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그들이 나 때문에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스스로 교만할까 하였나이다
I wait for you, O LORD; you will answer, O Lord my God.
For I said, "Do not let them gloat or exalt themselves over me when my foot slips."
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18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For I am about to fall, and my pain is ever with me.
I confess my iniquity; I am troubled by my sin.
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20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
Many are those who are my vigorous enemies;
those who hate me without reason are numerous.
Those who repay my good with evil slander me when I pursue what is good.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O LORD, do not forsake me; be not far from me, O my God.
Come quickly to help me, O Lord my Savior.
다윗의 원수들은 부당하게 다윗을 미워합니다.
다윗이 선을 따르기에 원수들이 대적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선을 따르는 일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나를 누르시니 나에게서 나오는 것은 죄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누르시면 두 가지를 다 알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자기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신 죄를 짊어지실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죄가 어떠한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넘쳐남을 알기에 탄식하지만,
그 죄보다 더한 ‘속죄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한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자기 죄를 알고 주의 도움을 구하였다면
세상 사람들이 보란 듯이 구원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르셔서 죄를 알게 하시고
대속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셨는데도
여전히 삶의 모습은 버림받은 자의 모습과 같습니다.
시편 40:11~13절. “11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12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13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자신의 죄 짐이 어떠한지를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마태복음 11:27~30절.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정말로 무거운 짐은 ‘내가 벗어버릴 수 없는 죄의 짐’입니다.
이 죄의 짐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만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아가면 마음의 쉼을 얻는데
그것은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부인의 자리이기에
그 십자가를 진 모습은 구원받지 못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십자가가 구원입니다.
로마서 5:20~21절.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누르신 것은 죄가 어떠한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 후에 하나님은 죄의 넘침보다 은혜가 더 넘치게 하십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을 한 자리’에서
‘은혜가 의로 왕 노릇을 하는 곳’으로 옮기심이 십자가입니다.
고린도후서 5: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의를 알고 믿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다윗을 누르신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의 죄가 자기의 머리에 넘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고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은혜가 임한 자들은 ‘여전히’ 고난 가운데 살아갑니다.
베드로전서 4:12~14절.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영광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 위에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이 역사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가 마감되는 날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영광에 참여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반드시 누르십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를 토설하고, 주의 은혜만 사모하게 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누르심을 기쁘게 여기며
우리의 죄를 주님 앞에 토설하고
주님의 은혜 만을 구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