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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줄기와 고개의 구분, 영(령) 치 현 재
영남 호남 영동 관북 관동이란 이름 어디서 나왔나?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고개를 크기에 따라 말할 때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얼마나 높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얼마나 고갯길이 길게 뻗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고개가 높으면 자연히 고갯길도 길어질 수 있으므로 고개가 크다고 할 때는 이 두 가지가 다 포함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말에서 높은 고개라고 할 때 이를 한자로 고현(高峴)이라고도 할 만하건만 어느 국어사전에 찾아봐도 이런 낱말은 별로 볼 수 없다. 다만, 이 이름은 고유명사로서 사료 등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사료에 보면 삼국시대에 신라 장수 거칠부(居柒夫)가 고현 이남의 10군을 빼앗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의 고현은 바로 철령(鐵嶺)을 말하는 것이다.
또, 긴 고개라고 할 때도 장현(長峴)이란 말이 당연히 나올 만하지만, 이 역시 국어사전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에는 장현이란 이름의 고개가 무척 많은데, 이런 고개들의 토박이 이름들을 보면 대개는 ‘긴 고개’의 변한 말인 ‘진고개’가 대부분이다. 혹자는 진고개를 고갯길이 질어서 그렇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런 뜻을 갖춘 고개라기보다는 대개는 ‘긴 고개’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발음 습관상 구개음화가 심한 남부 지방에서는 ‘기름’을 ‘지름’으로, ‘드새다’를 ‘지새다’로, ‘겨울’을 ‘저울’이라고 많이 하는데, 이러한 발음 습관에 따라 ‘긴 고개’ 역시 ‘진 고개’가 되는 것은 도리어 더 당연하게도 보인다.
`고개에도 크기에 따른 급수가 있다
대동여지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산(山)을 높낮이와는 관계없이 독립된 산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악(岳)은 무주의 삼도봉(三道峰)이나 서울의 도봉(道峰)처럼 험한 지형의 것으로 풀이한다. 산이름에서 암(岩)이 뒷음절로 들어가면 우이암(牛耳岩), 관음암(觀音岩)처럼 산 정상이 바위로 이루어진 산으로 본다.
고개에 해당하는 령(嶺)은 옛날에 국경을 방비하던 관방(關防)이 있던 곳으로, 대관령, 한계령, 조령, 추풍령 등이 이에 속하고, 현(峴), 치(峙)의 경우는 구분이 령에 비하여 작은 고개로 본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치는 현에 비해 다소 험한 고개로 본다. 그 예로 남원, 운봉의 팔랑치나 횡성의 삼마치가 용인의 수유현, 춘천의 부황현에 비하여 다소 높고 험한 지형의 고개라는 것을 들고 있다.
산이름에서 끝음절이 대(臺)로 되어 있으면 산지의 고원이나 대지에 해당하는 지명으로, 야산 또는 고원의 의미를 지니게도 된다. 대동여지도에서는 산(山), 악(岳), 암(岩), 봉(峰), 구(丘), 대(臺), 덕(德), 곡(谷), 계(溪), 현(峴), 영(嶺), 치(峙), 고개(古介), 굴(屈) 등의 산 관련 지명을 볼 수 있다.
산지에서 고원(高原)이나 대지(臺地)에 해당되는 지명이 대(臺)와 덕(德)이다. 대는 경포대(鏡浦臺), 강경대(江景臺)와 같이 정자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야산을 뜻하고, 덕은 검의덕(檢義德), 가목덕(加木德) 등과 같이 오늘날의 고원을 뜻한다.
신경준의 산경표에서는 대간(大幹), 정간(正幹), 정맥(正脈)에서 산이름, 고개 이름 등을 나열해 그 맥의 흐름을 짚어 주고 있다. 이 중에서 백두대간의 것에서만 고개 관련 이름의 것만 추려 보면 영(嶺)이 48개, 현(峴)이 5개, 치(峙)가 8개로 나온다. 다른 정간이나 정맥 부분에서보다 영의 빈도가 훨씬 높다. 이것은 백두대간에서는 다른 맥에 비하여 영급의 고개가 무척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4년 4월27일 조선일보 ‘알고 싶어요’난을 통해 ‘고개 이름을 쓸 때 치, 영, 재 등 다양한 이름을 쓰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들어왔다. 신문사의 요청으로 필자인 내가 지면을 통해 다음과 같은 답을 주었다.
