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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무돌길문화대학은 (사)무등산무돌길협의회와 광주평생교육진흥원과 함께 지난 1일(토)오전 8시30분에 무등산무돌길문화대학 안내해설사 교육과정 제5기 40여명은 광주 북구 중흥삼거리 광주역 뒤 육교아래 공간에서 모여 5일차(무등산무돌 13길~15길) 실기교육을 탐방했다.
먼저 출석부에 서명하고 국민체조로 몸을 풀고 버스에 승차하면서 일정을 시작했다.
승차해서 김인주 상임공동의장은 “무돌 길의 개념, 개척동기, 운동방향, 무돌 길의 가치와 특징 그리고 무돌 길이 주는 효과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했다. 오늘 무돌 길을 탐방하면서 교통안전과 도심을 걷기에 마스크를 착용해 건강관리를 해야겠다. 햇볕이 따갑기 때문에 시력보호 차원에서 선글라스를 사용해야겠다. 질문이 있거나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질의에 바로 응답해주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는 조장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1개조를 10여명으로 편성하여 소통, 분임토의, 소감발표, 6월6일 무돌 특별0길인 완성천지인 길과 6월15일 버스투어 행사 참석여부, 삼행시와 과제 제출여부, 회원신청서 배부로 가입여부 등, 4개조로 운영했다.
오늘 해설도 무등산무돌 길 개척자인 김인주 상임의장이 직접 해설했다. 동구 구간으로 무돌13길 (용추계곡길),14길(광주천길), 15길(폐선푸른공원길)약 12.8km 로서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5시간을 탐방했다.
오늘 실습이 무돌1길~15길까지 완주(51.8km)를 하는 날이다. 따라서 5기 대표로 추천받아 ‘박시구’교육생을 선출했다.
1. 무돌13길(용추계곡길): 약3km,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1시간이 소요다. 용연마을 – 제2수원지 – 용연당산나무 – 용연정수장 - 선교동 마을을 걸었다.
용추계곡 길이란 광주천과 영산강의 발원지계곡으로 용추폭포와 제2수원지가 있다.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고 아름다운 계곡길이라 하여 붙인 지명이다.
용연마을을 지나 선교동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논과 밭 사이를 지나는 길이었으나 용연정수사업소가 들어서면서 포장도로가 되었다.
* 용연마을: 용이 승천한 연못이라 하여 용연마을이다. 제2수원지 아랫마을로 500년 넘은 귀목나무<한자어로 괴목(槐木)·규목(槻木)·궤목(樻木)·거(欅)>, 지난날 우리나라의 마을에는 대개 큰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정자나무로서 가장 뛰어난 기능을 발휘한 것이 느티나무였다. 그것은 수관(樹冠: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으로 원 몸통에서 나온 줄기)이 크고, 고루 사방으로 퍼지고 짙은 녹음을 만들며, 병충해가 없고 가을에는 아름답게 단풍이 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자나무는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경험을 전달하는 광장으로, 때로는 서당의 선생이 강학(講學)을 하는 민족의 애환이 집결된 곳이라 할 수 있다. 느티나무의 목재는 결이 곱고 단단해서 밥상·가구재 등으로 쓰였고, 불상을 조각하는 데에도 쓰였다. <느티나무(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당산목이 서있다.
* 제2수원지: 제2수원지는 광주광역시의 2번째 수원지로 특별한 수리공법을 이용해 축조하였고, 1939년에 완공되었다. 주위에 매화나무가 많이 있다.
* 광주 상수도는 1920년에 하루 800㎥을 공급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는 83만㎥을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이다. 상수원은 수돗물을 만드는 원료인 원수를 공급해주는 시설로 하천, 호수(저수지), 지하수 등이 있는데 광주의 경우는 95%가 호수이며, 주로 동복호의 물을 사용하고, 전남의 여수, 순천, 목포 등과 함께 주암호의 물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광주상수원은 상류지역에 공장이나 산업시설이 없기 때문에 비교적 양호한 상수를 공급하고 있다.
