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端의 追憶 #173, 동방교 거액 도난사건 리뷰
오늘 우연히 인터넷 서핑중에 낯익은 옛날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56년 전의 옛일이지만 당시 세칭 동방교 내부가 발칵 뒤집혀 난리법구통이 일어난 사건이라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현금 일천육백만원과 금괴 도난사건의 기사는 노광공 교주가 타계(1967. 陰 6.19)한지 1년반 정도가 지난 時點이다. 그리고 56년 전이라면 이 돈 규모의 현재 가치로는 일개인이 집안에 보관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큰 돈이다. 이 돈은 대구의 어느 건물을 매입하려고 대금을 치루기 위해 어제 은행에서 현금으로 찾아 보관하고 있던 중이라고 권병찬씨는 나에게 말한바 있다.
당시 세칭 동방교에는 연일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껌팔이 연단선님들이 벌어들이는 현금과 전국에 산재한 지교회에서 들어오는 지성(헌금)을 차곡차곡 모아서 100달러짜리 외화로 바꾸어 탄창에 가득 넣어 밀봉해서 교주만 아는 어떤곳의 비밀장소에 땅을 파고 묻어놓기도 하였다.
땅을 파고 그런 탄창을 묻어놓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이 아모스 장로라는 분이었는데 카투사 운전병 출신으로 두뇌는 그리 명석하지 못했던지 실세 간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우직한 충성심으로 교주 노광공의 자가용을 운전하면서 그의 신임이 무척 두터웠다.
세칭 동방교의 자금원천이래야 그것이 어디서 나왔으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닌 바에야 피땀어린 신도들의 지성(헌금)과 세상을 청산한다며 거둬들인 은금패물, 학업을 중단시키고 무단가출시킨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행상과 껌팔이 시킨 돈이 아니었던가.
세칭 동방교는 이렇게 자금을 축적시키고 키워 나가면서 당국의 자금출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그때 그때 전액 현금인출 조치를 취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거액 현금 인출을 노리고 따라붙은 강절도의 소행이거나 내부소행 의심도 있지만...
하여튼 권병찬씨는 당시 대공관련 의심을 받아 이 사건 신고 당사자로 수사기관에서 큰 곤욕을 치렀다고 나에게 그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주었다. 이후 외부 바람막이 용도로 권력기관의 인물 영입 스토리도 연결된다. 기사 내용중에 몇가지 오류가 있어 바로 잡고 내용도 사실대로 추가한다.
1.동방교주 허광공-->盧光公(노광공)을 허광공(虛光公)으로 잘못 쓴 기자의 오류.
2.상도동 5의8 사택-->큰집이라 부르는 동방교의 대기처(신도들의 집단합숙소), 이곳에서 노광공 교주가 당뇨합병증으로 파란만장한 그의 생을 마쳤다.
(영등포구 상도1동 518의 오기인듯 함, 현재는 동작구로 변경)
3.여교주-->잘못된 표현임
4.권병찬-->부산 당감동 10교회에서 집단합숙소인 대기처로 들어간 동방교 신자로 명명은 아마샤, 후에 주간기독교 사장을 지내다 동방교를 탈출한 인물.
5.양학식-->동방교의 최고위직인 사주목사의 한사람으로 명명은 베드로.
6.식모 이명숙-->동방교의 신도로 무단가출하여 집단합숙소인 대기처에 들어와 생활하는 신도로 명명은 엘리아.
7.허교주의 양자 권씨-->잘못된 표현
8.김숙자-->동방교의 최고위직인 사주장로의 한사람으로 노광공 교주의 총애를 받은 여자장로. 명명은 사로맨.
9.정재덕-->양학식과 더불어 동방교의 두사람 밖에 없는 최고위직 사주목사의 한사람으로 명명은 요나단.
(본 사건 상세기록은 이단의 추억 # 33, 거액 도난사건, 일가족 음독사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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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전문]
천6백만원•금괴도난/전동방교주 허광공집서 (중앙일보 1968.12.19)
18일 서울 영등포구 상도동 5의8 동방교주 허광공씨 (54·일명두산·67년사망) 사택안의 세칭 성실안에 보관중이던 현금 1천6백6만원과 3백돈쭝의 금붙이(싯가1백50만원)가 감쪽같이 도난당했다.