‘고개’를 뜻하는 표현에 영(嶺), 현(峴), 치(峙) 등이 있다. ‘매우 큰 고개’란 뜻으로 관(關)이 쓰이기도 한다. 고개는 ‘산이나 언덕의, 넘어 오르내리게 된 비탈진 곳’을 말한다. 지명의 뒷음절로 들어갈 때는 ‘벌고개’ ‘싸리고개’처럼 앞 음절이 일반명사인 경우가 많다. ‘재’ 역시 독립적으로 쓰이는 낱말이며, 고개와 거의 같은 뜻이다.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등에서 보듯 옛날에는 사용 빈도가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고개라는 말에 묻혀 사용하는 경우는 적다. 고개 이름에 다른 낱말이나 지명이 붙는다. ‘재’는 단순히 고개의 뜻을 넘어, 산(山)이란 의미로도 사용된 듯하다.
치(峙)는 고개란 뜻이지만 독립적으로 쓰이진 않는다. 서울 대치동의 대치(大峙)나, 남원의 웅치(熊峙), 원주의 송치(松峙)처럼 두 음절 지명에 치가 많이 들어간다. 영(嶺)은 명사 뒤에 붙어 고개임을 뜻하는 접미사로 쓰이지만,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인 조령, 추풍령, 한계령처럼 비교적 큰 고개에 영이 많다.
고개를 뜻하는 것에 현(峴)도 있는데, 애오개라 했던 서울의 아현(阿峴), 인성붓재라 불렸던 인현(仁峴) 등이 좋은 예다. 관(關)은 한자 풀이로는 고개가 아니지만, 두 지역을 지형적으로 크게 구분 짓는 큰 산줄기의 목(고개)을 나타내는 데 쓰이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답이었다.
`관, 영이 관북, 영남 등의 이름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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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령박물관. |
사전에서는 관(關)을 ‘국경이나 국내 요지의 통로에 두어서 외적을 경비하며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화물 등을 조사하던 곳’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명사적인 풀이이고, 땅이름에서는 중요한 고개의 뜻으로 쓰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관을 고개 이름으로 쓰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지방의 명칭을 정하는 데는 관을 고개로 생각하여 정한 경우가 있다. 함경도 지방을 가리키는 관북지방(關北地方)이라는 말과 평안도 지방을 가리키는 관서지방(關西地方)이 그 좋은 예다. 이 때의 관은 사전에서의 풀이와는 거리가 멀다.
관북-관서에서의 관을 학자들은 강원도 안변 지방에 있는, 즉 백두대간 해안산맥 북단에 있는 철령(鐵嶺)으로 보고 있다, 즉, 이 고개 북쪽 지방이 관북이고, 서쪽 지방이 관서다. 전에는 함경도의 마천령 남쪽 지방, 곧 함경남도를 남관(南關)이라 했고, 함경도 전체 지방을 일컬을 때는 북관(北關)이라고도 했다.
관동지방은 지금의 동해안 지방을 가리켰는데, 여기서의 관은 철령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백두대간의 동쪽이란 뜻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관동을 대관령의 동쪽이란 뜻으로 풀이해도 무리는 없다.
강원도의 백두대간 서쪽 지역, 즉 영서지방을 뺀 지역을 총칭해서 관동이라 했는데, 이는 옛날 강원도에 있는 아홉 군이 모두 동해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뒤에 백두대간 서쪽의 춘천을 비롯한 고을들이 성장하자, 태백산맥을 경계로 강원도를 두 지역으로 구분하여 영동과 영서라 하게 되었고, 관동만이 강원을 총칭하는 지방명으로 남게 되었다.
고려 성종 때 전국을 10도로 나누면서 오늘의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관내도(關內道)라고 하였는데, 강원도 지역은 관내도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관동이라 했다고도 한다. 관동과 관북, 즉 강원도와 함경도를 일컬을 때는 관동북(關東北)이라 하기도 했다.
평안도 지방은 관용상으로는 관서라는 말보다 서북로(西北路), 서북계(西北界), 서로(西路), 또는 서북도(西北道)라는 이칭이 더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형적 명칭이라기보다는 행정적 또는 교통적 명칭으로 볼 수 있다. 이 이칭은 995년(고려 성종 14)에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이 지역을 패서도(浿西道), 평양을 서경(西京)이라 하고, 후에 북계(北界), 서북면(西北面)이라 개칭하였다가 1102년(숙종 7)에 서북계(西北界)라고 한 데서 연유한다.
