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청명하고 봄바람은 온화하다.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는 봄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꽃 따라 풍경 따라, 그리고 맛 따라 길을 나서기 좋은 때다. 오늘은 평택호 관광지에서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제철 음식까지 맛보기 위해 리른 새벽부터 마음을 설레며 경기도 평택으로 향했다. 라이딩을 떠나는 날이면 늘 기다려지고 설렌다. 친구들과 함께 페달을 밟는 즐거움도 크지만 무엇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길과 낯선 풍경을 만난다는 기대감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늘의 코스는 평택역을 출발해 안성천을 따라 아산만 방조제를 지나 평택호 관광지를 둘러본 뒤 다시 평택역으로 돌아오는 약 70km의 여정이다.
그런데 출발을 앞두고 아쉬운 소식이 전해졌다. 늘 우리 라이딩을 이끌어 주던 바이크 손대장이 급성 편도염에 오한과 근육통, 관절통까지 겹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선장없는 배처럼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지만, 네 명이 뜻을 모아 예정대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이날은 쉐도우수가 대장 역할을 맡았다. 성동고 16회 바이콜릭스가 창설된 이래 11년 만에 처음으로 선장 없이 떠나는 라이딩이었다. 오전 9시 40분경 평택역을 출발했다. 평택초등학교를 지나 군문교를 건넌 뒤 우회전하여 안성천 자전거길에 들어섰다.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시야가 흐렸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은 오히려 몸과 마음을 가볍게 했다. 안성천은 경기도 안성에서 발원하여 평택을 지나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큰 하천이다. 강변에 늘어선 버드나무들은 긴 가지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봄빛를 머금고 있었다. 물 위에는 버드나무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쳐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바람이 잔잔하게 물결을 흔들때마다 그 풍경도 함께 일렁였다. 안성천1교와 경부선 KTX 철길 아래를 통과하자 석봉리 마을이 나타났다. 강변 곳곳에는 낚시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팽성대교 아래를 지나 도두리 마을로 접어들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광활한 도두리 벌판과 평택대교, 신대평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택대교 아래를 통과해 신대리와 노양리를 지나 창용리로 들어서니 아산호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쌀조개섬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쌀조개섬은 아산 지역의 큰 섬 가운데 하나로 철새들이 찾아드는 곳이라고 한다. 넓은 수변 공간과 어우러진 섬의 모습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아산호의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구성리와 백석포리를 지나 세일철강 아산공장과 오티스 엘리베이터 공장을 거치자 드넓은 아산만 들판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지니지 않아 오늘 여정의 중요한 구간인 아산만 방조제로 접어들었다. 아산만 방조제는 1970년대 안성천 하구에 건설되면서 지금의 평택호, 즉 아산호를 탄생시킨 곳이다. 거대한 담수호와 방조제가 만들어 낸 풍경은 마치 바다를 연상케 했다. 끝없이 펼쳐진 물길과 드넓은 하늘이 맞닿은 모습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방조제를 지나면서 문득 저 멀리 아산만 들판 뒤편에 자리한 공세리성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랜 역사와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공세리성당은 아산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공간 가운데 하나다.
드디어 오늘의 백미인 평택호 관광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먼저 허기진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예전에 식사를 했던 구성횟집을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인근 어촌횟집으로 발길을 돌려 우럭매운탕을 주문했다. 담백한 우럭살과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이 어우러져 그 맛이 일품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라이딩 뒤에 먹는 음식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평택호 관광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평택호는 바다처럼 넓고 시원한 풍광을 자랑하는 평택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호수 주변에는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고, 호수 한가운데 설치된 수중고사분수는 높이 솟아오르는 물줄기로 시원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요트와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띄였다.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요트와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수상스키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듯했다. 평택호에는 한국소리터와 평택호예술관, 모래톱공원 등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잇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호숫가를 따라 조성된 목조데크길은 연인과 가족들이 산책하며 호수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좋고,
배를 형상화한 전망대는 멋진 풍경을 바라보는 전망대이자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 역할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대했던 평택호의 벚꽃이 아쉬웠다. 올해는 봄기운이 더디게 찾아온 탓인지 꽃망울만 맺혀 있을 뿐 화려한 벚꽃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이란 언제나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뜻밖의 풍경과 아쉬움이 다음 여행을 약속하게 만드는 것이 여행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귀로에 올랐다. 자동차극장을 지나 석화봉을 우회하고 호안과 수로를 따라 대안리로 향했다.
그런데 대안리 마을에 들어서니 뜻밖의 봄 풍경이 우리를 반겼다. 배꽃과 복숭아꽃, 홍매화와 목련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마을 전체에 봄이라는 물감을 풀어놓은 듯했다. 평택호에서 보지 못했던 벚꽃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대안2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되 한적한 마을길을 따라 미안산 자락으로 향했다. 강안 비포장길을 지나 다시 안성천 자전거길에 올라서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곧게 뻗은 자전거길을 따라 페달을 밟으니 평택대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평택시 오성면 길음리로 접어들자 이번에는 노란 유채꽃이 우리를 반겼다.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들이 길 양옆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자전거를 달리는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팽성대교를 건너 원정리와 두리, 신궁리를 차례로 지나 다시 안성천 군문교에 이르렀다. 아침에 출발했던 길을 되짚어 달려 마침내 평택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30분경이었다. 비록 예상했던 벚꽃 향연과 제철 쭈꾸미 맛보지 못했지만, 봄날의 안성천과 아산만, 평택호를 가슴에 담고 돌아왔다. 그리고 함께 페달을 밟으며 나눈 웃음과 우정은 그 어떤 꽃보다 오래 피어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반드시 활짝 핀 벚꽃과 제철 쭈꾸미를 만나러 다시 평택호를 찾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