기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 자리에 있다가 배가 고픈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요? 호기심에 구경하러 왔던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은 환경을 바라보고는 돌아갔습니다. 그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었습니다. 그러니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바라 본 사람들은 자기 돈 내고 음식을 사먹었던지, 아니면 집에 가서 먹었을 것입니다. 또 도저히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사람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야, 등신들아 뭐 그 말씀이 그렇게 좋다고 먹는 것도 안 먹고 난리들이냐?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 거기는 금강산이 없으니 헐몬산도 식후경이야 인간들아” 하면서 음식을 사먹었을 것입니다.
그런 반면 말씀에 도취되어 식사할 시간을 놓쳐버린 사람들은 주님이 기적으로 만든 떡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서 기뻐했습니다.
성경에 배가 터지도록 이란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 배불리 먹었다고 했습니다. 배고프던 차에 주님이 기적으로 베풀어지는 공짜 도시락, 얼마나 맛이 있었을까요? 그곳도 남은 부스러기가 12바구니라고 하니 다들 배터지도록 먹었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당시도 배불리 먹던 시대는 아니였는데 주님이 공짜로 베풀어주는 식사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디에 속했을까요? 못 참고 돌아가 제 돈내고 사먹었을까요? 끝까지 버티어 기적의 떡을 먹었을까요?
바라기는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능에 지배받아 참지 못하고 돌아가지 마시고 은혜 받는 일을 위해 좀 참고 기다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못 참고 되돌아가 주님의 은혜의 기적을 체험치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시간이 다 되었는데 밥을 못 먹었다고 예배를 포기하는 사람, 예배에 참석했는데 배고파 죽겠는데 설교시간이 길어진다고 성질내고 일어나 나가는 사람, 어디 그뿐입니까? 수요저녁예배는 식구들 밥해 먹여야 한다고 아예 안 나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서울 어느 교회에 예배에 늦지 말라고 교회 입구에“오늘도 늦으셨군요.”라고 써놓았답니다. 좀 부끄러움을 느끼라고 써놓았는데 얼마 후에 보니 그 글 밑에 “그래 어쩔레” “늦게라도 온 것만도 고맙게 여겨라” 쓰여 있었답니다. 그래서 떼어 버렸답니다.
제 여동생이 나가는 부천의 모 교회에서는 교회 출입문에 “예배시간 늦는 것은 예배 방해 죄”라는 글을 써 붙였답니다. 얼마 후에 그 밑에 어떤 사람이 볼펜으로 낙서를 했답니다. “고발하시오” 그래서 떼 버렸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귀히 여기라고 써놓은 것인데 그러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하나님이 말씀이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기적이 일어 날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10장에 보면 고넬료가 베드로를 집으로 모시어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오자 어떻게 합니까?
행10:24~25절을 보세요.
“24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고넬료는 사도 베드로가 자기 집에 올 때 말씀을 혼자 들으려 하지 않고 일기친척, 그리고 친구들을 초청하여 함께 기다립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베드로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발 앞에 엎드리어 절을 합니다.
행10:33절도 보세요.
“33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다고 믿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맞을 때 엎드려 절하며 맞이한 것 같이는 못해도 겸손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꿀보다 달다고 했습니다. 어떻게요?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실제로 그렇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면 눈물이 나고 말씀을 사모하면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런 사람의 삶에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내게 있는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과 똑같은 관련 성경인 요한복음6장에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린 사람은 어린 아이라 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이 사람들을 보내어 사먹게 하자는 제안을 듣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아이의 도시락인 보리떡과 물고기 두 마리를 보고서는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대답했습니다. 사실 그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마태복음14:18절“그것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결국 그 어린아이는 그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왜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을까요?
얼마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가져오라 하실까요?
드리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일까요? 물론 주님은 우리의 것을 드리는 것을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미는 주님은 그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내 작은 것을 드려도 주님은 그것을 통해 뭔가를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기에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볼품없는 도시락이지만 그것이 주님께 드림이 되는 것 자체가 기뻤기에 드렸을 것입니다.
어떻든 주님은 한사람용의 그 작은 도시락을 가지고 5000명의 많은 사람이 먹게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영의 양식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육의 양식도 주시는 주님임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든 이런 기적은 그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주님께 드릴 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삶속에 어떤 기적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그 주님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네게 무엇이 있느냐?”
네게 무엇이 있느냐? 그때 내가 드릴 것이 무엇인가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비록 보리떡 5개 같이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드려야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헌신이 있어야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그 작은 것을 드릴 때 하나님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도 여러분의 신앙 고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간도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가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이 보리떡을 드린 아이는 자기의 저녁을 포기하고 드립니다. 그 아이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이 잡수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드렸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작은 헌신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주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주님은 그 물질, 그 헌금을 보시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드릴 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3. 질서를 잘 지켜야 합니다.
본문 39~40절을 보세요.
“39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우리 주님은 보리떡을 받으시고는 먼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자리에 앉힐 것을 명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사람들을 100명씩 50명씩 떼를 지어 앉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축사를 하시고는 떡을 떼어 줍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왜 주님이 제자들에게 군중들을 앉히라 하셨을까요?
아주 중요한 것은 질서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군중들을 앉히지 않고 기적을 행하셨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그들은 지금 배가 고픕니다. 그러니 먹을 것이 생기니 서로 먹겠다고 난리일 것입니다. 그러면 5000명이상이 모인 그 자리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이 원치 않는 일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적이 복이 아니라 저주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이 일어나려면 여러분이 질서를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질서입니까?
하나님과 여러분과의 질서, 어른과 아랫사람의 질서, 교회 안에서의 질서, 부모와 자식 간의 질서. 목사와 성도가의 질서.
이런 질서가 바로 서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복되게 살도록 날마다 은혜의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질서를 깨면 고통이 찾아오고 혼란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복이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은 질서를 깨면 복을 빼앗아 가십니다.
창세기 9장에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의 벗은 모습을 보고 떠벌리며 아비의 흉을 보니 그에게 저주를 주십니다. 그러나 첫째 셈과 셋째 야벳이 아비의 허믈을 덮으니 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또 야곱의 12아들 중 장자 르우벤이 아비의 침상을 범하니 장자권을 빼앗습니다. 둘째인 시므온과 셋째인 레위가 세겜 성 백성들에게 거짓말을 하여 할례를 받게 하고 살인을 저지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도 제끼십니다. 결국 메시야 혈통의 장자권은 결국 4째 유다에게 돌아가고 복을 누리는 장자권은 요셉에게 넘어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질서를 깨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질서, 부모와 자식간의 질서,
남편과 아내의 질서, 목사와 성도와의 질서,
임금과 신하의 질서, 이런 것을 잘 지켜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법도 주안에서 잘 지키시기를 축원합니다. 심지어는 은사활용도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고전14:40을 보세요.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깨지 마시고 살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가?
1.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전혀 상상치 못하였던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2.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걱정을 하지 마세요. 주님께 헌신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돈 걱정하지 않고도 문제가 다 해결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다 배불리 먹게 하십니다.
만족을 주십니다. ‘다’입니다. “다”라는 글자가 참 소망을 줍니다. 세상의 것은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 배불리 먹게 채워 주십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이 여러분에게 오늘 이 시대에 2007년도에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