백두대간의 태백산 남쪽 줄기, 즉 전에 소백산맥이라 했던 곳의 이남 지역은 영남(嶺南)이라 했는데, 이것은 백두대간의 서쪽을 영서(嶺西)라 한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러나, 영남이라 말을 쓴 것에 비하여 ‘영북(嶺北)’이란 말을 쓴 예는 거의 없다. 이것은 이미 새재 이북의 광역 지명이 기호(畿湖), 호북(湖北), 영서(嶺西), 중부(中部) 등의 이름으로 거의 고정화되어 있어 ‘영북’이란 이름의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남이란 이름이 백두대간 중에서도 새재(조령), 대재(죽령), 가파름재(추풍령) 남쪽 지역이란 뜻으로 붙여졌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관북, 관서, 영동, 영서, 영남 등이 산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붙여진 데 반하여 호남(湖南)이란 이름은 강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강은 당연히 금강일 것이며, 여기서의 ‘호(湖)’는 호수가 아니라 강을 의미할 것이다. ‘호’가 강을 의미함은 서울 근처에서 금호(金湖), 용호(龍湖), 동호(東湖), 서호(西湖) 등이 모두 호수가 아닌 한강의 부분 이름이었음을 상기하면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호남의 호가 제천의 의림지(義林池)라는 의견을 내기도 하나, 이는 한자의 ‘호(湖)’를 단순히 큰 못(湖)으로 생각한 데 따른 것이다. /// 배우리 회장(한국땅이름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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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각 지방의 명칭
지방화 시대에 알아두어야 할 각 지방의 명칭
경향(京鄕)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서울과 지방을 뜻하는데, 결과적으로 한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된다. 여기서 ‘경(京)’이란 일국의 수도, 서울을 말하기도 하고, 우리가 셀 수 있는 숫자의 끝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향(鄕)’이란 본래 시골을 나타내면서 성(城)이나 진(鎭) 이외의 땅을 말하지만, 중국에서는 향이 지방의 작은 행정구역으로 사용되어 오면서 그 범위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였다. 어쨌든 우리의 봉건왕조시대에는 ‘향’이 서울을 제외한 지방을 뜻하였으며, 또 고향이라는 뜻으로 향토나 향수와 같은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 젊은 사학자들 사이에 「향토사(鄕土史)」라는 말 대신 「지역사(地域史)」 또는 지방사(地方史)」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향’이라는 용어가 시골스러움, 저개발과 낙후성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므로 지역균형발전의 차원에서 향토사 → 지역사가 더 지방화시대에 부합된다고 믿는 것 같다.
그 점에 대하여 필자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있기는 하지만, 향을 지역이라는 말로 바꾸는 것이 우리의 옛 것, 고향다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단순히 개발과 변화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아서 한 가닥 아픔이 남는다.
오늘날 세상은 빠르게 「지방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으로 대폭 이양되고, 지방자치와 지방분권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방균형발전의 욕구도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지방 형성은 조선의 8도 체제에 의하여 지금의 지방제도가 그 골격을 이루게 된 것이다. 물론 신라의 9주 5소경이나 그 이전과 이후에도 나름대로의 지방제도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지방명칭은 이 때를 기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원래 지방이란 어떤 곳에 한 가옥이 들어서고, 그 주위에 취락이 형성되어 마을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마을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고을이 모여 지방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만찬가지로 향토사가 모여 지방사가 되고, 지방사의 총화가 곧 한 나라의 역사가 된다. 이런 확산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방 명칭을 바로 아는 것 자체가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지방명칭의 유래와 사용시기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8도의 지방명칭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만들어진 이름들이다. 그러나 그 지역의 범위까지 확정된 것은 조선 태종 - 세종 때 서북방면과 동북방면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압록강 - 두만강 일대를 우리 강토로 회복한 이후부터이며 그 시기는 대략 1500년대 초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00道」라고 할 때의 ‘도(道)’는 “00방면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서 원래는 조선시대 역을 관장하는 찰방의 관직 앞에 붙어있었던 명칭과 비슷한데, 조선시대의 광역지방명칭으로 이런 체제를 따르게 된 것 같다.
-경기도(京畿道) : ‘경기’란 ‘서울을 둘러싼 그 문지방’이라는 뜻이다. 곧 도읍지의 주변지역을 말한다. ‘경기’라는 이름은 1018년(고려 현종 9)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충청도의 북부 일부가 들락날락하였으나 대체로 경기좌도는 한강이남 지역, 경기우도는 한강 이북지역이 해당되었다. (좌.우도는 서열상 좌도가 먼저이다.) 관찰사는 처음 수원에 주재하였다가 뒤에 광주(廣州)로 옮겼으며, 감영을 기영(畿營), 감사(관찰사)를 기백(畿伯)이라 부른 것도 모두 경기의 ‘기’를 붙인 것이다.
