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답안지 / 김석수
오늘은 수능 날이다. 수능 한파라는 말에 걸맞게 아침 기온이 영하다. 올 수능은 예년과 다르다. 그동안 매년 11월 중순쯤 치러지던 시험이 12월 초로 늦춰졌다. 수험생은 코로나 19로 주의해야 할 사항이 많다. 마스크를 써야 하고 체온 측정도 해야 한다. 휴식 시간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야 하니 찬 공기를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다. 두꺼운 외투도 준배해야 한다. 정수기도 사용할 수 없어 따뜻한 물을 챙겨 가야 한다. 긴장감과 번거로움으로 체감 추위가 더 크다. 수능 관리도 예년보다 어렵다.
이십 년 전에 나는 도내 이만 오천 명의 수험생 시험 관리 실무 책임자였다. 수능 관리는 준비하는 것도 어렵지만 뒤처리하는 일이 더 힘들다. 군사 작전하다시피 교육과정평가원에 답안지 인계를 마치고 일주일쯤 지났다. 전산처리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ㅅ 고사장 2교시 답안지 한 장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에 가서 확인하고 즉시 보고해 주라며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윗분들에게 보고하고 교장 선생님에게 학교로 출발한다고 전화했다.
고사관리실에 근무하는 직원과 함께 학교에 도착하니 퇴근 시간이 지났으나 교장, 교감, 교무부장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긴장된 표정이다. 교장실에서 답안지 찾는 회의를 했다. 시험지 보관 장소, 고사실, 시험 관리실, 감독관 대기실 등을 중심으로 답안지를 찾는다. 2인 1조로 교차 점검한다. 수능 관리 지침에 따르면 시험지는 물론 고사실에 나오는 쓰레기까지 일 년 동안 보관하도록 한다. 행정실 직원이 창고 문을 열어서 시험지 묶음을 꺼냈다. 해당 고사실 2교시 시험지를 먼저 확인하고 나머지 시험지도 점검하도록 했다.
밤이 깊어 갔다. 이곳저곳을 샅샅이 들추며 뒤져보아도 답안지는 나오지 않았다. 고사실 교탁과 쓰레기통, 교단 밑을 꼼꼼히 확인해도 없다. 교장 선생님은 안절부절못했다. 고사장 시험 관리 책임자는 교장이다. 답안지가 없으면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학생의 인생이 걸린 문제다. 난감하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다. 직원들이 지쳐있는 표정이다. 이쯤 해서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찾는 일을 중단하고 시험 당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 보자고 했다. 교감과 교무부장, 파견관(장학사)이 새벽에 교육지원청에서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아서 경찰관 호위를 받으며 고사장 학교로 간다. 도착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관리 요원들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분류한다. 시험지 매수가 부족한지 점검한다. 이상이 있으면 즉시 시험지구 교육청으로 보고한다.
시험 시작 전에 감독 교사가 시험지와 답안지를 관리실에서 고사실로 가져간다. 이상이 있으면 복도 감독 교사에게 알려서 조치하도록 한다. 시험이 끝나면 매수를 확인하고 관리실에서 관리 요원에게 넘겨준다. 관리 요원은 답안지를 점검하고 교감에게 넘긴다. 교무부장이나 교감이 최종 확인하고 교장이 답안지 상자에 도장을 찍어 봉인한다. 교감과 교무부장은 상자를 시험지구 교육청으로 가져가서 장학사에게 인계한다.
수능 시험 관리 진행 절차를 하나씩 점검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교장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교장실에서 답안지 숫자를 한 번 더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장실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고 했다. 그동안 교실과 관리실, 창고만 빈틈없이 모조리 뒤졌지 교장실은 그렇지 않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 답안지는 교장실 의자 밑에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확인하고 봉투에 넣으면서 빠뜨린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수능 관리 매뉴얼에 있는 대로 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너무 잘하려다 그런 실수를 한 것이다. 다음 해 시험장 학교 관계자와 파견관 장학사 연수에서 ㅅ 학교 시험 관리를 사례로 제시하면서 답안지 숫자와 수험생 숫자가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능과 인연이 많아서 시험지구 교육지원청과 도교육청에서 다섯 번이나 관리 업무를 맡았다. 세 번은 실무자로 두 번은 관리자서다. 그럴 때마다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수능 날이면 예전에 일들이 뇌리에서 영화처럼 스쳐간다. 영어 듣기 시험은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인다. 잘못되면 크게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전에 여러 차례 시험장 학교 방송 시설 점검을 한다. 정전에 대비해 무정전 전원 공급 장치를 배치한다. 시험 전날 이상이 없다가 당일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시험장 학교 인근 공사장을 점검하던 일이 엊그제 같다. 시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차량 속도를 제한해 달라고 경찰서에 부탁한다. 관계 기관이나 사람들에게 수능 관련 협조 요청하면 대부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하던 공사도 멈추고 쌩쌩 달리던 차도 서서히 간다. 시험 때문에 비행기 이착륙을 통제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뿐이 없을 것이다. 지나고 나니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 여러 사람들 도움으로 무난하게 큰 허물이나 잘못 없이 잘 헤쳐 나왔다. 모두가 고맙다. 빠뜨린 답안지를 찾고 환하게 웃었던 교장 선생님은 퇴직해서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다.
첫댓글 첩보작전을 방물하게 하는군요.
자세히 알고 보니 읽는 저는 웃음이 나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아찔했을까 싶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