* 용연정수장: 이곳에 있는 용연정수장은 동복호 물을 정수처리 하는 곳이다. 광주의 정수장은 3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중 주암호 물을 정수처리 하는 덕남 정수장(서구, 남구, 광산구 일대 하루 44만㎥), 동복호 물을 정수처리 하는 용연정수장(동구, 북구, 광산구 일대 하루 30만㎥)과 지원정수장(하루 8만㎥, 가동중지, 2016.7), 산장 입구에 있는 제4수원지 물을 정수처리 하는 각화정수장(북구 각화동, 두암동 등 하루 2만㎥), 장성의 황룡강의 물을 복류수(하천의 바닥에서 한번 걸러진 깨끗한 물을 취수)하는 남면정수장과 송정정수장은 폐쇄.(제1, 3수원지 매각)
2. 무돌14길(광주천길): 약 6km,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 2시간 30분이 소요다. 선교동마을 - 선교다리 – 광주천길(주남마을 – 용산역 - 지원동 - 소태역 – 양림 – 학동역) - 남 광주역(남 광주시장)을 걸었다.
광주천 길은 무등산 장불재(용추계곡)샘 골에서 발원한 광주천 상류로 학동, 금동, 임동, 유덕동에 이르는 총연장 23.07km를 흘러 극락강과 합류한다. 증심(원지교)계곡과 용추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광주천 차수벽이 설치되어 오염 및 유량부족으로 자정능력이 크게 모자라 하수종말처리장에서 BOD 3ppm 이하로 처리하여 맑은 물을 우회 역류시켜 광주천에 흘려보내고 있다.
광주의 상징적 하천길이고, 광주의 허파기능을 하는 천이다. 농촌에서 도시로 진입하는 첫 마을이기도 하다. 광주 도심에서 유일한 수변 녹지이면서 양호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하천변을 걸으며 둔치 식물과 수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고, 여러 종류의 새들과 물고기를 볼 수 있는 것이 일미이다.
예전에는 백일홍나무가 많은 개울이라 하여 자미탄(紫薇灘)이라고 전했으나? 이번 걷기에는 햇볕이 내리쬐기만 한다.
2004년부터 추진한 자연형 하천정화 사업으로 정비된 징검다리, 여울 등 시민휴식 공간과 체육공원, 자전거 도로 등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광주의 대표적 사찰, 무등산 증심사와 제1수원지가 있고, 3정승 6판서가 배출 될 지세가 있다는 육판 리가 있다. 동학농민전쟁 때 ‘시체가 널렸다’하여 이름 붙여진 너릿재가 있다.
* 선교동은 선동마을과 교동마을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지명이며, 선교동 마을 오른편 산이 신선모양의 선인 봉인데 신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라는 뜻에서 선교동이라는 설명이다.
* 지원동은 광주의 4대 관문의 하나인 남문로를 중심으로 제2순환도로와 도시철도 1호선 소태역의 개통으로 화순방향 교통의 요충지이다. 소태동, 용산동의 일부와 월남동, 내남동, 선교동, 용연동 6개의 동을 관할하고 있다.
* 소태동은 무등산 자락이 있고 광주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도심 속의 아름다운 무돌 길과 소태역, 남초등학교, 무등중학교, 지원정수장이 있고 남문 로와 지하철, 제2순환도로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옛 마을 소태 골은 왕실의 태를 봉안하던 곳이라 하여 소태실이라 전한다.
3. 무돌15길(폐선푸른공원길): 약3.8km,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 1시간30분이 소요다. 남광주역 – 폐선 푸른 공원길 – 광주역을 걸었다.
폐선 푸른 공원길이란 광주역과 남광주역 간에 철길을 폐쇄하고 시민의 힘으로 도시 푸른 길을 만든 광주의 상징적인 길이다. 광주역, 남광주역, 남광주 시장, 동네 유래 등 지역 사를 많이 듣는 시간이었다. 주변에는 전남대, 조선대, 광주고, 서석초, 계림초, 광주교대 등 학교 밀집지역이다. 또 5.18민주화 운동의 발원지이기도 하여 광주의 살아있는 역사의 길이다.
