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나요?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을 읽고>
- 13기 이상아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4동, 이것이 내가 사는 곳이다.
서1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우리 집은 이 책에 나오는 감천동 산동네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한 뼘의 여유 없이 다닥다닥 붙은 집, 한 집의 담은 곧바로 옆집의 담이기도 하고 마당은 사람들이 자나가는 골목이다. 거기다 겨우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에 80년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똥 퍼는 차에서 나오는 기다란 호수가 동네를 가로지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아침이면 화장실 좀약 파는 아저씨와 재첩국 파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로 눈을 뜨고 야채나 생선을 파는 트럭이 오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반복된 목소리에 장을 보러 나가기도 한다.
겨울이면 찹쌀떡 파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골목길을 누비고 술 먹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아저씨나 고래고래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한번씩 들린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을 읽으면서 1980년대의 산동네 모습이 낯설기 보다는 우리네 이야기를 적어놓은 듯해서 오히려 친근함 마저 든다.
이 책의 작가 최 수연.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어느 봄, '원 북 원 부산'(범시민 독서생활화 운동의 일환으로 시민들의 투표로 선정된 한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는 릴레이식 독서행사) 발대식이 거행되었던 부산시청 강당에서였다.
150센티미터가 안되는 작은 키에 조그만 체구를 가진, 오십을 넘긴 나이에 비해 조금은 어리게 보이던 그녀가 수줍은 듯 단상에 올라가 이 책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을 쓰게 된 계기를 이야기할 때만 해도 그녀 속에 그렇게 끈질기고 당찬 용기와 자신감을 간직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다만, 수줍은 듯 수녀가 되고자 했던 처녀가 22년이라는 세월동안 산동네 아이들과 살면서 아이들을 통해서 진실한 삶을 찾은 그녀의 이야기라 했다. 그리고 공부방 아이들이 5백 원씩 용돈을 모아서 2천3백 원짜리 슬리퍼를 선물로 사줬을 때는 ‘딱 1년만’이라는 자기 스스로와의 약속을 무너트리는 계기가 되어 지금껏 남아있게 되었다고…….
세월이 지나서 그렇게 공부방을 거쳐 간 아이들은 35살의 청년들이 되어서 다시금 공부방에서 세상을 행복하게 꾸며가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당시에는 그녀의 진심에서 배어나온 눈물에 감동되어 책 선정을 잘 했다고만 생각했지 그녀가 흘렸던 진정한 눈물의 의미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을 다 읽고난 지금, 그 눈물에 담긴 많은 사연과 아픔 그리고 감동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처녀의 몸으로 산동네에 들어가 철저히 감천동 산동네 사람이 되어서 그들과 한층 가까워지고 그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하려고 했던 온갖 부업들…신발 밑창 붙이기, 옷감에 붙은 실밥 자르기, 낚싯바늘 궤기, 장어 껍질 펴기, 신문 배달, 파출부, 아이 돌보기 등에서부터 시작한 그녀는 그 뒤로도 많은 일을 해낸다.
공부방 학생들의 어머니들로 만든 어머니합창단, 7평 작은방에서 아이들이 같이 했던 열린 마을잔치, 새로 이사한 공부방의 세탁실 바닥에 정화조를 묻고 화장실을 만든 일, 재래식 부엌을 없애고 만든 마을 도서관 ‘책누리 도서원’, 그리고 공부방 아이들로 구성된 ‘우리누리 기자단’의 모임과 첫 신문 ‘우리누리 소식지’의 발간, 공부방 어머니 모임인 ‘자모회’결성, 한글을 모르는 엄마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에서부터 아버지들을 위한 영어교실, 자원봉사자들을 통한 공부방 무료 한방진료실, 공부방 주변 대학에 있는 풍물 동아리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풍물 강습시간, 5월5일 어린이날 행사와 공부방 여름캠프 그리고 12월에 열리는 발표회까지…….
이러한 사건들 사이에서 우리누리 공부방은 부모가 죽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홀로된 아이들의 안식처가 되고 삶의 노동에서 지친 엄마, 아빠들의 쉼터로 자리 잡아 갔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공부방을 처음 열면서부터 아이들에게 '이모'라고 불리기 시작해서 '큰이모'를 거쳐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할매'라고 불리기까지 많은 아이들의 이모이자 엄마이자 할머니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남긴 것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아이들의 이모, 엄마, 할머니의 자리가…….
그리고 20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공부방을 스쳐간 공부방 교사들만 해도 1기 선배 교사부터 19기 새내기 교사까지 전국에 60~70명이 넘는다 한다. 그곳엔 지금도 그녀와 뜻을 같이하는 착하고 젊은 ‘이모’와 ‘삼촌’들이 산동네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주고 있다.
그녀는 그 20년이란 세월이 그녀의 삶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으며 사랑하는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우리누리 공부방 교사인 이모 삼촌들과 함께 살면서 참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공부방 아이들을 통해서는 가난하지만 행복해지는 법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이웃들이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잊고 희망을 열어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길 바라지 않았을까? 나 자신에게도 물어봐야겠다.
당신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나요?
첫댓글 마주아름은 '스프링 벅'대신 '산동네 공부방'으로 나눔을 가졌습니다.^^
멋지네요. 생각의 우물이 점점 더 깊이를 더해가는 모습이 좋아요 . 작은 모임이지만 누구보다 내실을 다져가는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