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 갇히다
정용화
우리 집 현관문에는 번호키가 달려 있다 세 번,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면 가차 없이 문이 나를 거부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가 지갑도 휴대폰도 없이 제대로 갇히고 말았다
안과 밖이 전도되는 순간
열리지 않는 문은 그대로 벽이 된다
계단에 앉아 있는 30분 동안
겨울이 왔다
바람은 골목을 넓히려는 듯 세차게 불고
추위를 모르는 비둘기는
연신 모이를 쪼아 댄다
내 것이면서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어디 문뿐이겠는가
낡을 때로 낡아 버린 현수막이
바깥에 갇힌 나를 반성도 없이 흔든다
걸터앉은 계단이
제멋대로 흩어지는 길 위의 낙엽이
새들이 자유롭게 풀어놓은 허공이
나를 구속하고 있는 바깥이라니!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나는 지금 바깥이다
-전문-
▶ 詩는 물이다(발췌)_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수소와 산소, 수소는 불만 닿아도 폭발하고 산소는 불을 지피기 위해 가장 필요한 원소라는 점이다. 하지만 둘이 결합하면,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하면 H2O라는 원소기호가 되며, 이는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물'이다./ 정용화 시인의 「바깥에 갇히다」라는 시 속의 바깥은 어쩌면 내가 내게 숨겨놓은 '안'이거나 그 '안'의 바깥은 어쩌면 '안'이라는 두 개의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시는 물이다. 바깥은 안이다. 안은 바깥이다. 나는 나의 바깥에 있다. 너는 나의 '안'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바깥에서 우릴 보고 있다. 아니, 우리의 안에서 우리의 바깥을 보고 있다. 그, 경계는 '문'이다. 번호키가 달려 있는 것이 문이라면 그 바깥과 안의 경계는 다만, 번호키의 위치와 방향에 달려 있는 단순반복이라는 '의식'아닐까? 어쩌면 그 경계를 허무는 것이 시에서 흔히 말하는 '경계 너머' 혹은 '인식 파괴'라는 결과물, 화합물이며 동시에 '시는 물이다'에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벽을 마주보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 그 자화상은 나와 같으면서 동시에 나와 다른 또 다른 자아를 갖고 있다. 그 내면의 특수성보다는 내면이 갖고 있는 '다름'을 다름의 시각으로 인지할 때 비로소 능동적인 연상이 보일 것이다. 시가 물이 되는 것은 경계 너머의 것과 경계 안쪽을 상호 치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 30/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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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바다』 2020-봄호 <문예바다 나침판>에서
* 김부회/ 계간 문예바다편집부주간, 시집 『시답지 않은 소리』, (러시안 룰렛) 평론집『시는 물이다』 중봉문학상 외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