-강원도(江原道) : ‘강원’이란 이름은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의 머리 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강원지방은 삭방도, 춘주도, 동주도, 연해명주도, 교주도 등의 이름으로 불렀으며, 1395년(조선 태조 4) ‘강원’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되었다. 관찰사는 원주에 주재하였으므로 감영을 원영(原營), 감사를 동백(東伯)이라 불렀는데, ‘동’은 관동의 ‘동(東)’자를 붙인 것이다.
-충청도(忠淸道) : ‘충청’이라는 이름은 충주(忠州)와 청주(淸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충청’은 1106년(고려 예종 원년) ‘양광충청주도’라고 할 때 최초로 ‘충청’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대체로 충청좌도는 지금의 충청북도, 충청우도는 지금의 충청남도 지역에 해당된다. ( 좌.우도는 모두 서울의 궁궐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의 방향임) 관찰사의 영은 공주에 두었으므로 감영을 금영(錦營), 감사를 금백(錦伯)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모두 금강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전라도(全羅道) : ‘전라’란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합성지명이다. 1018년(고려 현종 9) 처음으로 ‘전라도’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그전에는 강남도, 해양도, 전광도라고도 불렀다. 1407년(조선 태종 7)군사 행정상 편의에 의하여 좌, 우도로 나누었는데, 동쪽 산악지대를 좌도, 서쪽 평야지대를 우도라 하였다. 관찰사는 전주에 두었으므로 감영을 완영(完營), 감사를 완백(完伯)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완’은 옛 이름 완산주의 머리글자를 취한 것이다.
-경상도(慶尙道) : ‘경상’이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1106년(고려 예종 원년) 경상진주도라고 할 때 처음 ‘경상’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동남도, 영남도, 산남도, 경상진주도 등으로 불렀으며, 1314년(충숙왕 원년) 경상도로 되었고, 1407년(조선 태종 7) 좌, 우도로 나누었는데, 낙동강 동쪽을 좌도, 서쪽을 우도라 하였다. 관찰사는 대구에 주재하였으며, 그 감영을 영영(嶺營), 감사를 영백(嶺伯)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영’은 지금 영남의 ‘영(嶺)’과 같이 고개를 뜻하는 이름이다.
-황해도(黃海道) : ‘황해’라는 이름은 황주(黃州)와 해주(海州)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본래 관내도, 서해도, 풍해도, 황연도라고도 하였으며, 1407년(태종 7) 황해도라 하였고, 그해에 좌,우도로 나누었다. 여기서 좌도는 동쪽, 우도는 서쪽 지방을 뜻하였다. 관찰사는 해주에 있었으므로 감영을 해영(海營), 감사를 해백(海伯)이라 불렀다.
-평안도(平安道) : ‘평안’은 평양(平壤)과 안주(安州)의 머리 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본래 패서도, 북계, 서북면, 관서라고도 불렀으며, 1413년(태종 14) 평안도로 고친 것이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동도와 서도를 나누기도 하였으며, 관찰사는 평양에 있었으므로 감영을 패영(浿營) 또는 유영(柳營) 혹은 기영(箕營)이라 하였고, 감사를 기백(箕伯)이라 불렀다. 여기서 패영의 ‘패(浿)’는 패수, 즉 대동강을 말하며, 유영의 ‘유(柳)’는 옛 평양의 이름이 유경(柳京)이었기 때문이다. 또 기영의 ‘기(箕)’는 이곳이 기자의 옛 터전이기 때문이다.
-함경도(咸鏡道) : ‘함경’이란 이름은 함흥(咸興)과 경성(鏡城)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그전에는 함길도, 삭방도, 동계, 동북면, 영길도 등으로 불렀다. 1509년(중종 4) 함흥부의 감영을 회복할 때 함경도로 고쳤다. 관찰사가 함흥에 주둔하였으므로 감영을 함영(咸營), 감사를 북백(北伯)이라 불렀다. 북백의 ‘북’은 관북의 북을 취한 것이다.
○ 지방 명칭의 별칭(또 다른 이름들)
-영남(嶺南) : 경상도의 별칭으로 교남(嶠南)이라고도 불렀다. 영남의 ‘영’은 고개를 뜻하며 조령(鳥嶺), 죽령(竹嶺), 추풍령(秋風嶺) 등의 고개가 그 경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고개 중에서도 대표적인 고개가 조령(제 1관문 - 제 3관문이 있음)이 되므로 조령이남을 영남이라 한다. 교남은 영남과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호남(湖南) : 전라도의 별칭으로 금강하류 남쪽을 뜻한다. 대개 호남의 ‘호(湖)’자를 호수를 뜻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김제 벽골제 이남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금강의 옛 이름이 호강(湖江)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호’는 조선시대에 강변이나 바닷가에도 흔하게 붙여져 있었으며, 서울의 동호(東湖,지금 동호대교 부근의 한강), 마호(麻湖, 지금 마포 앞 한강)와 같은 이름들이 많다. 또 고려 때에도 호남을 강남도(江南道)라 불렀는데, 이것도 역시 금강의 남쪽을 뜻한다.