이날 상오6시30분 여교주의 양자이며 재산관리인 권병찬씨 (38·태평운수전무)가 이사실을 서울노량진경찰서에 신고했다. 세모에 우리나라 도난사상 최고액수를 기록한 도난사건을 맞아 경찰은 사건현장안에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경찰은 19일 상오 허교주저택에 경비원으로 있다가 이유없이 해고당한 고모씨(25)를 연행, 추궁중이며 신고자 권씨, 이 저택에 함께있는 동방교의 실권자 양학식목사등의 신병을 확보, 도난당한 경위를 따지고있다.
또한 경찰은 현장에서 22개의 지문과 5개의 농구화족적을 채취, 전과조회중이며 상도동일대를 설치던 절도전과자 2명을 검거, 범행여부를 따지고있다.
특히 경찰은 동방교내부의 복잡한 사정과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이교의 성격에 의거,
①돈이 정말있었는지의 여부
②돈을 정말 도난당했는지등 피해자신고에대한 확인수사와
돈이 있었을 경우
①현장상황으로 보아 내부의 연루자의 유무
②교회내부의 파벌관계로인한 모략
③외부의 특수절도단의 소행등으로 수사반을 나누어 다각적인 수사를 펴고있다.
<처음발견은 식모 다른 물건 그대로|발견경위>
사건당일 상오 2시30분쯤 식모 홍유화여인(30)이 연탄을 갈아넣을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상오6시쯤 다른 식모 이명숙양(26)이 청소하다가 허교주의 방문이 열려있고 벽장문이 열려있음을 발견, 권씨에게 알렸다.
권씨가 방에 달려가보니 탄통6개에 나누어 보관했던 5백원권 1천6백6만원과 금반지 15개, 금덩이 2개등이 모두 없었다. 그러나 TV등 값진 물건은 제자리에 있었다.
<범인은 3인조? 드라이버로 부숴|범행경위>
경찰은 마루에 어지럽게 남겨진 농구화자취로보아 범인은 3인조 이상으로 추정했다. 두 식모의 증언에 따라 범행시간은 새벽 3시에서 6시사이. 건물뒤편 비상문의 고리가 비틀려있었고 벽안에 장치한3개의 똑같은「캐비닛」중 용하게도 돈이든 곳의 자물쇠고리를「드라이버」같은 기구로 뜯어내고 돈과 금을 들어냈다.
돈을 담아두었던 탄통 6개는 뒤비상문 밖에 버려져 있었고 팥찌꺼기를 담은 부대를 비우고 돈을 담아 도망한 것으로 보였다.여기서 족적은 끊어졌으나 경찰은 범인등이 이 비상문을 통해 약4미터높이의 담을 뛰어넘어 도망친 것으로 추정했다.
<양자유산 천만원 본사람은 4명뿐|문제의 돈>
허교주의 양자인 권씨는 작년6윌19일 교주가 죽으면서 양자인 자기에게 유산으로 현금1천만원을 남겨주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5백만원은 지난 11월11일 태평운수명의로 상업은행 본점에서 자동차매매자금으로 창고와 교회건물 3백평을 담보로 융자했다는것. 나머지 1백6만원은 그출처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이 돈올 목격한 사람은 작년 6윌 교주 임종시에 참여한 권씨·양씨·김숙자전도사·정재덕목사 4명뿐. 이중 김전도사와 정목사는 행방불명이며 양씨는 지난1년반동안 돈을 한번도 보지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높은담에 철조망 사나운개 3마리|도난현장 주변>
대지2백평 건평50평안에 7개의 방이 있다. 건물은 높은 담위에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있고 사나운 개3마리가 지키고있다. 현재 싯가는 1천만원이며 동적부엔 이근성이란 가공인물로 등록되어 있다.
이집은 동장·반장도 출입을 시켜주지 않아 인근주민들은 '도깨비집'이라 부를 정도. 이집안엔 식모 홍유화씨등 3명의 식모와 장복원씨(34)등 4명의 경비원및 권씨와 양씨가 거처하고있었다.
(동작구 상도1동 518의 현재모습)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182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