* 남광주역: 남광주역 터 비문에“이곳은 1937년 광주에서 여수까지 개설된 철도의 역 터다. 당시에 역 명칭은 신광주역이었는데 1938년에 남광주역으로 개명, 2000년 도시철도 이설로 역은 폐지되었다.”남광주역은 사라지고 남광주지하철역이 새로 생겼다.
* 남 광주시장: 남광주역이 개통되면서 여수, 순천에서 해산물을 가져오는 보따리장수와 벌교, 보성, 화순 등에서 장을 보려고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시장을 보았던 곳이다. 오래 전부터 농어촌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채소와 생선을 남 광주시장에 내다 팔았다. 새벽시장이 오전 5시부터 9시까지 열린다. 남 광주시장은 철도 교통이 편리하여 전남 동남부 일대가 남 광주시장 이용객이었다. 전남도청과 남광주역 이전의 영향으로 시장은 활력을 많이 잃었다.
* 폐선 푸른 공원길: 1970년대 이후 도시화로 인해철도는 도심 내에 자리 잡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각종 소음피해와 교통 혼잡, 열차사고들이 빈번해지자 광주시는 도심내의 철도를 외곽으로 이설하게 된다. 인구 150만 명이 모여 사는 대도시에서 이처럼 큰 규모의 녹지공간이 조성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사실 이곳은 2000년 8월초까지만 해도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 철도부지 이다. 광주도심철도 이설은 2000년 12월 푸른 공원길 조성이 광주역 – 남광주역 – 동성중 7.9km(폐선 된 10.8km 중) 확정되어 2002 ~ 2008년까지 7년간 도심공원으로 조성 추진되었다.
* 학동: 무등산 줄기가 학처럼 내려와 앉은 구릉지라고 해서 학 마을이라 부른다. 1947년에 학동, 학동은 남동 방면의 관문이자 증심사로 향하는 길목이다. 1915년 자혜병원(전남대 부속병원)이 들어서고 1936년 신광주역(남광주역)이 개설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기마대가 주둔했고, 해방 후에는 도시영세민과 전쟁이재민들이 정착한 달동네가 광주천가에 생겼다.
* 학동의 백화마을에는 1946년 광주를 방문한 김구 선생은 전재민(戰災民·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사람)의 어려운 처지를 듣고 자신의 정치 후원금을 모두 희사하였다. 희사금은 전재민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소중한 종자돈이 되었고 김구 선생의 뜻대로 ‘백 가구가 화목하게 살라’고 ‘백화마을’이라 하였다. 광주 백화마을의 탄생은 가난한 동포에 대한 김구 선생의 따뜻한 동포애의 시작이었으며 전재 구호의 1탄이었던 것이다.
* 서석동: 서석산(무등산)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서남리라고 했다가 1930년 서석동으로 칭했다. 서석동은 도청, 노동청, 구청 등 행정기관이 소재하고 있는 호남행정의 중심지였다. 주변에는 전남대학교병원, 조선대학교, 서석초교, 대성학원, 양영학원 등 학교와 학원의 밀집지역이다.
* 지산동: 무등산 서쪽 장원 봉에서 향로봉과 깃대 봉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오백여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서쪽 비탈면에 위치하고 있고, 신양파크호텔, 무등 파크호텔, 지산유원지 등이 위치한 관광 위락시설 지구이다. 법원과 검찰청이 소재하여 변호사, 법무사가 집중된 지역이다.
* 동명동(농장다리 – 모범수들의 나들이 길): 광주읍성의 동문 밖에 있다하여 ‘동밖에’라 했고, 동계천가에 있어‘동계’로도 불리다가 1946년 동명동이라 칭했다. 동명동 농장다리는 1908년 광주 교도소가 있을 때 교도소에서 모범수를 데리고 나와 지금의 동명로 길을 따라 농장으로 이동하여 각종 농작물을 재배했던 다리로 광주역과 남광주를 잇는 철길 위에 얹어져있다. 해방 뒤 소년형무소자리에 동명여중이 설립되고 1971년 광주교도소가 문화동으로 옮겨가면서 농장부지는 주택단지로, 농장은 지금의 법원과 검찰청으로 바뀌었다.
