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꽃병에 꽃을 꽂는다.
미끄러지듯 달아난 잠 때문에, 며칠째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누워서 뒤척인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니고 베개를 모로 자리한들 마찬가지여서 낮부터 불편했던 마음도 정리할 겸 일어나 거실 등을 켠다. 벽에 걸어 두었던
봉오리 채인 장미와 반쯤 핀 분홍장미들이 갑자기 켠 불빛에 화들짝 놀란 듯 새침해진 낯빛이 된다.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사랑의 꽃집’이란 화원이 있다. 왠지 기분 좋은 인상의 주인을 그려보며 들어가니 역시나 마음씨 곱게 생긴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넓지 않은 화원을 휭하니 둘어보았다.
토분에 심어진 노랑, 빨강, 색이 선명한 아기 선인장이 앙증맞게 햇살 놀음에 몰두해 있었다. 흰 도자기에 몸을 반쯤 숨긴 아이비는 푸른 생명력을 더욱 뽐내며 가지 뻗기에 열중하고, 화가의 팔레트란 별명을 가진 안시륨은 타는 듯한 아침 풍경을 그려 달라는 듯 붉은색을 펼쳐놓고 있었다. 키가 훌쩍한 행운목과 벤자민, 관음죽은 어느 가게의 개업을 축하하려는 듯 말쑥한 차림을 하고, 마지막 리본넥타이 장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인 여러 가지 색의 장미와 안개꽃은 영원한 찰떡 궁합인양 머리를 맞대고 속살대고 그 밖의 크고 작은 모양의 화초들은 안아 달라 조르는 아이마냥 두 팔 벌리며 어리광을 부리는 중이다.
딸아이의 피아노 발표회에 가기 위해 노란 장미와 연분홍 장미 한 다발씩을 샀다. 꽃값이 만만찮은 게 주부인 내게는 부담이 되었지만, 꽃을 가슴에 안고 향기를 맡을 때면 소녀같이 마음이 설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서 꽃다발을 받은 것처럼 기쁨이 차올랐다.
피아노 발표도 무사히 끝난 후 선생님과 딸 아이에게 각각 장미 한 묶음을 전했다. 그들의 얼굴도 긴장 탓이었는지 꽃물이 번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 꽃을 벽에 거꾸로 매달아 두었다. 오래 두고 볼 욕심에 전부터 곧잘 하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슨 일인지 꽃을 봐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전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연하다는 듯 꽃을 말렸었다. 노란 소국의 색을 살리기 위해 전자렌지에 돌려대면 꽃이 말려지는 동안 집안 전체에 향이 가득 찼다. 국화 향이 감도는 집안에서 차 한 잔을 할 때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부러울 게 없는 여자가 되곤 했다. 가끔은 친구에게 색을 선명하게 꽃을 말리는 법을 자랑하기도 했는데 오늘은 꽃만 보면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결국, 그날 늦은 밤 화병에 꽃을 꽂았다. 꽃들은 마른 목을 축이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생기가 돌았다.
‘저 일에 쟤는 완전히 미쳤어.’ 란 말을 들을 정도로 무엇에 빠져 살지도 못했다. ‘저 사람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 할 만큼 누군가를 목숨처럼 사랑해 본 적도 없다. 그저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온수나 반쯤 피우다 만 꽃이 나였다. 부족한 무언가에 불안을 느끼면 아파트의 평수를 늘리고, 새로운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사들이면 해결되는 줄로만 알았다. 낮에 별 뜻 없이 지껄인 수다들과, 인터넷과 방송에서 짜집기 한 미학인 된 정보들로 아는 체하고, 장미의 가시처럼 순수와 염려를 가장해 상대를 아프게 찔러두고는 시침을 뚝 떼기도 했다. 나의 샘들이 차오르지 못하는 건 상대가 너무 많이 가져갔기 때문이라는 당치않은 논리들을 펴기도 했다. 그 모습의 자신이 진저리쳐지는 밤, 꽃을 바라보니 마른 꽃보다 더 가볍다는 사실에 눈물이 난다.
세월의 더께가 쌓여갈수록 물기를 잃어가는 꽃처럼 가벼워만 지는 지식의 무게와 사유의 세계를 본다. 즉흥적이기만 한 감성, 까칠해져 가는 성격을 보고야 만다. 샘물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서두르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열정을 쏟아 내고 자신을 비추며 상대를 배려하면서 언어의 청량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세상을 바로 보지조차 못하는 거꾸로 매달린 마른 꽃이다. 누군가 살짝 흔들기만 해도 바스락하고 소리 내며 약해진 자존심으로 빈 벽의 장식물이 되어가는 꽃으로 살아온 것이다.
화병에 꽂아둔 장미는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다. 그렇다 하여 마른 꽃도 만들지 않으련다. 수액을 한껏 끌어올려 꽃잎들을 한 장 한 장 펼칠 수 있게만 하여도 좋겠다. 마른 꽃처럼 가벼워진 자신이 보이기에, 꿈을 쉽게 접어버린 나에게서 벗어나 보려한다.
문학의 길에서 언제나 문턱만을 서성거리다가 계절도 없이 화려하게 핀 담장 안 꽃들의 위세에 기가 죽어 망설이다 돌아왔다. 이제 미려하고 세련되지는 못할지라도 가을 길의 산구절초나 망초꽃처럼 하루를 여물게 갈무리하고 싶다. 소박한 삶의 언어로 꾸덕꾸덕 상처를 말리고 따뜻한 눈길로 세상을 보며 옮겨내는 소망을, 가져본다.
꺾인 생가지의 진물처럼 쓰디 쓴 자신이 보이는 밤이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