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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흔히 여행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관광은 꽤 깊은 뜻이 담긴 말이다. 관광의 원전은 주역의 관괘(觀卦) 효사(爻辭)에 나오는 ‘관국지광 이용빈우왕(觀國之光 利用賓于王)’으로 알려져 있다.
직역하면 ‘나라의 빛을 살펴 그로써 왕을 섬기고 이롭게 한다’ 정도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주자학을 관학으로 삼았던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덕치(德治)의 경전으로 역경(易經) 연구를 중시했는데, 이때 일본 유학자들이 주목한 문구가 관국지광, 즉 ‘관광’이었다.
유교에서 ‘광(光)’은 군주의 덕 또는 나라의 찬란한 문물을 의미한다. 광화문의 ‘광화(光化)’도 군주의 덕을 널리 비추어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 학자들은 관광을 나라의 빛, 즉 군주의 덕을 목도하고 체험함으로써 그 위업을 기린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18세기 이후 이세신궁 참배 등이 유행하면서 (군주의 덕과 나라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각지의 명소, 명물 등을 찾아 살피며 주유(周遊)하는 여행의 의미로 관광의 뜻이 전화(轉化)하였다. 유럽에 ‘그랜드 투어’가 있다면 일본에는 관광이 있었던 셈이다.
얼마 전 월대 복원 공사가 마무리된 광화문 주변은 한국의 대표적 ‘관광’ 명소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정부가 월대 복원에 ‘임금과 백성이 직접 소통하던 역사적 가치를 계승해 대한민국의 소통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옛 궁궐을 문화재로 복원할 가치가 있는지는 정부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시민의 길’을 허물어 ‘왕의 길’을 되살리면서 왕조시대 군주의 덕을 현대적 계승 대상으로 삼는다는 발상은 만인 평등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공화국 정신에 걸맞지 않다.
문화재는 문화재로 의미를 음미하면 충분하다. 군신(君臣) 사상에 기초한 과거 유산을 굳이 현대 민주공화국의 이념과 결부하는 논리로 견강부회할 필요가 없다. 공화국의 ‘빛’은 공화국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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