* 산수동: 무등산 장원봉 산기슭의 동네로서 이 지역에 갈마 촌이 있었고 잣 고개, 꼬두메, 깃대봉 등 옛날 동네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다. 1947년 8월 15일 1차 개정한 동 이름을 폐지하고 2차 개정할 때 정을 가와 동으로 통일하면서 경동은 산수동으로 바뀌었다. 1986년 11월1일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광주직할시 동구 산수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산수동 일대는 논밭사이로 작은 마을들이 산재했으나 70년 초에 주택지로 개발하면서 시가지로 변해 산수동 5거리가 중심지가 되었다. 조선 중기까지 장원봉 밑에는 광주 향교가 있었으나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동문 밖(현 동명동)으로 옮겼다. - 1398년(태조 7)에 현유 (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서석산 (瑞石山)장원봉(壯元峰) 아래에 창건되었다. -
전설에 의하면 호환(虎患)이 있어서 동문 안으로 옮겨 세웠다가, 1488년(성종 19)에 수해(水害)로 현감 권수평(權守平)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에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그 뒤에 중건한 것이다.
1974년에 대성전을 보수하고 단청하였으며, 1976년에 동·서재와 1978년에 명륜당을 보수하고 1981년에 담장 등을 보수하였다. 이 향교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동재·서재·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비각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주향교 [光州鄕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계림동: 옛 경양방죽 제방에 숲이 우거져 있고, 제방 가까이 마을에서 닭을 많이 길렀기 때문에 닭울음소리가 자주 들려서 닭 계(鷄)자와 수풀 림(林)자를 써서 계림동이라고 했다.
한편 강경구 박사는 “예부터 성소나 시조신에 제사지내던 숲을‘닭 숲 또는 비둘기 숲 (鳩林)이라고 일컬었다고”주장한바 있다.
계림초등학교 터가 의지할 곳 없이 죽은 여귀<여귀는 제사 지낼 후손을 남기지 못한 채 죽은 귀신을 가리킨다.>를 제사지내 달래던 여제단이 있었던 곳이다.
그때 이 지역에는 마을이 없었고 경양방죽과 경양 역에 딸린 역둔전만 있던 들판이었다. 경양 역은 전주와 장흥을 연결하는 전라좌도의 관로를 담당하다가 1895년 역제도가 폐지되면서 사라졌다. 광주고등학교가 1923년5월1일 광주공립중학교로 문을 열면서 차츰 집들이 들어선 것 같다.
* 중흥동: 중가리와 신흥리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중흥동은 1979년에 불린 지명이다. 이 지역이 더욱 발전하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 ‘중흥(中興)’이라는 이름으로 지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조선후기에는 광주군 경양 면에 속했으며 1955년부터 중흥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중흥동이 중흥1,2동으로 분리, 1980년에는 동구에서 북구로, 1986년에는 중흥1,2,3동으로, 2011년 4월에 중흥1동, 풍향동, 우산동, 계림동, 두암3동 일부가 북구에서 동구로 변경되었다.
* 광주역은 광주의 철도는 근대문물의 유입과 일제수탈의 통로로 활용되기 위해 1922년 송정리에 첫 도입 이후 송정리역에서 광주역까지 철도가 완성되고 광주역을 중심으로 담양, 여수 등으로 나가는 사통팔달의 철도가 완성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었다. 원래는 경전선상의 역이었으나 경전선 도심구간 이설사업으로 광주 ~남광주 ~ 효천간 선로가 철거되어 지선인 광주선의 종착역이 되었다. KTX 광주송정역과 통합되어 도심공동화우려 및 주변 상권문제가 되고 있다.
1922. 7.1 : 동구 대인동에서 영업개시(현재의 광주 동부소방서)
1969. 7. 25 : 현재의 위치로 역사 이전
2000. 8. 10 : 경전선 효천 – 송정리 구간 이설로 광주선의 종착역이 됨
2004. 4. 1 : KTX 영업개시
2015. : KTX 광주송정역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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