-호서(湖西) : 충청도의 별칭으로 호중(湖中)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도 ‘호(湖)’를 제천의 의림지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금강 상류의 강변에는 호서루(湖西樓)니, 금호루(錦湖樓)니 하는 누정들이 있고, 금강의 옛 이름이 호강으로서 이 강이 충청지방을 휘돌아 흐르기 때문이다.
-기전(畿甸) : 경기도의 별칭이며, 기중(畿中), 또는 적기(赤畿)라고도 한다. ‘기(畿)’는 원래 중국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5백 리 이내의 땅을 말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서울을 둘러싼 땅, 그 주변지역을 말한다. 곧 ‘기’가 문지방, 뜰, 또는 안마당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관동(關東)과 관서(關西), 영동(嶺東)과 영서(嶺西) : 강원도의 별칭이며, 관동, 관서의 ‘관(關)’은 대관령이 아닌 철령관(鐵嶺關)의 동쪽과 서쪽을 말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 등) 한편 영동과 영서는 대관령 서쪽을 뜻하는 이름이므로 이들이 근래에 서로 혼용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관동은 무방하되, 관서는 평안도를 말하므로 대관령 서쪽의 강원도 지방은 ‘영서’라는 이름으로 고쳐 써야 할 것이다.
-해서(海西) : 황해도의 별칭이며, 해서의 ‘해(海)’가 해주라는 설,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라는 설이 있다. 당시의 정황이나 벽란도진의 성세를 감안할 때 예성강 하구설이 더 무게를 갖는다.
-관서(關西) : 평안도 지방의 별칭으로서 철령관의 서쪽을 뜻하는 이름이다. 강원도 지방의 관동, 관서와 혼동하기 쉬우나 관서 = 평안도는 문헌상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이름이다.
-관북(關北) : 함경도의 별칭으로서 철령관의 북쪽지방이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 최고의 산악지대를 이루는 북쪽지방으로서 철령위 문제, 여진족 침입 문제 등 영토분쟁으로 늘 말썽이 된 곳이다. 그러기에 철령을 중심으로 관서, 관북, 관동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 그 외에 사용된 광역지명(廣域地名) 등
앞에서 소개한 우리 나라 8도의 명칭과 별칭 이외에도 왕실이나 조정에서 사용된 지역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을 뽑아서 여기에 풀어보았다.
-상사도(上四道) :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위(북)에 있는 4개 지방을 말한다. 곧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이다.
-하삼도(下三道) 또는 삼남(三南)지방 : 서울에서 남쪽에 있는 3개 지방을 말한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이다. 이들은 모두 궁성의 남쪽에 위치하므로 하삼남 또는 삼남지방이라고도 하였다.
-기호(畿湖)지방 : 경기도지방과 호서(충청도)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영호남(嶺湖南)지방 : 경상도(영남)지방과 전라도(호남)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양호(兩湖)지방 : 충청도(호서)지방과 전라도(호남)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양남(兩南)지방 : 경상도(영남)지방과 전라도(호남)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양북(兩北)지방 : 강원도지방과 함경도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양서(兩西)지방 : 황해도(해서)지방과 평안도(관서)지방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 기타 청남(淸南) 청북(淸北)지방 : 평안도를 나누어 청천강 이남을 청남, 청천강 이북을 청북지방이라 하였다.
위의 팔도 지방 명칭 중에서 합성지명(合成地名)을 만들기 위하여 대표적인 고을을 선택하는 방법은, 대개 계수관(界首官)이라 하여 그 도의 경계지역 내에서 가장 품계가 높은 관리가 주둔하는 고을의 명칭을 택하여 그 명칭을 붙였다.
이 경우에 두 고을 중에서 어느 고을 이름을 먼저 붙이느냐(앞 자리에)하는 문제는 시대에 따라 바뀌기도 하였지만 대개 두 고을 중 큰 고을 이름을 앞에 붙이거나 역사가 오래 된 고을이름을 앞에 붙이는 것이 관례가 되어 왔다.
전국 땅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